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쯧.”
수룡왕의 위협에 짧게 혀를 찬 사무현이 삐딱하게 고개를 가로 꺾으며 입을 열었다.
“빚 같은 소리 하네. 그때 당시에 늬들 때문에 남경 전체가 입은 피해가 얼마인 줄은 아냐?”
“양민의 피해를 생각하는 수적은 없지.”
“그거야 늬들 입장이고.”
까드득.
어느새 표정을 굳히며 어금니를 깨무는 사무현의 몸에서도 한순간 서늘한 살기가 흘러나온다.
“나라고 네놈들 얼굴 보는 게 편한 줄 아는데…… 네놈들이 흑룡문에서 했던 짓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이 배를 침몰시키고 깡그리 토막내 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데도 혼자 우리를 만나러 왔다고?”
수룡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사무현이 표정을 굳힌 상태로 말을 꺼낸다.
“기회를 주마.”
“기회?”
“이렇게 음침한 곳에서 찌그러져 살지 않아도 될 기회. 편안하게 앉아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
“…….”
“안에서 일 이야기 계속할까, 아니면…….”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자신을 포위한 수적들을 확인한 사무현이, 곧 한 손을 도의 손잡이로 가져가며 말을 잇는다.
“그냥 이 자리에서 묵은 빚 한번 해소해 볼까?”
“흠…….”
사무현의 물음에 그의 저의를 확인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수룡왕.
그리고 이윽고, 짧은 침묵 끝에 그가 자신의 도를 다시 등 뒤의 도집으로 밀어 넣는다.
쓰윽.
“……따라와라.”
쿵 쿵.
저벅 저벅.
수룡왕의 말에 느긋하게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
아직까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무기를 거두지 못하는 수적들의 모습에, 잠시 후 발걸음을 멈춘 사무현이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
“한 번만 더 무기부터 꺼내 드는 새끼는, 모가지 잘려도 할 말 없는 새끼로 간주한다.”
저벅저벅.
그 말과 함께 이내 수룡왕의 뒤를 따라 걷는 사무현.
한순간 그들을 압도한 위압감에 긴장하고 있던 수적들이 막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스거거걱.
탈그락. 덜그럭.
사무현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했던 수적들의 무기 일부가 잘려 나가 난데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 이럴 수가…….”
“대체 언제…….”
눈으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만약 상대가 무기가 아닌 자신들의 목을 노렸다면, 그들은 과연 반응해 낼 수 있었을 것인가?
‘저것이 천신련주 사무현!’
삼 년 전 수룡왕을 쓰러뜨리고 사파제일인에 가장 가까워진 괴물.
어쩌면 그가 호굴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우굴에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 아닐까?
수룡왕과 함께 사라진 문 쪽을 불안한 듯 바라보며, 수적들은 한동안 더 침묵을 지키고 서 있었다.
***
‘진짜 현실감 없네.’
이 모든 것이 그가 만든 상황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수룡왕이라는 놈과 대화를 하는 순간이 올 줄은 솔직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수룡왕의 뒤를 따르며 사무현은 불과 열흘 전의 일을 떠올렸다.
사문회주가 음지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전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딪치게 될 음지삼왕에 대한 걱정으로 사무현이 잠을 못 이루던 그때.
사천방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혼자 강해지는 것 외에도 다른 방도들이 있다는 천마의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불현 듯 사무현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승산이 있을지도 모를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 천신련의 규모만 급하게 불리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쓸데없는 희생만 키울 뿐, 상황을 바꾸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 천신련의 또 다른 적을 끌어들여 음지삼왕과 싸우게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사무현의 머리에 떠오른 이가 바로 저 수룡왕이었다.
음지삼왕 중 누구와 싸우더라도 승부를 논할 만하며, 이끄는 세력을 더하면 현재 천신련의 전력을 도리어 웃돌 정도의 녀석.
비록 삼 년 전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였던 녀석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사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보다 큰 이익을 위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파의 모습이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사무현은 곧장 수룡왕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를 설득할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곧장 전추를 찾아가 여러 가지 안들을 논의했다.
그보다는 상인인 전추가 이런 종류의 거래와 설득에 훨씬 능한 인물일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서신을 보낸 지 열흘 만에, 사무현은 이렇게 수룡왕과 함께 저들의 심장부를 거닐고 있었다.
쿵 쿵.
털썩.
“……앉아라.”
어느새 널찍한 방에 도착한 수룡왕, 철재 탁자의 맞은편에 위치한 의자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한쪽에 자리한다.
이에 잠시 후 그가 자리에 앉자, 수룡왕이 문 밖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좋은 술로, 두 병만 내오거라!”
“예!”
수룡왕의 외침과 함께 문밖에서 들려오는 대답.
잠시 후 멀어지는 인기척을 느끼던 사무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조금 전에는 칼까지 빼 들더니, 이제와 손님 대접이냐?”
“요란 떨 것 없다. 아랫것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구색 갖추기니까.”
“…….
“그리고 죽이지 않기로 한 이상, 일단은 손님 아니냐?”
“오호?”
생각지도 못하게 이성적인 수룡왕의 대답에 사무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그저 단순하고 무식한 놈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영악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너 같은 놈도 아랫사람 눈치를 보냐?”
“무슨 뜻이지?”
“뭐 그냥…… 수틀리면 다 때려죽이는 놈인 줄 알았지.”
“큭…….”
사무현의 한 마디에 수룡왕이 실소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제 감정대로만 움직이는 폭군을 저들이 따를 것이라 생각하나?”
“…….”
“저들은 결국 살고 싶어서 나를 따르는 것이다. 충동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얼마든지 자신들을 헤할 수 있는 우두머리를 따를 리 만무하지.”
“흐음…….”
수룡왕의 말에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부숴 버리면 그뿐이라 여기던 무식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아닌가?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들이 있던 방문이 열리며 나름대로 날카로운 기도의 수적 하나가 두 개의 술병을 가져와 수룡왕과 사무현의 앞에 한 병씩 내려놓는다.
탁.
“술병의 위치를 바꿔라.”
“……예?”
“바꿔.”
“아…… 그…….”
수룡왕의 한 마디에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수적.
그 모습에 더 이상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수룡왕의 거대한 주먹이 그의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부웅.
콰아앙!
휘리리릭.
털썩.
“……쯧.”
자신의 수하를 맨주먹으로 즉사시킨 수룡왕이 사무현의 앞에 놓인 술병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오며, 본래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술병은 사무현 쪽으로 밀어낸다.
쓰윽.
“멍청한 놈. 거기! 누가 저 녀석 좀 치워라!”
“예!”
수룡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뛰어 들어온 또 다른 수적들이, 죽은 듯이 뻗어 있는 동료를 들쳐 매고 밖으로 향한다.
“나름대로는 눈치껏 행동한다고 노력한 것 같은데…… 너무한 처사 아닌가?”
“큭……. 너무한 처사?”
사무현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린 수룡왕이 술병의 마개를 열며 말을 잇는다.
“고작 네놈의 술에 독을 넣었다고 죽인 것 같나?”
“……아니라고?”
“내 명에 의심을 품었기에 죽은 것이다!”
콸콸콸.
그러고는 커다란 술병을 자그마한 호리병처럼 집어든 수룡왕이, 술병을 젖혀 나발을 불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술을 모두 비워 낸 수룡왕이, 빈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을 잇는다.
탁.
“크으…… 저렇게 제 생각이 명보다 앞서는 놈들이 많아지면 곤란하지. 집단을 통솔함에 문제가 생기니까.”
장강수로채에서 수룡왕의 존재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왕. 그 이상의 존재였다.
명이 떨어지면 의문을 가지지 않던 녀석들이, 삼 년 전부터 하나둘씩 자신을 향한 불신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쯧, 멍청한 놈…… 고작 산공독 따위로 일을 치르려 했다니.”
“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수룡왕의 투덜거림에 사무현이 느긋이 고개를 끄덕인다.
환골탈태에 올라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는다.
만독불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천독불침 정도는 되는 데다, 여차하면 내공을 통해 얼마든지 독기를 억누르고 방출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 사무현의 경우, 환골탈태를 하기 이전에도 이미 어지간한 독에는 내성이 있었던 상태였다.
바로 십만대산에 있을 때 천마 놈 덕에 먹은 수많은 독들 때문에…….
“……어딜 노려보고 있는 거냐?”
“어……?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를 떠올리다 울컥해서 천마를 흘겨보던 사무현이, 이내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진지하게 수룡왕을 응시한다.
“자…… 그럼 슬슬 본론을 꺼내 볼까?”
“그러지. 미리 경고하지만,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오늘 이 자리가 네 사지(死地)가 될 것이다.”
“그거야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고.”
한 손을 휘저어 가볍게 수룡왕의 협박을 넘겨 버린 사무현이, 이내 그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말을 꺼낸다.
“너…… 큰 돈 좀 벌어 볼 생각 있냐?”
“뭐라?”
“언제까지고 먹을 거라고는 물고기밖에 없는 장강에서, 밤낮으로 물 냄새만 맡으면서 남 등이나 처먹고 살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이놈이.”
자신과 장강수로채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수룡왕의 눈에 노여움이 깃든다.
“그냥 이 자리에서 토막을 내 주랴?”
……살벌하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전해지는 살기와 위압감.
지난 삼 년 사이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기세에 사무현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자신 또한 지난 삼 년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자부하고 있었지만, 밤낮으로 천마에게 단련 받은 자신과는 달리 저 녀석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 낸 성과이니까.
상대의 기세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최대한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마주하며 사무현이 말을 잇는다.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뭐라?”
“굳이 수적질을 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찾지 못하는 장강의 구석에 숨어 살지 않더라도 배를 곯지 않을 수 있다고.”
“…….”
사무현의 말에 분노를 잠시 억누른 수룡왕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사무현을 응시한다.
마치 그의 말에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그러나 잠시 후, 사무현의 뒤이어진 한 마디에 그의 두 눈은 곧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음지삼왕만 처리하면.”
“……뭐?”
어이가 없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올리는 수룡왕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스스로 제대로 말을 들은 것인지에 대한 불신, 그리고 상대가 농을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아함.
혹여나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계산.
시시각각 변하는 모든 감정의 끝에서 수룡왕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분노였다.
“이……!”
까드드드득.
수룡왕이 움켜쥔 철재 책상이 그의 손가락 모양대로 깊숙이 패인다.
드드드드.
“네가 감히…… 여기까지 기어 와서 나를 농락을 해!”
휘리리릭.
쨍그랑!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친 기세를 방출하는 수룡왕.
그의 몸에 뿜어져 나온 기파에 의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술병들이 날아가 벽에 부딪쳐 깨지고, 무거운 철제 탁자가 뒤쪽으로 밀려나며 사무현의 몸을 압박한다.
하지만…….
“진정해라. 대화는 이제 시작이니까.”
“닥쳐라! 어디서 감히 허무맹랑한 소리로 나를 농락하려 해!”
“진정하라고.”
점점 거칠어지는 수룡왕의 기세에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사무현이, 지그시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너랑 농담 따먹기나 할 만큼 한가한 몸이 아니니까.”
“이놈이……!”
“조만간 천신련은 음지와 부딪칠 거다.”
“감……. 뭐?”
스르르륵.
사무현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만 같았던 수룡왕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네놈이 이끄는 천신련과 음지삼왕이 맞붙는다고?”
“너도 알겠지만 천신련에는 암천막이라는 단체도 포함되어 있다.”
“……”
“최근 암천막주가 음지 쪽으로 활동을 시작했지.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음지삼왕 역시 이에 맞춰 움직임을 시작했다. 놈들의 궁극적 목표는 음지 전역을 자신들의 발아래에 두는 것일 텐데, 암천막의 부활은 거기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테니까.”
“흐음…….”
“우리 쪽에서 음지를 포기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저들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 시기도 그리 머지않았겠지.”
“과연…… 하면 지금 날더러, 천신련을 도와 음지와 싸워 달라는 말이로구나.”
그제야 사무현이 하려는 말을 알겠다는 듯 수룡왕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네놈 혼자서는 힘에 부칠 테니.”
“정확하다.”
“큭큭……. 그래, 솔직해서 좋군. 한데, 너무 빠르게 패를 다 꺼내 보인 것 아니냐?”
“무슨 뜻이지?”
“말한 대로다.”
어느새 사무현을 바라보는 수룡왕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진다.
“내 도움 없이는 네게 승산이 없음을 알았으니…… 내가 네놈의 생명 줄을 쥐고 있음을 가르쳐 준 꼴이 아니냐?”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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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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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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