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무한(武漢).
호북의 성도로, 호남과 안휘, 강서로 이어지는 장강을 끼고 성장한 지역이다.
예전에는 여러 정파의 중소 문파들이 패권을 잡기 위해 다투던 곳이지만, 근래에는 누구도 무한이라는 지역의 패자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이는 바로, 그 이름도 두려운 장강수로십팔채의 정점. 수룡채(水龍埰)가 활동하는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무한 내에서는 그 이름조차 입에 담아선 안 되는 암묵적인 존재.
장강의 패왕이자 무한의 지배자인 수룡왕을 찾아, 제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한 사내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흐음…….”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깊숙한 해안 골짜기 안에 위치한 수룡왕의 거처.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수적들이 양측 벽면에 서서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사내. 흑검문주의 앞으로는, 눈썹이 없는 창백한 안색의 사내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흑검문주라고?”
“예, 예!”
마주한 상대의 전신에서 풍기는 소름끼치는 살기와 위압감에, 흑검문주가 마른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다급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수, 수룡왕을 뵙기 위해 남경에서 왔습니다.”
“저런, 수룡왕께서는 너 같은 것을 만나려 하지 않으실 텐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사내가 허리춤에 매고 있는 자신의 검을 매만지며 입술을 훑는다.
“목숨이 서너 개쯤 되는 거니? 아니면, 네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재물이라도 가지고 찾아온 거야?”
“두, 둘 다 아닙니다. 하, 하지만 수룡왕께서 꼭 아셔야 할 이야기가 있기에…….”
“아하……. 그래애?”
창백해진 얼굴로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흑검문주.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영혼 없는 미소를 머금는 상대의 모습에, 흑검문주의 이마에서부터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경을 떠나는 것은 너무도 억울했기에,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어 보고자 모든 것을 걸고 수룡왕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곳에 당도한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호굴(虎窟)에 스스로 발을 들이민 사냥감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저, 정신 차려야 한다.’
상대가 아무리 괴물 같은 자라고 한들 결국은 사람이다.
자신 역시 한 문파를 책임지고 있는 문주이자 남경에 얼마 되지 않는 사천방의 반대 세력이니, 쓸모가 있음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굳이 그를 해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흑검문주를 바라보며, 이윽고 사내가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말을 꺼낸다.
“수룡왕께 전해라. 남경의 흑검문주라는 자가 적어채의 일로 뵙기를 원한다고.”
“존명.”
대답을 마친 수적 하나가 더 어두운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사내가 흑검문주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입을 연다.
“지금이라도 꽁무니 빠져라 도망치는 게 어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예, 예?”
“수룡왕께선 절대로 버러지들을 살려 두지 않으셔. 그런데 내가 봤을 때 너는 버러지거든? 어차피 수룡왕께서 오시면 넌 죽을 텐데, 그보다는 지금 도망치는 게 낫지 않겠어?”
“…….”
“아니면 지금 네가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기습으로 내 목이라도 따 보든가. 그러면 너도 운이 좋아 사신무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
자신의 속을 훤히 읽고 있는 듯한 상대. 백신무의 유혹에 흑검문주가 떨리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눈썹조차 없는 밋밋하고 창백한 얼굴과 훤히 들어오는 검은 눈동자 때문인지, 그가 도통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그의 앞에서 흑검문주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때.
쿵쿵.
어두운 동굴 안쪽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쓰윽.
발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흑검문주에게서 비켜서는 백신무.
조금 전까지의 위압감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더없이 경건한 얼굴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윽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의 인형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찾아왔다고?”
“……!”
굵고 거친 중저음의 음성.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심장 한쪽이 저려 오는 듯한 두려움에 흑검문주가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춘다.
잠시 후 그의 물음에 대한 백신무의 대답이 들려오고 나서야 흑검문주는 조심스레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남경의 흑검문주라고 합니다, 왕이시여.”
“……흑검문?”
“…….”
“들어 본 적은 없는 이름인데.”
쿵쿵.
동굴 전체가 울리는 거친 발소리와 함께, 흑검문주의 주위가 어두워진다.
어마어마한 거구의 사내가 자신의 앞에 섰음을 직감한 흑검문주가, 그대로 바닥에 부복하며 이마를 땅에 가져다 박는다.
쿵!
“나, 남경의 흑검문주가 수룡왕을 뵈옵니다!”
“……고개를 들어라.”
자신을 봐도 좋다는 허락인가, 아니면 명(命)인가?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이미 흑검문주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한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으니까.
“아……. 아아…….”
자신도 모르게 흑검문주의 입이 벌어진다.
아무리 못 해도 구 척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형.
맹수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두 눈은 부리부리하고 컸으며, 그에 반해 지나치게 작은 동공이 그를 꿰뚫어 보듯 노려보고 있었다.
흡사 사냥감을 살피는 맹수와 같은 눈빛.
마구잡이로 자란 듯 거칠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은, 그의 붉은 얼굴과 어우러져 사람이 아닌 짐승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 이 사람이 바로…….’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소문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이립의 나이에 장강수로채를 손에 넣었다는 인외(人外)의 괴물.
수룡왕 귀하패를 마주한 흑검문주가 바들바들 몸을 떨며 필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귀하패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묻는다.
“나를 아느냐?”
“지, 직접 뵈옵는 것은 처음이나, 강호에 속한 이라면 어찌 대장강수로채(大長江水路埰)를 이끄시는 수룡왕의 존재를 모르겠사옵니까?”
“……적어도 네가 누굴 마주하고 있는지는 안다는 말이로구나.”
흑검문주의 대답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수룡왕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본래 나와 대화를 하려면 값을 지불해야 한다.”
“……아.”
“부족하면 네 목숨을 대신 뱉어 내게 될 터. 준비는 되어 있느냐?”
탐욕이 깃든 수룡왕의 물음에 흑검문주가 고개를 숙이며 품속에 손을 밀어 넣는다.
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수룡왕을 만나 목숨을 건지려거든, 스스로 생각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재물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고.
그 액수의 기준이 모호하긴 했지만, 흑검문주는 스스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는 액수의 돈을 준비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어설픈 도박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대수룡왕을 뵈옵는데 어찌 최소한의 예를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약소합니다만, 부디 받아 주시옵소서.”
쩡그렁.
“흐음…….”
흑검문주가 내민 주먹만 한 돈주머니에는 휘황찬란한 금자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수룡왕의 얼굴은 어쩐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부족한 건가?’
그럴 리 없다.
그가 준비한 금액은 자그마치 금자 백 냥.
어지간한 중소 문파의 반년 치 유지비에 맞먹는 금액이다.
“호, 혹여 부족하다 생각하시면 다음번에는 꼭 더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워낙 사안이 급하여…….”
“됐다.”
생각 외로 덤덤히 그가 내민 돈주머니를 받아 든 수룡왕이, 그것을 품 안으로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어디 한번 들어 보지.”
“예, 예!”
아슬아슬하지만 다행히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금액은 갖춘 모양이었다.
조금만 금액을 줄였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는 생각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흑검문주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남경에서, 사천방주라는 자에게 적어채와 흑곤채, 청수채가 습격을 당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음.”
이미 남경을 넘어서 중원 전역에 파다하게 난 소문이다.
그리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치부였는지 수룡왕의 미간이 슬며시 찡그려지자, 흑검문주가 다급히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실로 비겁한 기습이었습니다. 안개 때문에 식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은밀하게 배를 공격해 좌초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리 자세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그런 비겁한 수가 아니었다면 어찌 저들이 장강의 영웅들을 당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남경 내에서 알 만한 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사천방이라는 작은 규모의 방파가 대체 어떻게 장강수로채의 전투선을 세 척이나 좌초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남경 내에서도 다양한 의문과 추측들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사천방도들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좌초된 배들의 상태나 생존한 수적들을 통한 정보를 종합해 본 바로는 사천방이 알 수 없는 폭발물을 사용했다는 가설이 그나마 가장 신빙성이 있었다.
사천방주가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무공으로 일격에 배를 격파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는 너무 신빙성이 떨어지는 정보였기에 자연스레 묻혀 버리고 말았다.
“난파된 배를 조사해 본 결과, 여기저기 불에 탄 흔적들과 배의 중심부가 거친 폭격으로 파괴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십중팔구 화약류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옵니다.”
“흐음……. 화약류라……. 그거 꽤나 그럴싸하게 들리는군.”
거친 수염을 쓰다듬으며 흑검문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수룡왕이, 잠시 후 스산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말을 잇는다.
“한데…… 고작 그런 쓸데없는 잡담이나 늘어놓으러 나를 찾은 것이냐?”
“예, 예?”
“적어채건 흑곤채건…… 이름도 없는 떨거지들에게 당하는 것들은 애초에 수로채의 이름을 쓸 자격이 없던 것들이지. 더군다나 이미 다 알려진 정보를 구태여 내게 가져왔다는 것은, 사천방이라는 놈들 때문에 네놈이 곤란하다는 말이렷다?”
쓰윽.
말을 마친 수룡왕이 두 눈을 부릅뜨며 등 뒤의 도에 손을 얹는다.
그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흑검문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급히 손사래를 친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저는 그저 당시의 일을 조사하던 중 최근에서야 알게 된 중요한 정보를 수룡왕께 드리기 위해…….”
“그따위 것을 중요한 정보라고 가져온 것도, 내게 죽고 싶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아, 아닙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제가 드리려고 했던 진짜 정보는 따로 있습니다.”
다급히 되는 대로 떠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흑검문주도 이 상황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룡왕쯤 되는 거물이, 자신이 생각해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꿍꿍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만무했으니까.
다만, 저들도 공식적인 보복의 명분과 이익을 위해 그의 이런 수작을 도리어 이용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을 뿐이다.
‘확실하지는 않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던 패지만……!’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었기에, 흑검문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낸다.
“사실 이번 사천방의 습격 사건에 대한 장강수로채 영웅들의 시신을, 저희 흑검문이 주도적으로 수습했습니다. 사천방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저희를 이끌고 있던 분이 바로 돌아가신 적어채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쓸데없는 이야기군.”
“하, 한데 당시 시신들을 수습하던 중 독특한 시신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적어채주님과 한 장소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는데, 칠 척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와 그에 어울리는 커다란 태도를 사용하던 분이었습니다.”
“……뭐라?”
“그런데 제가 알기로 적어채에 그런 체형을 가진 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신원을 확인해 보니…… 흑강패도님의 용모와 상당히 유사…….”
쩌저저정!
흑검문주의 말을 끊어 내고, 수룡왕을 중심으로 폭풍 같은 기세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그가 서 있던 돌바닥에 수많은 잔균열이 만들어진다.
숨이 턱 막혀 오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기세에 흑검문주가 말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털썩.
“지금…… 뭐라고 했느냐……?”
“…….”
“하월, 그 모자란 녀석이……!”
쓰윽.
커다란 손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흑검문주의 목을 움켜쥔 수룡왕이 그의 몸을 번쩍 들어 그와 눈높이를 마주한다.
“……죽었다고?”
진득한 살기가 번들거리는 짐승 같은 그의 눈을 마주하며, 흑검문주는 혼절할 것만 같은 공포를 이겨 내야만 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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