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산서의 홍동(洪洞).
도박장과 기루를 중심으로 한 유흥지가 발달한 이곳은 과거 암천막의 영역이자, 현재는 음지삼왕 중 하나인 북천왕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아는 이는 드물지만, 이곳에 위치한 환영루는 그 북천왕이 머물고 있는 거처이기도 하다.
바로 그 환영루의 최정상에 처음으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현재 중원을 가장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자 북천왕이 내심 노리고 있던 인물.
어느새 세인들이 동천왕이라 부르기 시작한 존재, 화우명이 지금 북천왕과 마주하고 있었다.
“흐음…….”
두 개의 등불이 밝히고 있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방안.
잠을 자다 일어났는지 옷고름도 채 매지 않은 북천왕이 빈 술잔에 술을 따라 상대의 앞으로 밀어낸다.
쓰윽.
“받지.”
“고맙긴 한데, 내 영역 밖에서는 먹고 마시지 않는 주의라서.”
“다짜고짜 찾아온 주제에 쓸데없는 경계심이군. 이건 날 무시하는 모양새라고 생각지 않나?”
“쓸데없는 경계심이라……. 나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음지삼왕이 모여 회동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런 말을 들을 입장은 아니지 않나?”
동천왕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문하자,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북천이 천천히 술병을 자신의 잔으로 가져간다.
꼴꼴꼴.
꿀꺽꿀꺽.
보란 듯이 시원스럽게 한잔을 들이킨 북천왕이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탁.
“……정보가 제법이군.”
“음지가 다 그렇지.”
“하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묻지. 그렇게까지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구태여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연유가 무엇인가?”
어느새 가식적인 예의를 지워 낸 북천왕의 얼굴에는, 적을 대하는 싸늘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설마 천신련의 선전포고를 받고 도와달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것은 아닐 테고.”
“아니, 바로 그 목적이네. 괜히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서 좋군.”
“네놈……!”
꽈아악.
웃음을 터뜨리며 능청스레 대답하는 동천왕을 노려보며, 북천왕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을 움켜쥔다.
그러자 은으로 만들어진 술잔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그의 커다란 손아귀 안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죽고 싶으냐?”
“괜히 분위기 잡지 말지. 네 손에 쉽사리 당해 줄 몸도 아니지만, 내 얘기를 듣고 나면 죽일 마음도 사라질 테니.”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나?”
쓰윽.
북천왕이 한 손을 들어 올리자,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도가 허공을 날아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상대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무기가 쥐어졌음에도 동천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마땅찮다는 듯 미간을 구기고 있을 뿐.
“성급하군. 이래서야 웃으며 이야기 할 기분이 안 들지 않나?”
“곧 죽을 놈과 웃으며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
“흐음……. 곧 죽을 놈이라.”
북천왕의 말에 턱 끝을 긁적이던 동천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굳히며 자신의 검으로 손을 가져간다.
“경고하는데, 그 이상 선을 넘으면 나 역시 대화할 뜻이 없다.”
“하……! 설마 나와 맞서 보기라도 하겠다는 뜻이냐? 이 홍동에서?”
“못할 것도 없지. 네 수하들이 오기 전에 승부를 내 버리면 그뿐 아닌가?”
“……!”
“해 볼 텐가?”
그 물음과 함께 동천왕의 전신에서 퍼져 나온 기세가 순식간에 북천왕을 압박한다.
그러자 북천왕의 전신에서도 그에 맞서는 기세가 흘러나와 팽팽하게 힘의 균형을 맞춘다.
드드드드.
술병이 올려진 탁자가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파가 심상치 않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출수를 할 듯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던 그때.
“쯧.”
퍼벅!
자신의 도를 바닥에 꽂아 버린 북천왕이 먼저 기세를 거두며 짜증스럽게 술병을 입으로 가져간다.
벌컥벌컥 몇 번 나발을 불던 그가 잠시 후 소리 나게 술병을 내려놓으며 동천왕을 노려본다.
쿵!
“놈, 배짱 하나는 인정해줄 만하구나.”
“직접 손을 섞어 봤으면 힘도 인정했을 텐데.”
“도발하지 마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지만 찾아온 이유나 듣기 위해 참는 중이니까.”
이글거리는 눈을 빛내며 북천왕이 으르렁거리자, 곧 검에서 손을 떼어 낸 동천왕이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다.
“뭐……. 그러지. 아무튼 아쉬워서 찾아온 건 이쪽이니까.”
“말해라.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건지.”
“조금 전 말한 대로다. 천신련이라는 놈들이 나에게 선전포고를 해 왔는데, 혼자서는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흥, 역시 그거였나.”
동천왕의 말에 코웃음을 친 북천왕의 얼굴에 조소가 만연했다.
“결국 내게 힘을 구걸하러 왔다는 뜻인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고개가 빳빳하다 생각지 않나?”
“쯧……. 거드름을 피우는 건 그러려니 하겠지만 과한 허세는 부리지 말지. 천신련의 선전포고가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이 상황을 예상하고 주판을 두드리고 있었을 것 아니냐?”
“…….”
북천왕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다물자, 동천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잇는다.
“천신련에는 암천막이 포함되어 있지. 놈들이 나를 쓰러뜨리고 동쪽 음지를 먹는다면, 결국 음지를 다스리게 될 집단은 암천막이다. 이는 곧, 겨우겨우 다져 놓았던 너희들의 음지 기반을 뒤흔들 계기가 되어 버리겠지. 아직까지 음지에서는 암천막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놈……!”
정곡을 찌르는 동천왕의 지적에 지그시 그를 노려보던 북천왕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묻는다.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것이냐!”
“하하, 꼭 누구에게 들어야 아는 이야기인가? 이 정도는 귀와 머리가 달린 인간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추측인데.”
능글맞게 웃으며 북천왕을 조롱하던 동천왕이,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진지하게 그를 바라본다.
“단순하다. 천신련이라는 놈들과 싸우는데 내게 힘을 보탤 건지, 아니면 순순히 동쪽 음지를 천신련에…… 아니, 암천막에 넘겨 줄 건지.”
“공멸(共滅)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
“이런…… 아직 나를 모르는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난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다. 만약 네가 나를 돕지 않는다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동쪽 음지를 저들에게 넘기는 수밖에.”
“뭐, 뭐라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동쪽 음지를 저들이 얻을 수 있다면 저쪽도 굳이 내 목숨에 집착하진 않을 테지. 그렇다면 내게도 차라리 빠른 항복이 유익하지 않겠나?”
꽈아악.
동천왕의 반문에 북천왕이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쥔다.
지금껏 드러난 놈의 행보를 살펴본 결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스스로를 동천왕이라 칭하는 것과 달리, 놈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유지하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놈의 발언으로 자신의 의심이 허튼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이놈……! 역시 애초부터 동쪽 음지를 탐한 것이 아니었구나!”
“뭘 새삼. 그걸 이제야 알았나?”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답해라! 하면 대체 왜 네놈 스스로를 동천왕이라 칭한 것이냐!”
“그걸 말해 주기에는 좀 이르군. 만약 이번에 나를 도와 천신련을 쓸어 준다면 그때 이유를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이……! 음흉한 놈이……!”
콰드드득.
이 순간 협상의 결렬을 마음먹은 북천왕이 탁자를 부수며 몸을 일으킨다.
당장 저 동천왕의 세력을 암천막에 내어 주는 것도 위험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는 놈과 한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순간, 유들유들한 미소를 머금으며 동천왕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만약 이번에 나와 천신련과의 싸움을 도와준다면, 그대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내어 주도록 하지.”
“수작 부리지 마라, 이놈!”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면 나는 더 이상 동쪽 음지에 집착할 이유가 사라진다. 천신련만 사라지면 사파에도 얼마든지 돌아갈 자리가 있을 테니까.”
흥분하는 북천왕을 올려다보며 동천왕이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간다.
“전쟁이 이쪽의 승리로 끝난다면, 내가 정벌한 동쪽 음지를 그대에게 온전히 넘겨주겠다. 어떤가?”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동천왕의 제안에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던 북천왕의 눈이 부릅떠진다.
동쪽 음지.
동천이 죽고 암천막이 사라지며 주인이 등장하지 않았던 땅.
음지삼왕 중 누구도 먼저 손을 뻗지 못했던 그 땅을 북천 자신에게 넘겨주겠다니?
“이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로 그 따위 제안을…….”
“말하지 않았나? 천신련만 사라지면 난 갈 곳이 생긴다고.”
“…….”
“단순하게 생각해라. 나를 돕지 않는다면 넌 동쪽 음지를 두고 음지 삼왕의 나머지 둘과 세력다툼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나를 도와 천신련을 쓰러뜨린다면, 동천왕이었던 내게 정식으로 동쪽 음지를 넘겨받을 수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너와 내가 손을 잡은 그림이 되니, 팔 병신이 된 서천왕이나 남천왕이 힘을 합친들 우리를 당해 낼 수는 없겠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있는 북천왕의 모습에, 히죽 웃어 보인 동천왕이 느긋하게 몸을 일으켜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선다.
“날 믿어라. 너는 너의 경쟁자인 남천왕과 서천왕을 설득해 나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겠지만, 그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는 애초에 음지에 욕심이 없으니, 나와 손을 잡는다면 너와 내가 각각 음지와 사파를 모조리 복속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지금의 천신련을 넘어서는 거대 세력이 만들어지는 셈이지.”
“음사통합(陰邪通合)……!”
동천왕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북천왕의 눈빛이 흔들린다.
과거 온전했던 전성기의 암천막조차 쉽사리 입에 담지 못했던 말.
하지만, 암천막의 최종 목표로써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던 계획!
그 원대한 꿈과 계획이 자신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그가 이전 암천막주의 그림자를 완전히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놈을 믿어도 되는가?’
달콤한 유혹 속에서도 냉정함을 되찾으려 애쓰며 동천왕을 노려보는 북천왕.
하지만 지금까지 놈의 행보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적어도 거짓으로 보이는 부분은 없다.
녀석은 정말로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 관심이 없어 보였고, 실제로 음지에 그리 큰 애착을 가질 이유도 없으니까.
놈은 태생부터 사파의 무인 출신이었다.
‘설마 이놈…… 처음에 동쪽 음지를 노린 것부터가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설마.
이 정도면 지금까지 고착화되어 있던 중원 무림의 판도를 뒤흔드는 계획이다.
아무리 배짱이 두둑하고 영악하다고 한들, 일개 개인이 그릴 수 있는 수준의 그림이 아니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과 잔꾀가 겹쳐 만들어진 천재일우의 기회일 뿐이다.
하늘이 그에게, 북천왕이 된 자신에게 이제는 음지의 왕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가닥 생겨 나던 의구심을 짓눌러 버린 북천왕이, 곧 탐욕에 물든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좋다.”
“오호?”
“네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설령 생각지 못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극복하면 그뿐이다.
지난 삼 년간, 서로를 견제하느라 손도 대지 못하고 있던 고지에 깃발을 꽂을 수만 있다면!
북천왕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동천왕이 그에게 한쪽 손을 내밀어 보인다.
“탁월한 선택이다.”
“음.”
턱.
이들의 손이 맞잡아지는 것으로, 북천왕과 동천왕 사이의 비공식적 동맹이 만들어졌다.
이는 음지삼왕이라 불리던 이들 사이에 존재하던 비공식적 동맹에 수 년 만에 균열이 갔음을 의미하는 것.
물론 지금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이곳에 있는 북천왕과 동천왕 단 두 사람뿐이었다.
***
쩌저정!
사천방의 드넓은 연공실에서 우렁찬 폭음이 울려 퍼진다.
연공실의 중심부에서 맞붙고 있는 두 사람의 신형.
소림의 전형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막휘와, 그런 막휘를 상대로 근접전을 벌이고 있는 손익패의 모습을 사무현과 천마가 지켜보고 서 있었다.
촤아아악!
“음……!”
손끝을 빳빳하게 세운 손익패의 일수가 막휘의 한쪽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의 공세를 가까스로 흘려보내는 데 성공한 막휘의 일권이 손익패의 복부로 날아든다.
하지만 허공에서 자신의 몸을 활처럼 꺾으며 손익패는 막휘의 주먹을 흘려 버렸다.
부웅.
쩌엉!
막휘의 주먹을 흘려보냄과 동시에 일각을 내뻗은 손익패의 공격을 막휘가 한쪽 어깨로 받아 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제자리에 선 막휘의 일각이 허공에 뜬 손익패의 복부를 후려찼다.
쩌어어엉!
“큽……!”
촤지이익.
어떤 각도에서건,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최강의 일각을 내뻗을 수 있는 소림의 무상각.
여기에 공격을 허용한 손익패가 뒤쪽으로 밀려나며 한 손으로 복부를 움켜쥔다.
주르륵.
“……큭.”
한 손으로 입가에 흘러나온 검은 핏물을 닦아 내는 손익패.
하지만 손익패의 공격에 어깨를 허용한 막휘도 충격이 없지는 않은지 미간을 찌푸리며 한쪽 어깨를 돌려 본다.
“크흠.”
뚜둑, 뚜둑.
쓰윽.
어깨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막휘가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세를 취하는 손익패.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던 사무현이, 무언가 못마땅한 듯 삐딱하게 서 있는 천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보냐?”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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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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