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다들 진정들 하지.”
금방이라도 피바람이 불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북천왕이 덤덤히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우리끼리 싸우자고 부른 것이 아니니까.”
“안됐지만 북천, 나를 바보로 생각하지 마라.”
음지삼왕 중 가장 이문에 밝은 남천왕이 냉담한 얼굴로 북천왕을 노려본다.
“동천왕을 도와 천신련과 싸운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문이 없다. 동쪽 땅을 우리가 가지지도 못할뿐더러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지. 네가 그 정도 손익을 따지지 못했을 리는 없을 터.”
“으흠…… 과연. 그 말인즉, 우리 몰래 동천왕이라는 놈과 모종의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뜻인가?”
서천왕이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북천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위압적인 기세를 방출한다.
스스스.
“잠깐. 그러는 네놈들이야 말로 수상하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이러는 것을 보니, 이 기회에 나를 치고 북쪽을 먹어 보겠다는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니냐?”
“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이냐!”
쾅!
분노한 얼굴로 탁자를 후려친 북천왕이 모두를 향해 소리친다.
“암천막이 천신련에 붙어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동천왕이라는 자는 여차하면 동쪽 땅을 저들에게 넘기고 항복하려는 계산까지 세우고 있었지! 그런 와중에 동맹 요청을 거절하고, 암천막이 동쪽 음지에 무혈 입성하는 것을 내버려 두기라도 해야 했다는 말인가!”
“핑계는 좋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저들을 도와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옳은 말이군. 그리고 하다못해, 그런 문제라면 우리에게 상의라도 했어야지.”
남천왕과 서천왕이 조금은 누그러진 어조로 반박하자, 북천왕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세를 가라앉힌다.
“후우……. 천신련은 이미 선전포고를 했고, 동천왕은 항복과 전쟁 사이에서 최종 선택을 위해 내게 찾아온 상태였네. 거기서 우리끼리 모여 합의점을 도출한 뒤에 답을 주면 늦는다는 것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래서, 아무런 이득도 없이 동천왕과 동맹을 추진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닐세.”
남천왕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북천왕이 자신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한다.
“자네들이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던 것뿐이지. 우리가 힘을 합쳐 천신련과의 전쟁을 도와주면, 후에 동쪽 음지를 순차적으로 우리에게 넘겨주기로 약조했네.”
“동쪽 음지를…… 우리에게 순차적으로 넘겨준다?”
북천왕의 대답에 남천왕의 눈이 크게 떠진다.
“사실인가?”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네. 그는 천신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사파로 돌아가 천신련의 세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계획이라 밝혔지.”
“…….”
“애초에 그는 사파 출신이었으니 말일세.”
“흐음…….”
북천왕의 대답을 들은 남천왕이 검에서 손을 떼어 내고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언가의 이윤을 계산하기 시작할 때 나오는 그 특유의 버릇이다.
그리고 이윽고, 계산을 마친 그가 손동작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이문만을 놓고 본다면…… 솔직히 말해 흠잡을 것이 없군.”
“아니, 나는 그래서 이 상황이 찝찝한데.”
남천왕의 말에 한쪽 손을 들어 올린 서천왕이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말을 잇는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음지의 경험상…… 모두가 만족하는, 평등하게 대가가 주어지는 거래는 없었으니 말이야.”
“……확실히.”
서천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천왕이 북천왕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천천히 술 한 잔을 더 기울인 북천왕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주억인다.
“과연…… 일전에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술에 찌든 폐인이 다 되었다 싶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조금은 과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군.”
“…….”
“서천의 말 대로다. 이 거래를 성사시켜 주는 조건으로, 동천왕은 내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우선권?”
남천왕이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자 북천왕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설명을 덧붙인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놈은 동쪽 땅에 대한 지배권을 우리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기로 했다. 자신도 천신련의 세력을 온전히 흡수하려면 기반이 필요하니까.”
“해서, 분할된 영역을 가장 먼저 너에게 넘기겠다?”
“어차피 우리는 순번을 정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현재 동천왕의 핵심 영역과 가장 가까운 곳이 북쪽이지. 이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아니, 인정할 수 없다.”
북천왕의 물음에 남천왕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네 말대로 동쪽과 가장 가까운 영역이 북쪽이다. 그러니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 또한 북쪽이지. 네가 동쪽을 먼저 넘겨받는다면 우리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쯧쯧……. 그리도 나를 못 믿나? 먼저 받은 동쪽 영역의 일부로 너희를 공격할까 봐?”
“못 믿어서 서운하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할 거라면 집어치워 줬으면 좋겠는데.”
어느새 흥정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두 다리를 꼬고 앉은 서천이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잇는다.
“네가 얻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얻는 것도 있어야지. 자, 우리에게 무엇을 더 내어줄 수 있지? 돈? 사업장?”
“쯧…… 뭐, 좋다. 하면 내가 가장 먼저 동쪽 땅에 발을 들이는 대신, 후에 너희들이 원하는 사업장을 하나씩 더 내어 주도록 하지. 어떤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천왕의 제안에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남천왕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번 천신련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전력의 일부를 보존하겠다. 서천과 내가 투입할 전력은 오 할. 부족한 부분은 북쪽에서 채워라.”
“오 할은 너무 적다. 상대는 천신련이니,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서라도 칠 할은 약조해 줘야 한다.”
“하면 육 할. 그 이상은 협상 결렬이다.”
“흐음……. 육 할이라.”
남천왕이 냉정하게 선을 긋자, 북천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턱 끝을 매만진다.
서천왕과 남천왕이 보유한 전력의 육 할이라면 사실 그가 생각했던 최소한의 조건이다.
앞서 말했던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서가 아닌, 저들이 동쪽 지역에 지배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최소 조건.
‘어차피 압도적인 승리는 기정사실이니.’
동천왕까지 합치면 이쪽은 화경급 고수가 무려 넷이다.
그에 반해 천신련에 속한 화경급 고수는 공식적으로 천신련주 하나뿐.
승리가 확실시 된 이 상황에서 북천왕이 얻고자 하는 것은 서천왕과 남천왕 측의 전력 손실이다.
북천왕의 이런 계산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서천왕이 심드렁한 음성으로 끼어든다.
“더 욕심부릴 생각 마라. 사실상 육 할도 과분한 지원이니. 우리 셋에 동천왕이라는 녀석까지 합하면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한 전력이다.”
“이는 서천의 말이 맞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 남천왕이, 북천왕을 바라보며 최후의 통첩을 전한다.
“어찌하겠나?”
“……둘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할 수 없지.”
남천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북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둘은 전력의 육 할을 그리고 나는 팔 할의 전력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도록 하지. 어차피 동쪽의 지배권을 가장 먼저 넘겨받으려면 주둔시킬 병력이 있어야 할 테니.”
“좋다, 나는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남천왕에 이어 서천왕까지 협상을 받아들이며 살벌했던 이들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된다.
천신련과의 전쟁을 위해 다시 합쳐진 음지 세력.
하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각자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타다다닷.
무림맹 내에 위치한 연무학관.
그곳의 연무장을 가로질러 한 명의 사내가 내달리고 있었다.
꼬질꼬질한 누더기 옷차림에 허리춤에 매어진 술 한 병.
영락없이 ‘나 거지요’라고 말하는 듯 보이는 사내의 정체는 바로 연무학관의 보법 교관이자 개방의 분타주인 방의걸이었다.
헐레벌떡 연무장을 가로질러 작은 별채의 입구에 도착한 그가, 숨을 헐떡이며 황급히 대문을 두드린다.
쿵 쿵 쿵.
“파마불제 님! 안에 계십……!”
콰과광!
우당탕탕탕.
쨍그랑.
“……계시는구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채 안쪽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처소 안에 단아란과 신불이 있음을 확신한 방의걸이 힘차게 대문을 열어 젖혔다.
일반적이라면 충분히 무례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방의걸은 신불에게 ‘용무가 있다면 아무 때나 찾아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방의걸이 대문을 열어 젖히자, 역시나 신불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형체가 처참하게 담벼락에 처박혀 있었다.
탁탁.
“뭐야, 한창 몸 풀고 있는데 누가 들어오래?”
“아……!”
신불을 날려 버린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단아란이 가볍게 손바닥을 털며 그를 돌아보자, 행여나 신불과 같은 꼴이 될까 방의걸이 재빠르게 허리를 숙여 보인다.
“개방의 방의걸이 천무신녀를 뵈옵니다.”
“뭘 그렇게까지 낯간지럽게 부르냐? 전처럼 그냥 고문님이라고 하면 되지.”
“하하, 연무학관이 휴관한 지도 제법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자랑스러운 중원 무림의 희망이신 천무신녀님을 그저 고문님이라고만 부르면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다분히 사회성 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슬그머니 아부하는 방의걸.
이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는지 한쪽 입꼬리를 씰룩이던 단아란이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크흠!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 온 건데? 허락도 없이.”
“예, 신불 스님께서 일전에 부탁하신 정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웬 정보? 뭔데?”
“어…… 예, 그게…….”
단아란의 물음에 말꼬리를 흐리며 슬그머니 처박힌 신불 쪽을 바라보는 방의걸.
그의 입장이 난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단아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신불을 응시한다.
“신불 스님, 얘한테 무슨 정보를 부탁했어요?”
“끄…… 끄으응…… 아미타불…….”
단아란의 물음에 처박혀 있던 담벼락에서 몸을 일으킨 신불이, 벌건 발자국이 찍혀 있는 한쪽 뺨을 매만지며 허탈한 듯 중얼거린다.
“대체 본승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마구니 같은 시주에게…….”
“뭐요? 마구니?”
“흠흠, 신불 스님. 일전에 살펴봐 달라고 하셨던 사천방의 일로 전해 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신불의 중얼거림에 단아란이 쌍심지를 켜자, 방의걸이 재빠르게 본론을 꺼내 화제를 전환시켰다.
저 둘이 다시 티격 거리기 시작하면 언제쯤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
“뭐? 사천방?”
다행히 사천방이라는 이름 덕분인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주먹을 움켜쥐었던 단아란이 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신불 또한 승복을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두 눈을 크게 뜬다.
“아미타불……. 그래, 어서 말해 보시오. 무슨 일이 생겼소이까?”
“예, 일전에 사불련주를 비롯한 남경의 음지 문파들이 사천방을 습격하고, 이 일로 사천방에서 동천왕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렇소.”
단아란과 신불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슬그머니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방의걸이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고 동천왕이 북천왕을 찾아가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이후에 북천왕이 곧장 남천왕과 서천왕을 소집했지요.”
“남천과 서천을 말이오?”
“그 벌레 같은 놈들은 왜?”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두 음성이 들려왔지만, 다행히 설명할 내용이 다르진 않았다.
“바로 그 부분을 확인하느라 지금껏 상황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 막 개방의 본단에 도착한 정보에 의하면, 남천왕과 서천왕, 그리고 북천왕까지 대규모로 병력을 끌어모아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걔들이 동쪽으로?”
“아미타불! 갑자기 그 무슨 말이오”
“그리고 여기서 부터가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예상했던 대로 다소 격한 신불과 단아란의 반응을 살피며 방의걸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동천왕이 음지(陰地)와 천신련의 전쟁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는 정보입니다.”
“……!”
방의걸의 말이 끝나자 신불과 단아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리고 그와 함께 흐르는 짧은 침묵.
이윽고 단아란의 입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미쳤네.”
“…….”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내라고 무림맹에서 경고를 보냈는데, 고작 몇 년 만에 이런 일을 벌인다고?”
“……아미타불.”
불신의 기색이 역력한 단아란의 반응과는 달리, 생각보다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은 듯 염불을 읊조리는 신불.
그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한쪽 응달에 고이 모셔 둔 술병 둘을 챙겨 허리춤에 매단다.
그리고…….
저벅저벅.
“……신불 스님, 어디가요?”
난데없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신불을 바라보며 단아란이 묻자, 흘깃 고개를 돌린 신불이 퉁명스레 답한다.
“사천방에 갈 것이오.”
“……예?”
“한 몇 달 돌아오기 힘들 것 같으니, 그리 알고 있으시구려.”
말을 마친 신불이 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자리를 뜨려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단아란이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린다.
“아니, 이런 미친 스님이!”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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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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