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아량의 입에서 흘러나온 절망적인 한 마디와 함께, 전추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린다.
“어찌…… 혈강채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냐?”
혈강채.
장강수로십팔채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쪽에 꼽히는 집단.
호북의 형주(荊州), 사시(沙市), 공안(公安)의 세 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로서, 인근의 정도 문파들이 여러 차례 연합해 토벌을 시도했으나 끝끝내 토벌에 실패한 전투의 귀신들이다.
‘호북도 아니고, 안휘 인근에서 저들을 만나게 되다니……!’
아무리 혈강채라도 수룡왕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전추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아량을 향해 명한다.
“당장 배의 속도를 늦추고, 무사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게.”
“예,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혈강채는 상납금을 바치는 상선마저도 공격한다는 악명 높은 이들이다.
당장 무장을 총동원하고 전력으로 배를 몰아 벗어나도 모자랄 판에, 속도를 늦추고 무장을 해제시키라니?
“말한 그대로일세. 절대로! 절대로 우리에게 저항의 의지가 있음을 보이지 마시게!”
“하, 하지만…….”
“어차피 저들에게서 도망칠 곳은 없네. 하면, 적어도 쓸데없이 자극 하지 말라는 말일세. 내 말 알아듣겠는가?”
확고한 의지가 어린 전추의 말에, 결국 입술을 질근 깨물던 아량이 결단어린 얼굴로 몸을 돌린다.
“모두 속도를 늦춰라! 무사들은 모두 무장을 해제하라!”
아량이 목소리를 높이며 배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자, 긴 한숨을 내쉰 전추가 떨리는 손을 갈무리 하며 다가오는 배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이윽고, 빠르게 다가오던 혈강채의 선단과 아룡상회의 상선이 뱃머리를 맞닿았다.
쿵.
“……!”
그리 크지 않은 충돌이었지만, 한순간 휘청이며 쓰러질 뻔했던 전추가 가까스로 균형을 바로잡았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기분에 맞춰 주되 결코 웃음거리 수준으로 보여선 안 된다.
어쨌거나 아룡상회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있는 이상, 저들도 섣부르게 그들 모두를 학살하지는 못할 것이다.
잠시 후, 상대측 뱃머리 위에서 짧은 백발의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흐흣, 웬 놈들이 허락도 없이 장강을 노니느냐!”
“……아룡상회의 악양 부지부장 전추가, 장강수로채의 영웅들을 뵈옵니다.”
백발의 중년사내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예를 갖추는 전추.
남경 지부장이 아닌 악양 부지부장이라는 직위를 댄 것은, 무림맹이 위치한 악양의 영향력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역시나, 그의 인사를 들은 백발사내의 얼굴이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악양 부지부장? 한데 왜 안휘 인근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냐?”
“상회에서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아, 강소 지역으로 향하는 뱃길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장강의 질서를 잡아 주시는 영웅 분들을 뵈오니, 여정의 초입부터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흐음……. 그래?”
전추의 입 발린 인사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백발 사내가 상선 내부를 쭉 훑어본다.
의도적으로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수십의 무사들과 무사로 보이지 않는 십수 명의 인물들.
그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누구도 자신들을 향한 전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일은 쉽게 풀리겠군.’
쓸데없이 피 볼 것 없이 이쪽에 맞춰 줄 의향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능숙한 대응에 내심 짧은 감탄사를 흘린 백발 사내가 이윽고 뱃머리에서 몸을 날려 전추의 앞으로 안착한다.
타닷.
“……아룡상회의 부지부장이라고?”
스산하면서도 노골적인 살기가 묻어나오는 음성.
다분히 의도적인 위협을 이겨 내기 위해 전추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혈강채주라 한다. 들어 본 적이 있나?”
“저는 비록 상인이지만 몸담고 있는 상회는 강호와 아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찌 장강수로십팔채의 혈강채를 모른다 하겠습니까?”
“흐흐, 하면 이야기가 쉽겠군. 본래 장강을 건너려면 우리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아룡상회쯤 되는 대상회이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지금은 가진 것이 적으나, 장강의 영웅들과 첫 거래를 트는 입장이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래? 하면 조금은 기대해 보도록 하지. 날 만족시켜 줄지, 도리어 날 능멸하게 될지 지켜보겠네.”
챙.
퍽!
말을 마친 혈강채주가 허리춤의 도를 뽑아 들어 갑판에 박아 넣는다.
그러자 이내 고개를 돌린 전추가 아량을 향해 말을 꺼낸다.
“식량을 제외하고, 창고에 있는 것을 모조리 가지고 오거라.”
“예, 예? 모, 모조리라 하셨습니까?”
“그래, 창고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모두 가지고 오거라. 혹여나 네 판단으로 남기는 것이 있거든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을 줄 알거라!”
“며, 명심하겠습니다.”
전추의 으름장에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아량이 입술을 악물고 배 안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그들이 모인 곳으로 모습을 드러낸 아량의 품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궤(櫃) 한 짝이 들려 있었다.
쿵.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빠진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량이 대답하자, 천천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전추가 궤짝에서 한 걸음 비켜서며 혈강채주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받으소서, 금자 일천 냥이옵니다.”
“금자 일천 냥?”
생각지도 못한 거액에 혈강채주의 눈이 부릅떠진다.
어쩌면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 하며, 전추가 최대한 정중히 말을 이어 간다.
“장강의 영웅들께 드리는 저희의 성의이옵니다. 부디, 앞으로도 장강의 영웅분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큭.”
전추의 말에, 잠시 후 혈강채주의 입에서 비릿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큭큭큭……. 크흐흐……. 아하하하, 이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장강의 귀한 손님을 내가 몰라봤으니.”
퍽.
아주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혈강채주가, 갑판에 박아 두었던 도를 뽑아 허리로 회수하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리로 넘어오거라, 오패(汚敗).”
“예, 채주님.”
파밧!
타닷.
혈강채주의 명에 순식간에 그들의 앞으로 안착하는 대머리 사내.
그를 향해 혈강채주가 고개를 까닥이며 명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혈강채의 통행패를 넘겨주고, 선물을 챙기도록 해라.”
“존명.”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인 오패가, 품 안에서 나무로 된 패 하나를 꺼내 전추에게 내민다.
“받으시오. 장강의 형제들을 만났을 때 이것을 보이면, 어지간해서는 추가적인 통행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이런 배려를 해 주시니,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쓰윽.
전추에게 통행패를 건넨 오패가 금궤를 안아 들자, 혈강채주가 자신의 배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꺼낸다.
“자네와는 앞으로도 종종 거래를 했으면 해서 하는 말인데, 강소에 갈 일이 있거든 최소한 보름 정도 후에 가는 것이 좋을 걸세. 우리를 포함한 상위 서열의 채들이, 수룡왕의 부름을 받고 강소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하나 상회에서도 시급을 다투는 일인지라, 그리 오래도록 미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히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흐흐, 뭐, 뜻대로 하게. 나야 통행세를 받았으니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는 않을 것이니. 그럼, 또 보도록 하지.”
파밧!
탓!
말을 마친 혈강채주와 오패가 상선에서 몸을 날려 혈강채의 배로 뛰어오른다.
잠시 후 저들이 뱃머리를 돌려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전추가 긴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후우…… 다행히도 살았구나.”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닙니다. 가진 것을 모조리 탈탈 털려 버렸습니다.”
거의 절망적인 얼굴이 된 아량이 고개를 떨구며 말을 잇는다.
“상회에 이 일을 어찌 보고해야 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장강 한복판이고 보는 눈도 없었지. 설령 우리가 저들에게 몰살당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우리의 한을 갚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거야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사 대인께 드릴 선물은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혹여나 저들이 배 안을 수색하려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던 차였…….”
무심코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전추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다.
“……잠깐. 조금 전 저들이 어디로 향한다고 했느냐?”
“예? 그야, 수룡왕의 부름을 받고 강소로……. 아……!”
전추의 말에 무심코 대답하던 아량이 이윽고 두 눈을 크게 뜨며 전추를 돌아본다.
“서, 설마……. 지금 저들이 강소로 가는 것이……?”
“이…… 이이……!”
덜덜덜.
자신도 모르게 움켜쥔 전추의 주먹이 빠르게 떨려온다.
혹여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수룡왕이 향하고 있는 곳은 십중팔구 남경이다.
그리고 필시 그들의 목적은……!
‘……사 대인!’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전추가 다급히 모두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인다.
“다들 서둘러라! 최대한의 속도로 남경에 도착해야 한다!”
“예, 예? 지금 이 상황에 남경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자리에서 펄쩍 뛴 아량이 다급히 전추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아, 안 됩니다! 자살 행위입니다! 수룡왕까지 남경으로 향했다면 저희는……!”
“우리밖에 없다!”
“……!”
“아무리 빼어난 정보원이라 해도 강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저들이 남경에 들이닥치면 사 대인이 몸을 빼시기에 너무 늦는다!”
“…….”
“최대한 속도를 내라! 우리가 저들보다 먼저 남경에 당도해야 한다!”
반발은 허락지 않겠다는 듯 굳건한 전추의 눈빛.
이를 지켜보며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던 아량이 이윽고 고개를 돌리며 소리친다.
“모두 움직여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남경으로 향한다!”
“예, 예!”
아량의 명과 함께 빠르게 흩어져 움직이는 이들.
한편 남경 방향으로 고정된 전추의 얼굴에는 짙은 초조함이 맴돌고 있었다.
***
끼익 끼익.
“허허, 이거 정말 실하네, 그려. 장강의 물고기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구먼.”
“내가 말하지 않았나? 강포 인근은 뱃사람이 많지 않아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남경에서 고작 반 시진인데, 거기서 종일 삽질하는 것보다 여기서 반나절만 고생하는 게 낫지.”
“그래, 그래. 내 자네 덕에 좋은 자리를 찾았으니, 돌아가서 거하게 한 잔 사겠네.”
나룻배 한 척을 띄워 놓고 그물을 걷어 올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내들.
남경에서 어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근래 물고기의 씨가 마른 남경을 벗어나 강포 인근에서 어업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매일 오늘만 같으면 좋겠네. 그럼 오둥이 굶길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크흠……. 거, 벌이도 시원치 않으면서 너무 무리한다 했네. 적당히 두엇만 낳으라니까. 어찌 그리 사서 고생을 하는가?”
“집에 가면 우르르 달려 나오는 애들 보면, 자네도 그런 말 안 나올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물질을 이어가는 이들.
어느새 큼지막한 어망(漁網) 세 개에 물고기가 가득 차자, 사내 중 하나가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후우……. 벌써 해가 지려는데, 이만 돌아가지. 안사람이 걱정하겠어.”
“이 사람이…… 나한테 술 산다는 거 벌써 잊어버린 거 아니지?”
“하하, 고기만 두고 금방 다시 나오면 되지. 아무렴 내가 입을 싹 닦을…….”
퍼석!
“……아?”
난데없는 아찔한 통증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비집고 튀어나온 세 개의 창살을 내려다보며 사내가 두 눈을 끔뻑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핏물이 창살 위에 떨어지자,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창살을 움켜쥐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순간.
스걱.
첨벙.
“아……!”
목과 몸이 분리된 사내의 육체가 힘없이 장강으로 빠져버렸다.
이 믿기 힘든 상황에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동료의 눈앞에,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더불어, 그가 입고 있는 의복에 적힌 수룡(水龍)이라는 글귀도.
“수, 수룡……!”
쐐액!
퍼벅!
자신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앞서 죽은 사내를 찔렀던 삼지창이 그의 목을 꿰뚫는다.
부르르 몸을 떨며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사내가, 그대로 절명해 배 안쪽으로 쓰러진다.
……털썩
“……쯧, 찬(餐)거리가 전부로군.”
투덜거리며 배 안쪽을 쓱 훑어본 수적이, 조금 전까지 사내들이 포획하던 어망 하나를 풀어 어깨에 지고는 그대로 장강에 뛰어든다.
수룡왕이 이끄는 장강수로채가 강소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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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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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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