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저벅저벅.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십여 명의 사내들.
그리고 잠시 후, 콧등부터 뺨까지 검흔(劍痕)이 새겨진 한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털썩.
“크흡! 크흐읍……”
“어허……. 이 친구가 또.”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또 한 명의 사내가 그의 어깨를 짚으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울지 말게, 이제 다 끝났네.”
“그래, 그래, 우리는 다 이겨 냈네.”
“어서 집으로 가세, 집으로.”
“지, 집으로 가다니?”
자신을 위로하는 동료들(?)의 음성에, 필사적으로 눈물을 닦아 낸 사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잇는다.
“오늘처럼 기쁜 날 그 무슨 말인가? 그동안은 구르다 죽을 뻔했으니, 오늘은 다 같이 마시고 죽어야지.”
“그래, 그래. 우리 오늘은 낮이고 밤이고 아주 진탕 마시고 취해 보세나.”
“자자, 다들 어서 가지. 보는 눈들이 많네.”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산길을 걸어 내려가는 이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들 중 누군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조, 조금 전 그…… 그자…….”
“응?”
“아는 자인가?”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이는, 사수쌍귀 중 하나인 광패라고 불린 사내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한번 삼킨 그가, 멀어져가는 저들의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혼이 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삼합일살(三合一殺)이야……!”
“뭐, 뭐라고?”
“삼합일살?”
광패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술렁이는 이들.
심지어 사천일괴와 살신귀의 눈에도 경악의 빛이 어려 있었다.
“확실한가? 조금 전 그 울던 자가 삼합일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삼합일살.
자신을 상대로 삼 합을 버티는 이는 목숨을 살려 준다고 하는 독특한 사도 고수.
처음에는 그의 실력이 진짜인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았지만, 무당파에서 배출한 무혼검(武魂劍)과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무위를 증명한 고수였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상대라도 스스로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삼 합을 버틴다면 목숨을 살려 주니, 사파답지 않은 그의 의기는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거지꼴을 하고 울면서 사천방을 나섰다고?’
모두가 불신 어린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는 그때, 열린 장원의 문 안쪽에서 또 다른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야, 오늘도 꽤 많이도 왔……. 어? 뭐야, 네가 왜 여기 있냐?”
장원문 밖으로 건들건들 걸어 나오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살암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제는 대낮부터 나가냐?”
“……업무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주가 허락할 리 있나?”
“알지, 허락도 안 받고 나가는 거면 바로 보고드리려고 물어본 거다.”
“……쯧.”
퉁명스레 이야기 하는 사내. 막휘를 향해 짧게 혀를 찬 살암이 장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런 그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막휘가 장사진 행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천방의 정식 영업시간은 진시부터입니다! 금전거래를 하러 오신 분들은 진시부터 다시 받을 테니, 줄을 서서 기다려 주십시오!”
“…….”
“그리고, 천신련주께 개인적인 볼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되오.”
그렇게 히죽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장원 안쪽으로 몸을 돌리는 막휘.
이에 잠시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던 이들이,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그를 따라 장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줄을 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남아 있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번에 들어간 사람들은 언제쯤 나올 수 있으려나?”
“살신귀나 사천일괴쯤 되는 거물들은 그래도 한 달이면 되지 않을까?”
“에이, 삼합일살도 두 달 전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천일괴는 다섯 달, 살신귀는 석 달 보겠네.”
그렇게 알 수 없는 대화들을 하며 저마다 내기를 거는 이들.
근 몇 달 사이 사천방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일상이었다.
***
저벅저벅.
우뚝.
“자,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되오.”
“저…… 실례지만 이곳은…….”
“사천방의 연무장이오.”
“으음…….”
“역시…….”
막휘의 대답에 그의 뒤를 따라 연무장에 도착한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술렁인다.
조금 전 장원을 나섰던 십여 명의 무인들에게서 격전을 치른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천신련쯤 되는 집단에 아무런 심사도 없이 가입할 수는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킥, 보아하니 여기서 네놈이랑 결판을 볼 수 있겠구나.”
사천일괴가 살신귀를 향해 말을 던지자, 살신귀의 한쪽 입꼬리가 기묘하게 말려 올라간다.
“……멍청한 놈, 상대할 가치도 없군.”
“뭐라?”
“나뿐 아니라 사수쌍귀도 네게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것 같은데…… 계속 그런 식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네게 이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
“…….”
“그런 식으로 용케 여태껏 살아남았군.”
“이놈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살신귀의 조롱에 사천일괴가 어금니를 악물며 살기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쿠웅!
“……거기까지.”
연무장 바닥에 진각을 내디뎌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 낸 막휘가, 싸늘한 눈빛으로 살신귀와 사천일괴를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경거망동 마시오.”
“……!”
“이곳은 사천방이오.”
“크흠…….”
“흐음…….”
한눈에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막휘의 기세.
더군다나 사천방의 장원 안에서도 큰소리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사천일괴와 살신귀는 헛기침을 하며 서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 침묵이 맴돌려는 그때.
저벅저벅. 저벅저벅.
“……오시는군.”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무리의 발소리를 들으며 막휘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이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무리를 이루고 걸어오는 수십에 이르는 사천방의 무인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아……!”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모여 있던 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온다.
저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백.
질서라고는 보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위세는 흡사 전쟁터에서 마주한 군세(軍世)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사천방도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긴장의 빛을 띠고 있는 사이, 어느덧 막휘의 뒤쪽으로 도착한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선다.
……꿀꺽.
‘대단하군.’
서로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그들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기세를 느끼며, 살신귀는 당장이라도 검을 쥐고 싶은 욕구를 필사적으로 억눌러야 했다.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느끼는 그 특유의 본능.
그의 한쪽 눈을 빼앗아 갔던 화산패의 제자 이후로는 지금껏 느껴 본 적이 없었던 이 감각이, 눈앞에 서 있는 사천방도들 하나하나를 향해 맹렬히 반응하고 있었다.
‘……그 둘만 특출난 것이 아니었나?’
처음 장원의 입구에서 만났던 암혈검 살암은 그에게 충분히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검을 쥐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도망을 치고 싶다는 본능이 더 먼저 고개를 들었었다.
‘……명불허전이군.’
아무리 사천방이라고 해도, 그에게 필적할 수 있는 고수는 기껏해야 암혈검과 패신권 정도일 것이라 자신했거늘…….
어쩌면 천신련에 가입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살신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살신귀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사천일괴도 그와 마찬가지로 경악의 빛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진(陣)이다.’
홀로 사천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던 사천일괴다.
그리고 여기에는, 소위 명문 정파라 불리는 이들의 무력대를 본 경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천당가의 무력대와 녹림의 산채가 맞붙었던 전장.
우연찮게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천일괴는 당시 사천당가의 무력대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하나하나의 수준은 그렇게 대단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이들로 돌변했다.
흡사 수십이 하나가 된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떠한 공격에도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며 산채의 진형을 철저하게 붕괴시켰다.
결국 몇 배에 달하는 머릿수로도 사천당가의 무력대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 녹림의 산채는 괴멸했고, 이때 사천일괴는 깨달았다.
집단전에서 발휘하는 진(陣)의 무서움을.
그리고 지금, 저 사천방도들의 모습에서 사천일괴는 분명히 느꼈다.
저들은 지금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도 진의 형태를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고.
‘저게…… 일개 사도방파가 갖출 수 있는 무력대라고?’
방도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기세도 어지간한 문파의 문주급에 손색이 없다.
저렇게 무섭도록 훈련된 이들이 전투에 들어가면 대체 어느 정도의 전력을 보여 주겠는가?
아마 여기에 모인 그들 삼십여 명 정도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당할 것이다.
그렇게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하며 그들이 한껏 긴장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던 그때.
“방주 형님 오십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열의 끝에서 누군가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러자 자연스러우면서도 위압적인 기세를 풍기던 사천방의 진형이, 순식간에 좌우로 갈라지며 널찍한 길 하나를 만들어 냈다.
저벅저벅.
그들이 만든 길을 타고 느긋하게 걸어오는 한 명의 사내.
흑의 무복을 입은 그의 외형은 언뜻 보았을 때 그리 큰 체구로 보이지는 않았다.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등 뒤에는 자신의 상체만 한 커다란 태도를 메고 있는 그의 얼굴은 언뜻 보아도 이립 안팎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저자가…….”
“……사천방주?”
사파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
사천방주이자 천신련주, 흑도왕 사무현.
물론 그가 이립도 되지 않은 나이에 화경을 개척한 천재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는 것은 소문으로만 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모두가 의아함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무현의 등장을 지켜보던 그때, 이윽고 모두의 앞에 선 사무현이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훑어본다.
그 순간.
쿵.
“헙……!”
“읍……!”
“……!”
한순간 그들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위압감에 모든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위압감에 머릿속까지 새하얘지고,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두 다리의 힘이 풀릴 지경이다.
‘이, 이것이…… 화경급 고수의 기세……?’
말로는 수차례 들어 본 바 있다.
탈인간의 경지에 오른 그들이 기세를 내뿜으면, 흡사 맹수 앞의 사냥감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 때문에 절정급 고수 수십 명이 모여 있어도 한 명의 화경급 고수를 당해 내기 어렵다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정신력의 문제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겪고 보니 이는 완전한 오판이었다.
‘저, 정신력 따위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신의 본능이 제발 저 사내 앞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자리에 모인 모두가 영문 모를 위압감을 버텨 내고 있던 그때, 기세를 풍기며 좌중을 제압한 사무현이 무심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본방의 장원 입구에서, 아침부터 칼부림을 벌이려는 분들이 있었다고 하던데…….”
“……!”
“……누구시지요?”
그제야 사천방주의 저 분노가 무엇 때문인지 깨달은 모두가, 재빠르게 눈알을 굴려 저 앞에 선 살신귀와 사천일괴를 쏘아본다.
그러자 그 순간, 사천일괴와 살신귀 모두 황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사무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 저희가 크,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보통 때라면 살신귀와 사천일괴 모두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상대라고는 하나, 사파 무인에게 있어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모든 행동은 곧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사무현의 기세를 마주한 순간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가늠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아득할 정도의 힘의 격차를.
‘여기 있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사천방주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천신련쯤 되는 집단이라면, 우리 둘을 이곳에서 죽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거기다 사실 사천방쯤 되는 거대 방파의 장원에서 아침부터 소란을 벌였으니, 엎드려 싹싹 빌어도 모자를 상황이기는 하다.
사실 이전까지는 자신 정도 되는 고수라면 사천방주도 환영해 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다.
막상 이곳에 도착해 사천방도들의 무위를 마주하니 사천방주가 자신들에게 목맬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바짝 엎드려 마른침을 삼키는 그들 둘을 내려다보던 사무현이, 사방을 억누르는 기세를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저는 사천방을 무시하는 어떤 행위도 참지 않습니다. 저희 영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도 마찬가지고요.”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살신귀와 사천일괴.
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이윽고 주위를 압박하던 기세를 거두어들인다.
쓰윽.
“허억……!”
“아……!”
한순간 압박감이 사라지며 호흡이 편해졌음을 깨달은 모두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사무현을 바라본다.
“두 분 다 일어나세요.”
“아…… 예.”
살신귀와 사천일괴가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실으며 몸을 일으키자, 어느새 모두를 향해 바로 선 사무현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포권해 보인다.
쓰윽.
“인사가 늦었습니다.”
“…….”
“사천방주, 사무현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그의 인사에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느꼈던 다소 평범했던 인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거인(巨人).
그것이 그들이 사천방주 사무현에게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