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7
027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봉혼술 때문에 내 몸을 빼앗을 수 없다고?
그러면 이 몸을 빌려 진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이라는 말인가?
“그럼…… 다시 내 몸을 빌리는 것은…….”
“……하.”
……다행이다.
저 말인즉, 내가 기절 같은 것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내 육체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말이니까.
물론 저 천마의 말이 모두 진실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구태여 한번 장악했던 육체를 다시 넘겨준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잠시나마 안도감에 빠져 있는 사무현의 머릿속으로, 어쩐지 묘한 천마의 음성이 이어졌다.
“……뭐?”
음……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런데 뭐, 그 정도야.
“상관없는데?”
“어차피 네가 해 주는 거라고 해 봐야 훈수밖에 더 있냐?”
“해 줄 만큼 해 줬어.”
“여기까지 날 데리고 탈출시켜 준 것도, 한 번 죽었어야 했을 상황에 날 살려 준 것도……. 넌 이미 나와의 약속을 충분할 정도로 지켰어.”
예상하지 못했던, 사뭇 진지함이 맴도는 사무현의 대답에 잠시 침묵을 지키는 천마.
눈앞에 펼쳐진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스스로 다짐하듯 말을 이어간다.
“여기부터는 내가 해야 할 때라는 거지. 지난 석 달이라는 시간을,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절대 아니잖아?”
……이 새끼가 시도 때도 없이 뼈 때리려 그러네.
이럴 때는 한 번쯤, 어?
기도 살려 주고, 어?
“……어떻게든 해 봐야지. 어차피 네가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거잖냐.”
“열흘 동안 지들 앞마당에서 나 하나를 발견 못 하겠냐? 그런 희박한 운에 기댈 바에야, 차라리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쯧쯧. 이 새끼가 또 뭘 모르는 소리 하네.
“……야, 천마야. 내 인생이 말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운이 좋았던 적이 없었거든? 여기서 버텨 봐야, 결과는 무조건 나쁠 거야.”
“어린 나이에 귀신에 들려서 집에서 버림받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 적응 좀 되려나 싶더니 마교 놈들한테 납치당해, 삼 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죽기 살기로 버텼더니 귀신 하나가 더 내 몸에 들어와, 그리고 또…….”
거봐, 새끼야.
내가 인마, 어?
이렇게 재수 없는 삶을, 어?
……아 씨, 눈물 나려 그러네.
아무튼.
“빌어먹을 하늘을 믿느니, 차라리 너도 날 한번 믿어 봐라. 이래 봬도 내가, 어려서부터 산전수전에 귀신전까지 겪은 덕에 생존 본능 하나는 끝내주니까.”
아니, 이 새끼가 끝까지…….
“……그것참 눈물 나게 고맙다, 이 새끼야.”
그렇게, 천마의 대답에 가만히 실소를 머금는 사무현.
그래……. 이래야 한다.
지금까지 저 천마라는 놈은 자신의 악명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와주었다.
물론 양쪽의 이해가 맞아서 시작된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언제까지고 도움만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한다.
***
“……죽었다고? 귀적이?”
“예. 그를 포함한 추적대 전부가 누군가와 격전을 치른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전멸…….”
콰드드득.
고명의 보고를 들으며, 분기를 참지 못한 화상 장로가 움켜쥐고 있던 탁자의 모서리를 뜯어냈다.
이에 잠시 마른침을 삼킨 고명이 더욱 깊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이어간다.
“……시신의 상태로 보건대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약 세 시진 전의 일입니다. 그곳에서부터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필시 경계를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놈이 귀적을 제압할 실력을 갖추었다는 시점에서 우리의 예측은 틀어졌다. 한데 무엇을 근거로 그리 확신하느냐?”
“그……것은…….”
화상장로의 물음에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고명.
이에 잠시 동안 그를 노려보고 서 있던 화상장로가, 천천히 심호흡을 한 번 하며 말을 이었다.
“……넘어가지 못했겠지. 아니, 넘어가지 못해야만 할 것이다.”
“……예?”
“만약 놈이 경계를 넘었다면…… 내 기필코 네놈을 포함해, 칠대 천마를 감시하던 모든 잡것들의 사지를 찢어 버릴 것이니 말이다.”
“…….”
“……가라. 수가 더 필요하다면 열이건 백이건 데리고 가라!”
“…….”
“하나 반드시…… 사흘 안에 놈의 시신을 내 앞에 가져와야 할 것이다. 네놈과 네놈 수하들의 목숨을 걸고!”
“존명!”
화상장로의 협박과도 같은 하명에, 우렁찬 복명을 끝으로 빠르게 물러나는 고명.
그가 물러나자, 지금까지 가까스로 이성을 지키고 있던 화상장로가 그대로 탁자를 내려친다.
“이익!”
콰광!
분노 어린 화상장로의 일 수에, 산산이 파괴된 목재 탁자의 파편이 팔방으로 흩어져 나뒹굴었다.
그러고도 분기가 풀리지 않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화상장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런 보고를 듣고도 한가롭게 탁자나 부수고 있을 겐가?”
“……태상장로이십니까?”
“여태 내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니, 자네답지 못하군. 들어가도 되겠나?”
“아…… 물론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언제부터 이런 것에 일일이 허가를 구했다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태상장로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화상장로는 애써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시비를 시켜 정리를 좀 해야겠군.”
“죄송합니다. 의자는 멀쩡하니, 그리 앉으시지요.”
“되었네. 바쁜 자네를 붙잡고 길게 이야기하러 온 것은 아니니.”
평소와는 달리 묘하게 선을 긋는 듯한 태상장로의 태도.
이에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화상장로는 애써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하면 무슨 용무로…….”
“초대 천마께서 이 일을 아셨네.”
“……!”
예상치 못했던 태상장로의 한마디에, 한순간 딱딱하게 굳어 버린 화상장로의 전신.
초대 천마라니?
분명 비무 전까지는 개인 처소에만 박혀 있을 것처럼 굴던 그가, 대체 어떻게 벌써 이 일을 알아차렸다는 말인가?
‘설마…… 태상장로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태상장로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수족.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노리는 태상장로가, 그의 굳건한 권력을 뒷받침해 줄 자신과 같은 패를 버릴 리가……?
그러던 그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화상장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설마…… 태상장로께서…….”
“……자네도 알지 않는가?”
“…….”
“교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천마께 보고하는 것은, 응당 태상장로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빠드득.
쾅!
“이……! 지금 그걸 내게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후려치며 태상장로에게 언성을 높여 소리치는 화상장로.
저 빌어먹을 늙은 구렁이가, 초대 천마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자신이라는 패마저 방패막이 삼아 버리다니!
‘권력욕에 미친 늙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백 년 전 십삼 대 천마가 중원 진출을 시도했을 당시, 타 장로들에 밀려 총타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던 태상장로다.
하지만 결국 그 ‘무신(武神)과의 싸움에서 십삼 대 천마가 패하며 목숨을 잃자, 중원에 진출했던 교의 세력은 무너지고 모든 권력은 오롯이 태상장로에게 집중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맛본 권력을 그토록 놓기 싫었던 것일까?
스스로 은퇴할 나이가 되자, 태상장로는 천마신교의 부흥이라는 명목으로 금단의 술법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꼭두각시 임시 교주로 조암을 세워 모든 불만의 화살은 그에게 향하게 하고, 그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불안 요소들은 화상장로를 이용해 제거했다.
그렇게까지 그에게 충성을 다한 화상장로이거늘, 이만한 일로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다니……!
‘초대 천마라는 절대자가 만들어진 이상, 그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라면 수족 정도는 얼마든지 잘라 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생각을 이어 가는 화상장로의 전신에서 주체하지 못한 살기마저 흘러나오자, 태상장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진정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러다 선을 넘어 버리겠군.”
“하……! 그동안의 충성의 대가로 방패막이가 되어 주시기는커녕,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려 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이 일은 어떤 식으로든 천마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네. 자네가 말한 방패막이를 해 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그분께 신임을 잃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논리적인 태상장로의 반박에, 도전적이던 화상장로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분께 제 용서를 구하기라도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반은 맞다고 해 두지.”
“……반요?”
“천마께서는 자네에게 기회를 주시기로 하셨네. 도망친 칠 대 천마를, 자네가 직접 잡아 오라 명하셨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말일세.”
꾸욱.
태상장로의 말을 들으며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는 화상장로.
언뜻 그를 위해 움직인 것처럼 말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그가 한 일은 자신의 안위를 도모한 것뿐이다.
이 일의 책임에 대해서, 자신만큼은 완벽하게 발을 빼 버렸으니까.
‘당장 저 뱀 같은 세 치 혀를 뽑아버리고 싶다만……!’
하지만, 태상장로에게 손을 쓰는 순간 그는 죽은 목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살고자 하는 본능이 분노를 억누르고, 어떻게든 냉정함을 되찾은 화장장로가 천천히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명에 따르도록 하지요.”
“잘 생각했네. 하면,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네.”
탁, 탁.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는 화상 장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그의 처소를 빠져나가는 태상장로.
한편 그를 향한 자신의 살기가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화상장로는 터질 듯이 힘껏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
저벅저벅.
사아악!
음영이 내려앉은 수풀 한쪽에 똬리를 틀고 있던 백사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온 침입자에게 커다란 입을 쩍 하고 벌리며 위협적인 쇳소리를 냈다.
언제라도 극독을 주입할 수 있는 커다란 송곳니를 번뜩이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로…….
“아오, 깜짝이야!”
쾅!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던 까닭에 백사의 운명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태도(太刀)에 짓뭉게 지는 것으로 그 끝을 맺었다.
“쯧, 뱀 새끼가 어디서 까불어? 까불길?”
“어? 깼냐?”
지독한 고요함 속에서 들려온 천마의 음성이 반가웠는지,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연다.
“웬 뱀 새끼가 까불거리길래, 너 있던 곳으로 보내줬다. 천마도법 일 초식으로.”
“어, 뱀 잡는데 아주 딱 이던데?”
……대체 언제부터 천하를 공포에 떨게 만든 그의 천마도법이, 한낱 뱀 잡는 도법이 되고 말았는가.
“엉?”
“뭐? 왜?”
……쪽팔려서 그래.
네가 내 전승자라는게 쪽팔려서…….
아무튼 그렇게 다사다난하게 어두운 숲을 헤치고 걸어 나가던 사무현의 눈앞에, 이윽고 한 줄기 밝은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드디어 숲은 빠져나왔나 보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인마. 그리고…….”
쐐애애액.
쾅!
음…….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도.
사무현이 숲을 빠져나와 첫발을 내딛기 무섭게, 저 멀찍이서 쏘아진 한 발의 신호탄이 사무현의 머리 위쪽에서 터졌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