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그 이름도 혁혁한 사천방…… 아니, 천신련의 고수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본승은 사불련의 중화라고 하외다.”
“사불련……!”
“파계승 중화……!”
아무리 음지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그들이라고 하나, 중화에 대한 소문은 워낙 유명했기에 사천방도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일어난다.
어찌 모르겠는가?
한때 소림의 천재로 불리다, 묘향단(妙香團)이라는 사도무리를 홀로 도륙 내버리면서 살육에 눈을 떴다는 파계승.
자신의 불심으로는 넘치는 살육의 본능을 절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소림을 벗어나 음지로 들어갔다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연무학관의 체술 교관이었던 혜명이 전해 준 이야기였다.
‘중화 사형은 본승에게 체술을 가르쳐 준 친형 같은 분이었소. 하지만 살겁에 눈을 뜨고 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지. 사실 그가 소림을 몰래 빠져나가던 날 밤, 그를 발견하고 막아서 보았지만…… 그는 나 같은 이가 막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소이다.’
‘예? 혜명 스님보다 강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오. 그는 살육에 눈을 뜨지만 않았더라면 언젠가 방장의 뒤를 이어 소림을 빛낼 고수가 될 것이라 여겨졌던 이요. 적어도 그가 미치기 이전까지는 말이오.’
“……망할, 하필이면 저걸 만나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마우평.
만약 이 자리에 사무현이나 살암이 있었다면 그리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막휘라도 함께 있었다면 조금은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천방의 가장 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고, 무력으로 그들 중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적월과 만패, 나혼수는 최소한의 전력으로 다른 문을 지키고 있다.
결국 여기에 모인 이들은 사천방의 최정예들이지만, 우습게도 저 중화라는 자를 홀로 막아 낼 이는 전무한 상황이다.
그렇게 등장만으로 모두의 기선을 제압해버린 중화가 모두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낸다.
“분위기로 보아 우리가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듯한데…… 너무 그렇게 날 세울 것 없소이다.”
“전투 전에 날을 세울 것 없다고? 웃기는 소리를 다 듣는군.”
중화의 등장과 함께 기세가 저쪽으로 넘어가자, 이를 막아서려는 듯 손익패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두 눈을 부릅뜬다.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사천방이다. 너희 중 누구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하하하, 무섭소이다. 우리는 가급적 평화롭게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그리 말을 하면 이쪽도 대화를 할 수가 없지 않소?”
“뭐? 평화로운 대화?”
“형님, 들어 볼 가치도 없습니다.”
중화의 말에 손익패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지자, 마우평이 그의 뒤에서 속삭이듯 말을 붙인다.
알고 있다.
지금 저것은 기만이다.
정말로 저들이 평화로운 대화를 하고자 했다면 이렇게 다짜고짜 포위망까지 갖추고 대규모로 쳐들어왔을 리 만무하니까.
만약 이 자리에 사무현이 있었다면 들을 가치도 없는 말로 일축하고 목을 베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형님이 아니다.’
그의 모자란 힘으로는 저들의 기만에도 일말의 희망을 기댈 수밖에 없다.
사무현이 돌아오기 전까지 이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손익패 자신의 역할이니까.
“……좋아,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지.”
“아미타불……. 지극히 현명한 대답이오.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소?”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중화가 손익패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우리는 암천막을 찾아왔소이다.”
“……뭐라고?”
“모르는 척할 것 없소. 현재 이곳에, 얼마 전 동천왕께 패하고 도망친 암천막의 잔당들이 있는 것을 알고 왔으니까. 가령…….”
거기까지 말을 이어가던 중화가, 손익패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적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덧붙인다.
“저기 있는…… 암천막주를 호위하는 계집이라든가.”
“……!”
처음부터 적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중화의 한 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하지만 정작 그와 시선을 마주한 적사의 눈에는 짙은 혐오와 역겨움의 기색이 서린다.
“더러운 땡중 같으니, 막주께 패하고 목숨을 구걸하던 놈이 수적 우위를 점했다고 큰소리를 치는구나.”
“하하, 암천막주의 고강한 무위는 본승도 제법 놀랐소이다. 음지에 발을 담근 이후, 여태껏 단 한 번도 패배를 겪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오.”
적사의 욕지거리에도 태연하게 웃음을 터뜨린 중화가 이내 살기 어린 눈을 번뜩인다.
“하나…… 그렇기에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 아니겠소? 언젠가 힘을 회복해서 배신이니 뭐니 하며 찾아온다면 피곤해지니 말이외다.”
“이……!”
“그리고 그 뜻은 비단 본승 하나만의 것이 아니오.”
그 말과 함께 중화가 고개를 돌리자, 그의 뒤에 서있던 가흑렬과 염명단주, 그리고 소암권 괴뇌가 앞으로 걸어 나온다.
하나하나가 강소를 대표하는 음지 집단의 수장들.
설마 그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적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강소에 있는 모든 음지 세력을 끌어모으기라도 한 거냐?”
“끌어모은 구심점이 본승은 아니지만, 그렇소이다.”
꽈악.
어느새 두 주먹을 움켜쥔 적사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강소 지역 전체 음지의 전력.
비록 살암이 암천막이라는 이름과 세력을 내걸고 그들을 정벌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저들이 한데 뭉쳐 대응할 수 없었기에 만들어 낼 수 있던 전과였다.
녹림의 산채 하나를 상대하는 것과 칠십이 채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저들 모두의 힘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코 이곳에 있는 사천방과 천신련 훈련 기수들만의 힘으로는 막아 낼 수 없다.
“그럼…… 이곳 말고 다른 곳에도…….”
“동쪽과 서쪽, 남쪽에서 적당한 인원을 배분하였소. 하나 역시 가장 넓은 길로 가장 주된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니겠소이까?”
“…….”
“보아하니 전력의 차는 압도적인 듯한데……. 순순히 암천막주와 함께 항복하시오. 하면 적어도 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이오. 다들 한참 무림에서 이름을 떨쳐야 할 이들인데, 다 죽어 가는 이들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소이까?”
“이놈……!”
대놓고 사천방의 분열을 조성하는 중화의 말에 적사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건 지극히 의도적인 행동이다.
과할 정도의 전력을 정문에 집중시켰고, 모두의 기선을 제압하고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게 만들었다.
그런 후에 슬그머니 동료를 넘기면 살 수 있다는 통로를 열어 주니 아무리 굳건한 동료애를 지닌 이들이라도 목숨의 위기 앞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여기서 적사가 모두에게 전투를 주장하면, 이 또한 몇몇 이들에게는 분명 반발을 초래할 터.
적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화를 노려보던 그때, 침착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익패가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하지.”
“음?”
“언제까지 되지도 않는 개소리로 우리를 흔들어보려 하는 거지? 사천방의 결속력이 그리도 우스워 보였나?”
“……구태여 죽음을 택하겠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너희 목적이 진정 암천막 하나였다면, 산을 내려가는 무사들을 죽인 이유는 뭐지?”
“……!”
손익패가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찌르자 중화의 눈이 부릅떠진다.
조금 전의 전장과 이곳의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했으니 여기까지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사천방도들의 눈빛도 하나같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애초에 저들의 말에 현혹되어 살암과 적사를 넘길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분열시키려 했던 저들의 수작에 더더욱 강한 전의가 샘솟은 것이다.
“사천방을 동네 파락호 집단으로 보고 있구나? 저 땡중이.”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소림을 배신하고 음지에 들어간 파계승이 의리가 뭔지 알 리가 있나.”
“나중에 신불 스님한테 제보 좀 해야겠다. 저 새끼 목탁으로 주둥이 좀 패 달라고.”
“……아미타불.”
자신을 향한 조롱 섞인 비난을 날리며 기세를 올리는 사천방도들을 바라보며, 중화가 조용히 앞세웠던 반장을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찢어 죽일 방자한 것들이 감히.”
조금 전까지 흉내라도 내고 있던 승려의 어투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는지, 거친 욕지거리와 함께 중화가 짙은 살기를 흩뿌린다.
그러던 그때.
“……염명단주.”
“무엇이오?”
“그대가 염명단과 함께, 뒤에 오는 쥐새끼들을 쳐죽이시오.”
“뭐요? 뒤?”
중화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염명단주.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뭐지? 설마 사천방 놈들이 다시 돌아오는 건…….”
“그건 아닐 거요. 기껏해야 남경에 있다는 천신련 소속의 문파들이겠지.”
“쯧……. 잡놈들이겠군. 한데 왜 하필 나한테 후방을 맡기는 거요?”
“그대와 가흑렬이 한자리에 있어서야 싸움이 협력적으로 되지 않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가흑렬이 아니라 내가…….”
“염명단주.”
갑자기 싸늘하게 목소리를 낮춘 중화가 섬뜩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궁금한 것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오?”
“……!”
중화의 눈에 어린 광기와 살기에 압도당한 염명단주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선다.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저질러선 안 되는 추태였지만, 이는 그야말로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뒤늦게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염명단주가 얼굴을 붉히며 무어라 입을 열려 하자, 어느새 살기를 푼 중화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잇는다.
“후방이 든든하지 않으면 앞의 전투에 집중할 수 없소. 가 대주(可隊主)가 이끄는 해암단(海暗團)의 전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숲에서의 전투는 염명단을 따갈 수 없지 않겠소이까?”
“……크흠.”
언제 그랬냐는 듯 염명단주의 체면을 살려 주며 상황을 마무리 짓는 중화.
사실 누가 봐도 반강제로 찍어누른 것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이에 강하게 항의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분을 일으켜 좋을 것도 없거니와, 중화의 무위는 엄밀히 말해 염명단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명분과 함께 적당히 그의 체면을 띄워 줄 때 물러나는 편이 옳다.
“염명단은 모두 후방으로 빠진다! 시건방지게 산을 오르는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 줘라!”
“존명!”
사사사삭.
염명단주의 명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염명단의 무사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던 이들 중 삼 할에 가까운 숫자가 뒤로 빠져나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수는 여전히 사천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린 염명단주가 자리를 뜨고 나자, 가흑렬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중화에게 묻는다.
“사불련주, 진정 해암단이 염명단보다 못 하다 생각하시오?”
“아미타불……. 그럴 리 있겠소? 머릿수만 많고 쓸모없는 전력을 후방에 배치하고, 제대로 된 정예로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이까?”
쓰윽.
말을 마친 중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그의 양옆으로 해암단의 가흑렬과 화묘막의 괴뇌가 따라나선다.
그리고 이에 맞춰 정면에 손익패가, 그의 양옆으로 마우평과 적사가 자리한다.
“……흥분하지 말고, 집중해.”
손익패의 옆에 선 적사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모두가 무너지니까.”
“……예.”
“자…… 하면 시작해 보지.”
콰드드득.
말을 마친 중화가 밟고 있던 땅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진다.
“모두 몰아붙여라!”
콰앙!
말을 마친 중화가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리자, 가흑렬과 괴뇌도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따른다.
그와 함께, 널찍이 정문을 포위하고 있던 수백에 이르는 음지 무사들도 일제히 몸을 날려 온다.
“참아.”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몸을 날릴 듯 움찔거리는 사천방도들.
하지만 조금 전 적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이들은 용케 진형을 유지하며 저들의 접근을 기다렸다.
그렇게 백여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조금 전 적사가 깔아 둔 은사의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두 눈을 번뜩인 적사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좋아, 지금!”
파앗!
말을 마친 적사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반투명한 은사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예리하기 그지없던 은사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거리 안에 들어온 무사들의 뒤를 덮친다.
촤좌좍!
촤아아악!
“크아악! 아악!”
“뭐, 뭐냐!”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사람의 맨살을 어렵지 않게 갈라 버리는 적사의 은사.
난데없이 등 뒤에서 기습을 당한 이들이 한순간 돌진을 멈추고 몸을 돌리자, 적사가 양 소매에 숨겨 두었던 검은 구체를 허공으로 집어 던진다.
혼란을 비집고 그들 사이로 날아든 검은 구체는, 잠시 후 우렁찬 폭발과 함께 수십에 달하는 밀집된 무사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콰과과광! 콰과과과과광!
“크아아악!”
“아아아아악!”
“가아알(喝)!”
후방의 진형이 무너지는 것에 분노한 중화가 짙은 살기를 줄줄 흘리며 적사를 향해 달려든다.
그러자.
쩌저저저정!
“크으읍…… 어딜……!”
어느새 적사의 앞으로 뛰어든 손익패가 양손을 교차해 중화의 일장을 가로막는다.
“이…… 잡놈이!”
쾅!
분노한 중화의 일각이 손익패의 복부를 가격하자, 그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져 뒤쪽으로 나가떨어진다.
그러자 그 틈을 비집고 빛살처럼 쏘아진 일곱 개의 비도가 중화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든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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