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턱.
“허억……! 허억! 퉤! 젠장, 더는 못 해! 오늘은 여기까지!”
흙구덩이에서 가까스로 올라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에 머금은 모래들을 뱉어 내는 사무현.
한편 구덩이 옆에서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천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진다.
“괜찮겠느냐?”
“허억! 허억! 뭐가?”
“이제 ‘그날’까지 닷새밖에 남지 않았고, 유일한 음식인 벽곡단과 식수도 떨어지지 않았느냐?”
“…….”
“여기서 지체할수록 체력은 빠질 테고, 닷새 뒤면 연공 중이고 뭐고 널 끌고 가려고 할 텐데?”
……개새끼.
저놈을 보면 왜 그렇게 충신들만 정치판에서 죽어 나가는지, 그 이유가 피부에 와닿는다.
입바른 소리도, 어? 눈치를 좀 봐 가면서, 어?
“뭐 하냐? 더 파러 안 내려가고.”
“……간다, 가.”
……이 충신 같은 놈아.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사무현이 다시금 흙구덩이로 몸을 들이밀려는데, 돌연 연공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저벅저벅.
“음……? 잠깐, 다시 나와라. 어서.”
“아우……. 뭔데?”
어쩐지 다급한 천마의 음성에, 다급히 흙구덩이에서 올라오는 사무현.
그 순간, 연공실 입구로부터 웬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칠 대 천마이시여, 화상장로님의 명으로 전달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어?
이거 큰일이다.
여기서 저놈이 문을 열어 버리면, 대놓고 작업 중이던 흙구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고 만다.
이미 연공실의 공간 절반 정도는, 보름 동안 사무현이 쉴 틈 없이 파낸 흙더미들로 가득 찬 상태다.
“야……. 이거 어떻게 하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지 않게 당황한 사무현의 물음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쪽을 응시하던 천마도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우선 옷부터 털어라.”
***
‘……어찌해야 하지?’
귀적의 명령을 받아 연공실을 찾은 고명은, 답이 돌아오지 않는 연공실의 입구에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안에 계신 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하셨는데…….’
하지만 아무리 돌아오는 답이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연공실의 문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 안에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악명 높기로 유명한 칠 대 천마니까.
“흠흠……. 칠 대 천마이시여, 화상장로님의 명으로 긴히 전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안에 계시다면 답을 주소서!”
조금 더 힘을 주어 다시 한번 외쳐 보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
물론 심법을 운공 중인 상태라면 대답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받고 온 임무가 있다 보니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조금 더 답을 기다리던 고명이 다시 한번 그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여는데…….
“칠 대 천마시……”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그 입을 찢어 버릴 줄 알거라.”
“흐업!”
바로 문 건너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사내의 음성.
몇 차례 들어 보았던 칠 대 천마의 음성이 분명했기에, 고명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천마께 전할 것이 있어…….”
“본좌의 마기에 휩쓸릴 수 있으니, 뒤로 넉넉히 물러나라.”
“예, 예!”
칠 대 천마의 경고에, 황급히 멀찍이 물러나는 고명.
그리고 잠시 후, 연공실의 문이 열리며 칠 대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
‘……어?’
……뭐지?
무언가 좀 이상하다.
연공실에서 오랜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꼬질꼬질한 이는 본 적이 없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지독한 독기와 피곤함이 반반 섞인 듯한 눈빛.
얼마나 독한 수련을 해낸 것인지 기름기로 번들거리던 두 뺨은 홀쭉하게 들어갔고, 검은 무복 곳곳에는 흙먼지로 추정되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심지어 머리 위에도.
“무엇을 전하러 온 것이냐?”
“예? 아……!”
칠 대 천마의 물음에, 다급히 가지고 온 벽곡단과 식수를 꺼내 든 고명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갖추었다.
“칠 대 천마께서 가지고 가신 식량이 떨어지실 때가 되었으니, 사흘치 벽곡단과 식수를 추가로 전달하라 하셨습니다.”
“흠……. 그래? 생각해 줘서 고오맙다고 전하거라.”
어쩐지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아무튼.
“그, 그리고…… 약조의 그날이 닷새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부분도 상기시켜 드리라 하셨습니다.”
“아, 그것도 아주 자알 알고 있다고 전하거라.”
“존명.”
“그리고 한 가지 더.”
“…….”
“벽곡단과 식수는 고맙다만, 마공이 완성되기 직전이니 본좌가 스스로 나오기 전까지 함부로 방해하지 말라고 반드시! 전하도록 하거라.”
“존명!”
“좋아, 그럼 수고.”
그렇게 짧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이고는, 그대로 연공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칠 대 천마.
등 뒤까지 모두 흙먼지로 뒤덮인 그의 뒷모습을, 고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와 씨, 간 떨어질 뻔했네.”
“쯧. 그것 보거라. 염려할 것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얼씨구?
평소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절대 긴장하지 말라며 호들갑 떨 때는 언제고.
뭐…… 아무튼 어찌어찌, 이놈의 뻔뻔함으로 위기는 넘겼다.
“아무튼…… 덕분에 식수도, 벽곡단도 확보했네. 슬슬 작업도 막바지니 오늘은 이제 그만…….”
“아니, 이제 여유 부릴 틈이 없다.”
“……뭐?”
……이건 또 뭔 소리래?
“조금 전에야 당황해서 그냥 돌아갔다지만, 놈의 눈이 옹이구멍도 아닌데 네놈의 상태를 보지 못했겠느냐?”
“이건 마공 때문에 그런 거라고 둘러댔잖아?”
“네놈이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네놈은 이미 저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냐?”
“…….”
“저놈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안 되어 물러났다지만, 그 보고를 받은 이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 그러니 네게 남은 시간은…… 재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대충 한 시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거다.”
“뭐?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
한 시진이라니!
아무리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는 해도, 한 시진 만에 목표한 곳까지 파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런 젠장. 어쩌냐? 네 계산대로면 저기서 열 장은 더 파고 가야 하는데?”
당황한 사무현이 다급히 흙구덩이로 몸을 날리려 하자, 천마가 그의 뒤로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잠깐. 어차피 그 이상 파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다소 위험하긴 하지만, 이만 여기서 위를 뚫도록 하자.”
“그래도 되? 열 장은 더 파야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느냐? 다행히 본좌의 계산대로라면 이미 요새에서는 벗어났다. 정찰 범위까지 벗어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러다…… 만약에 그 정찰인지 뭔지 하는 것들한테 걸리면?”
“굳이 답이 필요한 질문이더냐?”
씩 하고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처음 대비했던 대로 목숨을 건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럼…… 이제 이곳도 마지막이라는 얘기네.”
“그래. 도주로가 제법 늘어질 수 있으니, 식수는 지금 섭취하고 벽곡단만 챙겨서…….”
“잠깐만 기다려.”
파바밧.
깡! 깡!
난데없이 연공실 한쪽에 보검을 모아 둔 쪽으로 보법까지 펼치며 달려가더니, 천마도를 들고 냅다 보검을 후려치는 사무현.
이에 천마가 의아한 듯 두 눈을 치켜뜨자 잠시 후 보검의 손잡이에서 황금 장식품을 떼어 낸 사무현이 그것을 품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려고 그걸 가져온 것이었느냐?”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며 천마가 반문하자, 사무현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보검들에도 하나하나 동일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럼 내가!”
깡! 깡!
“뭐 하러 이 쓸데없는 걸!”
깡! 깡!
“들고 왔겠냐!”
깡! 깡!
“이건……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깡! 깡!
“깽값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섯 자루의 보검 모두를 손본(?) 사무현이, 품속에 두둑이 황금 장식품들을 챙겨 넣었다.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기둥을 뽑아 가도 모자라지만, 일단은 급하니까 이 정도로 하고……. 영단인지 뭔지도 비싸게 팔린다고 했지? 낄낄, 탈출만 성공하면 한밑천 잡을 수 있겠네.”
“…….”
차마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로, 멍하니 서서 사무현을 응시하는 천마.
그러거나 말거나, 사무현은 천마도를 챙겨 순식간에 흙구덩이 안으로 몸을 날린다.
“어여 따라와, 인마.”
“……그래, 간다. 가.”
어차피 거리가 멀어지면 반자동으로 따라가질 텐데, 뭐.
하지만 구태여 그런 모양새가 되고 싶지도 않았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현의 뒤를 따르는 칠 대 천마였다.
***
“……그래? 연공실에 계시더라는 말이지?”
“예. 벽곡단과 식수도 전달해 드렸습니다.”
고명의 보고에 안도한 귀적이 천천히 끄덕인다.
혹시라도 그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문제가 생겼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
“알겠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느냐?”
“아,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눈에 띄는 부분?”
한순간 두 눈을 번뜩였으나, 고명의 보고에 귀적의 얼굴은 이내 심드렁하게 변했다.
“예. 어떤 마공을 익히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휘말릴 수 있으니 연공실 쪽으로는 접근을 금하시더군요. 본인 스스로 나오시기 전까지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전대 거마가 익히는 마공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게 전부인가?”
“예. 한데 그것이…… 대체 어떤 마공을 익히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온몸에 흙먼지가 묻어 있더군요.”
“……흙먼지?”
이 부분은 좀 의외였는지, 귀적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면 연공실의 바닥이 뒤집어질 정도의 마공을 펼쳤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너희는 연공실 밖에서 아무런 충격이나 소음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냐?”
“예, 속하들 모두가 예의 주시 하였으나 그런 징조는 없었습니다.”
“흐음……. 이해할 수 없군. 대체 어떤 마공을 익히시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 순간.
무언가 한 가지의 가정을 떠올렸는지 귀적의 얼굴이 삽시간에 딱딱히 굳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예, 예?”
“고명! 너는 이 길로 화상장로께 가라. 가서 네가 내게 보고한 것을 전하며 내 뜻을 전하거라!”
“화, 화상장로께 제가…… 말씀이십니까?”
“만약 내 가정대로라면, 칠 대 천마는 마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만약 그가 여태껏 은밀하게 연공실의 바닥을 파헤쳤다면, 땅굴을 통한 탈출로를 모색했을 수도 있음이다!”
“……그런!”
“어디까지나 가정이기는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최악이다! 내가 직접 연공실로 가 볼 터이니, 너는 화상장로께 보고드리고 함께 연공실로 오거라. 서둘러라!”
“존명!”
귀적의 명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처소를 뛰쳐나가 화상장로의 처소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고명.
귀적 역시 고명이 사라지기 무섭게 섬광같이 처소를 빠져나가 연공실을 향해 경공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
퍽! 퍽!
“헉! 헉! 나도 진짜 더럽게 깊게 팠네. 왜 이렇게 지상이 안 나와?”
“쯧쯧. 수평으로 똑바로 파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아래로 내려가며 팠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냐?”
이 새끼……. 정작 내가 삽질하고 있을 때는 퍼질러 구경만 하던 놈이 이제 와서 저따위 소리를 해?
‘그래, 맘껏 떠들어라. 어차피 넌 탈출만 성공하면 성불이다.’
몇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속을 뒤집어 놓는 천마 새끼의 빈정거림을 원동력 삼아, 사무현이 남은 힘을 끄집어내 힘차게 천마도로 머리 위를 막고 있는 땅을 후려쳤다.
“으라앗!”
퍽!
우수수수.
“크헙! 퉤! 퉷!”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흙모래에, 입안에 들어간 것들을 다급히 뱉어 내는 사무현.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든 그의 얼굴로 한 줄기 빛이 내려들었다.
“아……?”
“……나왔구나.”
……세상에.
그토록 오래 꿈꿔 왔던 순간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저 마교도들의 소굴에서 탈출에 성공했다니?
갑자기 쉴 틈 없이 요동치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사무현이 떨리는 손을 뻗어 흙벽에 박아 넣는다.
퍽.
파밧!
탓.
“……하.”
순식간에 반동을 이용해 벽을 기어오른 사무현이 이윽고 평지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삼 년 하고도 약 넉 달 만에, 사무현이 탈출에 성공하는 순간이었…….
“웬 놈이냐!”
……에이, 그럼 그렇지.
여기서 순탄하게 흘러갈 정도의 운이었으면, 애초에 마교도 놈들한테 납치당하지도 않았겠지.
망할 놈의 하늘.
“……도망은 무리겠지?”
순식간에 자신을 포위하기 시작한 세 명의 무사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천마도를 치켜올리는 사무현.
이에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사무현의 뒤에 선 천마가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추적자들의 수가 적을 때는 처리하고 움직이는 것이 정석이지.”
“좋아, 그럼…… 해야겠네.”
……꿀꺽.
이공간에서 천마와 수도 없이 많은 전투를 벌였다고는 하나, 사실 실전 경험은 전무한 사무현이다.
마음을 다잡고 천마와의 대련만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도를 쥔 오른팔에 괜한 무게감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뭐 하냐?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선수필승이다.”
이 자식이 말은 쉽게 하네.
아무튼…… 이제는 정말 움직여야 한다.
“후우…… 흡!”
파밧!
짧은 호흡과 함께 보법을 펼치며, 자신의 정면에 위치한 흑의무사에게 순식간에 접근하는 사무현.
사무현의 손에 들린 천마도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자, 흑의무사도 자신의 검을 들어 사무현의 도를 가로막았다.
‘이런…… 역시 막혔……!’
쩡!
‘……어?’
촤좌좌좍!
마치 도끼로 나뭇가지를 후려친 듯.
있는 듯 없는 듯하던 미세한 저항을 끝으로, 사무현의 도가 흑의무사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삽시간에 벌어진 이 어이없는 상황에, 사무현은 쓰러지는 흑의무사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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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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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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