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잡았구나.”
사무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대머리 사내가 커다란 철곤(鐵棍)을 어깨에 걸치며 미소를 머금는다.
웃옷을 벗고 있는 사내의 온몸은, 강철 같은 근육과 수없이 많은 사선을 헤쳐 왔음을 증명하는 듯한 거친 흉터들로 가득하다.
장강수로십팔채의 가웅채주와 그가 이끄는 정예들이 사무현을 향해 시퍼런 이를 들이밀고 있다.
“대체 어떤 놈을 잡으려고 수룡왕께서 우리를 직접 보내셨나 했는데……. 설마하니 우리 가웅채가 사천방주라는 놈을 잡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이야. 하하, 이거 왕께서 크게 기뻐하시겠구나.”
“……놀고들 있네.”
흡족함이 느껴지는 가웅채주의 음성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곧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그를 향해 묻는다.
“기쁘냐?”
“……음?”
“강호와는 아무 상관없는 양민들을 공격해 수탈하고, 제발 살려 달라 애원하는 이들의 목숨마저도 끊어 놓으면서.”
“…….”
“너희들끼리 왕이니 채주니 떠들어 가며 살아가는 게, 그렇게나 즐거우냐?”
“……큭.”
“…….”
“큭큭큭……. 흐흐흐……. 크하하하.”
사무현의 물음에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가웅채주.
그와 함께 몇몇 수적들도 보란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비웃음을 흘린다.
“이거, 아무리 애송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정파도 아닌 사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구나. 어차피 강자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무림강호가 아니던가?”
“……무슨 짓을 해도 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약하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강자로서 약자의 것을 탐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말이지. 가령…….”
“…….”
“그것이 목숨이라 해도 말이다.”
쾅!
섬뜩한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친 가웅채주가 거대한 철곤을 빙빙 휘두르며 사무현의 머리 위로 도약한다.
“가거라!”
부웅.
쩌저저저정!
곤강(棍罡)을 머금은 그의 철곤이 사무현이 서 있던 대지를 내리치며 인근을 파괴해 버린다.
검과 같은 예리한 날붙이가 아닌, 두꺼운 둔기일수록 강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같은 내력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효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강을 머금었다는 것은 스스로의 고강한 무위를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
하지만,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그 무시무시한 일격을 피해 낸 사무현의 얼굴에는 그저 무심함이 자리하고 있다.
“제법 발이 빠르구나!”
부웅.
사무현을 돌아보며 소리친 가웅채주가, 그대로 바닥에 박힌 철곤을 휘둘러 대지와 함께 사무현의 육체를 쓸어 버린다.
쩌저저정!
“큽……! 아니!”
상대의 몸을 통째로 날려 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철곤이, 수강을 머금은 상대의 왼손에 붙잡혀 있는 것을 확인하자 가웅채주의 눈이 부릅떠진다.
“……약하다는 것 자체가 죄다?”
“……!”
“……재밌네.”
그 말과 함께 싸늘한 냉소를 머금는 사무현.
그 순간 그에게서 풍긴 섬뜩한 살기에 가웅채주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한다.
그리고…….
부웅.
아슬아슬한 순간, 온몸에서 느껴진 오싹한 위기감에 자신의 철곤을 놓고 뒤로 상체를 젖힌 가웅채주.
그와 동시에 그의 바로 눈앞으로 섬광 같은 도격이 스쳐 지나갔다.
촤악!
완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앞 머리칼 일부가 잘리며 그의 이마에 일(一)자의 붉은 선이 그려진다.
눈이 아닌 감각에 의존해 피한 극쾌의 일도!
스스로도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가웅채주가 마른침을 삼키려는 찰나.
“틀렸어.”
“……뭐?”
“피하는 게 아니라, 막았어야지.”
그 말이 끝나고 잠시 후, 사무현의 도가 스치고 지나간 허공에서 복잡한 형태의 난기류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수백, 수천 번의 변화를 담은 도풍이 그의 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
촤아아아아악!
도풍에 담긴 극도로 예리한 도기(刀氣)가, 그의 호신기를 꿰뚫고 그의 몸을 수십, 수백 번 난도질한다.
“끄아아아아아!”
얼굴, 복부, 안면, 흉부, 사지.
어디 한 군데 빠지지 않고 날카로운 도기가 그의 육체를 가른다.
순식간에 한쪽 눈을 잃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웅채주.
고통에 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의 귓가로 무미건조한 사무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억울하진 않겠네.”
“……!”
“넌 약자니까.”
서걱.
‘말도…… 안 되는…….’
자신의 몸을 가르는 끔찍한 감각을 느끼며 가웅채주는 경악했다.
무수한 전장을 누비며 숱한 강자들을 만나 왔던 그가, 고작 이 합(二合)을 받아 내지 못하고 패하고 말다니?
필사적으로 하나 남은 눈을 치켜뜨자, 일말의 동정심도 깃들지 않은 냉혹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사무현의 얼굴이 들어왔다.
‘……저 눈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웅채주는 깨달았다.
상대는 결코 살인을 모르는 이도, 유달리 약한 심성을 타고난 이도 아니다.
오히려 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투사의 눈빛이다.
‘그런데…… 왜 아까는 그런 애송이 같은 말을……?’
만약 상대가 저런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혼자 달려드는 만용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그 후회를 끝으로, 장강에서 그 악명 높던 가웅채주의 목숨이 끊어졌다.
털썩.
“이…… 이게…… 무슨……”
“채, 채주님이……?”
십삼 년 전, 이립의 나이에 가웅채주에 오른 이후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괴물.
한 때는 사신무의 자리까지도 넘보았던 그의 허무한 죽음은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어, 수적들 대부분이 좀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가웅채의 수적들을 빙 둘러보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냐?”
“…….”
“이제 너희들 차례인데.”
“다…… 다 같이 고, 공격해! 어서!”
파바밧!
우두머리는 잃었으나 확실히 그들은 장강수로채의 정예들이었다.
긴 창을 꼬나 쥔 이들이 먼저 사무현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그들의 뒤쪽에 선 이들이 작살과 암기들을 투척한다.
다수로 한 명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듯한 합격진.
하지만…….
스스스스.
사무현의 도가 빠르게 회전하며 그의 몸을 감싸 안는다.
그를 중심으로 삼십육방이 도를 타고 흘러나온 강기에 의해 빈틈없이 감싸인다.
스스스스스.
“이…… 이거 잠깐……!”
용감무쌍하게 창기를 두르고 앞으로 나아가던 가웅채의 무사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달려드는 속도를 늦춘다.
언뜻 보면 방어를 위한 초식 같지만, 그와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기의 흐름이 도리어 주위에 강한 인력(引力)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그들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려는 그 순간.
파아아아앗!
사무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강기가 빠르게 팽창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천마도법 십이 초식, 멸세천마도.
삽시간에 강기의 팽창에 빨려들어 가 버린 가웅채의 수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잠시 후 그 인근에서 우렁찬 대폭발이 벌어진다.
콰과과과과과광!
천지가 울리는 폭발과 굉음은 지축을 뒤흔들며 멈출 줄 모르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
“……아우야, 이리 되려고 장강을 떠났느냐?”
관짝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반쯤은 부패가 되어가고 있는 흑강패도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수룡왕이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원통해 마라……. 억울해 마라. 네 죽음을 방관한 저들도, 네 죽음에 관여된 누구 하나도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 이 수룡왕의 이름을 걸고.”
따닥, 따닥.
말을 마친 수룡왕이 작은 재단에 쌓여 있는 나무에 불을 붙이자, 그 위에 놓인 흑강패도의 시신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까드드득.
불길 속에 사라져 가는 자신의 아우를 바라보며 어금니를 악무는 수룡왕.
굳이 억누르지 않은 그의 살기가 배 안에 퍼져 가기 시작하자, 장례를 진행하던 수적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풀썩.
기어이 수룡왕의 짙은 살기를 견디지 못한 수적 하나가 자리에서 졸도해 바닥에 쓰러진다.
이에 수룡왕이 분노 어린 눈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순간…….
구구구구.
끼익, 끼익.
“……음?”
남경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심상치 않은 진동과 함께 수룡채의 배가 흔들리자, 미간을 찌푸린 수룡왕이 폭발이 일어난 남경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폭발은 분명…….’
……강기다.
십중팔구 화경급 고수가 펼치는 강기가 만들어 낸 폭발.
조금 전 채주들을 그리로 보낼 때에는 혹시나 싶었는데, 이곳 장강까지 출렁이게 만드는 강기의 위력이라면 의심할 나위가 없다.
“……큭, 과연. 은거중인 노괴(老怪)가 이곳에 있었으렷다?”
대체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아우인 흑강패도는 절정급 내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고수.
그런 그가, 적어채를 포함한 장강수로채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결국 하나만을 의미한다.
“……네놈 짓이로구나.”
확신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린 수룡왕이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자세를 낮춘다.
쓰윽.
콰과광!
“와, 왕이시여!”
순식간에 갑판을 박차고 도약해 경공술을 펼치며 날아가는 수룡왕의 신형.
거대하기 짝이 없는 그의 몸이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변해버렸다.
“이…… 이제 이거 어쩌지?”
따닥, 따닥.
아직까지 장례는 끝나지 않았다.
불길에 타오르는 흑강패도의 시신과 떠나가 버린 수룡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수룡채의 수적들이었다.
***
쿠구구구구.
“……이 폭발은?”
넝마나 다름없게 변한 무복.
산발이 되어 버린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혈강채주가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왕께서 나서신 건가?”
이 거리에서 이만한 위력의 폭발을 만들어낼 만한 장본인은 그가 알기로 단 한 명뿐이다.
평소 위엄을 생각해 전면에 잘 나서지 않는 수룡왕이 이렇게 움직였다는 것은, 그가 지금의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
‘……어떻게든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겠군.’
고작 애송이 두 놈을 상대로, 채주인 자신과 부채주가 함께 잡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다.
수룡왕은 쓸모없다고 판단되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패는 옆에 두고 쓰려 하지 않으니까.
“……더 시간 끌 것 없이,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구나.”
생각을 마친 혈강채주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거친 호흡을 이어 가는 청사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후우……. 왜, 주인에게 혼날까 봐 걱정이 되나 보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군.”
쓰윽.
“특별히 네 목은 사천방주에게 선물로 보내주마.”
그 말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석 자에 이르는 도강을 끌어 올리는 혈강채주.
이에 남은 내력을 삼지조에 불어 넣으며 청사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여기까진가.’
첫 합에 상대의 방심을 노려 한쪽 다리에 큰 부상을 만들었다.
무사에게 있어 저것이 얼마나 큰 불리함을 안는 것인지 모르지 않건만, 그런 상대에게 맞서면서도 지금까지 치명상을 입지 않고 버텨낸 것이 지금 청사의 한계였다.
‘그나마도…… 그 기이한 외공 덕분에 버틴 것이지만.’
만약 무천신공인지 뭔지 하는 외공을 익히기 전이었다면, 아마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내어놓고 말았을 것이다.
다량의 출혈 때문인지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려 애쓰며 청사가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낮춘다.
‘……적어도 이대로 혼자 죽진 않는다.’
여기서 그가 홀로 목숨을 잃으면, 저 부채주라는 녀석에게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마우평도 끝장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처음에는 그럭저럭 평수를 이루는 것 같았으나 상대는 금세 마우평의 육체와 체술에 적응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승부는 불 보듯 빤한 상황.
하지만 근처에 누구도 그들을 도우러 올 수 있는 이들은 없다.
아마 다른 사천방도들은 하나같이, 수적 열세 속에서 정신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와라.”
비장함이 느껴지는 청사의 한 마디에 혈강채주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어린다.
여차하면 동귀어진도 불사하겠다는 상대의 각오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로 그에게 목숨을 잃을 일은 없겠지만, 자칫하다가는 팔 하나 정도는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목숨을 건 인간은 때로 믿기 힘든 일을 만들어 내곤 하니까.
“쓸데없는 짓을……!”
스팟!
말을 마친 혈강채주가 가볍게 몸을 날려 청사와의 거리를 좁힌다.
그러자 청사 또한 섬광같이 자리를 박차고 혈강채주와의 거리를 급속도로 좁히려 한다.
부웅.
쐐애액!
콰과광!
“크악!”
휘리리릭.
촤지지지직.
난전을 유도하려는 청사의 의도를 눈치챈 혈강채주가, 접근전을 피하기 위해 먼 거리에서 도기를 날려 청사의 몸을 날려 버린다.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폭발에 의해 뒤쪽으로 나가떨어진 청사가 붉은 피를 토해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쿨럭! 쿨럭! 커헉!”
“미안하지만, 함께 어울려 주는 시간은 끝났다.”
“……!”
“이제 마무리 지을 시간이니 말이다.”
부웅!
그 말과 함께, 혈강채주의 도신에서 또다시 섬광 같은 도기가 뿜어져 나와 청사에게 쇄도한다.
닥쳐올 충격을 직감한 청사가 삼지조를 들어 올리며 어금니를 악물던 그때.
콰과과광!
“……읏!”
청사를 향해 날아오던 혈강채주의 도기가 돌연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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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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