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남경의 잡것아, 지금 네가 한 말에 목숨을 걸 수 있느냐?”
“쿠, 쿨럭! 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수룡왕에게 잡힌 흑검문주가 점점 파리해지는 안색 속에서도 다급히 말을 잇는다.
“호, 혹여 흑강패도 님과 유사한 외모의 시신이었을까 하여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남경 인근에서, 그분과 적어채주님이 함께 있던 모습을 보이신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하면 그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
“저, 저희 흑검문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보관 중에 있습니다.”
“흐으음…….”
흑검문주의 말에 긴 숨을 고르며 천천히 어두운 허공을 응시하는 수룡왕.
한참의 숨 막히는 정적 끝에, 이윽고 생각을 마쳤는지 수룡왕이 잡고 있던 흑검문주를 한쪽으로 집어 던진다.
부웅.
풀썩.
“커헉! 쿨럭! 쿨럭!”
“……그 시신이 진짜 내 아우인지 확인해야겠다.”
“무,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수룡왕이시여!”
다급히 다시 바닥에 부복하며 최대한의 예를 보이는 흑검문주.
혹여나 시신이 진짜 흑강패도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되지 않는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남경의 주도권이고 뭐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 버리겠노라 다짐하고 있었으니까.
적어채주가 그저 미친 인간이었다면, 이건 인간이 아니라 숫제 종이 다른 괴물이다.
“제 목숨과 흑검문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어 주신다면……!”
“알았으니 가 보거라.”
“예, 예?”
“가 보라 했다. 내가 조만간 직접 남경으로 가 시신을 확인하고 사천방을 징벌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하면 제가 미리 흑검문으로 가, 맞을 준비를 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의 숨 막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예상외로 순순히 그를 보내 주는 수룡왕.
이에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흑검문주는 그 모든 상념을 접어 두었다.
일단 살아남았으니, 불필요한 것들은 추후에 천천히 생각해 보아도 충분하다.
“하면 저는 이만…….”
그렇게 헐레벌떡 몸을 일으킨 흑검문주가, 막 등을 돌려 몇 발자국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스릉.
“……!”
뒤쪽에서 들려오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흑검문주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무심한 얼굴의 수룡왕이, 여태껏 그가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태도를 등에서부터 뽑아내고 있었다.
“수, 수령왕이시어, 어찌……?”
“가는 것은 허락했지만, 살아 돌아가는 것까지 허락한 적은 없다.”
“예, 예?”
“재물이 모자랐다.”
“……!”
“대화까지는 가능하지만…… 살아 돌아가고 싶었다면 그 열 곱절은 더 가져왔어야 했느니라.”
스스스스.
그 말과 함께, 천천히 도를 머리 위로 치켜드는 수룡왕.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흑검문주가 필사적으로 애원하듯 소리친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흐, 흑검문에 도착하면 더 많은 재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필요 없다.”
“……!”
“어차피 내가 움직이기로 한 이상 흑검문…… 아니, 남경의 모든 것은 내 것이 될 터이니.”
“……아!”
소름끼치는 수룡왕의 한 마디에 흑검문주의 머리가 아찔해진다.
이 얼마나 멍청했는가? 수룡왕 정도 되는 괴물을 그의 상식 내에서 재단하고 이용하려 했다니.
“염려 마라. 딱 한 합. 그것만 버텨 내면 살려 보내 줄 것이니.
“……큭!”
챙!
두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 정도의 살기가 전해졌으나, 흑검문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어쨌거나 그 역시 절정에 이른 고수.
상대가 제아무리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한 합 정도라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가라.”
부웅.
쐐애애애액!
수룡왕이 큰 동작으로 도를 휘두르자, 도신을 타고 한 줄기의 강기가 섬광처럼 흑검문주에게 날아든다.
이에 흑검문주도, 자신이 끌어 올릴 수 있는 모든 내력을 동원해 석 자 가까이 되는 검강을 만들어 낸다.
“으아아아!”
콰과과광!
우렁찬 기합과 함께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강기를 후려치는 흑검문주.
그 순간, 상식을 초월하는 무게감과 함께 그의 손아귀가 그대로 찢겨 나가 버렸다.
그리고…….
챙!
전력으로 끌어 올린 검강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반으로 부러져 버리는 그의 애검.
경악 어린 흑검문주가 외마디 비명조차 흘릴 틈이 없이, 그의 몸을 집어 삼킨 수룡왕의 강기가 그대로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 장강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쿠구구구구.
장강에서 십여 장은 돼 보이는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더니, 잠시 후 은은한 진동과 함께 곧 잠잠해졌다.
“백신무.”
“예, 왕이시여.”
“상위 서열의 다섯 채에게 지금 바로 서신을 보내라.”
“어찌 보내면 되겠습니까?”
“앞으로 보름 뒤, 남경 앞에 위치한 강포(江浦) 해안가로 집합한다.”
“고작 작은 방파 하나를 멸하기에는 과한 전력 같습니다만…….”
“방파가 아니라 남경이다.”
“……예?”
생각지 못한 수룡왕의 대답에 백신무의 눈이 커진다.
“전체를 멸(滅)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아우가 그곳에서 죽었다면 응당 그리해야지.”
“하나…… 그리되면 정파 놈들이나 관아에서…….”
“백신무.”
“…….”
“언제 우리가 그런 것을 따졌더냐?”
스산한 수룡왕의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백신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이행하겠습니다.”
어리석은 반문이었다.
그는 장강의 왕.
설령 무림맹이 그의 상대라 할지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장강을 호령하는 수룡왕의 칼끝이 남경을 지목하는 순간이었다.
***
“아니, 오늘도 영업을 안 합니까?”
“대체 언제 다시 영업을 재개하는 겁니까? 공지라도 좀 해 주십시오, 공지라도!”
“이러다가는 우리 다 고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뭐라고 입장을 좀 내 주십시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이른 아침부터 사천방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바로, 보름 가까이 영업을 중단한 사천방의 행보에 답답함을 느끼고 찾아온 양민들이었다.
적어채와의 전투 이후, 열흘 간은 영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사천방이지만, 그 기간이 지난 후에도 좀처럼 닫은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사천방의 문 앞으로 몰려든 이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사천방주,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사천방의 영업을 이어 가고 싶은 마음은 제가 제일 큽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면 어찌 문을 안 여시는 겁니까? 이유라도 말씀을 해 주십시오.”
“에…… 그게, 자꾸 돈을 빌려 놓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 또…….”
“아아아악!”
“……응?”
사무현이 설명을 이어 가던 도중, 사천방의 담벼락 안쪽에서 들려온 고통스러운 사내의 비명 소리.
이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이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무현을 바라본다.
“어…… 지금…… 그 소리는…….”
“아, 저 소리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는 양민들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슬며시 담벼락 안쪽을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어…… 저희 애들이 수련을 좀 과격하게 해서…….”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아.”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절절한 비명 소리.
저것이 혼신을 다한 연기가 아니라면, 사천방의 담벼락 안에서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제야 상대가 아무리 양민에게 호의적이어도 결국은 사파라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찾아왔던 이들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아, 알겠습니다. 하면…… 다시 영업을 재개하실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사, 사정이 있으실 테니까요.”
“아, 그럼 다들 이해해 주시는 것으로 알아도 될까요?”
“무, 물론입니다. 돈을 빌리는 저희가 기다려야지, 재촉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 그러면 이만…….”
“예,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아아아아악!”
“히이익!”
담벼락 안쪽에서 다시 한번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놀란 양민들이 헐레벌떡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무현이, 곧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야 이! 조용히 안 할래! 고객님들이 오해하시잖아!”
“죄, 죄송합…… 아아아악!”
“……하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천마놈의 강력한 설득으로 흑미륵마공인지 뭔지를 가르치기는 했는데, 익히기 시작한 지 사흘이 되도록 사천방 안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저 중 대다수가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헐떡이고 있는 게,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가 속출하지 않을까 싶다.
‘사흘을 버틴 것도 대단한 거긴 하지만.’
만약 서로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나흘을 버티지 못하면 성(性)을 갈겠노라 각서를 쓰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반반 섞인 눈으로 담벼락 안쪽을 돌아보던 천마가, 문득 떠오른 듯 사무현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한데, 영업은 계속 이대로 할 셈이냐?”
“응? 뭐가?”
“지난번처럼 악질적으로 돈을 빌리는 이들이 또 생겨날지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흐음…… 글쎄, 그거야…….”
“간자 때문만이 아니다.”
“…….”
“그때는 간자가 의도적으로 개입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아직도 남경에는 사천방을 이방인 취급하는 이들이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까.”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현이 지난 일의 배후를 떠올렸다.
그들의 편인 양 은밀히 적어채를 돕고 있던 간자.
놀랍게도 그 정체는 바로 흑룡문의 총관 장우기였다.
불같이 노하며 그에게 칼끝을 들이민 흑룡문주를 향해, 장우기는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소리쳤다.
‘하하! 어리석소, 문주! 흑룡문의 영광을 되찾아 줄 분은 적어채주님뿐이셨소! 그대가 그분께서 계시던 흑룡문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소? 천만에! 저 사천방이 있는 이상 흑룡문은 영원히 남경의 패자가 될 수 없을 것이외다!’
결국 목이 잘리기 전까지 광소를 터뜨리던 장우기를 처단하고, 흑룡문주는 사천방에 정식으로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에 대해 딱히 용서하고 말 것도 없었기에, 사무현은 흑룡문주에게 내부를 다스리는 일에 힘쓰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천방으로 돌아왔다.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만…….”
사무현의 말에 말끝을 흐리는 천마.
그 역시 답답해서 꺼낸 말이지, 사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을 따르는 사파라고 한들, 한 지역 내에서 오래도록 관계를 맺어 온 이들 사이에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역시 그 아저씨 도움을 받아야 되나?”
“응?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있어, 도와달라 하면 도와줄 사람.”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 빚을 지면 단단히 코가 꿰일 것 같은 사람.
자신의 일에 전추를 끼는 것이 과연 맞는지, 심각하게 고심하는 사무현이었다.
***
쏴아아아.
커다란 배 한 척이 장강의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룡상회의 깃발을 나부끼는 커다란 상선(商船)의 갑판 위에는, 뒷짐을 진 전추가 고개를 쭉 빼고 서성이며 강바람을 맞고 있었다.
휘이이잉.
저벅저벅.
“……또 나와 계셨습니까? 지부장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량의 목소리에도, 전추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음, 자네 왔는가?”
상선을 탄 지 사흘간 거의 매일같이 보던 전추의 뒷모습에, 아량이 남몰래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잇는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으음……. 먼저 식사하게. 나는 강바람을 조금 더 쐬다 들어가겠네.”
“……거기 서 계신다고 더 빨리 도착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부장님.”
정곡을 쿡 찌른 아량의 말에 당황한 전추가 화들짝 놀란 듯 눈썹을 추켜올린다.
그러고는 이내…….
“……티 나는가?”
“예, 아주 많이 납니다.”
“크흠흠…….”
아량의 대답에 멋쩍은 헛기침을 흘린 전추가, 이내 너털웃음과 함께 말을 잇는다.
“이거, 다 늙은 나이에 괜스레 초조하고 설레는구먼. 체통을 지키기가 쉬운 일이 아닐세.”
“다 잘 될 겁니다. 괜한 마음 쓰지 마시고, 들어와서 식사나 하시지요.”
“흠흠……. 그래, 그럼……. 음?”
“왜 또 그러십니까?”
심상치 않게 굳어 가는 전추의 얼굴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아량이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 상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배 한 척이 보이고 있었다.
“……저 배는!”
검은 깃발에 새겨진 혈강(血江)이라는 글자.
그것을 확인한 아량과 전추의 얼굴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창백하게 질린다.
“……혈강채!”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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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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