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속.
깎아 내린 듯한 절벽과 봉우리 중간 언저리 즈음에 걸쳐 있는 구름들이 이곳의 산세(山世)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듯했다.
중원의 최북단.
천산(天山), 혹은 십만대산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한 봉우리에서 흑의 사내 앞에 한 명의 또 다른 사내가 부복해 있었다.
“……꼭 삼 년이구나.”
부복한 사내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흑의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생각보다 많이 더뎌졌으나…… 그만하면 네 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겠지.”
“소교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전심(全心)을 다할 것입니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사내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은 흑의인. 소교주라고 불린 사내가 두 눈을 매섭게 번뜩인다.
“그분께 기다림을 드렸다.”
“……!”
‘그분’이라는 소교주의 한 마디에 부복한 사내의 몸이 움찔한다.
마치 존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느끼는 듯, 그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나며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생생히 들려온다.
“너 따위를 키워 내는 시간 동안 자비를 베푸셨으니, 지금부터는 조금의 지체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공손히 코끝을 땅에 가져다 대며 엎드리는 사내.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소교주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쓰윽.
“석 달이다.”
“…….”
“마(魔)가 재림하기 전까지 동쪽의 음지(陰地)를 손에 넣어라. 가능하다면 사파까지도.”
“존명.”
“좋아, 하면 가라.”
그로부터 등을 돌린 소교주.
그와 함께, 부복해 있던 사내. 화우명(火雨命)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머금어진다.
세상이 탈마라 부르는 괴물에게서 삼 년이라는 지옥을 버텨 낸 그가, 모든 경쟁자를 죽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중원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저벅저벅.
우뚝.
“……흐음.”
동이 트고 있는 이른 아침.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선 장원의 입구를 바라보며, 막 그곳에 도착한 거구의 사내가 긴 숨을 내쉬었다.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자란 수염과 붉은 얼굴을 한 그의 어깨에는, 사람 몸뚱이만 한 거대한 태도(太刀)가 걸쳐져 있었다.
“이곳이 사천방인가.”
남경을 포함한 인근 지역에서 중금리(中金利) 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고 알려진 사도 세력.
더불어, 수룡왕과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흑도왕(黑刀王) 사무현과 암천막의 후계자였다는 암혈검(暗血儉)살암, 녹림왕의 후계자인 패신권(敗神拳) 막휘까지 쟁쟁한 사파의 고수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사내가 이른 아침부터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아니었다.
‘여기가 천신련(天信聯)의 중심……!’
산과 강.
단 두 곳을 제외하고는 중원의 어디에서도 정파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 지난 수백 년간 사파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삼 년 전, 사천방을 중심으로 한 천신련이라는 연합이 만들어진 이후부터는 이 일방적인 균형에 이상이 생겼다.
사파를 대표한다는 삼왕(三王) 중 일좌에 오른 흑도왕 사무현.
거의 확실한 화경급 고수이자, 천무신녀 단아란마저 인정한 천재라는 소문이 세간에 돌면서 그가 속한 천신련의 등장은 전 중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에는 단순히 남경의 사도 문파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연합처럼 보였으나, 이들의 세력은 빠르게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각 중원에 이름 있는 사도 문파들이 연무학관에서 맺은 형제의 연으로 천신련의 가입을 요청해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천신련주는 그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중원 강호는 그렇게 천신련이라는 새로운 거대 집단의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 그들의 존재를 가장 껄끄럽게 보는 이들은 두말할 것 없이 정파 무림.
특히나 자신들의 이익에 민감한 오대세가는 천신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은연중에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신련과 오대세가 사이에 아슬아슬한 눈치싸움이 이어지고 있던 중, 얼마 전에 사건이 벌어졌다.
천신련에 속한 흑운문(黑雲問)이라는 사도 문파가, 창의문(昌義門)이라는 정도 문파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창의문은 흑운문의 영역 안에 개파한 정도 문파로, 다름 아닌 제갈세가를 후견으로 두고 있던 문파.
제갈세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세가의 고수들을 지원해 창의문을 도와주었고, 결국 흑운문은 창의문에 의해 대부분의 사업장을 뺏기고 멸문 직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흑운문주는, 천신련주와 연무학관에서부터 인연을 맺고 있던 소문주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작 사람을 보냈던 흑운문주를 포함해 그 누구도 천신련주가 흑운문을 도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설령 장강수로채나 녹림이라고 해도 오대세가와 싸움을 벌이지는 못할 것인데, 이제 막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천신련에서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에 정면으로 맞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런 모두의 예상은 틀렸다.
흑운문의 소문주가 사천방에 도착한 지 정확히 닷새 만에, 천신련주는 사천방도 삼십을 이끌고 흑운문으로 달려와 창의문에게 빼앗겼던 사업장을 모조리 되찾고 창의문주로부터 항복 각서를 받아 내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제갈세가가 분노하며 세가의 고수들을 추가 파견하였지만, 이미 화경의 고수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천신련주 앞에서 제대로 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박살이 나고 말았다.
결국 제갈세가의 소가주가 직접 나서서 ‘천신련이 제갈세가에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고 묻자, 돌아온 천신련주의 대답은 모두를 경탄케 했다.
‘흑운문은 천신련의 식구이니 오히려 창의문이 천신련을 공격한 것이다. 천신련은 식구를 지키기 위해 옳은 대응을 했을 뿐이며, 제갈세가에는 따로 악감정이 없으나 누구든 천신련 식구를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힘에서도 만만치 않은데 명문마저 마땅치 않았던 제갈세가는 한발 물러나는 길을 택했고, 이는 사파 무림 전체가 천신련의 이름을 외치게 만들었다.
여태껏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왔던 사파 무인들에게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긴 셈이었으니까.
이후, 사천방으로 천신련의 가입을 희망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사내 역시 같은 이유로 먼 길을 온 이들 중 하나였다.
‘뭐…… 아무리 천신련이라도 나 정도 되는 이를 내칠 리는 없을 테니.’
고수가 적은 사파 무림에서 드물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신 정도라면, 오히려 정파 무림과 대치하고 있는 만큼 전력 보강이 필요한 천신련에서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 분명하다.
괜스레 움츠러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은 사내가 이윽고 당당히 사천방의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어이! 거기 잠깐! 줄 서시오, 줄!”
“……뭐라?”
난데없이 자신의 발길을 붙잡는 누군가의 음성에, 고개를 돌린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누가 내게 말을 걸었느냐?”
“나요. 보아하니 사천방에 볼일이 있는 모양인데, 줄부터 서시라는 말이오. 저 뒤로.”
사내에게 말을 꺼낸 이는, 긴 줄의 중간 즈음에 서 있는 장신의 사내였다.
두 팔과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이는 그의 두 눈에는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상대가 상당한 경지에 이른 무인임을 확인하자 사내의 입가에 이내 흥미로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돈이나 빌리러 온 놈치고는 기세가 꽤나 제법이로구나.”
“뭐, 뭐라고? 놈?”
사내의 말에 긴 팔을 가진 사내가 발끈하며 앞으로 나서려 하자, 그의 앞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한쪽 팔을 벌려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흥분하지 마라, 광패(光覇). 사천일괴(四川一怪)다.”
“사, 사천일괴? 저자가?”
상대 정체가 예상외였는지 광패라고 불린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자 사천일괴라 불린 사내가 자신의 거대한 태도를 자랑스레 앞으로 가져오며 말을 잇는다.
부웅.
“킥,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지? 분명 자신만만하게 나서려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우쭐대지 마라, 이놈!”
“흐흐, 제법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는구나. 어디 그 목이 나가떨어져도 계속 떠들 수 있는지 볼까?”
그렇게 사천일괴라 불린 사내가 스산한 미소를 머금으며 한 발을 내딛자, 광패라는 자를 말렸던 또 다른 사내가 대신 나서며 경고한다.
“그만두시오, 사천일괴. 그대가 강한 것은 알지만, 이곳은 그대 혼자 난동을 부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오.”
“흐흐, 그래? 내가 사천방이 날 말리기 전까지 네놈 둘의 목을 따지 못할 것 같으냐?”
“몰라서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나 사수쌍귀(四手雙鬼)의 암패(暗敗)요.”
“……!”
“여기 이 친구도 나와 함께 사수쌍귀라 불리지. 그리고, 설마 여기 있는 이들 중 이만한 이름을 가진 것이 우리뿐이겠소?”
암패의 말에 그제야 줄을 선 이들을 빙 둘러보는 사천일괴.
한눈에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기도를 지닌 이들이 대다수가 분란을 야기한 그를 불만스레 노려보고 있다.
“아니, 이놈들이?”
예상과는 다소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사천일괴가 어금니를 깨무는 순간.
“거기까지 해라, 사천일괴, 사수쌍귀.”
“으드득……! 네놈은 또 뭐냐!”
“……내가 누구냐고?”
분노한 사천일괴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하자, 죽립을 쓰고 그들 중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사내가 천천히 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애꾸인 한쪽 눈에 새겨진 커다란 검상과, 언뜻 무심한 듯 보이는 한쪽 눈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살기.
이에 자신도 모르게 사천일괴가 한 걸음 물러나자 죽립을 쓴 사내의 입에서 스산한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살신귀(殺神鬼)다.”
“……살신귀!”
상상도 못 했던 상대의 정체에 사천일괴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다.
구파일방의 힘이 강하게 미치는 섬서와 하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이들을 저승으로 보낸 살수(殺手).
그의 악행을 징벌하기 위해 화산파에서 파견한 일대고수, 비령검(比嶺劍)의 목을 베어 버리면서 그의 이름은 단숨에 중원 전역에 알려졌다.
사천살귀 자신 역시 사천 전역에 명성을 떨친 보기 드문 사도 고수이지만, 살신귀라는 이름에 비하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소란 떨게 만들지 마라. 어렵게 온 걸음이니, 사천방주와의 첫 만남이 틀어지면 네게 죗값을 물을 것이다.”
살신귀의 경고에 입술을 깨무는 것도 잠시.
이내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사천일괴가 그를 향해 자신의 태도를 겨눈다.
쓰윽.
“나 역시 사천방의 장원 앞에서 소란을 떨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죗값을 묻는다는 그 말은 꽤나 거슬리는군.”
“……뭐라?”
“화산파 일대제자 놈과 싸우느라 눈알 한 짝을 날려 먹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 그간 화산파를 피해 납작 엎드려 있던 모양인데……. 남은 눈 하나도 이 자리에서 걸어 볼 자신이 있나?”
“……큭!”
사천살괴의 물음에 살신귀의 전신에서 소름 끼치는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가…… 그간 너무 조용히 살았던 모양이군.”
쓰윽.
허리춤에 메인 검 손잡이를 움켜쥐는 그의 이빨이 새하얗게 번뜩인다.
“내 앞에서 시건방을 떠는 버러지를 이런 곳에서 만난 걸 보면……!”
“킥……!”
살신귀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달려들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사천일괴.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터지려는 그때.
“거기까지.”
“……!”
난데없이 담벼락 위쪽에서 들려온 사내의 음성에, 당장이라도 싸움을 시작하려던 이들을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그곳에는 대체 언제부터인지 반쯤 드러누워 있는 흑의 사내가, 냉담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들끼리 뭘 하든 관여할 바는 아니다만…… 남의 장원 앞에서 유혈 사태는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뭐지……?’
‘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사내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대다수의 무인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이 정도 거리에서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의 무위가 결코 그들의 아래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마지못한 듯 혀를 찬 살신귀가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 내며 사내에게 몸을 돌렸다.
“딱히 개입하지 않으시기에, 베어도 상관없다는 의미라 생각했습니다.”
“흐음…….”
살신귀의 대답에 두 눈을 가늘게 뜬 사내가, 이윽고 가볍게 몸을 날려 그들의 앞에 안착한다.
타닷.
“나를 아는가?”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사천방에 찾아왔다는 이가 당신을 모르면 안 될 일이겠지요.”
“…….”
“더군다나…… 살검(殺劍)의 길을 걷는 자라면 말입니다.”
“……오호.”
살신귀의 말에 사내의 미소가 짙어지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어난다.
“서, 설마…….”
“저자가…… 암혈검?”
암혈검 살암.
장강수로채의 사신무 중 하나를 일대일 대결로 베어 버렸다는 전 암천막의 후계자.
현재 천신련의, 그리고 사천방의 이인자로 불리는 그의 등장에 모두가 경직된 얼굴로 바짝 몸을 굳힌다.
“이번에는 조금 기대를 해볼 만도 하겠군.”
“……예?”
살암의 중얼거림에 살신귀가 두 눈을 크게 뜨는 그 순간.
벌컥.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사천방의 정문이 열리며, 넝마나 다름없는 차림에 독기 어린 눈빛을 품고 있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