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댕 댕 댕.
사천방의 비상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이, 사천방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장원 내에 울려 퍼졌다.
잠을 자던 사천방도들과 천신련의 훈련 기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처소에서 뛰쳐나왔고, 잠시 후 그들은 정문을 열어젖히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손익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바밧.
“무슨 일이냐, 익패!”
살암의 처소를 지키고 있던 청사가 황급히 달려오며 묻자, 그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향해 손익패가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지금 헤아리기 힘든 정체불명의 적들이 사천방을 포위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정체불명의 적들이 사천방에?”
웅성웅성.
손익패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술렁이는 장내.
사천방도들의 얼굴에는 불신과 분노가, 그리고 천신련 훈련 기수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뚜렷하다.
그때, 장내에 있던 이들 중 가장 무위가 높은 축에 속하는 살신귀가 하나밖에 없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둘러본다.
“……과연. 여기저기서 잡다한 살기(殺氣)가 느껴지는군. 언뜻 봐도 천 명 이상이다.”
“상당한 놈들도 몇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살신귀의 말을 사천일괴가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담벼락 위에 올라 있는 적월과 만패, 나혼수도 저 먼 숲속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전 방향이 포위됐고…… 남은 거리는 약 백여 장이다. 다행히 진형을 갖추며 천천히 올라오는 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반 각이면 도착할듯싶다.
“이……! 감히 어떤 놈들이 사천방을……!”
마우평이 분노를 표출하며 주먹을 움켜쥐는 사이, 청사가 손익패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을 꺼낸다.
“련주와 떠난 다른 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면 여기 있는 이들끼리 저들을 막아야 한다는 소리구나.”
손익패의 말에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청사.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만큼 이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있는 이도 없을 것이다.
살암이 당했다.
그리고 그의 복수를 위해, 그가 깨어나기 무섭게 사무현이 강포로 떠났다.
아마 지금쯤이면 목적지에 당도했을 시각일 터.
그 시기에 맞추어 사천방을 포위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저들이 이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짐작 가는 이들이 있으십니까?”
청사의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손익패가 묻자,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동천왕이 이끄는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동천왕이라면……!”
“뭐야, 아는 자냐?”
동천왕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살신귀가 눈을 부릅뜨자 사천일괴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본다.
천신련의 훈련 기수 생활을 함께하며, 지금까지 어지간해서는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사천일괴의 물음에, 이번에는 사수쌍귀 중 암패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오기 얼마 전부터 중원의 동쪽 음지를 손에 넣어 가고 있던 정체불명의 고수요.”
“음지 놈이라고? 아니, 음지 놈들이 왜 갑자기 사천방을 공격한다는 말이냐?”
“글쎄……. 그거야 우리도…….”
“암천막주.”
사수쌍귀와 사천일괴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살신귀가, 잠시 후 확신 어린 음성으로 청사와 손익패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저들은 천신련 소속의 암천막주를 노리는 듯한데……. 내 생각이 맞소이까?”
“……그렇소.”
살신귀의 물음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청사.
그러자 곧이어 천신련 훈련 기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술렁이기 시작한다.
웅성웅성.
‘좋지 않다.’
시시각각 변해 가는 저들의 분위기를 지켜보며 마우평이 입술을 깨문다.
이럴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무현도, 그나마 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막휘나 살암도 없다.
단순히 무위만 놓고 본다면 적월 선배 일행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지금껏 사천방을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서 받쳐 온 이들이다.
‘이대로라면 분명…….’
사천방도들 중에 물러설 이들은 없겠지만 천신련의 훈련 기수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저들은 어쨌거나 보호받을 목적으로 천신련의 가입을 희망한 이들이 아닌가?
천신련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사천방이 위기에 빠진다면, 아직 정식으로 천신련 소속이라 할 수 없는 저들이 과연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 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마우평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그때.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어딘지 모르게 결연함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손익패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아직 정식 천신련 소속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저희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지 못하겠다는 분들은 이만 사천방을 나가 주십시오.”
“뭐…… 뭐라 하셨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당황하여 묻는 이들의 얼굴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손익패가 한 번 더 확고히 말을 잇는다.
“비난하지도, 등에 칼을 꽂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들 또한 싸우지 않으려는 자들을 구태여 공격할 이유는 없을 터.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천신련을 떠나고 싶은 분들은 떠나 주십시오.”
“…….”
“지금 저희가 필요한 것은, 사지에서도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입니다.”
“……!”
손익패의 말에 자리에 모인 이들의 얼굴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변한다.
어느새 혼란과 당혹스러움을 지워 내고 담담하고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회피하는 이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거나 주변 분위기를 살피는 이들.
그렇게 묘한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사천일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망칠 놈들은 눈치 볼 것 없이 빨리빨리 튀어라!”
“……!”
“틀린 말은 아니군.”
사천일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살신귀가 서늘한 눈으로 모두를 빙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이렇게 고민하고 입 닥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모두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든다는 걸 명심해라.”
“미…… 미안하오.”
“저, 저도 이만…….”
살신귀의 말까지 끝나자, 결국 망설이던 이들 중 몇몇이 황급히 자리를 이탈해 사천방의 정문을 나서기 시작한다.
그들의 움직임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천신련의 훈련 기수들 중 상당수가 우르르 정문을 빠져나가 버렸고, 잠시 후 사백에 달하던 훈련 기수들의 숫자는 고작 백오십 남짓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뭐야, 넌 왜 안 튀었냐? 살신귀.”
“괜한 시비 걸 생각 마라. 자, 우리는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사천일괴의 말을 무시하고 선두에 선 손익패를 향해 묻는 살신귀.
무위 자체가 가장 높다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좌중을 휘어잡고 있는 이는 손익패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의 한마디로 필사의 각오를 다진 것이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자 조금은 당황한 손익패가 슬그머니 청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
“…….”
“어…… 글쎄……. 그거야…….”
“나와 만패, 나혼수 세 사람이 동문(東門)을 맡는다. 남은 사천방도들 중 뒷서열 스물이 우리 셋을 따라라.”
청사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던 그때, 지금껏 담벼락 위에 있던 적월의 음성이 모두의 귓가에 들려온다.
“천신련의 훈련 기수들도 앞쪽 기수와 뒤쪽 기수로 반을 나눠 주십시오. 아무래도 그편이 조금이나마 손을 맞추시기 쉬울 겁니다.”
“아…… 알겠네.”
살신귀가 고개를 끄덕이자 적월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앞쪽 기수가 서문을, 뒤쪽 기수가 남문을 막아 주십시오. 두 문은 입구까지 오는 길이 가파르니 높은 지형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보다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명심하겠네.”
“그리고 나머지는 손익패와 함께 이곳 정문을 맡아라. 입구가 넓고 길이 편해 가장 많은 수의 적들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니, 이쪽도 최대한 많은 전력을 동원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당장 헤쳐 움직이지.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말을 마친 적월이 자리를 뜨고 나자,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모두를 향해 나혼수가 헛기침을 흘리며 설명을 보충한다.
“연무학관에서는 삼 년 차부터 무리를 이끌어 싸우는 병법과 진법을 배운다. 아마 너희는 배워 본 적이 없겠지만…….”
“…….”
“뭐…… 아무튼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파밧!
말을 마친 나혼수가 적월의 뒤를 따라 움직이자, 정신을 차린 손익패도 모두를 향해 소리친다.
“모두 움직이시지요!”
그렇게, 사천방의 명운을 건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휙!
타닷.
“어떻게 됐어?”
비상종 소리를 듣고 자리를 이탈했던 청사가 돌아오자, 살암이 머물고 있는 의약당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적사가 다급한 음성으로 묻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녀 역시 청사와 함께 상황을 파악하러 가는 것이 옳았겠지만, 지금은 누군가 한 명 정도는 반드시 살암의 곁을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동천왕의 계략인 것 같다.”
적사를 마주한 청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음성을 흘리듯 말을 잇는다.
“곧 놈들과 전투가 시작될 거다.”
“이…… 개같은 자식들이!”
까드득.
드물게도 거칠게 감정을 표현하며 이를 가는 적사.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인 청사가 살암이 머무는 의약당 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막주께서는?”
“……아직까진 반응이 없으셔.”
청사 역시 저 안에서 살암이 운기행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깨어나기 무섭게 일어나 걷기도 버거운 몸 상태로 저러는 것을 만류하고 싶었지만, 행공 중에는 아주 작은 외적 충격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기에 당장은 그저 이곳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한데…….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
상황으로 보아 막주의 운기행공은 언제 끝날 것이라 쉽사리 장담할 수 없다.
저 방 안에서는 조금 전까지 사지를 헤매고 있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기파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사무현이 살암에게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 생각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엇 하나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놈들의 수는?”
“대충 천 명 이상이다.”
“천 명이라……. 그 정도는 천신련 훈련 기수들까지 합하면 어떻게든…….”
“아니, 그들도 반 이상이 도주했다.”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청사의 말에 적사의 눈빛이 흔들린다.
“도망쳤다고? 그것도 절반 이상이나?”
“어쨌거나 정식 천신련도 아닐뿐더러,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훈련까지 시켜 주었다고 해서 의리를 지키라는 법은 없으니까.”
냉정한 청사의 대답.
그의 대답에 분노를 모두 억누르지는 못했는지 움켜쥔 적사의 두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청사가 이윽고 짧은 심호흡과 함께 적사에게 말한다.
“정문으로 가라.”
“뭐?”
“그곳은 손익패와 사천방도들이 막기로 했다. 가장 넓은 문이라, 적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많은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이지.”
“…….”
“가서 손익패를 도와라. 알다시피 그놈이 폭주하면 련주나 막휘가 없는 지금 너밖에는 제어할 수가 없다.”
청사의 말에 적사가 어금니를 악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돼. 너 하나한테 막주님의 호위를 맡길 수는 없다.”
“어차피 정문이 뚫리면 우리 모두 죽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사천방이 싸우는 것도 결국 막주님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냐?”
“……!”
“가라. 막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셨더라도 분명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리셨을 터. 사천방 모두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때, 너와 나 두 전력이 이곳에서 함께 묶여 있을 수는 없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조금도 틀리지 않은 청사의 논리에 적사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생각에 잠긴다.
만일 둘 중 한 명만 이곳에 남아야 한다면, 암기술에 특화된 자신보다는 근접전과 체술에 특화된 청사가 살암을 호위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무위를 엄밀히 따져 보면 청사가 다소나마 그녀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적사가 떨림을 억제한 음성으로 청사를 향해 묻는다.
“……믿어도 되는 거겠지?”
“물론이다. 막주님이 계신 의약당은 내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킨다. 그러니…….”
말을 이어 가는 청사의 눈이 결연하게 번뜩인다.
“너는 사천방과 함께 정문을 지켜라.”
“……알았다.”
파밧!
청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적사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정문으로 몸을 날린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나자 천천히 감각을 개방한 청사가 두 손에 삼지조를 착용하며 두 눈을 부릅뜬다.
“어디…… 올 테면 와 보거라.”
그의 심장에 구멍이 나는 한이 있어도 그 누구도 이 문을 넘지 못할 테니.
굳게 의약당 문을 지키고 선 청사의 두 눈에 굳은 결의와 투기가 가득 차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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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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