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악양의 동정호 인근에 위치한 무림맹.
그곳의 무림맹주의 집무실에, 이른 아침부터 여러 사람의 분주한 발걸음이 찾아 들었다.
타다닷.
“아니,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응?”
둘둘 말린 서지 한 장을 움켜쥐고 분주하게 뛰어가던 개방의 방의걸이, 귀에 익은 누군가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두 뺨에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는 신불이 한 손에 들린 술병을 입에 물고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꿀꺽꿀꺽.
“……크으으, 조오타아.”
“이른 아침부터 또 술이십니까?”
한동안은 단아란 고문과의 수련으로 좀 줄이는가 싶더니.
요즘 들어 과거보다 도리어 술이 늘어 버린 신불을 바라보며 방의걸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요즘 들어 너무 과하게 드시는 거 아니신지…….”
“후우……. 이보시오, 거지 시주.”
거지 시주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괜히 모욕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든다.
개방의 장로인 그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과연 맞는지 고심하는 그때, 방의걸의 귓가로 애환이 느껴지는 신불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란 소저…… 그 미친 시주한테 매일같이 두들겨 맞는 삶을, 술 없이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소이까?”
“…….”
“후후……. 본승이 어렸을 적부터 유달리 총명하고 비범하여, 가끔 몰래 곡차를 마시다 걸렸을 때도 당시 방장께서는 치도곤을 들지 않으셨소. 한데 이백 살이 훌쩍 넘은 지금, 본승보다 열 살은 어린 시주에게 얻어맞는 삶이라니.”
그러고는 처연하고도 슬픈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는 신불.
그 모습이 너무도 애잔하고 가슴이 아파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어? 가만.’
이 스님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언가 잊을 뻔한 것 같은 기분이…….
“……이런! 느, 늦었습니다! 저는 먼저 좀 가 보겠습니다!”
“음? 가 보다니, 어딜 말이오?”
“죄송합니다, 제가 꼭 가 봐야 하는 회의가 있는데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하면 저는 이만.”
“하하, 뭘 그리 서두르시오? 함께 갑시다, 본승도 마침 그곳으로 가고 있었소이다.”
“스, 스님도요? 그런데 그렇게…….”
……술을 먹은 채로, 술병까지 들고, 그렇게 느긋하게 가셔도 되는 겁니까? 이미 시간상 늦어버린 것 같은데? 라는 말을 최대한 집어삼키는 방의걸.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신불이 짐짓 해탈한 듯한 미소와 함께 대답한다.
“아미타불……. 한번 살다 가는 삶, 일장춘몽과 같은 인생에 주위를 둘러보며 걸을 여유마저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소이까?”
“그래도…… 맹주께서 기다리실 텐데…….”
“하하, 염려 마시오. 본승은 연배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맹주에게 혼이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가 아니오이까?”
……맞는 말이다.
아무리 무림맹주라고 해도, 명색에 살아있는 무림의 구원자이자 전설인 파마불제 신불을 나무랄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죄송하지만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 이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허어, 거지 시주, 뭘 그렇게 급히……”
파바밧!
혹여나 신불에게 붙잡힐세라, 그대로 몸을 돌려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는 방의걸.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너털웃음을 흘리던 신불이 느긋하게 술병의 입구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아미타불……. 사람이 저리 여유가 없어서야…….”
“신불 스님!”
“……이 목소리는!”
꿈에서 듣는 것조차 두려운 단아란의 음성에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두 눈을 부릅뜨는 신불.
하지만 어디에도 단아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미타불……. 설마 환청인가?”
어찌나 지긋지긋하게 괴롭힘을 받았으면 이제 길을 걷다가도 환청이 들리다니.
그렇게 떨리는 손에 들린 술병을 다시금 입으로 가져가려는 그때.
“신불 스님!”
“흐억!”
다시 한번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단아란의 외침에, 그제야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신불이 다급히 안력에 내력을 집중한다.
그러자, 저 멀리 무림맹주의 집무실 창밖에서 자신을 내다보고 있는 단아란의 성난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저 스님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술이나 먹으면서 노닐 듯이 오시네? 회의고 나발이고 그냥 한번 굴려 드려야 되나, 어디?”
“아미타불! 가고 있소이다!”
파바밧!
금방이라도 창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단아란의 기세에 황급히 경공을 펼쳐 내달리기 시작하는 신불.
그 와중에도 술병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의 두 눈에는 뿌연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부처님도 무심하시도다.’
대체 어쩌자고 저런 마구니를 그의 옆에 붙이셨는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불과 삼 년 전 자신이 했던 선택의 결과물이었기에, 그저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신불이었다.
***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무림맹주를 포함한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방의걸이 입을 열었다.
“중원의 음지가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동천왕이라 주장하는 이가 빠르게 동쪽 지역의 세력을 휩쓸고 있고, 이 과정에서 족히 천 명은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으음…….”
천 명이 넘는 이들이 죽었다는 말에 집무실 내에 미미한 술렁임이 일어난다.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결국 음지나 사파는 자신들의 유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물론 정파 또한 그런 면모가 없지 않겠지만 그들은 적어도 명분이나 체면을 중요시 여기고 주위의 시선들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니까.
아무튼 음지와 사파의 경우, 세력 간에 전쟁이 벌어져도 어느 한쪽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항복이나 양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그들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천 명이라는 사상자의 수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만하다.
“지독한 원한을 가진 서로가 격렬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어느 한쪽이 살육을 목적으로 했다는 뜻인데…….”
“맞습니다.”
무림맹주인 섬천검제가 말문을 열자 방의걸이 재빠르게 설명을 덧붙인다.
“개방에서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스스로를 동천왕이라고 주장하는 그자가 음지의 동쪽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음지 삼왕이 가만히 좌시할 리가 없습니다.”
“하기야…… 솔직하게 음지 삼왕이라고 저 동쪽 땅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겠습니까? 먼저 손을 데는 이가 남은 두 곳의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겠지요.”
방의걸의 말뜻을 이해한 제갈세가의 대표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정황상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저 동천왕이라는 자가 음지 삼왕 중 하나와 이미 손을 잡고 있다는 가설. 그리고 두 번째는, 최악의 상황에 음지 삼왕 모두와 맞서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는 가설.”
“두 번째 가설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같고…… 첫 번째 가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군요.”
제갈세가 대표의 옆에 앉은 모용세가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이번에는 그들의 맞은편에 있던 무당의 대표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그 또한 너무 섣부른 판단일지 모릅니다. 음지 삼왕 중 누군가와 손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동쪽을 정벌하느라 힘이 많이 빠진 그들은 결코 남은 둘을 상대하기에 버거울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입니다.”
“지금 나온 두 가지 가설 이외에, 가능성 높은 다른 가설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외다.”
무당파의 대표와 황보세가의 대표가 팽팽하게 맞서자, 다른 구파와 오대세가의 대표들도 술렁이며 함께 논쟁에 끼어들었다.
“하면 구파 측에서 다른 가설을 내어 보시지요! 제갈세가에서 내세운 가설보다 더 설득력 있는 다른 가설 말입니다!”
“그 가능성을 열어 두고 함께 논의하자고 이 자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슬슬 양측의 어투가 공격적으로 변하며 언성이 높아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맹주가 헛기침을 한번 흘리며 좌중을 진정시킨다.
“크흠……. 모두 진정해 주시오. 우선은 제갈세가 측의 가설이 유력해 보이나, 그 외에 다른 가능성들은 더 없는지 검토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소이까?”
“크흠…….”
“흐음…….”
적당히 양쪽의 손을 함께 들어 주며 맹주가 상황을 중재하고, 그렇게 그들이 소란이 잦아들려던 그때.
“마교.”
잠시나마 완화되는 듯하던 회의의 분위기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단아란의 한마디로 인해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천무신녀 님.”
충격받은 모두를 대신해 맹주가 침착한 어조로 묻자, 두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반쯤 드러누운 단아란이 심드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뭘 물어? 제대로 들었으면서. 음지 삼왕 모두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세력이 걔들 말고 더 있어?”
“과한 억측입니다. 음지 삼왕을 억제할 만한 힘을 가진 세력이라면, 굳이 마교가 아니라도 무림에 여럿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파나 오대세가……. 가령 우리 무림맹의 입장으로라도…….”
“하!”
제갈세가 대표의 반박을 들어주고 있던 단아란이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 꺾는다.
“이야, 이제 제갈세가도 다 됐나 보네? 나 때는 애들이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머리 하나는 쓸 만했는데.”
“마, 말씀이 과하십니다!”
“과하기는……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좀 해 봐. 정파가 음지의 일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게 정파야? 정파의 탈을 쓴 흑도 세력이지. 그리고, 과거 암천막주까지 젖힌 녀석들이 정파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욕심까지 내려놓는다고? 그따위를 무슨 말이라고 하고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을 하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무림맹의 경고 이후 음지 삼왕이 조용해진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걔들이 자기 영역을 확실히 정비하려고 그런 거겠지, 아무렴 무림맹의 한 마디 때문이겠냐?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여기 있는 누군가는 음지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게 되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좌중을 한번 빙 둘러본 단아란이, 피식 실소하며 말을 잇는다.
“뭐, 그 가정도 재미는 있네. 정파라는 이름 달고 은근슬쩍 음지에 한 발씩 걸친 놈들, 아주 제대로 교육시킬 명분이 생기는 셈이니까. 그럼 나도 오랜만에 몸 한번 제대로 풀어 볼 기회가 생기겠지? 어디 그럼, 네 추측이 맞는지 다들 호주머니 한번 제대로 털어 볼까? 응?”
“크…… 크흐음…….”
“흠흠…….”
노골적인 단아란의 물음에 몇몇 대표들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시선을 회피한다.
구파의 경우에는 덜 하겠지만, 거대 문파를 이끄는 자본력이 순수하게 깨끗한 재력으로만 나올 수 있겠는가?
여기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알게 모르게 어두운 경로로 수입원을 삼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아란의 매서운 눈빛과 협박에 오대세가가 침묵을 지키자, 화산파의 대표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단아란에게 말을 꺼낸다.
“천무신녀 님, 저 역시 천무신녀 님의 말씀대로 정파가 음지 세력에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교의 개입 역시 너무 과한 추측이 아닐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런 식의 움직임은 마교에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득이 될 게 없다?”
“만약 마교가 음지를 차지하려 한다면 이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요란스레 움직여서는 무림맹과 모두의 이목을 끌 뿐임을 모를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화산파 대표의 말이 꽤나 그럴싸했는지 이내 여기저기서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호응이 뒤따랐다.
“과연…… 확실히 마교라면 이보다는 훨씬 은밀하게 움직였겠군요.”
“아직 마교는 과거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과감한 행보는 저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테지요.”
그렇게 술렁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단아란의 인상이 서서히 굳어져 가던 그때.
“아미타불…….”
이번에는 단아란의 옆쪽에 앉아 있던 신불이, 보기 좋게 멍이 든 한쪽 눈만 감은 채 불호를 읊조리며 입을 열었다.
“본승이 보기에, 여기 계신 모두가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는 듯하구려.”
“……잊고 있는 것이라 하셨습니까?”
맹주의 물음에 신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암천막이 멸문했던 그 날, 본승이 누구와 싸웠는지를 벌써 잊으신 것이오?”
“……!”
신불의 말에 좌중의 모두가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침묵을 지킨다.
어찌 잊을 수 있었을까?
당시 파마불제 신불과 초대 암천막주가, 겨우 한 명의 마도 고수를 당해 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면, 무신 단월혁의 경고는?”
“…….”
“……아미타불.”
무신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한 이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둘러보며 신불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고작 수년 전의 사건들을 묻어 버리고 자신들의 바람대로만 가설을 세우고 있으니…… 이백 년 전에 있었던 수많은 죽음도, 후대에는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못한 모양이구려. 실로 안타까운 일이외다.”
거기까지 말을 한 신불이, 허리춤에 매어진 술병 하나를 빼 들더니 익숙한 손동작으로 마개를 따 낸다.
“운 좋게도 이백 년 전에 살아남은 장본인으로서…… 죽은 전우들에게 부끄러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구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