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내가 실망을 해도 아주 단단히 했소이다! 고작 석 달 만에 그렇게나 형편이 없어지다니!”
“나 역시 마찬가지요! 이래서야 앞으로 마음 편히 자리를 비울 수가 있겠소이까?”
남경에 위치한 소화루(小華樓).
그곳에 모인 아홉 명의 남경 문주들이 지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원래라면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겠지만,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문파에 대한 한탄과 함께 쓰디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검초를 전개하는 데 힘은 하나도 실리지 않고! 부족한 힘을 채워 넣으려고 되지도 않는 내력이나 팍팍 끌어다 쓰고! 우리 애들이 이렇게나 문제투성이인 것을 내 여태껏 모르고 있었소이다!”
“귀창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동안 봉문이라도 하고 내실을 다져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확실한 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다음에도 수적들과 싸운다면, 이번처럼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잔뜩 흥분하며 이야기를 토해 내는 구호단주, 귀창문주, 호반문주.
이에 지금껏 조용히 술을 마시며 그들을 지켜보던 흑룡문주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던졌다.
탁.
“한데…… 그 내실들을 어찌 다지실 생각들이시오?”
“글쎄요……. 몸이 따라 주지 않아 자꾸만 필요 이상의 내력을 쓰려 하니, 우선은 육체부터 단련시켜야겠지요.”
“하면 육체 단련은 어찌시키실 생각이오?”
“글쎄요, 그야…….”
흑룡문주의 말에 무심코 대답을 하려던 구호단주가, 잠시 후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멈춘다.
그러자 그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본 흑룡문주가 빙긋 웃어 보이며 그의 말을 대신 잇는다.
“내 구호단의 검술을 잘 아는 것은 아니오만, 검에 힘을 싣기 위한 근육이라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체일 듯싶소이다.”
“……그렇지요.”
“하체에서 실린 힘을 검까지 연결하려면 어깨와 등, 그리고 검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전완근도 필수적이겠지요. 그리고 마침……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강화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단련법을 알고 있소이다.”
“……사천방의 수련법을 말하시는 것이군요.”
어느새 쓴웃음을 머금은 구호단주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인정한다.
“아무래도 기초가 제대로 다져질 때까지는 사천방의 방식을 접목시켜야 할 듯합니다.”
“기초가 제대로 다져질 때라면 언제를 말하시는 것이오?”
“그건…….”
또다시 무심코 대답하려던 구호단주가 다시 한번 말문이 막힌다.
기초가 언제쯤 다져지냐고?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나.
검을 잡는 순간부터 놓는 순간까지, 탄탄해지면 탄탄해질수록 좋은 것이 기초다.
무인의 성장 한계는 기초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니까.
결국 바꿔 말하면, 앞으로는 매일 같이 그런 훈련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가만, 그럼 나도 해야 되잖아?’
수하들에게 매일같이 시켜 둔 훈련을 그 혼자만 계속 빼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문주의 권위로 빼먹으려면 빼먹을 수 있겠지만 결국 사파란 힘으로 지배되는 곳이니까.
결국 이대로 내버려 두자니 수하들의 수준이 눈뜨고 못 봐 줄 지경이고, 그렇다고 수련을 시키자니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함께 집어넣는 꼴이다.
구호단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물쭈물거리자, 흑룡문주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꺼낸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오. 고작 석 달 동안 문주가 자리를 비웠다고, 수하들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 한 군데가 없으니.”
“크흠…….”
“흠흠…….”
정곡을 찌르는 흑룡문주의 말에 남경의 문주들이 헛기침을 흘린다.
그들이라고 어찌 눈치채지 못했겠는가?
처음에는 정말로 자신의 수하들, 그리고 제자들이 게으름을 부리고 나태해진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의 수하들은 약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초식의 전개는 더욱 능숙해졌고 검초를 전개함에 있어서도 망설임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약해진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그들 모두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리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남경의 문주들을 빙 둘러보며 흑룡문주가 자조 섞인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무리도 아니지요. 그 사천방도들과 석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으니, 지금 우리 수하들의 수준이 눈에 차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오.”
“…….”
“하나 그걸 알아 버리고 나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더이다. 사천방주의 눈에 비치는 우리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아…….”
설마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는지 남경 문주들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흑룡문주가 조용히 술 한 잔을 더 기울이고는 말을 이었다.
탁.
“후우……. 그가 과연, 지금의 우리를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할 수 있겠소이까?”
흑룡문주의 물음에 좌중에 침묵이 자리한다.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석 달이라는 시간을 버텨 내고 강해진 것으로 이제 사천방과 연합이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사천방주는 그들에게 연합이 될 기회를 준 것이 아니다.
그저 도저히 눈 뜨고는 봐 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기회와 방법을 제시해 준 것일 뿐.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사천방주의 배려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견뎌 낸 스스로를 대단하다 자부하고 있었다.
고작 석 달을 버텨 낸 것으로 이런 술자리를 가지려 했을 만큼…….
쓰윽.
“……그간의 회포를 푸는 자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하구려.”
어느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흑룡문주가 모두를 향해 포권해 보이며 말을 잇는다.
“본인은 이만 돌아가 보겠소이다. 모쪼록 편히 즐기시길 바라겠소.”
저벅저벅.
그렇게 인사를 마친 흑룡문주가 자리를 떠나자, 침묵 속에서 조용히 술잔만을 내려다보던 귀창문주가 돌연 몸을 일으킨다.
쓰윽.
“……나도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소.”
“이, 이리 갑자기 말입니까?”
“미안하게 되었소. 당장 돌아간다고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여유롭게 술이나 마실 기분은 아닌 것 같구려.”
저벅저벅.
“……크흠, 저 역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도 이만…….”
그렇게 흑룡문주와 귀창문주를 시작으로, 구호단주, 사문회주, 가명회주……. 결국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마지막에 홀로 남은 호반문주가 헛웃음을 흘리며 텅 빈 주위를 둘러본다.
“거참…… 성격들도 급하시지.”
그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차라리 지난 석 달의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사천방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 저들에게 남은 감정은 하나뿐일 것이다.
‘……부끄러움인가.’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사천방과 함께 천신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부끄러움.
자신의 수하들을 보며 느꼈던 갑갑함까지 떠올려 보면, 아마 지금쯤 그들이 느끼고 있을 민망함은 상당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아직도 상 위에는 으리으리하고 값비싼 요리들과 술이 가득 즐비해 있었다.
쓴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의 술잔을 그곳에 올려둔 호반문주가, 이윽고 피식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쓰윽.
“어? 벌써 가십니까?”
자리를 뜨려는 그의 귓가에 점소이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았는데…….”
“그리 되었네. 다들 급한 일이 생겨 버려서 말일세.”
“……아.”
“하면, 다음에 다시…….”
“어어? 자, 잠시만요. 계산은 하고 가 주셔야 합니다!”
“……음?”
“…….”
“계산을…… 안 했는가?”
“예.”
절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굳은 의지가 깃든 점소이의 눈빛.
이에 호반문주는, 어딘지 모르게 허둥지둥 일어나 자리를 뜨던 몇몇 문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썩을 인간들 같으니.’
어설픈 이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사파의 무정함을 다시 느끼며 허탈한 미소를 머금는 호반문주였다.
***
“……그 이후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훈련 강도를 올렸다고 한다. 아홉 문파 전부 다.”
“으흠, 그래애?”
살암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술잔을 기울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암이 질문을 던졌다.
“설마, 저들이 저렇게 행동할 것을 예상하고 일을 벌인 것이냐?”
“예상은 무슨. 내가 너냐? 행동 하나하나에 계산해가며 행동하게.”
“아니라는 말이냐?”
“아니지. 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해 준 것뿐이야.”
“그러니까, 그 최소한의 것들을 무엇 때문에…….”
“해야만 했으니까.”
자신의 질문을 끊으며 사무현이 단칼에 대답하자, 살암의 눈이 가늘어진다.
“해야만 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남경 문파들 중 우리랑 연합이 가능한 문파가 있어?”
“……없지.”
“그렇지, 그런데 연합이 필요하다는 말도 딱히 틀린 건 없어. 남경에서 연합을 통해 세력을 부풀려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 우리니까.”
“……맞는 말이다만.”
“그러니까 한 거야. 연합을 하려면 전체적인 수준과 눈높이를 조금은 더 올려 놔야 하니까.”
“……정말 단순히 그것만 보고 행했다는 말이냐?”
영 미심쩍은 살암의 얼굴.
그저 별생각 없이 행한 일치고는 뒤따르는 결과가 지나치게 좋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살암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무현이 피식 웃으며 말을 꺼낸다.
“넌 그게 문제야.”
“……뭐?”
“생각이 너무 많아. 상대의 계산을 모두 읽고, 뒤의 수까지 어느 정도 계획해 두지 않고서는 좀처럼 행동에 나서지 않지.”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일상 말고, 전투를 말하는 거야.”
“전투?”
“나한테 무공을 가르쳐 준 놈이 그러더라. 생각은 소위 천재라는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어설프게 대가리 굴리고 계산하는 것보다,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행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더 빠르다?”
“오, 한 번에 이해하네?”
제법이라는 듯 히죽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은 사무현이, 곧 사뭇 진지한 얼굴로 살암을 바라본다.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건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야. 무의 이치가 행동과 움직임에 녹아드는 거지. 네 검이 빠르지만 느린 이유는, 상대의 수를 읽고 받아치기 때문이야.”
“…….”
“그러니 적어채주나 사천살 같은 놈들이랑 싸워도 목숨이 오가는 거지. 그것들보다 몇 배는 뛰어난 무공을 익혀 놓고도.”
“상대를 읽으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읽는 게 아니니까.”
“하면…….”
“보는 거다.”
“…….”
“이해가 되냐?”
현기가 느껴지는 사무현의 말에,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기는 살암.
생각을 하는 것보다 먼저 몸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살령도 몇 번이나 강조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암은 그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몸이 반응할 만큼 수많은 수련과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읽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알 듯 모를 듯, 그려질 듯 그려지지 않는 그 말에 살암이 더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오늘은 여기까지.”
“……뭐?”
“심부름 값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당황한 듯한 살암을 향해 빈 술병을 한번 흔들어 보인 사무현이, 늘어져라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몸을 일으킨다.
“이제 자러 가야겠다. 너도 이만 가.”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이야기를…….”
“맞고 갈까, 그냥 갈까?”
“그냥 가지.”
저벅저벅.
결국 사무현의 협박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돌아 나가는 살암.
그가 방문을 나서자, 사무현이 한쪽에 서 있는 천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던진다.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 좀 더 이야기해 주지 그랬냐?”
“지금은 딱 저 정도가 한계다.”
사무현을 통해 살암에게 말을 전했던 천마가 느긋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제 막 두 발로 선 녀석에게 달리는 법을 떠들어 봐야 본좌의 입만 아프지. 우선 천천히 걷는 것이 먼저다.”
“흐음…….”
천마의 말을 들으며, 다소 묘한 눈빛으로 살암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사무현.
천마 녀석이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이만한 조언을 남기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다.
“꽤 마음에 들었나 보네?”
“무엇이 말이냐?”
“네가 그렇게 성심껏 조언을 남겨 주는 녀석은 처음이라.”
“뭐……. 가능성이 보이는 싹이 있으면, 물 정도는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뿐이다.”
사무현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뜬 천마가, 자신의 턱 끝을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게다가 쓸 만한 패가 늘어나 나쁠 것은 없으니까.”
“……쓸 만한 패?”
생각지 못했던 천마의 말에 사무현이 두 눈썹을 추켜올리자, 어깨를 으쓱해 보인 천마가 퉁명스레 말을 잇는다.
“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
“하하, 물론 본좌라면 패 같은 것은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초지일관.
조금도 변화지 않는 천마의 자화자찬에 사무현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재수 없는 새끼.’
센 건 사실이니까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저히 이대로 들어만 줄 수는 없었기에 사무현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를 던졌다.
“글쎄……? 요즘은 너, 봉혼진 때문에 비리비리해져서 그다지 엄청 센 것 같지도 않은……”
“당장 들어와라.”
“…….”
“오늘 네게 벽이라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 줄 테니.”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친 천마가 그대로 허공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다.
뭔가 조금 잘못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사무현은 이내 히죽 웃으며 침소에 몸을 뉘었다.
“……오냐, 어디 오늘도 한번 해 보자, 이 천마 새끼야.”
그렇게 오늘도 어김없이 숙면을 동반한 수련에 들어가는 사무현.
남경의 문주들도, 사천방도들도, 사무현도 보다 더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밤을 맞이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갈수록 그들은 강해질 것이다.
그 어떤 위기도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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