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진정하지, 서천.”
“지금 진정하게 되었나?”
북천의 말에도 서천의 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점점 더 짙게 끓어오른다.
“그랬어……. 어째서 뭔가 마무리 짓지 못한 것처럼 갑갑했는지, 무엇이 그리 초조하고 무엇이 그리 불안했는지 이제 알았네!”
“……서천.”
“그 잡것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야!”
어느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서천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맴돈다.
“애초에 암천막의 뿌리를 완전히 끊어 낸 게 아니었어! 멍청하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더 이상 얘기가 길어져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
서천의 살기 때문인지 어느새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남천이 북천을 향해 묻는다.
“우리를 불러 이런 말을 꺼내는 저의가 뭔가?”
“십중팔구 전쟁이 시작될…… 어쩌면 마교가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동쪽 땅.”
“…….”
“그 땅을 나누어 갖지 않겠나?”
북천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남천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고는 천천히 상체를 등받이에 기대 고개를 비스듬히 꺾더니, 스스로 팔짱을 끼고는 침묵에 잠긴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할 때 가지는 그 특유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짧고도 긴 침묵 끝에, 이윽고 남천이 말문을 열었다.
“……마땅치 않아.”
“무엇이 말인가?”
“이윤이 남지 않네.”
“…….”
“지금까지 우리는 빈 동쪽 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 이는 그 땅이 탐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땅을 먼저 노리는 이가 견제의 대상이 됨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네.”
“…….”
“한데 이제 와서 뒤늦게 그 땅을 노린다? 그것도 마교가 키웠을지 모를 화경급 고수와 천신련과 싸워 가면서? 얻는 것은 삼분(三分)된 영토에 불과한데, 잃을 것이 너무 크네.”
“쯧……. 자네도 눈뜬장님이 다 되었군.”
남천의 대답에 짧게 혀를 찬 북천이 술 한 잔을 넘기고는 남천과 서천을 번갈아 본다.
탁.
“가정을 하나 하지. 만약 동쪽 땅을 차지하게 될 이가 마교의 끄나풀이라면 어찌 되겠나?”
“…….”
“과연 그들이 동쪽만으로 만족할 것 같은가?”
대놓고 이죽거리는 북천의 모습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남천이 입을 연다.
“……다음은 우리에게 칼끝이 향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마교의 끄나풀이 아닌 암천막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암천막의 부활과 함께, 다음 칼날은 반드시 우리를 향할 테지.”
스산한 목소리로 남천을 대신해 대답하는 서천.
잠시 후 두 눈을 번뜩인 그가 북천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좋아, 난 협력하지. 대신 살암, 그 애송이는 반드시 직접 내 손으로 죽이겠다.”
“좋을 대로.”
서천의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북천.
한편 남천은, 대답 대신 검지로 자신의 팔꿈치를 두드리며 조금 더 침묵을 지킨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모든 계산이 끝났는지, 남천이 빈 술잔을 찾아 들며 말을 꺼낸다.
쓰윽.
“술부터 따르지.”
“…….”
“오랜만에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으니.”
“……아무렴.”
결단을 내린 남천의 대답에 히죽 미소를 머금는 북천.
그렇게, 과거 암천막주 살령을 죽였던 세 사람이, 암천막이 해체된 후 사 년 만에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
“으라아앗!”
“타하아앗!”
퍼억!
콰아앙!
우렁찬 기합과 함께 두 주먹이 교차되어 상대의 안면을 가격한다.
분명 기합성 자체는 비슷했는데, 정작 뒤이어 들려온 타격음과 결과물은 꽤나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휘리리릭.
촤지이이익.
“후우…….”
일권으로 사천일괴를 나가떨어지게 만든 막휘가 주위를 빙 둘러 자신을 포위한 이들을 바라본다.
살신귀를 위시해 아직 건재한 칠십오 기수 십수 명이, 그 한 명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포위망을 서서히 좁히고 있었다.
스슥, 스슥.
“……후우.”
최대한 조심스레 거리를 좁혀 오는 이들을 바라보며 짧게 숨을 고른 막휘가, 이내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며 포위망의 한쪽으로 몸을 날린다.
파밧!
“이…… 이야앗!”
“자, 잠깐! 침착하고 자리를……!”
쾅!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막휘의 모습에, 결국 압박감을 이겨 내지 못한 하나가 무리에서 이탈하며 먼저 막휘에게 주먹을 내뻗었다.
그 결과 막휘의 일각에 얻어맞아 포탄처럼 쏘아져 날아갔고, 한순간에 그들의 포위망에 구멍이 만들어져 버렸다.
“저런 멍청한……. 다 덮쳐라!”
“이야아앗!”
혹여나 포위망에서 빠져나갈세라, 다급한 살신귀의 외침과 함께 포위망을 형성한 이들이 일제히 막휘에게 달려든다.
“흥!”
콰아아앙!
그러나 막휘의 섬광 같은 일권과 함께, 또 한 명의 천신련 훈련도 중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흐음.”
한쪽에 서서 막휘와 훈련도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사무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칠십오 기 훈련도들은 꽤나 훌륭한 연수합격을 구사하고 있었다.
‘막휘도 많이 늘었고.’
일대 다수의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수년 간 매일같이 반복되는 다양한 이들과의 전투 덕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위가 증진되었다.
아마도 저 정도면 과거 남경을 습격했던 장강수로채의 사신무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과 싸워도 더는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자, 막휘와 비슷한 방식의 훈련을 하는 수많은 훈련 기수들과 사천방도들이 눈에 들어온다.
매일 같이 사무현이 저들 모두를 몰아쳐 줄 수는 없으니, 돌아가며 일 대 다수 혹은 다수가 한 명의 고수를 상대로 하는 경험들을 쌓게 하고 있었다.
“슬슬 시간 되었다.”
“아, 그래?”
뒤쪽에서 들려온 천마의 음성에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모두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합격진 수련은 여기까지! 사천방과 훈련 기수들은 집단전을 준비한다!”
“예!”
사무현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싸워 대던 이들이 전투를 멈추고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가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나가떨어져 있던 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켜 각자의 진형으로 찾아간다.
그렇게 잠시 후, 드넓은 연무대에는 사천방도 칠십여 명과 그들을 상대로 하는 수백여 명의 훈련 기수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늘 하는 소리지만, 권기(拳氣)까지만 허용할 테니 양쪽 모두 다치지 말고 반드시 이겨라!”
“…….”
집단 비무에 권기를 사용하는데 다치지도 말고, 또 그럼에도 반드시 이기라니.
모순투성이인 사무현의 격려(?)에 사천방도를 포함한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좋아…… 그럼 시작!”
쓰윽.
“사천방도! 돌격 앞으로오오!”
“와아아아!”
“저 죽일 놈의 사천방도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자아!”
“와아아아아!”
막휘와 손익패, 적월 일행들을 선두로 맹렬하게 달려드는 사천방도들과 그런 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내달리는 훈련 기수들.
숫자만 놓고 보면 훈련 기수들의 압도적인 우위였지만 사천방도들 중 누구의 눈빛에서도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어어어어!”
“에라!”
콰아아앙!
막휘의 주먹에 얻어맞은 훈련 기수 중 하나가 허공을 날며, 그들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쾅!
쩌정! 쩡!
퍼벅 퍽퍽퍽!
“뒈져! 뒈져!”
“죽어라! 죽어어어!”
“……흠.”
훈련치고는 지나치게 살벌한 욕지거리와 함성이 오가고 있었지만, 팔짱을 끼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무현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이거…… 요즘 우리 애들이 좀 밀리기 시작하네?”
“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영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떼어낸 사무현을 향해,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저들을 지켜보며 천마가 답을 했다.
“살암과 적사…… 못해도 인당 수십은 하는 녀석 둘이 빠져 버렸으니, 당연히 공백이 생길 수밖에.”
“끄응…….”
천마의 말에 앓는 소리와 함께 뒷머리를 긁적이던 사무현이, 결국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아니, 이 새끼는 휴가다, 생각하고 다녀오라니까 아주 밖에서 눌러앉은 건가? 이게 벌써 며칠 째야?”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보름하고…… 닷새 정도 더 지났군.”
“그 정도면 강소 지역은 벌써 다 정벌하고 돌아왔어야지, 명색에 암천막주라는 놈이.”
사무현이 불만스레 중얼거리자 천마가 실소와 함께 그를 달랜다.
“너무 초조해 마라. 어디 가서 당할 놈은 아니지 않느냐?”
“뭐…… 그야 그런데…….”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영 찜찜함을 지우지 못하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는 사무현.
그 역시 알고 있다.
음지 삼왕쯤 되는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음지에서 살암을 위기에 빠뜨릴 변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더욱이 암천막의 후계자로서 음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살암이다.
그리고 그 음지 삼왕의 움직임은, 사문회주가 자신의 모든 정보력을 이용해 감시, 보고해 주고 있었다.
‘에이……. 신경 쓰지 말자, 별일이야 있으려고.’
어떻게든 쓸데없는 상념을 지워 버리기 위해, 사천방과 훈련 기수들의 전투에 사무현이 막 정신을 집중하려는 순간이었다.
쿵 쿵 쿵.
“사천방주님! 안에 계십니까?”
난데없이 장원 문밖에서 들려오는 사문회주의 외침에 사무현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
타다다닷.
“허억……! 허억! 헉!”
전력으로 내달리는 사내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에 젖은 흑의무복.
그 무복의 등에는 붉은색으로 귀왕막(鬼王幕)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더, 더 빨리 달려야 해!’
귀왕막의 정예 무사 울경(鬱慶).
그는 귀왕막의 상점을 지키는 정예 무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무복을 적시고 있는 피는, 불과 조금 전까지 그와 함께 상점을 지키던 동료들의 피.
이십여 명에 달하는 귀왕막 무사들을 도륙해 버린 상대는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사내였다.
타다다닷.
‘다 와 간다……!’
저 멀리서 본단 건물의 입구가 보이자 울경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칼끝을 들이민다.
챙!
“그만! 거기 멈춰라!”
“허억! 허억! 나, 나다! 울경!”
“……뭐? 울경?”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아봤는지, 그의 접근을 가로막던 귀왕문 무사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칼끝을 아래로 내린다.
“상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왜 여기에…….”
“가, 가만! 그 피는 다 뭐냐!”
그제야 울경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눈치챘는지 무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그를 향해 접근한다.
이에 울경이 다급히 상황을 설명하려 입을 열려는 순간.
퍼벅!
퍽!
“……!”
……털썩.
풀썩.
“뭐, 뭐야!”
그를 향해 다가오던 무사들의 이마 정중앙에 각각 한 자루의 비검이 날아와 박힌다.
깔끔하게 즉사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무사들의 모습에, 당황한 울경이 황급히 비검이 날아든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잠시 후…….
저벅저벅.
“넌……!”
두텁고 넓은 소매로 양손을 가린 여인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챙!
“이, 이녀언! 대체 정체가 무엇……!”
짤랑짤랑.
“……!”
다가오는 여인을 향해 검을 치켜세우려던 울경의 몸이, 여인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장신구 소리에 딱딱하게 굳어진다.
“달려가 문을 열고 엎드려라.”
“…….”
“암천막주께서 오셨으니.”
“아, 암천막……!”
여인. 적사의 명에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흘리는 울경.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여인의 뒤에서 흑의 사내가 윤곽을 드러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빠르게 몸을 돌린 그가 은거지의 문을 향해 내달린다.
“히이익!”
타다다닷.
짤랑짤랑.
“……뭐 하러 보내 주었느냐? 적사.”
“문 뒤에 어떤 암기가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사내. 살암의 물음에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적사.
이에 흘깃 그녀를 한번 바라보던 살암이, 이내 장신구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짤랑짤랑.
“입구에서 도망치는 것들을 처리하도록.”
“존명.”
고개를 숙인 적사를 뒤로하고 살암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울경에 의해 활짝 젖혀져 있는 귀왕문의 입구.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통과해 들어가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울경이 경직된 채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귀…… 귀왕문에 오신 것을…… 환영…….”
서걱.
“……!”
눈에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어지럽게 돌아가는 시야.
목을 잃은 자신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울경은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털썩.
삐이이익!
“거기 웬 놈이냐!”
“침입자다!”
“……사양(泗陽)의 귀왕막.”
스스스.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수십의 무사들을 바라보며, 살암의 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다시 태어난 암천막이 설 자리에, 인신매매나 일삼는 잡것들의 자리는 없다.”
파아아앗!
그 한 마디와 함께, 어두운 은거지 내에 푸른 검기의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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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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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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