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저벅.
“이…… 이놈! 오지 마라!”
부웅!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란 중화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그의 일수를 타고 뻗어 나간 은백색의 기류가 그대로 다가오던 손익패를 향해 적중했다.
쩌저저정!
“……큭!”
촤지이익!
“……쿨럭.”
중화의 장력에 맞고 일 장 정도 뒤로 밀려난 손익패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두 눈이 보이지 않고 한쪽 팔을 잃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화의 내력은 손익패보다 우위에 있었으니까.
본능적으로 날린 장력에 생각지도 못한 손익패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자, 희망을 느낀 중화가 섬광같이 몸을 날리며 하나뿐인 손에 긴 수강을 끌어 올린다.
“죽어라, 이놈!”
부웅!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정확하게 손익패의 목으로 뻗어 가는 중화의 일수.
하지만 그의 눈 먼 공격은 안타깝게도 손익패에게 닿지 못했다.
정확히 반 촌.
조금의 낭비도 없이 슬쩍 몸을 비틀어 중화의 일수를 피해 낸 손익패가 그대로 수강을 머금어 중화의 남은 팔을 잘라 낸다.
서걱!
촤아아아악!
털썩.
“끄아아아악! 아아악!”
“……시끄럽네.”
눈과 팔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는 중화를 바라보던 손익패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허공을 날아 그의 뒤에 안착한다.
그리고…….
덥석.
쾅!
“……!”
한 손으로 중화의 목덜미를 움켜쥔 그가 중화의 몸을 바닥에 고정하더니, 무심한 얼굴로 그의 목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콰곽!
“……컥! 커헉!”
중화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발버둥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손익패가 돌연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응시한다.
싸늘한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어느새 마우평과의 싸움조차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선 괴뇌가 있었다.
“거기서 뭐 하고 서 있지?”
“……뭐?”
“죽게…… 내버려 둘 건가?”
선택을 강요하는 손익패의 물음에 조금은 당황한 듯한 괴뇌가 눈썹을 추켜올린다.
한편 그제야 괴뇌의 존재를 떠올렸는지 중화가 바닥에 깔린 채 두 눈에서 피를 흘리며 소리친다.
“소, 소암권! 나, 나를 살려 주게!”
“……사불련주!”
“나,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네! 그러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쯧.”
짧게 혀를 차며 사불련주의 말을 끊어 낸 괴뇌가, 곧 혐오스런 눈으로 그를 한번 훑어보더니 손익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죽여라.”
“……뭐라고?”
“이, 이보게! 소암권! 어찌 그러는가!”
“입 닥치게, 사불련주. 목숨을 건 전장에서, 사실상 전투 불능이 된 쓰레기를 구하러 목숨을 걸라는 뜻인가?”
“……!”
절망적인,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괴뇌의 반응에 입을 벙긋거리는 중화.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이 속한 곳은 다름 아닌 음지.
심지어 애초에 같은 집단도 아니었던 그들 사이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목숨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중화가 다급히 저들을 설득한다.
“자, 잠깐! 나를 살려 주면 사불련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넘겨주겠네!”
“…….”
“저, 절반으로 부족한가? 하, 하면 칠 할 정도는…….”
“필요 없네, 사불련주.”
이제는 슬슬 혐오와 짜증을 고스란히 드러낸 어투로 괴뇌가 말을 잇는다.
“자네가 그 꼴이 된 이상 사불련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흡수할 수 있네.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자네를 살려 칠 할만 얻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리고 착각하나 본데…… 자네는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네. 동천왕께서 쓰레기나 다름없어진 자네를 굳이 살려 둘 것이라 생각하나?
“……!”
괴뇌의 물음에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가늘게 몸을 떠는 중화.
그런 그를 향해 괴뇌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답한다.
“추하게 굴지 말게. 차라리 저들의 손에 죽는 편이 그대가 덜 비참해지는 길일지 모르니.”
“……하!”
그 말이 결정적이었는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중화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래,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힘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이 한 줌 모래처럼 변해 버리는 곳이 바로 음지이거늘.
‘다 허상이었는가.’
오래전, 처음으로 협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두렵고 괴로웠다.
악인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손과 발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악행에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이 너도나도 도움을 청해 왔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들을 도왔고, 악인을 징벌한다는 명목 하에 살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도움을 청한 모두가 그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의 드높은 무위와 협의를 칭송했다.
그렇게 점차 중화는 생각했다.
어찌하여 그를 제외한 소림은 이 힘을 올바른 데 쓰려하지 않는가?
민생을 가까이하고 악인을 징벌하며 불법을 펴야 할 그들이 어찌하여 산속에서 입으로만 협의만 운운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이 그를 지배하고 있을 때 소림의 방장, 신불이 그를 불렀다.
참회동에 들어가라고.
힘에 취해있다가는 결코 올바른 불법을 펼 수 없다고.
이에 중화는 생각했다.
소림은 틀렸다고.
그리고 이튿날 새벽, 그는 결국 그를 막아서는 몇몇 후배들을 쓰러뜨리고 소림을 등졌다.
그리고 소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민생을 구하겠노라 다짐하며 떠났다.
이후 강소에 정착한 중화는 소림에서와 같이 민생을 도와 악인을 징벌하며 명성을 쌓아 나갔다.
그가 죽인 수많은 생명 중에는 억울하고 무고한 이도 섞여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는 중화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평소 스스로를 갈고 닦지 않은 자들은 저리되기 마련이라고.
점점 더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를 만들었고, 그 무리를 이끌고 통솔하기 위해 민생들로부터 보호세라는 명분의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보호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늘어났고, 자신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테니 악인을 징벌해 달라는 의뢰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뢰를 가려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아닌, 그를 따르고 있는 수하들은 의뢰의 옳고 그름보다 더 큰 보상을 원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자 그의 행보에서 더 이상 옳고 그름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그의 손에 묻힌 피는 명성이라는 이름이 되어 그를 떠받들고 있었다.
여기서라도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가 이룩한 것은 너무도 높았고 많았으며 그에 반해 돌아갈 곳은 없었으니까.
그래, 애초에 무(武)란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힘.
그는 자신만의 불법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무를 익힌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중화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힘도 없는 주제에 협을 논하는 자들이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가진 힘을 무시하는 이들을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 자신이 갖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
그 모든 것들을 짓밟아 주지 않고는 도저히 속이 뒤틀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중화는 깨달았다.
애초에 그는 단 한 순간도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아미…… 아미타불.”
평소에는 습관적으로 읊었던 염불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느껴지는 무게에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불련주라는 이름도, 세상에서 얻었던 명성도,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 주던 힘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
처음 소림에서 받았던 중화라는 법명뿐.
이제야 다시 평범한 승려로 돌아온 중화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대체 그는 한평생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가?
떨리는 그의 음성과 눈물이 다른 의미라 생각했는지, 중화의 목을 쥐고 있는 손익패의 손아귀에 점점 더 강한 힘이 전해져 온다.
곧 자신의 목뼈가 부러지고 생을 마감할 것임을 직감한 중화가 최대한 떨림을 자제한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자네…… 손익패라 했던가?”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마라.”
“……그리하지. 나에 대한 자네의 분노는 실로 타당하네.”
“…….”
“또한…… 자네가 나와의 싸움으로 이룩한 무위 또한 축하하네. 하나, 그 분노와 힘이 스스로를 집어삼키게 두지는 말게나. 하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미안한데.”
콰과곽!
“……!”
“유언을 들어줄 마음은 없어서.”
뚜둑.
자신의 목뼈가 끊어지는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며 중화는 눈을 감았다.
숭산과 소림의 절경이 생생히 눈앞에 떠올랐으나 잠시뿐.
소림의 천재로 시작해, 힘과 욕망에 잡아먹힌 이의 허망한 최후였다.
풀썩.
쓰윽.
“……후우.”
중화의 목숨을 끊어 놓은 손익패의 시선이 천천히 괴뇌 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괴뇌가 짧게 혀를 한번 차고는 전황을 둘러본다.
‘중화는 죽었고…… 가흑렬도 전투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목젖이 통째로 뜯겨 나간 가흑렬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혈을 하며 호흡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저래서는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숨이 붙어 있을 것이라고도 확신하기 힘들 것이다.
‘아직…… 승산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화를 쓰러뜨린 것이 놀랍다고는 하지만 저 녀석도 필시 한계에 다다랐다.
사천방도들의 저항이 거세긴 하지만 저들 또한 기세가 처음과 같지는 않다.
악에 받쳐 분노를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씩 그 힘이 빠져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럴 수밖에.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수적 열세를 가진 전투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괴뇌는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설령 저들 모두를 쓰러뜨리더라도, 자신들의 모든 전력을 소실한다면 결과적으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동천왕에게도 버려지고 후에 있을지 모르는 천신련의 반격도 감당하지 못해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만 되고 말 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괴뇌가 결국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꺼낸다.
“그만. 여기까지 하지.”
“……뭐라고?”
“이대로 전투를 계속한다면 양쪽 다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사불련주가 죽었으니, 너희도 우리도 싸움을 멈추고 물러설 명분은 충분히 생긴 것 같은데?”
괴뇌의 논리적인 말에, 사천방도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저들 모두를 죽이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 생각했다.
동료들 중 누군가는 죽어 나갈지 모르지만, 살암을 노리고 온 저들에게 결코 굴복할 수는 없다고 의지를 다지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한데 이렇게 그냥 물러나 버린다고?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 모든 상황의 결정권을 쥔 손익패에게 시선이 모이는 순간이다.
“개소리.”
손익패의 입에서 혐오 섞인 욕지거리가 흘러나온다.
“올 때도 마음대로 왔으니 갈 때도 마음대로 가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아무래도 과하게 흥분한 모양인데.”
대놓고 살기를 피우는 손익패의 모습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괴뇌가 위협적인 어조로 말을 잇는다.
“우리가 너희들을 전멸시킬 자신이 없어서 물러난다고 생각하나? 양쪽 다 얻는 것이 없으니, 이쯤에서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말이었는데…….”
“누구 마음대로?”
“……뭐?”
“흑호가 죽었다. 우리 동료를 죽여 놓고, 네놈들 멋대로 빠지겠다?”
말을 이어 가는 손익패의 이가 갈리며 맹수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몸속에서부터 울려 퍼진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우리 동료를 죽인 이상, 네놈들은 단 하나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단 한 명이라도!”
“미쳤군. 고작 동료 하나가 죽었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을 사지로 몰고 가겠다고?”
“으드득……! 고작 동료라고?”
괴뇌의 말에 어금니를 소리 나게 깨문 손익패가 두 눈을 번득이며 말을 잇는다.
“식구다.”
“……!”
손익패의 대답에 잠시나마 당혹스러워하던 사천방도들이 이내 표정을 굳히며 전의를 가다듬는다.
살고자 했던 마음도 크지만, 눈앞에서 흑호가 죽어난 것에 대한 분노도 만만치 않다.
연무학관에서부터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가족이었으니까.
손익패의 분노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사천방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괴뇌가 곧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살기를 풍긴다.
“……구태여 죽겠다면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빨리 네놈들과 암천막주를 죽이고 여기를 뜨는 수밖에 없겠구나.”
“어디 할 테면 해 봐라.”
손익패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서려는 그때.
“누가 누굴 죽인다고?”
“……!”
난데없이 들려온 서늘한,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음성.
이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가자, 잠시 후 그곳을 바라본 모두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리고…….
“뭐…… 뭐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말까지 더듬으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는 괴뇌.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을 넘어선 경악과 혼란, 그리고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아마도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할…… 아니, 어쩌면 조금 전 장원에 뛰어든 사불련의 무사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어야 할 존재가 대체 왜 담벼락 위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부상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이 너무도 멀쩡하게!
“아…… 암천막주……!”
살암의 등장에, 괴뇌를 포함한 모든 음지 무사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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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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