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흐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데…….”
저 멀리 장강에서부터 전해지는 거대한 기세와 위압감.
수룡왕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꿰뚫어 본 사내. 동천왕의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어린다.
‘보아하니 미리 준비해 두었던 패는 아닌 것 같은데.’
이쪽과 장강을 번갈아 보며 갈등하는 계집의 모습을 보니 필시 예기치 못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그 우연이라는 게 상당히 공교롭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자……. 하면 이제 어쩐다?’
처음 그의 목표는 강소 지역이었다.
암천막이라는 이름하에 강소 지역을 복속시킨 애송이가 있으니, 그 하나를 처리해 손쉽게 안휘 지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계획은 사실상 완벽하게 이루었다.
스스로를 암천막주라고 칭하던 애송이는 그의 손에 한쪽 눈을 잃었고, 십중팔구 한동안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중상을 입었으니까.
저런 몸으로 수룡왕이 존재하는 장강에 뛰어든다?
설령 수룡왕이 저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 몸으로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망치는 듯한 모양새가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수룡왕이라는 존재와 싸우는 것은 득이 없고 오직 실(失)만이 존재한다.
그가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칼을 섞을 만큼 만만한 상대 또한 결코 아니다.
‘……소교주의 경고도 있었으니.’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경고.
특별한 협박을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목숨이 아깝다면 그 괴물의 말을 어겨서 좋을 것이 없다.
그가 아는 한, 그는 절대로 의미 없는 말이나 허언(虛言) 따위를 내뱉는 이가 아니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며 공포에 떠는 적사를 향해 히죽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축하한다, 적어도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정도는 선택할 수 있게 되었구나.”
“……!”
“가거라.”
스팟!
쐐애애액!
그 말과 함께 적사를 향해 재차 강기를 전개하는 사내.
이에 결단을 내릴 시기임을 깨달은 적사가 이를 악물고 절벽 아래를 향해 힘차게 몸을 날린다.
타타탓. 파밧!
파아아아앗!
아슬아슬한 순간, 뛰어내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며 거대한 강기가 허공을 가른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아래쪽을 응시하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장강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정신 차려야 해!’
검푸른 장강을 똑바로 노려보며 그녀가 전력으로 내기를 끌어 올려 살암을 감싸 안는다.
이 정도 높이라면 강물에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살암의 육체가 강인하다고 해도 현재는 목숨이 경각에 놓일 정도의 부상을 입은 상태.
한순간의 실수가 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강에 닿는 순간을 노린다!’
오로지 강과의 거리와 내력의 수발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적사.
그리고 곧이어, 장강의 표면이 가까워지는 순간 그녀의 손에서 거친 장력이 뿜어져 나온다.
콰과과과광!
강물의 일부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적사의 몸이 한순간 튕겨 허공으로 떠오른다.
파바바밧!
그대로 경공을 펼쳐 장강의 표면을 밟고 내달리는 적사.
절정의 무위에 이른 고수들이나 펼칠 수 있다는 등평도수(登萍渡水)의 발현!
하지만 내력의 부족함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발목은 조금씩 장강에 잠기고 있었다.
“허억! 허억!”
사실 어지간한 고수들조차, 경신법에 대한 높은 이해도 없이는 등평도수를 그리 오래 펼칠 수 없다.
절정에 올랐다고는 해도 내력 자체가 빈약하고, 의식을 잃은 살암까지 받치고 있는 상황이니 그녀의 호흡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턱 끝까지 차올랐다.
촤좌좌좌좍!
‘이대로는 무리야…!’
저 멀리 보이는 육지까지는 아직도 너무나도 멀다.
방향을 바꾸면 육지와는 가까워지지만, 반대로 적들의 추격에 머지않아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조금이라도 장강을 타고 이곳에서 멀어지는 것뿐.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반 각도 채 되지 않아 저 깊은 장강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적사는 버틸 수 있다 치더라도 의식을 잃은 살암은 절대 버틸 수 없다!
“허억! 허억……! 큭!”
우드득!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적사가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문다.
비릿한 피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지자 혼미해져 가던 정신이 조금은 번쩍 뜨이는 것이 느껴진다.
‘정신 차려, 적사!’
자신은 몰라도 살암은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어선 안 된다.
과거의 암천막은 그녀에게 있어 고향과도 같은 곳.
그곳을 재건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살암만큼은, 목숨을 걸고라도 이곳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헉! 헉!”
하지만 의지와는 달리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는 몸.
어느새 허리춤까지 가라앉은 그녀가 살암을 자신의 머리 위쪽까지 들어 올리려던 그때.
쐐애애애액!
“……!”
한순간 등골까지 뻗쳐온 오싹한 기운에 그녀가 고개를 들자, 저 절벽 위에서 그들을 향해 쏘아지는 거대한 강기가 적사의 눈에 들어왔다.
***
‘끝이다.’
장강으로 쏘아지는 자신의 강기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 동천왕.
저 드넓은 장강을 건너 주인을 살리려는 애절한 충성심은 잘 지켜보았다.
하지만 무림 강호라는 곳이 마음만으로 되는 곳은 아니다.
‘잠시나마 그냥 내버려 둘까도 싶었지만…….’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소교주의 명령은 명령이고, 후환을 없애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정말 천의 하나, 만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저 암천막주라는 놈이 살아남는다면 이는 반드시 언젠가 돌아와 자신에게 칼끝을 겨눌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된다면 분명 목숨을 걸어야만 하겠지.
혹시 일어날지 모를 후환을 완전히 짓밟는 것은 이 무림강호를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그렇게 벌레처럼 발버둥치는 저들을 보며 동천왕이 미소를 머금는 순간.
쐐애애액!
콰과과과광!
“……이!”
콰드득.
또다시 장강의 한쪽에서 날아든 거대한 강기가 그가 전개한 강기를 상쇄시키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분노로 있는 힘껏 검을 움켜쥐며 동천왕이 고개를 돌리자, 배의 갑판에서 똑바로 그를 올려다보는 거구의 사내. 수룡왕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이 잡것이……! 기어이 오늘 물고기 밥이 되고 싶은 게냐!”
“큭……. 물고기 밥?”
동천왕의 말에 비웃듯이 실소를 흘린 수룡왕이, 천천히 거대한 태도를 치켜들어 절벽 위로 휘두른다.
부웅.
쐐애애애액!
“빌어먹을 놈이!”
스스스스.
콰과과과과과!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룡왕의 강기에 동천왕이 그물과 같은 강기를 전개해 수룡왕의 강기를 감싸 안는다.
하지만 수룡왕의 강기는 손쉽게 동천왕의 그물을 끊으며 그를 향해 쇄도했다.
“칫……!”
쩌저저저저저정!
촤지지이이익!
“큭……!”
방어를 위해 전개한 강기를 너무도 가볍게 찢고 날아든 수룡왕의 강기.
분명 그 위력이 한참이나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검강으로 이를 받아 낸 동천왕의 신형이 석 장 가까이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욱신.
“……!”
검강과 검신을 넘어서서, 검을 쥔 손아귀까지 찢어질 듯 욱신거린다.
이건 단순히 상대의 강기가 그보다 강한 문제가 아니다.
강기를 전개한 근본이 되는 육체.
저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이 이 믿기 힘든 관통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과연 인외(人外)에 속한 괴물이라더니……!’
강호의 소문에는 대부분 과장이 끼어 있기 마련이지만 저 수룡왕에 대한 평가는 도리어 축소된 감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얼마든지 해 볼 여지는 있지만…….’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가던 동천왕이 흘깃 장강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 장강을 뛰어가던 인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벌써 그의 시야를 벗어날 만큼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으니 아무래도 조금 전 폭발의 여파로 장강에 가라앉아 버린 모양이었다.
“……하면 되었군.”
후환도 처리했고 강소 지역의 음지도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불필요한 전투를 벌일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동천왕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몸을 돌린다.
“운이 좋았구나, 수룡왕.”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패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굳이 지금 여기서 승부를 가려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모든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한 동천왕의 인기척이 잠시 후 절벽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흥, 도망쳐 버렸나? 버러지 같은 놈.”
절벽 위에서 동천왕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수룡왕 귀하패가 자신의 도를 아래로 내리며 장강으로 시선을 돌린다.
조금 전까지 장강을 건너려 애쓰던 이들의 모습은 어느새 찾아볼 수 없었다.
“쯧……. 그새 가라앉아 버렸나?”
하기야, 한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그만한 폭발의 여파에 휘말렸으니 멀쩡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러기에는 조금 아쉽다.
조금 전 두 녀석의 신변을 확보해 두면 머지않아 있을 ‘놈’과의 만남에서 아주 유용한 패가 될 테니까.
“……모두 들어라.”
“예!”
“지금 당장 한 놈도 빠짐없이 장강으로 뛰어들어, 조금 전 그 연놈들의 신변을 확보해라!”
“존명!”
“죽어 버리면 쓸 수 없는 패가 될 테니, 숨이 넘어가지 않은 이상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도록!”
“존명!”
파바바밧!
풍덩 풍덩! 첨벙!
수룡왕의 명과 함께, 수룡채의 수적들이 갑판을 박차고 몸을 날려 장강으로 뛰어든다.
명색에 수공을 익힌 이들답게 그들은 물고기처럼 장강을 헤치며 깊은 강 속으로 들어갔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적사와 살암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
……춥다.
온몸이 차가운 겨울 눈 속에 파묻혀 버린 듯 하다.
그래, 마치 산적에게 부모를 잃고 산속에 홀로 남겨졌던 그날처럼.
쓰러진 채 자신의 몸을 덮어 가는 눈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던 과거의 자신처럼…….
짤랑 짤랑.
‘……뭐야, 너 살아 있는 것이냐?’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던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건조한 듯하지만 더없이 따듯했던, 자신을 안아 들던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막주님!’
번쩍!
한순간, 자신이 누워 있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한 적사가 반사적으로 눈을 치켜떴다.
침침하고 흐릿했던 시야가 빠르게 초점이 맞추어지며 목재로 이루어진 낯선 천장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벌떡!
“……큭!”
상황을 파악하고 살암을 찾기 위해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적사.
그 순간, 나체가 된 자신이 두터운 호피(虎皮) 이불을 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다.
“……!”
“이제 정신이 들었나?”
그녀가 있는 곳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방 한쪽에 위치한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거구의 사내.
등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태도와 마우평보다도 더 거대한 인간 같지 않은 체구.
그 모습에서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적사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수…… 룡왕……!”
좁은 방 안에, 침소 위에 뉘어져 있는 발가벗겨진 자신의 몸.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던 적사가 다급히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일으킨다.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녀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자, 슬며시 미간을 찌푸린 수룡왕이 그녀에게로 흘깃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목숨을 구해 주었을 뿐이니, 괜한 허튼 짓거리 하지 말고 누워 있어라.”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의식을 잃고 장강에 빠진 것을 건져 올렸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혀 둘 수도 없어 그리한 것이니, 괜한 오해 말고 감사히 여기거라.”
“……!”
자신을 향한 적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수룡왕의 음성.
이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적사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질문을 던진다.
“막주님은…… 어디 계시지?”
“그 또한 염려할 것 없다.”
“…….”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인지…… 그만한 상처를 입고도 목숨이 붙어 있더구나. 혹시나 의식을 되찾고 날뛸까 봐 점혈을 해 두기는 했다만, 확실한 건 당장 죽을 상태는 넘겼다.”
“……하아.”
살암이 살아 있다는 수룡왕의 대답에 안도했는지 천천히 긴 숨을 내뱉은 적사가 눈을 감았다 뜬다.
우선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수룡왕은 과거 사천방과의 전투에서 대패해 과거의 입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상태.
그들에게 원한이 있으면 있었지, 은혜를 베풀 만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왜 살려 준 거지?”
“흐음…….”
극도로 날이 서 있던 적사의 경계심이 다소나마 누그러진 것이 느껴지자, 이윽고 대화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수룡왕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응시한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