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너와 나, 단둘이 쳐들어가자는 말을 하는 거냐?”
“그래.”
반신반의한 청사의 물음에 단호히 대답한 사무현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겁나냐?”
“……그럴 리가.”
사무현의 물음에 청사가 새하얀 어금니를 드러낸다.
“네가 안 간다면 나 혼자라도 갈 참이었다.”
“좋아, 그럼 앞장…….”
“어딜 가시는 거죠?”
청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다시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느닷없는 적사의 음성이 그들의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저벅저벅.
“련주야 원래 생각이 없으니 그렇다 치고…… 청사, 너까지 물들어 버린 거냐?”
“말리지 마라, 적사. 너는 나를 말릴 권한이 없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청사의 대답에 적사의 눈이 가늘어진다.
“말릴 권한이 없다라……. 왜지?”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
“막주님을 지키지 못한 네가, 내 복수를 가로막을 권한은 없다는 뜻이다.”
“……아하.”
서늘한 청사의 한 마디에 적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러니까…… 너라면 나보다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너처럼 멀쩡히 돌아오진 않았겠지.”
“하아……. 네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 자리에 있던 게 내가 아니라 너였다면 지금 여기까지 막주님을 모셔오지도 못했어, 알아?”
“내 능력이 너보다 못하다는 뜻이냐?”
“그걸 몰라서 물어? 막주님께서 누구를 호위로 데려갔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
적사의 말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떤 청사가 소매 아래에 숨겨 두었던 삼지조를 드러내며 두 눈을 부릅뜬다.
“말 다 했느냐! 적사!”
“웬걸? 한참은 못 했지. 더 해 줄까?”
끼릭, 끼릭.
두 팔을 늘어뜨린 적사의 넓은 옷소매 안쪽에서도 비검의 맞부딪치는 기이한 마찰음이 들려온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 소란을 들은 막휘와 손익패가 의약당을 나와 그들의 대치를 마주한다.
“아니……. 갑자기 왜들 그러십니까?”
“형님은 왜 거기까지 가 계시고…….”
청사와 적사의 날카로운 대치.
그리고 장원을 나가려 문을 열어젖히고 있던 사무현의 모습.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막휘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모, 모두 나와! 형님 나가신다!”
“뭐, 뭐요?”
“이런 젠장!”
우르르르르르.
막휘의 외침과 함께, 의약당과 처소에서 황급히 뛰어나오는 사천방도들.
순식간에 몰려든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사무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형님! 지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설마 살암 형님 복수를 하러 가시려는 겁니까!”
“……다 널 막으러 나온 모양이로구나. 이제 어쩔 테냐?”
“하아…….”
자신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천방도들과, 흥미로움이 느껴지는 천마의 음성에 사무현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 순간.
“같이 가십시다! 형님!”
“복수를 하려면 다 같이 해야지! 치사하게 혼자 하시는 게 어딨습니까!”
“형님이 안 가시면 저라도 몰래 가려고 했습니다! 어딥니까!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있는 곳이!”
……어?
예상과는 조금 다른 사천방도들의 반응에 사무현의 눈썹이 추켜 올라간다.
말리러 나온 줄 알았더니, 같이 싸우러 가자고 나온 거였어?
“이것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모두 안 들어가!”
“왜 그러십니까? 적사 누님, 살암 형님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절대 못 참습니다! 상대가 누구건 저희는 절대로……!”
“누구는 참고 싶어서 참는 줄 알아!”
그녀가 사천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아니…… 연무학관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상대는 음지다! 지금까지 너희가 싸웠던 적과는 전투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막주님께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는데 다 같이 우르르 자리를 비우겠다고?”
“아…….”
“여기 있는 모두를 포함해서!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참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느냐고!”
지금까지 꾹꾹 누르고 누르던 감정들이 폭발한 것처럼 적사의 입에서 논리적이지만 거친 어투가 마구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런 적사의 모습은 잔뜩 흥분해서 폭발 직전의 사천방도들을 잠시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련주…… 아니, 방주께서도 감정을 누르시지요. 복수는 막주께서 깨어나신 다음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
“청사, 너도.”
“……크흠.”
어느새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사무현과 청사에게 경고한 적사가, 힘이 빠진 듯 긴 한숨을 내쉬고 의약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던 청사가, 잠시 어두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대로 주먹을 들어 맨바닥을 내려친다.
부웅.
콰과광.
은은하게 장원 전체에 울려 퍼지는 진동.
잠시 후,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주먹을 땅에서 떼어 낸 청사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저…… 형님…….”
“……안다.”
슬며시 사무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어오는 막휘의 모습에, 사무현이 최대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그의 시선을 피한다.
“다들…… 들어가자.”
“…….”
“복수전은…… 살암이 정신을 차린 후가 될 거다.”
사무현의 한 마디에 뛰쳐나왔던 사천방도들 모두가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인다.
처음 사무현이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건너와 살암과 함께 내렸을 때, 그의 상태를 보고 모두가 어찌나 놀랐던가?
사무현을 제외하면 그들 중 가장 강하고 말할 수 있는 살암이니만큼, 음지를 정벌하고 당당히 그들의 곁에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거늘……!
“……젠장.”
모두의 억눌린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누군가의 중얼거림.
그렇게, 살암이 돌아온 첫날 사천방의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
뜨겁다.
온몸이 불에 타들어 가는 것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어째서인지 좀처럼 비명을 내지를 수 없다.
‘무…… 물…….’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숨을 쉬기가 버겁다.
당장이라도 이 고통을 끝내게 해 달라 애원하고 싶지만 그 누구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그저 어둠 속.
살암은 지금 그 불길 같은 어둠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 내가…… 죽는 건가?’
한참을 고통 속에 있으면서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자신의 몸을 내리긋던 다섯 줄기의 검기.
그것은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거칠게, 그리고 그 어떤 명검보다도 예리하게 그의 몸을 베어 냈다.
살과 근육이 끊어지고 뼈까지 닿던 시린 검의 감각을 떠올리니 등골까지 오싹한 소름이 끼치는 듯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의 한쪽 시야가 완전히 꺼져 버리던 순간의 감각이었다.
‘아…… 그렇구나.’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을 조각조각 떠올려 맞추고 난 후에야 살암은 온전히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은 패했다는 것을.
그것도 철저하고 끔찍하게.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나.’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
사무현이라는, 사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천재와 함께 생활하면서 잠시 멍청한 착각을 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녀석과 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도 또한, 어떤 한계를 마주하던지 어떻게든 이겨 내고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착각이었다.
자신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은 평범한 무인이었을 뿐.
결국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다…… 끝인가.’
숨 쉬는 것조차 괴로운 이 통증이 말해 준다.
이대로 눈을 감고 이 고통에 몸을 맡긴다면, 그의 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지고 말 거라고.
그래 더 이상…… 어깨에 짊어져 있던 무거운 짐을 견뎌낼 필요가 없이…….
‘……짐이라고?’
고통 속에서 무의미하게 이어지던 생각의 흐름이 끊어진다.
그리고 느닷없이 생생하게 의식이 살아나며 살암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뒤틀리듯 감정이 요동친다.
‘아니야……!’
짐이 아니다.
그의 암천막은 세상이자, 집이자, 가족이자, 목숨보다도 더 중히 여겨야 할 이름이다.
골목길을 전전하던 부랑아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검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준 곳.
그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유일한 이가 자신인데, 어찌 이것을 짐이라 여기고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가던 살암이, 돌연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번쩍 눈을 떴다.
“……!”
어둡다.
하지만 조금 전의 어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치 촛불 하나 정도가 켜진 작은 방처럼.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분명한데, 그의 몸의 통증은 도리어 더 생생하게 찾아들었다.
“……큭.”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특히나 떠지지 않는 한쪽 눈에서는 불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그의 옆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아.”
“깨어났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퉁명스러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놀란 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사무현의 얼굴.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살암이, 이윽고 자신이 마지막에 쓰러지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힘겨운 미소를 머금는다.
“과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냐?”
“아니…… 난다. 빌어먹게도…… 선명하게…….”
고통을 숨기려는 듯 최대한 평온하게 숨을 내쉬는 살암.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새하얗게 질려 떨리고 있는 그의 입술과,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칠어진 호흡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침묵 속에서 내려다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깨어날 줄 알았다.”
“……뭐?”
“네가 해야 할 일도 못 하고 죽을 놈은 아니니까.”
묻지도 않은 말을 대뜸 꺼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사무현은 바로 조금 전까지, 그가 깨어나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는 것.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차라리 싸움도 못 하는 놈이 어디 가서 맞고 왔느냐고 구박을 했으면 마음이 편안했을 것이다.
평소답지 않은 어색한 거짓말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려는 사무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한 꼴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뼈아프게 느껴진다.
“……적사와 청사는?”
고통스러운 상념을 끊어 내기 위해 살암이 화제를 돌렸다.
“적사는 마지막까지 날 지키고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밖에서 대기 중이다. 하도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대서.”
“……안 봐도 알 것 같군.”
아마도 청사는 자신을 호위하는 데 실패한 적사를 질책했을 것이고, 적사는 스스로를 질책하던 와중에 제대로 된 상대를 찾은 것이리라.
사무현을 포함해 사천방의 누구도 적사를 질책해 주는 이는 없었을 테니까.
‘멍청한 녀석.’
전투에 진 순간 음지의 무사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살암은 전투에서 패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적사의 덕분이다.
물론…… 모든 것이 적사 하나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상념을 마친 살암이 사무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살았다.”
“누구 덕분에? 적사? 수룡채?”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결정적인 건 네 덕이다.”
“…….”
“평소에 네가 단련시켜 주지 않았다면 필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테니까.”
전투를 떠올리며 담담하게 감사를 표하는 살암.
이에 괜스레 멋쩍어진 사무현이 일부러 퉁명스레 대꾸한다.
“당연한 말을 뭘 굳이.”
“큭……. 신기한 경험이었다……. 평소 쌓아 왔던 것들이 실전에서 그 빛을 발하는 법이라더니…… 보통 때라면 받아 낼 수 없는 공격을 받아 내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이 피해지더구나.”
“……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무현을 바라보지 못한 채, 자소 섞인 말을 이어가며 살암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다.
“하나…… 아무리 상대의 공격이 눈에 보여도 내 몸은 따라 주지 않더구나. 그래, 결국 내 한계는 거기까지였던 거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거기까지 말을 이어 간 살암이,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수백 개의 금침이 박힌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지금의 이 끔찍한 고통도 결국에는 끝나겠지. 이 정도에 죽을 내가 아니니, 분명 이겨 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솔직하게 말해 다시 전처럼 뛸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 하겠구나.”
“너…….”
“염려 마라. 과거의 무위를 회복하는 데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니.”
“…….”
“피곤하니 이만 가라. 부탁하지.”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쏟아내고는 천천히 다시 눈을 감는 살암.
어쩐지 반신반의한 얼굴로 그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생각을 마친 듯 품 안에 손을 밀어 넣는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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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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