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콰곽.
“……아미타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염불을 외는 중화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의 두 팔을 붙들고 있는 강인한 두 손.
자신의 수강에 꿰뚫린 사내가, 몸을 가늘게 떨며 힘겹게 고개를 들고 있다.
“끅……! 끄으윽……!”
부들부들.
중화와 손익패의 사이를 가로 막고 선 한 명의 사내.
고통스러운 침음성을 흘리는 그의 등 뒤로는 수강을 머금은 중화의 손이 튀어나와 있었다.
“제…… 제기랄…….”
떨리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흑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배를 내려다본다.
오늘 손익패와 함께 야간 경계를 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꿰뚫린 그의 복부에서는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양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 세긴 세네…….’
호신기까지 끌어 올려 전력을 다해 상대의 팔을 잡고 버텼다.
하지만 상대의 수강은 그의 호신기와 강철같이 단련되었던 육체를 종이처럼 쉽게 찢어 꿰뚫어 버렸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완전히 각성해 버린 손익패마저 저 꼴로 만들어 버린 괴물을, 이제 겨우 사천방의 상위 서열에 발을 담근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흑호!”
“저, 저 빌어먹을 새끼가!”
“쿨럭……! 다들 진형 지켜!”
입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해 내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흑호.
이에 진형을 무너뜨리고 그를 향해 뛰어가려던 사천방도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며 입술을 질끈 깨문다.
사실 그들도 알고 있다.
흑호처럼 진형을 이탈하고 뛰쳐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이탈한 진형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누구도 돌발 행동을 벌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하아…… 이, 익패 형님…… 저, 정신 차리십시오.”
입가에서 검붉은 피를 떨구며 천천히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흑호.
그리고 그가 죽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멍하니 서서 숨을 고르고 있는 손익패를 향해, 거친 숨을 헐떡이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형님은……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자신은 이미 늦었다.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살점이나 근육, 뼈가 부러져 나간 것이라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 거대한 수강에 복부를 통째로 꿰뚫려 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저 중화라는 승려의 팔을 붙잡고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또한 상대가 애써 뿌리치지 않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제…… 제발…….”
금방이라도 의식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흑호가 간절한 눈으로 손익패를 바라본다.
그런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야성에 지배된 손익패의 눈에 한순간 보일 듯 말 듯 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시야가 흐릿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막이라도 쓰인 듯 현실감각이 없다.
흡사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대신 사용하고 있기라도 하듯이.
‘……또 의식을 잃었었나.’
천수신공을 쓸 때면 종종 겪는 일이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이성은 사라지고 의식은 흐려지며,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는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의 순간이 바로 그러한 상황일 터.
‘한데…… 저 얼굴은……?’
익숙한 얼굴이 그를 돌아보며 피를 흘리고 있다.
꿈을 꾸듯 몽롱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저 얼굴을 몰라볼 수는 없었다.
‘흑호?’
자신이 맡고 있는 조의 조원으로, 툭 하면 농담 섞인 말을 건네는 넉살 좋은 녀석.
한데 그가 왜 피를 흘리며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인가?
흐려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손익패의 눈에, 잠시 후 상체가 꿰뚫린 흑호의 모습이 온전히 담긴다.
그리고 그 순간, 초점 없이 흐릿하던 손익패의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쿵.
난데없이 그의 심장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야성이 몸을 지배할 때면 언제나 느릿하게 흘러가던 그의 시간이 더더욱 느릿하게 흘러가며, 오래전 흑호와 자신이 나누었던 대화가 생생히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
‘형님, 그거 아십니까? 전 조장 형님들 중에 형님이 제일 대단한 것 같습니다.’
‘내가 뭐가 대단하냐? 조장들 중에선 내가 제일 약한데.’
‘에이, 다른 분들이야 시작점부터 우리와 다른 사람이었지만 형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위치에서 순수한 노력만으로 그 위치에 서셨는데.’
‘아직 멀었다. 사실상 그냥 형식적으로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입장으로 봐야…….’
‘아…… 그거참. 형님은 왜 그렇게 패기가 없으십니까? 앞으로 방주 형님을 도와서 사천방을 지키셔야 할 사람은 바로 형님 아니십니까?’
‘뭐? 내가?’
‘그렇잖습니까? 살암 형님은 엄밀히 말해 언젠가 암천막을 세우러 떠날 것이고, 막휘 형님도 녹림을 이어받으러 가실 텐데. 그럼 결국 우리와 함께 사천방을 지켜야 하는 건 사실상 형님 몫입니다.’
‘아…….’
‘그러니 패기 없이 한발 물러설 생각 말고, 더 악착같이 그 천수신공인지 뭔지부터 대성하십시오. 혹여나 제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그럼요, 당연히 제가…… 어어? 말투가 왜 그러십니까? 저 같은 건 별 도움도 안 될 거다, 뭐 지금 그런 생각 하고 있는 겁니까?’
‘…….’
‘맞구만! 에이, 사람이 좀 세졌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형님처럼 무식하게 세지 않더라도, 사람은 약하면 약한 대로 다 각자의 역할과 위치라는 게 있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네 역할이 날 돕는 거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나중에 혹시 압니까? 형님이 제 덕에 목숨이라도 구하실지.’
‘…….’
‘아니면 뭐, 제 덕분에 더 강해지실지도 모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 지금 저 무시하시는 거 같은데? 형님, 형니이임?’
그렇게 언제 적인지 모를 흑호와의 대화가 떠오르는 와중에도,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어떻게든 반응하려고 애쓰는 손익패.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이 야성에 완전히 잠식되어 버린 그의 몸은 도저히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마치 또 다른 누군가가 조종하는 자신을 지켜보듯이,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흑호를 지켜보고 있을 뿐.
“쿨럭……! 커헉! 어…… 어서…… 도망…….”
“어째서인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동료를 살리려는 흑호의 모습에, 중화가 혐오를 숨기지 못하고 그를 노려본다.
“불자(佛子)도 아닌 자가…… 아니, 하다못해 정파도 아닌 사파 따위가 어디서 역겨운 가식으로 희생(犧牲)과 이타(利他)를 행하려 한다는 말인가!”
“하…… 뭐?”
“삿되고 가증스럽도다!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무(武)를 익힌 자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칼을 든 주제에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려? 아미타불! 불도(不道)를 더럽히는 도다!”
희생과 이타는 불자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파의 길에 들어선 이가, 도리어 자신조차 포기한 불법을 행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혜명 스님이나 신불 스님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흑호가 비릿한 조소를 머금는다.
“개소리…… 하네…… 누가…… 희생을…… 행한다고?”
“아니라는 말이냐?”
“흐흐…… 뭐, 뭘 모르네…… 이런 건…… 희생이 아니라…….”
꽈악.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며 중화의 팔을 움켜쥔 흑호가, 피로 범벅이 된 입을 벌리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너 같은 건…… 평생 모를…… 의리라는 거다…… 이 파계승 놈아!”
으적!
“……!”
그 말과 함께 상체를 숙여 있는 힘껏 중화의 팔을 깨무는 흑호.
내력도, 체력도, 생명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격.
하지만, 사실상 목숨을 포기한 최후의 발악과도 다름없다.
까드득.
명색에 소림의 천재로 불리던 중화가 고작 힘이 다 빠져 죽어가는 이의 무는 공격에 상처를 입을 리 만무하다.
호신기까지 둘러 더더욱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그의 심기를 뒤집어 놓은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이었다.
“아미타불…….”
쓰윽.
흑호를 꿰뚫은 반대편 장력에 내력을 싣는 중화.
다음 일격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달은 흑호가 힘겨운 미소를 머금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형님! 꼭 살아남으십……!”
콰아아앙!
촤아아아악!
“안 돼!”
“흑호오오오!”
안면을 붕괴시켜 버리는 중화의 일권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을 날며 복부를 꿰뚫고 있던 중화의 손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찔한 통증과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 천천히 눈을 감는 흑호.
그 순간, 피눈물을 집어삼키며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손익패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져 버렸다.
부웅.
스륵.
둔탁한 충격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부드러운 품속에 자신이 안겨 있음을 깨달은 흑호가 흐리멍덩한 눈에 힘을 준다.
그러자 붉게 충혈된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손익패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 형님……!’
이 순간 흑호는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사무현이 손익패를 훈련시키며 떠들었던 이야기.
손익패가 익히고 있는 천수신공의 진정한 극의는 야성이 이성을 잠식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극대화된 야성을 넘어서, 다시 한번 이성이 야성을 지배하게 되는 경지.
정상적인 상태로는 가질 수 없는 극한의 감각을 스스로 관철할 수 있는 경지.
손익패가 진정으로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그때부터 사무현을 제외한 사천방의 누구도 손익패의 몸을 제대로 건드리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형님…… 결국…….”
이루셨군요.
그 뒷말을 채 잊지 못하고, 흑호의 눈이 감기며 힘겹게 뻗으려던 팔이 아래로 축 늘어진다.
연무학관부터 사무현과 함께했던 사천방도이자, 손익패가 이끄는 조원이었으며 특유의 넉살로 언제나 주위를 웃게 만들던 동료이자 무인.
사천방의 흑호가, 그가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손익패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아미타불……. 사파 따위가 개죽음을 당하는 와중에도 웃고 있으니, 이 얼마나 더럽고 삿되다는 말인가.”
“……더럽다고?”
꽈악.
중화의 말을 들으며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깨문 손익패가 천천히 몸을 돌려 흑호의 시신을 한쪽으로 옮긴다.
그러던 그때.
“아미타불!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쐐애액!
우렁찬 일성과 함께 손익패의 등으로 날아든 은백색의 기류.
기습적으로 행한 중화의 장력이 손익패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 담벼락에 부딪혀 폭발한다.
콰과과광!
“아니?”
분명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치 등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가볍게 일보(一步)를 더 뻗어 중화의 장력을 흘려 버린 손익패.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흑호의 시신을 멀쩡한 담벼락 인근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쓰윽.
“……음!”
제자리에 선 채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손익패의 모습에, 한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친 중화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어째서일까?
분명 저 침착한 행동은 짐승처럼 돌변하기 이전과 같아 보이는데, 짐승 같았던 조금 전보다 도리어 더 지독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다.
‘아미타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명 눈빛만으로 그 정도 되는 고수를 얼어붙게 만드는 위압감과 살기는 놀랄 만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체력과 내력 모두 한계점에 도달했을 상대가 느닷없이 강해져 정해진 승부를 바꿔 버릴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삿된 것…… 너도 저놈 곁으로 함께 보내 주마!”
쾅!
손익패의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중화가 자리를 박차고 먼저 거리를 좁힌다.
혹여나 그에게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할 여지를 줄 수는 없다는 듯이.
순식간에 손익패의 코앞까지 접근한 중화가 내력이 실린 일권을 그의 흉부로 내뻗는다.
“아미타불!”
파앙!
우렁찬 파공성과 함께 중화의 일권이 허공을 가른다.
옆으로 딱 반보.
그저 반보의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어 그의 주먹을 흘린 손익패가, 한 손으로 중화의 손목을 움켜잡는다.
콰곽!
“……이놈이!”
“이 손이냐?”
까드득.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중화를 노려보며 손익패가 말을 잇는다.
“흑호를 죽인 손이.”
“이……! 오만방자한!”
한순간이나마 자신이 압도당하고 있다는 분노 때문이었을까?
붙잡힌 팔을 빼내기 위해, 중화가 손익패와 거리를 좁히며 근접 체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콰곽!
“끄아아악!”
중화의 몸이 채 들러붙기도 전에, 손익패가 중화의 뻗어진 오른팔을 거칠게 꺾어 버린다.
관절기에 당한 중화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트는 그 순간.
뚜두둑.
서걱.
뼈가 부러지고 살이 잘려 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손익패에게 잡혀 있던 중화의 한쪽 팔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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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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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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