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쾅!
“지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탁자를 부러질 듯 후려치며 흑룡문주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혹스러움과 불신이 반반 섞인 그의 눈앞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백한 사문회주가 두 주먹을 움켜쥐고 흑룡문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강소 전역의 음지 문파들이 한데 모여 사천방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 한데 왜 그들이 사천방을 공격하려 한다는 말인가! 그들 모두가 분명 암천막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얼마 전 자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나?”
“그게…… 천신련주께서, 사천방주의 입장으로 하신 부탁이라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잠시 말꼬리를 흐리던 사문회주가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실은 얼마 전부터 음지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동천왕이라 칭하는 자가 나타나 동쪽 음지를 복속시키고 다니는 일이었지요.”
“그 이야기라면 나도 소문으로 들은 것 같네. 한데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강소 지역은 암천막주님의 영역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랬었지요. 하지만 암천막이 강소 전역을 손에 넣으며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휘까지 정벌을 마친 동천왕이 암천막의 영역이 된 강소 지역을 침범했습니다.”
“……!”
“그리고 강소 지역에서 큰 전투가 있었지요. 아직까지 암천막의 지배를 따르던 강소의 음지 세력들과, 동천왕을 따르는 음지 세력들이 정면으로 맞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암천막이 패망하고, 암천막주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사천방으로 돌아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 일이……. 한데 어째서 나한테 그 모든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는가!”
당황한 흑룡문주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자 사문회주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말씀드렸다시피, 사천방주의 입장에서 은밀히 정보를 수집해 달라 요청하셨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은 음지의 조용한 곳에서,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된 일입니다. 사문회의 정보력으로 이 모든 정황을 파악한 것도 불과 어제의 일이었습니다.”
“으음……. 알겠네. 하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군.”
생각지도 못한 시국에 예상치 못한 상황과 부딪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우러 가세! 련주께서 계시다고는 하나, 저들의 수가 많으니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야 할 터.”
“그게 아닙니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들의 수가 어찌 그리 많은가?”
“당장 남경에 있는…… 아니, 가능하다면 인근에 있는 모든 천신련에 비상 연락을 돌려야 합니다.”
“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사문회주의 위기감을 감지한 듯 서서히 굳어져 가는 흑룡문주의 얼굴.
그런 그를 마주하며 사문회주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 어린 얼굴로 말을 잇는다.
“천신련주께서, 세 시진쯤 전에 스물 남짓한 사천방도들과 함께 남경을 빠져나가셨다는 급보입니다.”
“……!”
사문회주의 말을 들은 흑룡문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천신련주가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강소 지역 전체 음지의 연합.
과연 그들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사천방이 버틸 수 있을까?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흑룡문주가 다급히 방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친다.
벌컥!
“자네는 지금 당장 남경의 모든 문파들에게 서신을 띄우게! 사천방으로 전력을 이끌고 곧장 달려오라고!”
“자, 잠깐! 함께 가야 합니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한 소리 말게! 만약 우리가 저들에게 공격받는 입장이었다면 사천방은 자신들의 안위를 신경 써 가며 우리를 도와줄 것 같은가!”
“……!”
흑룡문주의 꾸짖음과 같은 한 마디에 사문회주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고는 그 역시 마음을 다잡았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음성으로 답한다.
“수하들 몇에게 지시를 내린 후 곧바로 뒤따르겠습니다!”
“고맙네, 전장에서 보세!”
파바밧!
타닷!
그대로 장원으로 뛰쳐나가는 흑룡문주와, 곧바로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사문회주.
늦게나마 사천방의 위기를 감지한 천신련도 허겁지겁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
콰과과과.
혈맥을 타고 흐르는, 도저히 멈출 줄 모르는 거대한 기의 흐름을 느끼며 살암은 생각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다.’
처음 영단을 복용하던 순간까지도 일말의 의구심이 있었다.
어쩌면 정말 질이 좋은 중급 영단이나, 운 좋게 구한 상급 영단 정도가 아닐까 하고.
아무리 사무현이 자신의 수하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을 꺼리지 않는 이라고는 하나, 정말로 최상급 영단이라면 이는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가치의 물건이니까.
비싼 값을 치르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하급 영단, 그보다 몇 곱절은 비싼 값을 치러야 하고 거상들 사이에서만 융통을 할 수 있는 중급 영단 정도와는 달리, 상급 영단부터는 이미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게다가 최상급 영단은 저 소림의 대환단과 같이 특별한 재료에 특별한 연단법이 성공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기연과도 같은 영단이다.
‘이건 분명 최상급 영단이다.’
그렇지 않고야 절정의 극에 달한 고수의 몸을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꿀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편안하구나.’
처음에는 극심한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거대한 기를 통제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그의 몸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도 잊고 무아지경으로 기의 흐름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끝에 살암의 몸은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오로지 편안함, 그리고 안락함.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던 육체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의식이 육체의 구속을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살암은 이 무아의 상태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불편했다.’
당시에는 몰랐다.
자신이 무언가에 구속받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가 이토록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지금 이토록 자유로운 상태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를 이름으로, 직위로, 검으로…… 수도 없이 많은 사슬로 옭아매고 있던 구속받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그런 상태로 단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멍청하게도.
환검(幻劍)이란, 변검(變劍)이란 곧 무한한 자유를 뜻한다.
평행하게 이어질 것만 같은 하나의 선로에 또 다른 선을 긋고, 또 다른 선 하나를 더 긋고, 그 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선을 그어 낸다.
그래, 그것은 길이다.
갈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는 수많은 길.
그가 나아가는 것은 곧 얼마나 많은 길을 만드느냐는 것.
이는 곧 얼마나 많은 검로(劍路)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
‘하지만 그 또한 구속이었다.’
사무현의 도는 달랐다.
그는 변화를 만들어 내려 애를 쓰지 않음에도 항상 수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한 한 번의 휘두름이 때로는 열 번의, 때로는 백 번의 변화를 간직한 것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껏 살암은 이를 서로 간의 무위(武位)가 가져다 주는 벽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공격을 사무현은 모조리 읽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선을, 검로를 그어 내는 수밖에 없다고.
더 많은 검로를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더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은 틀렸다.
‘그 모든 것이 결국은 구속이었다.’
동천왕이라 불리던 자의 검로는 어떠했는가?
사무현의 도초는 어떠했던가?
그리고…… 그의 스승이었던 살천의 검로는 어떠했는가?
‘어설프게 형(形)을 흉내 내려고만 하는구나. 당장은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네 스스로 살아 있는 검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가품(假品)으로 남을 뿐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살천의 그리운 옛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마치 당시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 생생하게.
그리고 뒤이어 치기 어렸던 자신의 불만스러운 음성도 울려 퍼진다.
‘제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힘과 속도는 부족했으나, 초식의 형은 분명 틀리지 않았습니다.’
‘틀리지 않았다, 진정 그리 생각하느냐?’
‘예.’
‘그래, 하면 다시 한번 직접 보거라.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기억하여 네 머리에 새기고 또 새기거라. 그리고 먼 훗날 네 검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의 내 검과 네 검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스승과 같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살천이 부드럽게 검초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살암의 어린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내력을 모두 죽인 채 순수하게 형(形)에만 집중해서.
‘그래……. 저것이 스승님의 검.’
살암의 눈에 오래전 살천이 보여 주었던 움직임이 너무도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에는 그저 조금 더 능숙해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워 보이던 움직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살천의 검로는 살암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르다.’
그가 전개하는 초식과는 너무도 다르다.
형태가 아닌 근본적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이?
살암 또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 저 움직임을 흉내 낼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자신은 영원히 저 검에 닿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게 혼백이 나간 듯, 모든 잡념을 일제히 지워 버린 살암이 오직 눈앞에 보이는 살천의 검로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그렇게, 이미 무아지경에 들어간 살암의 의식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갔다.
***
“하아아…….”
“……한숨 좀 고만 쉬십쇼, 형님. 그러다 땅 꺼지겠습니다.”
오늘 밤 사천방의 경계를 함께 맡게 된 손익패를 바라보며 흑호(黑虎)가 입을 열었다.
“거기 못 따라간 게 형님만도 아니잖습니까?”
“알지, 그래도 막휘 형님은 가셨잖냐.”
“그야…… 막휘 형님이 형님보다 세잖습니까?”
꽈악.
뼈를 때리는 흑호의 한 마디에 손익패가 두 주먹을 움켜쥐자, 위기감에 몸을 움찔한 흑호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돌린다.
“헤헤, 그래도 사실 막휘 형님을 제외하고는 그 중 익패 형님보다 센 놈은 없었지요. 억울하실만 합니다.”
“끄으응…….”
언제 그랬냐는 듯 능구렁이처럼 상황을 모면하는 흑호를 바라보던 손익패가, 결국 닫친 대문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하아…… 그래, 바로 그게 문제란 말이다.”
“예?”
“네 말대로 일대일…… 아니, 막휘 형님을 제외하면 일 대 다수로 싸워도 이길 수 있다. 그런데도 형님은 날 데려가지 않으셨지. 이유는 형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고.”
“익패 형님이 거기서 폭주하면 곤란하다는 말씀 말입니까?”
“그래,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천천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익패가 한탄하듯 속을 털어놓는다.
“대표 형님께 천수신공을 전수받고, 매일 밤마다 지옥 같은 수련을 거치면서 나는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삼 년 전, 장강의 사신무와 싸울 때도 막휘 형님과 함께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난 삼 년의 시간동안 너희 모두가 강해지면서…… 그리고 천신련의 훈련 기수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나한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설마…… 대표 형님 말씀대로 폭주하시는 걸 우려하시는 겁니까?”
“예전보다는 폭주를 잘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을 때뿐이지. 내 몸의 부상이 심하면 심할수록, 내가 받은 충격이 크면 클수록 점점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게 된다. 천신련 훈련 기수들과의 대련 때도 이것 때문에 몇 사람을 부상 입혔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난 위험한 전투에는 결코 낄 수 없는 애매한 존재가 되어 버릴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생각지도 못했던 근심을 손익패가 털어놓자 흑호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 형님이 고민하시는 심정은 이해가 가네요. 사실 집단전에서 형님 때문에 진형이 무너져 버린 게 한두 번은 아니니까요.”
“끄응…….”
흑호의 말에 손익패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사실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훈련 기수들과 사천방의 집단전을 벌일 때 자신의 폭주로 진형이 무너진 적이 왕왕 있었던 것이다.
“역시…… 대표 형님이 이번에 날 놓고 간 건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데 말입니다.”
자괴감 섞인 음성으로 손익패가 말을 이어 가려던 그때, 흑호의 음성이 그의 한탄을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두 집단이 서로 쓰러질 때까지 맞붙어야 한다면…… 그리고 상대 집단이 우리 집단보다 강하다고 한다면, 전 오히려 막휘 형님보다 익패 형님과 함께 있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흑호의 말에 손익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왜…….”
“형님은 여럿이서 막는 건 가능해도 쓰러뜨리는 건 어렵거든요.”
“……아.”
“그 증거로, 이기건 지건 항상 마지막까지 서 있는 건 형님이지 않습니까?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도리어 점점 더 강해져서 달려드시니…… 어떻게든 형님을 쓰러뜨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까다로울 수가 없거든요.”
생각만으로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어 보이는 흑호.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손익패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머금어지려는 순간이었다.
“……!”
휙!
난데없이 두 눈을 부릅뜬 손익패가, 저 멀리 어두운 숲 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왜 그러십니까, 형님?
“……흑호.”
“예, 형님.”
“사천방으로 돌아가 모두를 깨워라.”
“……예?”
자세를 낮추며 어둠속을 노려보는 손익패의 몸에서, 흡사 맹수의 그것과 같은 쇳소리가 흘러나온다.
“적이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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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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