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
029화
‘……일단 눈에 보이는 놈들이 여덟.’
저 정도의 숫자라면 어떻게든 무시하고 내뺄 수 있다.
등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들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에게 치명상을 줄 만한 것들은 아니니까.
‘대체 뭐가 있길래 활로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사무현이 아는 천마는, 결코 허언 따위를 내뱉을 만한 녀석이 아니다.
……다소 많은 생략과 과장을 섞을 때가 있기는 해도.
“후우……. 으라아!”
타다닷!
“노, 놈이 움직인다!”
“흩어져라!”
사무현과 정면에서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방으로 흩어진 이들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멀찍이 따라 붙는다.
그들 중 몇몇이 비도(飛刀)를 날리며 사무현을 견제했지만,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내달리는 사무현의 발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제, 젠장! 앞을 막아라!”
파밧!
사무현이 그들을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하자, 그를 앞지른 두 명의 무사가 정면을 가로 막는다.
두 눈에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득 머금고서.
“미련한 새끼들.”
쩌저정!
서걱!
한 놈은 자신이 휘두른 검과 함께, 또 한 놈은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무현의 천마도에 상반신이 휩쓸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렇게 목숨까지 걸어 가며 사무현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하자, 그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날카로운 검격이 쇄도한다.
퍼벅!
“……윽!”
등 언저리에서 꽤나 묵직한 통증이 찾아 들었으나, 사무현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정면으로 내달렸다.
저놈을 상대하기 위해 다시 등을 돌리면, 조금 전과 같은 대치가 이어질 뿐이니까.
그렇게 등 뒤에서 날아드는 대다수의 공격을 무시하고 얼마나 내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뒤를 따라붙던 이들의 공격이 느슨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즈음, 이윽고 거친 숲길의 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됐다!’
왜 저놈들이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저 앞에는 천마가 말했던 활로가……!
활로가…… 어?
타다닷.
탓.
휘이이이잉.
“……어어?”
긴 숲길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사무현의 앞에 나타난 믿을 수 없는 상황.
이게 정녕 그가 바라던 결말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사무현의 눈빛에, 어느새 옆에 선 천마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곳이 활로다.”
“……세상에.”
……제발 여기가 아니라고 대답하길 바랐건만.
예상과 조금도 틀리지 않은 천마의 대답에 사무현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결코 활로 따위가 아니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뭐라?”
“네 눈에는…… 이게 활로냐?”
이게 어딜 봐서 활로냐? 대체 어딜 봐서?
……저승 가는 입구겠지,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렇다.
사무현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거의 깎아 세워진 것 같은 까마득하기 그지없는 절벽 단애.
떨어지면 시체조차 건지지 못할 것만 같은 이 절벽 아래는, 언뜻 보아도 희뿌연 안개로 인해 뭐가 있는지 제대로 살피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다.
“이건 그냥 사지(死地)잖아, 이 미친 새끼야!”
처절한 사무현의 외침이, 흑사곡 인근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지가 아니라, 흑사곡이라는 절벽이다. 한때는 교에 큰 죄를 지은 이들의 목숨을 끊기 위한 장소로도 사용된 곳으로…….”
“그만, 거기까지.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건지나 말해. 설마 뭐 배수진? 그런 거냐?”
“하하, 설마. 본좌가 고작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활로라고 이야기했겠느냐?”
“그럼 뭔데? 설마 저 절벽으로 떨어져라. 저놈들은 절대 따라오지 못할 테니. 뭐 그딴 소리나 하려고?”
“음……. 저놈들은 네가 그런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저것들이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그런 비상식적인 생각은 안 해, 이 돌은 새끼야.
그 인간 같지 않은 초대 천마인지 뭔지 하는 괴물 새끼도 ‘아, 그건 좀 아닌데.’ 할 거다.
“아…….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야. 못 해, 안 해.”
“아니, 저 정도가 뭐가 높다고 그리 겁을 집어먹느냐?”
“네가 가서 한번 자세히 봐봐! 네가 직접 내려간다, 하고 생각하고서 진지하게 살펴보라고!”
“아니, 뭐 이 정도가 뭐 대수라고…….”
저벅저벅.
휘이이잉.
“……어?”
“…….”
“하하…… 이것 참…….”
절벽의 단애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멋쩍은 듯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녀석.
그러고는 곧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며 사무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돌아가자. 안 되겠구나.”
허허, 맙소사.
내가 저런 걸 믿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내가?
“……대체 왜 여기까지 오자고 한 거냐? 대체 왜?”
“본좌의 기억이 조금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저렇게 가파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하, 세월이 지나니 십만대산도 많이 변했구나.”
아……. 하늘이시여.
어지간하면 더 이상 바라는 건 포기하려 했는데, 이거 하나만 빌어 보겠습니다.
이 생이 끝나기 전에 저 새끼 딱 한 대만 때리게 해 주십시오.
……제발.
“왜 하늘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느냐? 안 갈 것이냐?”
“……아니다, 가자.”
그래……. 일단 살아야지.
벗어나야지, 여기서.
그래야 널 성불시키건 말건 하지.
그래야…….
사사삭.
사무현이 포기할 요량으로 등을 돌리자, 멀찍이 서서 그를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며 포위망을 좁혀 왔다.
……이 새끼들이, 궁지까지 몰아넣었다 이거지?
열 받는데 저것들이나 싹 다……!
“……어? 잠깐만 멈춰 봐라.”
“뭔데? 또 뭔데?”
“……아무래도 그냥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아니, 이제 와서 또 무슨 소리?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냐? 설마?
“길을 열어라!”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거.
저 멀찍이서 들려온 우렁찬 외침과 함께, 사무현을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갈라지며 다섯 명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의 단애에 선 사무현에게 노골적인 비웃음을 머금은 채, 느긋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들.
이 절망적인 상황에 마침표를 찍어 주듯이, 사무현의 머리 위쪽으로 또 한 번의 신호탄이 쏘아져 올라간다.
쐐애액. 쾅 쾅.
“……쐐기를 박는구나, 아주.”
피도 눈물도 없는 하늘 같으니.
“더 망설이면 늦는다. 저놈들이 붙기 전에, 당장 뛰어내려라.”
조금 전보다 한층 다급해진 어조의 천마.
빌어먹을 새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고통 없이 깔끔하게 가라는 말이냐?
“……야.”
“뭐냐?”
“……살 수는 있는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 줘라, 제발.
“어……. 아마도……?”
……쓸데없이 정직한 새끼.
곧 죽어도 빈말은 안 하는구나.
“한 번에 뛰어내리는 것은…… 솔직히 위험하다. 아무리 금강불괴라도, 저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몸 안이 망가질 테니.”
“그럼…… 달리 방법 있냐?”
“중간에 최소한 한 번은 멈춰 서야 한다.”
“…….”
“손과 발로 절벽을 긁으면서 버티건, 천마도로 절벽을 찍어서 버티건…… 그러다 뛰어내릴 만한 높이가 되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려라.”
“……진심이냐?”
“그래, 그 수밖에 없다.”
“계속 혼자 무얼 그리 중얼거리십니까? 칠 대 천마시여.”
이제 다 잡은 사냥감이라고 생각을 한 것인지, 아주 여유만만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조롱하듯 사무현에게 다가오는 흑의 무사.
그렇게 일정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느긋하게 포권을 해 보인다.
“화상장로님 휘하에 있는, 고명이라 합니다.”
“…….”
“총타가 많이 답답하셨는지…… 여기까지 제법 긴 발걸음을 하셨군요. 지금이라도 저항을 포기하시고 저희와 함께 돌아가시지요. 하면 적어도, 초대 천마께 목숨을 구걸할 기회 정도는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크으……. 그거 정말 솔깃한 제안이네.
내 옆에 있는 천마가 그냥 귀신이면, 그 초대 천마인지 뭔지 하는 새끼는 그야말로 악귀(惡鬼)다.
퍽이나 살려 주겠다, 퍽이나.
스슥.
고명의 말을 들으며 사무현이 조심스레 뒤쪽으로 발을 움직이자, 그 모습을 눈치챈 고명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설마, 절벽으로 뛰어내리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
“제 식견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나 이것 하나만큼은 장담드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금강불괴건 뭐건 반드시 죽습니다. 설령 그쪽이 칠 대 천마 본인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저 말을 들으니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안심이 된다.
일단 저 밑으로 뛰어내리면, 저 새끼들은 누구도 따라 내려올 수 없다는 뜻이니까.
“저놈 말에 귀 기울일 것 없다. 본좌였으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알았으니까, 닥쳐.”
“……그러지.”
“……알아들으셨다니 다행이군요. 하면, 그 천마도부터 내려놓으시지요.”
사무현의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 여겼는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고명이 자신의 검 끝을 사무현에게 겨눈다.
이에 어금니를 꽉 깨문 사무현이, 짧게 심호흡을 하고 절벽 쪽으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스슥.
휘이이잉.
……아씨, 더럽게 쫄리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슬쩍 곁눈질로 뒤를 보니, 절벽 끝까지는 꼭 두 걸음 남았다.
“……경고하지. 거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네 목은 날아간다.”
사무현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어느새 조롱 섞인 경어조차 집어치우고 살기를 흩뿌리는 고명.
그래,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이 암만 빨라도 내가 뛰어내리는 것보다 빠를까.
“……야.”
“음? 본좌를 부른 것이냐?”
사무현의 음성에,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천마가 그에게 고개를 돌린다.
“……꼭 내가 살기를 빌어라.”
스슥.
“내가 진짜 만약에 뒈지면!”
스슥.
“……날 만나게 된 걸 뒈져서도 후회하게 만들어 준다! 내 모든 것을 걸고라도!”
“어우…… 야…….”
순간 등골에 오싹 끼친 소름에 천마가 그를 말리려던 그 순간,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사무현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타닷.
“저, 저런……!”
“으아아아아!”
인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사무현의 몸이 고속으로 수직 낙하를 시작한다.
얼마나 떨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기에, 사무현은 최대한 침착하게 발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솨아아아!
“으악 씨팔!”
퍼벅!
어느새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진 안개.
그리고, 언뜻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듯한 물소리.
이에 당황한 사무현이, 다급히 오른손에 들려 있던 천마도를 힘껏 절벽을 향해 박아 넣었다.
‘제발 박혀라……!’
퍽!
퍼버버벅.
……얼래?
이게 무슨 일이야.
천마도를 절벽에 박아 넣는 것은 성공했는데, 아무래도 그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았던 모양이다.
절벽 면에 약 일 장 정도 길이의 도흔(刀痕)을 남기며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기어이 천마도의 도신이 절벽에서 빠지며 사무현의 몸이 등부터 다시 추락을 시작한다.
“으아아악! 안……!”
첨벙!
“……돼! 쿠르러러럭!”
예상보다 훨씬 짧은 추락 시간 덕분에, 최후의 비명마저 마음대로 내뱉지 못하고 물속에 빠져 버린 사무현.
거친 계곡의 물살에 그대로 휩쓸려 버렸는지 사무현의 몸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흑사곡의 계곡은 이내 잠잠해져 버렸다.
***
“이, 이런……! 미친 자식을 보았나!”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 어린 얼굴로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명.
누구라도 떨어지면 즉사(卽死)인 흑사곡에 뛰어내린 대담함도 대담함이지만, 그사이에 냉정하게 절벽에 도를 박아 넣는 집중력이라니……!
비록 완벽하게 의도한 대로 흘러간 것 같지는 않지만, 상대가 금강불괴의 육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멍하니 절벽 아래를 응시하던 고명의 입에서, 기어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하하! 이거 기가 막힐 노릇이군.”
그로서는 목숨을 걸고라도 잡아야 했던 사냥감을 놓친 셈이 되어 버렸지만, 솔직히 저 모습에 감탄사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쓴웃음을 머금고 가만히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명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수하들을 향해 명을 내린다.
“……회무.”
“예.”
“넌 우혈과 함께 흑사곡을 포위한 모두에게 전해라. 지금 바로 포위망을 풀고, 고원(高原) 일대에 다시 포위망을 형성하라고.”
“존명!”
“흑사곡 아래 계곡에 빠졌으니, 놈이 중원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고원을 지나야 한다. 화상장로께도 이 사실을…….”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음……? 헙! 화, 화상장로님!”
시기적절한 화상장로의 도착에,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히 바닥에 부복하는 고명.
그러나 그의 머리가 채 바닥에 닿기 전, 불가항력의 힘에 그해 그의 머리가 다시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덥석.
“흐억!”
“쓸데없는 예는 집어치우고 똑바로 말해라.”
“…….”
“놈이 어디로 향했다고?”
한 손으로 고명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 싸늘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물어오는 화상장로.
언뜻 냉담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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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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