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귀혈진.
이는 개문식으로 인해 사도관주가 사천방에서 머물렀던 때, 그들 셋을 따로 불러내어 전수한 진법이었다.
진을 펼치는 세 사람의 내력을, 아주 잠시 동안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는 희대의 진법!
‘본래라면 연무학관을 졸업하는 시점에 가르쳐 줄 계획이었지만, 이제 너희도 강호를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아비로서 이 정도 무기는 쥐여 주는 것이 도리일 듯싶구나. 다만, 반드시 기억하거라. 귀혈진을 한번 발동시킨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반 각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진을 발동시킨 너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니.’
파격적인 것을 넘어서 충격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진법을 전수한 후, 사도관주는 몇 번이고 주의와 당부를 덧붙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 아니라면 절대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동귀어진의 각오를 해서라도 쓰러뜨려야 할 상대에게만 사용해야 할, 최강이자 최악의 진법이라고.
그날 진법을 전수받은 후 수십 번 이상을 함께 합을 맞춰 보았지만, 이렇게 빨리 실전에서 사용하게 될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시작한다.”
“예, 형님.”
“예!”
타닷.
사삭.
적월의 명과 함께 각자의 위치로 몸을 움직이는 나혼수와 만패.
청신무 한 명을 중심에 두고 널찍이 그를 포위한 이들이, 잠시 후 복잡한 진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스스스.
“흐음……. 귀혈진이라?”
진법에도 격이라는 것이 있다.
단순히 전투 대형에서 손발을 맞추기 위한 합격진과, 삼재(三才)나 오행(五行)과 같은 대자연의 기를 이용하는 진법(鎭法).
저들이 말하는 귀혈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파에서 흔히 떠도는 대다수의 진법은 대게 손발을 맞추는 합격진의 경우가 많다.
그중 간혹 진짜배기 진법을 흉내 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조잡한 사술의 수준이 대부분이다.
‘대충 힘으로 깨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형태를 갖춘 진을 힘으로 깨려 하면 필요 이상의 과한 체력과 공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겉으로 애써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전까지 저들 셋의 합격진을 받아 내느라 청신무 역시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다.
한 놈 한 놈, 좀처럼 그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으면서도 지독하게 그를 압박해 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수도 없이 손발을 맞춰 본 녀석들처럼.
‘……도리어 잘됐군.’
청신무의 한쪽 입꼬리가 스산하게 말려 올라간다.
‘어설픈 진법은 도리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하지.’
세상에 완벽한 진법은 없다.
특정 상황에 강한 이점을 만들어 내는 진법의 대부분은, 아주 미세한 연결 고리 하나만 끊겨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빠르게 달리던 수레일수록 넘어졌을 때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는 법.
“……오거라.”
생각보다 손쉽게 승부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청신무가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저들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그러던 그때, 그의 주변을 맴돌던 나혼수가 날카로운 호조를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든다.
‘갑자기?’
당연히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퍼부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렇게 대뜸 혼자 달려들다니?
이래서는 진법이라는 것을 펼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흥, 이건 또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만……!”
어떤 조잡한 진법을 펼치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혼자 덤벼드는 것은 완전한 계산 착오다.
그가 저들 셋을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하며 완벽에 가까운 합격진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죽어라!’
스스스스.
청신무의 창끝이 흐릿한 잔영을 만들며 흔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청신무의 창격이 세 줄기의 섬광으로 화(化)해 나혼수를 향해 날아든다.
청신무의 독문창법의 절기 중 하나인 삼섬살왕격(三閃殺王擊)의 발현이었다.
쩌저저정!
조강을 머금은 나혼수의 호조와 청신무의 창격이 맞부딪치며 우렁찬 폭발을 만들어 낸다.
그와 함께 청신무의 창이 처음으로 뒤로 밀려나더니 그의 무복 일부가 찢기며 흉부에서 붉은 피가 튀어나온다.
촤아악!
“큭……! 뭐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혼수의 거력에 청신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이미 그전까지 손속을 펼치며 상대에 대한 평가를 마쳐 두었던 청신무다.
상대가 아무리 죽을힘을 다했다고 해도, 설령 진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스스스.
청신무의 창끝이 더 빠르게 흔들린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의 예측을 벗어났다.
어설프게 힘을 아끼려다 도리어 저들에게 기세를 내어 줄 가능성이 있다.
“이놈……!”
파밧!
청신무가 반격을 가하려는 찰나, 돌연 달려들던 나혼수가 뒤로 빠지더니 그의 반대편에 서 있던 만패가 청신무에게 달려든다.
다수가 하나를 압박하는 진법을 펼침에 있어, 합격이 아닌 일 대 일 대결을 반복하다니?
저 꿍꿍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청신무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환영이다.
이제 저 정체불명의 진을 파훼하는 쪽보다, 전력을 다해 한 놈 한 놈씩 처리하는 편이 오히려 수월할 테니까.
스륵.
“죽어라!”
쐐애애액!
파바바바밧!
달려드는 만패를 향해 빙글 몸을 돌린 청신무가 준비해둔 초식을 펼친다.
오섬살신격.
위평문주의 숨통을 끊어 놓았던 그의 절초가 만패를 향해 뻗어 나간다.
콰과과광! 콰광!
“크으읍……!”
지이이익.
권강을 머금은 만패의 주먹이 정확하게 오섬살신격의 공격을 모조리 쳐낸다.
삼성살왕격보다 족히 두 단계는 나아간 속도와 위력으로, 숱한 절정 고수들의 목숨을 앗아간 절초이거늘……!
주르륵.
“이런 말도 안 되는……!”
설마 저놈들의 진법으로 인해 자신이 약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다.
놈들의 움직임이 시작된 이후 기묘한 기의 흐름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딱히 그의 움직임이나 내력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데 이게 무슨 조화라는 말이냐!’
애초에 실력을 숨겼을 리는 없다.
저만한 실력이라면 굳이 진법이니 뭐니 하는 것을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설마…… 놈들의 실력을 비약적으로 강하게 해 주는 진법?’
……아니,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진법의 근본이란 결국 대자연의 흐름과 자신들의 기를 이용해 특정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
놈들이 난데없이 대자연의 기를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이렇게 강해질 수 있을 리가…….
‘……잠깐, 흡수?’
무심코 생각을 이어 가던 그때.
퍼뜩 미친 한 가지 생각에 청신무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정면에 서 있던 적월이 그를 향해 서늘한 음성으로 말을 건넨다.
“어째 생각이 많은 얼굴이군.”
“이놈……! 사혈귀진대(死血鬼鎭隊)와 무슨 관계냐!”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인간이 있네.”
조금은 놀랐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 올린 적월이, 이윽고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말을 잇는다.
“아버지가 나오신 이후로 자연스레 없어진 집단으로 알고 있었는데.”
“……! 네놈 설마, 사진귀검(死鎭鬼劍) 적패(赤覇)의……!”
“……죽어라.”
쾅!
말을 마친 적월의 신형이 자리를 박차고 폭발적인 속도로 그와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그런 적월의 검신에서는 일곱 자에 이르는 거대한 검강이 머금어져 있다.
이는 한낱 이립 안팎의 후기지수가 만들어내기에는 불가능한 크기.
심지어 그의 움직임은 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까드득.
이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파악한 청신무가 소리 나게 어금니를 깨문다.
사혈귀진대주, 사진귀검 적패.
수십 년 전 사파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도 무리.
물론 무림에 명성을 떨치던 사도 무리들의 이름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지만 그들의 행보는 꽤나 파격적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의 부딪침을 꺼리는 다른 수많은 사파들과는 달리, 이들은 정파의 이름난 고수들을 다섯이나 내리 꺾으며 그 명성을 과시했었으니까.
청성에서 배출한 우선검(雨仙劍)과의 승부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행보가 끊겼는데, 이는 소위 명문정파의 망신을 막기 위해 연무학관에서 사혈귀진대주를 사도관주로 초빙했기 때문이었다.
“……오냐, 어디 한번 와 보거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마저 넘어섰다는 살아있는 사파의 전설.
그들이 사용했다던 귀진(鬼鎭)의 실체를 몸소 깨트려 보이리라.
스스스슥.
각오를 다진 청신무의 창이 빠르게 회전한다.
회전하는 그의 창이 세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현란하게 흔들린다.
검이나 도와 같은 날붙이들이 가지지 못한 것.
바로 긴 창대에서 나오는 탄력과 유연함.
부드럽고 탄력적인 궤적을 그리며 진동하던 그의 창이, 순간 십여 개의 섬광으로 화(化)해 적월을 향해 쏘아져 날아든다.
촤좌좌좌좍!
‘어차피 다 쳐내진 못한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십여 줄기의 섬광을 바라보면서도 적월은 검 끝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의 귓가에는 수많은 대련을 통해 들었던 사무현의 잔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배가 살암보다 못한 부분이 뭐냐고요? 뭐…… 하나하나 말하려면 열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라기는 한데,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얘기하자면 이거예요. 선배는 너무 완벽주의자라는 거.’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상대가 변초로 공격하면 똑같이 변초로 공격을 막으려 들고. 상대가 동귀어진의 각오로 달려들면, 똑같이 동귀어진으로 맞서려 하고. 그냥 쉽게 말해서, 자꾸 상대의 방식대로 상대를 꺾으려는 이상한 면이 있는 거죠.’
‘아니…… 나는 딱히 그런 적이…….’
‘아니기는 무슨, 매번 그러더만. 그런 식으로 싸우면 선배보다 조금만 더 강한 상대와 싸우면 열 번을 싸워도 열 번을 다 선배가 질걸요?’
‘…….’
‘뭐, 선배가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를 것 같진 않아요. 그 허량인지 뭔지 하는 선배한테 그 비슷한 방식으로 깨졌나 보죠?’
‘……!’
‘그 상대한테 벽이라는 걸 느껴 버렸으니, 무의식중에 그 선배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뒤따라가고 있었던 거겠지요. 그런데, 그건 그 선배가 그런 검법을 익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 선배는 그런 식으로는 절대 승부에서 못 이겨요.’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우선은 각오.’
‘……각오?’
‘자기 색깔을 찾기 이전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팔 한쪽 정도는 내어 줄 수도 있다는 각오. 단순히 지지 않는 검이 아니라,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을 쓰겠다는 각오.’
‘…….’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다.
당시에는 아리송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십여 개의 변화가 뒤섞인 창.
어설프게 저 모든 것을 받아 내려 한다면 이번 합에서는 승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귀혈진이라는 것을 발동시킨 이상, 시간을 끌수록 그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한 합으로 기필코 승부를 봐야만 한다!
‘목숨 이외의 것은 생각지 않는다.’
팔이건 다리건, 내어 줘야 할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 주고 대신 상대의 목숨을 노린다!
각오를 마친 적월의 검이 그의 몸 중심부를 지키며, 빠르면서도 정직하게 청신무의 몸 중심으로 날아들었다.
콰광! 쾅!
촤좌좌좍! 퍼벅!
두 번의 묵직한 창격이 검신을 두드리고, 몇 번의 공격이 그의 두 허벅지를 꿰뚫고 양 옆구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런 공세 속에서도 적월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지금까지 방어 위주의 검을 펼치던 녀석이 난데없이 동귀어진의 공격이라니?
나름대로 회심의 절초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자, 당황한 청신무가 다급히 창을 회수하며 적월의 검을 후려친다.
부웅.
쩌저정!
검의 궤도를 바꾸기 위한 필사의 일격.
하지만, 흔들림 없이 올곧은 적월의 검은 도리어 청신무의 창격을 튕겨내 버렸다.
그리고, 다음 한 합으로 청신무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스거억.
“……!”
촤아아악!
불신, 경악, 혼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청신무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털썩.
“허억……! 허억……! 쿨럭! 쿨럭!”
풀썩.
청신무가 쓰러지고 나자, 역류한 검붉은 피를 와락 쏟아내며 바닥에 엎어지는 적월.
그와 함께 귀혈진의 효과가 사라지며 만패와 나혼수의 입에서도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온다.
촤아악!
“쿨럭! 쿨럭! 커헉! 혀, 형님은…….”
“괘, 괜찮으십니까? 형님.”
창백해진 얼굴로 토혈을 뱉어 내며 적월을 살피려 하는 나혼수와 만패.
하지만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엎어진 적월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혀…… 형님이…….”
“이, 일어나라 만패! 우리가 부축해야 한다!”
“쿨럭! 아, 알겠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나혼수와 만패의 입에서 계속해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귀혈진의 부작용.
애초에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내력이 아닌, 타인의 내력을 공유해 일시적으로 힘을 폭발시킨 대가는 실로 컸다.
전력을 다한 한 합.
고작 거기까지가 귀혈진의 한계였다.
그렇게 그들 모두가 비척비척 적월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그때.
쓰윽.
난데없는 인기척과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적월의 몸 위로 겹쳐진다.
“누구…….”
“……아!”
“……그런 몸으로 누굴 부축하려는 건가?”
타다다닷.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적월의 몸을 안아 들어 한쪽 어깨에 걸친 살암이, 뒤이어 따라 들어온 사문회도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가까운 의방으로 안내해 주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방주가 난리를 칠 테니.”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쪽입니다.”
살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은 만패와 나혼수를 부축하고, 또 몇몇은 살암의 앞에서 길을 안내한다.
그렇게, 사천방과 사신무의 전투가 하나둘씩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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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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