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어찌 그랬느냐?”
적의 사내.
한때 암영단주라고도 불렸던 자신의 수하에게 검 끝을 겨누며 흑의 사내. 살암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배신하였느냐.”
짙은 분노와 살기가 검 끝에서부터 전해진다.
그의 검에 의해 이미 십수 차례 난도질당한 암영단주가 탈진한 듯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죽이시오.”
“……뭐라?”
“죽이시오……. 죽여! 제발 나를 그냥 죽여 달란 말이오!”
거의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치며 살암을 향해 자신의 가슴을 내밀어 보이는 암영단주.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살암이, 곧이어 천천히 검 끝을 내린다.
쓰윽.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구나.”
“……!”
“대체 무엇이 너를 두렵게 하는 것이냐?”
지금까지의 살기 어린 음성과는 달리 순수한 의문과 불신이 느껴지는 살암의 음성.
그것이 한순간 암영단주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그의 얼굴이 부르르 떨리며 세찬 동요가 일어난다.
“……싶어.”
“……음?”
“살고…… 살고 싶은…….”
서거거걱.
촤아아악!
이해할 수 없는 암영단주의 말에 살암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난데 없이 날아든 다섯 줄기의 검기가 암영단주의 머리와 목, 몸통과 하반신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 낸다.
그리고…….
쩌저저정!
촤지이이익!
암영단주와 함께 그를 노린 한 줄기의 검기를 받아 낸 살암의 신형이, 검기의 위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석 장 정도 뒤쪽으로 밀려난다.
우우우웅.
심상치 않게 떨리는 묵색 검신.
다급히 검기를 끌어 올렸음에도 자신을 향해 날아든 검기의 위력은 이를 훨씬 웃돌았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전해지는 무게감에 입술을 깨물던 살암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참상을 마주한다.
“……!”
다량의 피와 함께, 끔찍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암영단주의 시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던 살암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검기가 날아든 방향을 응시한다.
저벅저벅.
“이런, 이런……. 매정하구나, 너무도 매정해.”
짐짓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살암과 다섯 장 정도 떨어진 위치에 멈춰 서며 말을 잇는다.
“각오가 되었을 때 죽여 주었더라면 죽음 정도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옛 주인의 비정함으로 죽음조차 제 뜻대로 할 수 없었구나.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
혀를 끌끌 차는 사내의 얼굴과 음성에서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감정선이 과장스러울 만큼 드러나고 있었다.
흡사 한 편의 경극을 연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 손으로 저런 끔찍한 주검을 만들어 낸 자의 행동이라 보기에는 지나치리만큼 뻔뻔하고 잔악하다.
한평생을 음지에 살면서, 필요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해 온 살암이지만 지금 저자의 행동은 분명 도를 한참이나 지나쳤다.
자신도 모르게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살암이 그를 향해 물었다.
“네놈이냐?”
“음?”
“네가 암영단주를 배신하게 만든 장본인이냐 물었다.”
쓰윽.
어느새 검 끝을 그에게로 겨누며 묻는 살암의 모습에, 사내가 빙긋 웃으며 느긋하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지, 아니지. 그건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란다.”
“……뭐라?”
“암영단주를 포로로 거두고…… 수혈단(水血團)과 신문막(新問幕)을 생존자 하나 없이 몰살시킨 장본인이 맞는지를 물어야 조금 더 정확하지 않겠니?”
“이놈……!”
“하하, 화내지 말렴. 수혈단과 신문막이라는 놈들은 본보기로 몇 놈을 죽이니 곧바로 내게 항복을 하려 했단다. 네 입장에서는 배신의 싹이 될 녀석들이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 주는 편이 더 나았겠지. 그렇지 않니?”
“……!”
“그래……. 하지만 저 암영단주라는 놈은 조금 다르더구나. 결국 제 딸의 사지를 잘라 물고기 밥으로 주겠다는 협박을 받고서야 협조를 맹세했지. 하하, 그래도 그토록 충성을 다하려던 주인에게 죽었다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죽음이었을 터인데…….”
쐐애애액!
콰아앙!
분노를 참지 못한 살암이 말을 이어 가던 사내를 향해 검기를 쏘아 냈다.
하지만 조금 전 살암과는 달리, 사내는 제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암의 검기를 받아 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한쪽으로 고개를 꺾으며 비릿한 조소를 머금는다.
“왜 그렇게 화를 내지? 내 나름대로는 네게 선물을 준 것인데…….”
“그 입 닥쳐라, 지금 당장 열십자로 찢어 주기 전에.”
“……아무래도 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살기 어린 살암의 협박에도 도리어 미소를 머금으며 사내가 말을 잇는다.
“마지막까지 충성하려 했던 수하를 통해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미리 볼 수 있었으니…… 곧 죽을 놈에게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다 생각했는데 말이다.”
스스스스.
사내의 말을 듣고 서 있는 살암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기파가 요동친다.
아무리 꾹꾹 눌러 담으려 해도, 넘치는 살기가 자꾸만 기세와 함께 그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참아야 한다.’
상대는 십중팔구 자신보다 윗줄에 속한 고수다.
그런 이를 상대로 감정적으로 뛰쳐나가 검을 섞는다?
이는 어느 모로 보나 그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모는, 결코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이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며 살암이 방어 자세를 취하려던 그때.
“쯔쯧……. 암천막이라는 이름도 확실히 옛말인 모양이로구나. 하기야, 제대로 된 승계자도 아닌 반쪽짜리 후계자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
“제 수하가 농락을 받다 그 꼴이 났는데도…… 분노 한번 표출하지 못하는 꼴을 보면 말이다.
콰광!
“막주님!”
어둠 속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적사의 당혹스러운 외침.
하지만 그녀의 외침도 살암의 움직임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상대를 도발하고 역린을 건드려 전투의 이점을 취하는 것은 본래 살암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암천막의 재개한 후 가장 먼저 그를 따르기 시작했던 수하의 죽음과, 암천막이라는 이름을 도리어 얕잡아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스스로의 자괴감이 살암의 역린을 건드렸다.
순식간에 사내의 코앞까지 접근한 살암이 그를 향해 매서운 일검을 휘두른다.
스팟!
쩌저저정!
“흐음…….”
제자리에 선 채로 살암의 검격을 받아 내며 두 눈을 가늘게 뜨는 사내.
살암의 검에 실린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어느새 그와 맞대고 있던 검신을 떼어 낸 살암이 섬광같은 변초를 전개해 온다.
스스스슥.
콰과광!
쾅!
쩌저정!
목과 흉부, 복부로 연달아 이어진 살암의 검격이 너무도 단조로운 방어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내의 섬광 같은 일검이 살암의 안면을 꿰뚫을 기세로 내뻗어진다.
촤아아악!
본능적인 감각이 위기를 직감한 순간 전력을 다해 온몸을 비튼 살암.
이는 상대의 공격을 읽은 것이 아닌, 사무현과의 수없는 전투 덕분에 자연스레 몸에 익어 버린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후두둑.
늦지 않게 몸을 비틀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덜해질 정도로 베인 한쪽 뺨에서 다량의 피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고통스런 신음 한번 흘리지 않은 살암은 그대로 상대에게 접근하며 섬광 같은 살검을 전개했다.
스팟!
“……!”
기척도, 살기도 없었던 살암의 쾌속한 일검.
사무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필살(必殺)의 공격이었지만 사내는 시기적절하게 상체를 뒤로 젖히며 그의 검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콰앙!
우두둑.
쐐애액!
촤지지이이익!
“……커헉!”
텅 빈 갈비뼈에 내력이 실린 일각을 허용한 살암의 신형이 다섯 장 가까이 나가떨어져 검붉은 피를 토해 낸다.
부러진 갈비뼈가 여기저기 폐를 관통했는지 호흡을 멈춘 살암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한다.
“카학……! 하악!”
“버러지치고는…… 제법 쓸 만한 재주를 가졌구나.”
자신의 무복 앞섶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살암의 검격에 사내가 짧은 탄사를 흘린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격차는 너무도 명백했다.
고작 십여 합도 이어지지 않은 짧은 교전이었으나, 살암의 몸은 벌써 전투 불능에 가까운 부상을 입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큭!”
쓰윽.
조롱과도 같은 상대의 찬사를 들으며 몸을 일으키는 살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사내가 아이를 어르듯 목소리를 높인다.
“옳지! 근성이 대단하구나, 명색이 암천막의 후계자라면 마땅히 그 정도 저력은 보여야지!”
“이……!”
우드드득.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살암의 입술에서 붉은 피가 터져 턱 끝을 타고 흐른다.
‘……잠깐이라도 의식을 놓아선 안 된다!’
호흡은 버겁고 반쯤 잘려 버린 한쪽 뺨에서는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의 격통이 전해진다.
사무현 덕분에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저 괴물의 공격에는 그야말로 무용지물.
어설픈 각오나 집중력으로는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이 날아간다.
‘다음 한 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각오를 다지며 살암이 천천히 자세를 낮추려는 그때.
쐐애애액!
쾅! 쾅!
난데없이 어둠을 꿰뚫고 신호탄이 쏘아져 오르더니, 사내와 살암이 서 있는 머리 위 쪽에서 터지며 밝은 빛과 폭음을 만들어 낸다.
“놈을 포위해 막주님과 닿지 않게 가로막아라!”
“와아아아아!”
적사의 외침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음지의 무사들.
배신자로만 여기고 있던 암영단주의 말로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살암이 적사를 시켜 이끌고 온 음지의 무사들이었다.
“오호라,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것이냐?”
한눈에 보기에도 오백은 훌쩍 넘어 보이는 숫자의 무사들.
제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진 괴물일지라도 저 정도 숫자에는 압박감을 느낄 만한데, 사내의 얼굴에는 도리어 일그러진 듯한 기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안타깝구나. 그냥 너만 내 손에 죽었더라면 적어도…….”
“……!”
점점 더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가 번지는 그의 모습에, 무언가를 깨달은 살암이 경악 어린 두 눈을 부릅뜬다.
“저 많은 생명들 중에…… 몇 정도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부웅.
쐐애애액!
그 말과 함께, 사내의 검이 허공으로 휘둘러지더니 유성과 같은 강기가 쏘아져 하늘로 솟구친다.
그리고 잠시 후…….
쐐애애액! 샤샤샤샥!
퍼버버벅! 퍼퍽!
“아아악!”
“뒤, 뒤다! 뒤에서 적이 있……!”
퍼버벅!
살암을 구출하기 위해 다급히 포위망을 좁혀 오던 암천막 휘하의 음지 무사들.
그들이 이십여 장 가까이 거리를 좁혀 오던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날아든 수백여 발의 화살이 밀집된 포위망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살암이 사내를 응시하자, 어느새 명백한 조소를 머금고 있는 사내가 살암을 향해 검 끝을 겨눈다.
쓰윽.
“저런……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이놈!”
“하하, 왜, 설마 세상에서 네놈이 가장 영악하고 영리할 것이라 여겼더냐?”
“……!”
“쯧쯧……. 어리석게도. 한평생 암천막이라는 이름 하에 살아온 놈답게,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구나.”
저벅저벅.
그 말과 함께 살암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는 사내.
그 순간, 그를 향해 겨누어진 살암의 검신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런……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것이냐?”
“이…… 놈……!”
“흐음……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콰앙!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지워낸 사내가,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살암의 눈앞까지 쇄도한다.
“……무서운 모양이로구나.”
콰과과과광!
사내의 검격을 가까스로 맞받아친 살암의 일검.
곧이어 뒤따른 우렁찬 폭발과 함께, 살암의 신형이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이리저리 내팽겨 치며 맨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털썩.
“……헉!”
폭발의 여파가 너무 컸는지 한쪽 귀에 이명이 울리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암은 재빠르게 한쪽으로 몸을 굴렸다.
그의 경험상, 기회를 잡은 상대가 검격을 멈춰 주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와 함께.
퍼버버버벅!
촤아악!
역시가 조금 전까지 살암이 쓰러져 있던 자리로 다섯 줄기의 검기가 날아들어 바닥을 갈라 버린다.
미처 온전히 피해 내지 못한 살암의 다리 일부가 강기에 말려들어, 종아리 살점 일부가 뭉텅 떨어져 나갔다.
“흐음…… 그걸 피했다고?”
설마 살암이 이번 검기에 반응할 줄은 생각지 못했는지 사내의 눈에 놀라움의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살암의 상태는 처참했다.
가까스로 서기는 했지만 한쪽 다리는 출혈로 인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고막이 찢어졌는지 한쪽 귀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호흡조차 어려운 상황에 검붉은 피가 자꾸만 입 안에 차오르고 있었다.
당장 기절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살암은 그 상황에서도 자세를 낮추며 남은 내력을 모조리 검에 쏟아붓고 있었다.
스스스스.
“……아직도 저항할 힘이 남았다고?”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