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놈들이 강포에 진을 쳤다고?”
“예, 남경을 빠져나온 놈들이, 강포의 평야 일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 하하!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산지나 절벽 인근도 아닌 평야에 자리를 잡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동천왕 화우명.
그의 몸이 들썩이자 양팔 사이에 안겨 있던 두 명의 시비가 가늘게 몸을 떤다.
잠시 후 화우명의 웃음이 잦아들자, 앞에 부복한 수하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는다.
“이곳에서 반나절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당장은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듯 보이지만, 어둠을 틈타 기습을 감행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쯧쯧……. 이리도 멍청해서야. 놈들이 선공을 취하려 했다면 우리가 대비할 틈도 없이 곧바로 공격을 했어야 옳지, 얼마든지 대비하라는 듯 코앞에서 방어 진형을 갖출 거라 생각하나?”
“그……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헛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해라. 곧장 이리로 들이닥치지 않고 보란 듯이 강포에 진형을 구축한다는 것은, 선공을 포기하고 우리를 끌어들이겠다는 유인 전술이다.”
“아, 알겠습니다.”
다소 모욕적인 동천왕의 언사에도 그에게 보고를 올리는 수하의 얼굴에는 조금의 불만도 깃들어 있지 않다.
그저 동천왕이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는 안도와, 약간의 민망함에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었을 뿐.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던 동천왕이 느긋하게 침소에 앉은 자세를 고치며 생각에 잠긴다.
‘불나방처럼 달려들 생각도 없고, 본거지에 꼭꼭 숨어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전쟁을 치르지는 않겠다는 뜻인데…….’
언뜻 보면 현명해 보이지만 사실 이는 굉장한 욕심이다.
불필요한 사상자는 물론이고 본거지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
그저 순수하게 힘과 힘의 대결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하지만 저런 선택은 저들의 전력이 분명한 우위에 있을 때나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즉, 지금 천신련의 입장에서는 결코 써서는 안 되는 전략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드러나지 않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거나.’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동천왕이 이윽고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수하에게 고개를 돌린다.
“들어라, 천라오귀(天懶汚鬼).”
“예!”
“지금 당장 수하들을 시켜, 천신련 소속에 속한 모든 문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한데, 천신련 소속의 문파는 워낙 중원 각지에 퍼져 있어서 모두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면 우선 강소 인근에 있는 세력들을 중심으로 살피도록.”
“존명.”
명을 받은 천라오귀가 그의 처소를 나서자, 양팔에 끼고 있던 여인들의 몸을 습관처럼 주무르며 동천왕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는다.
‘멍청한 놈. 역시나 애송이답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이 훤히 보이는군.’
사실 천신련주의 판단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
전 중원에 퍼져 있는 천신련의 모든 전력이 모일 수만 있다면, 음지사왕이 끌어모은 전력 전체와 비교해도 밀리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음지사왕이라는 네 명의 화경급 고수를 천신련주 혼자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의문이 남지만, 일전에 보았던 천신련주의 무위라면 그와 비슷한 고수 둘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수를 읽고 계산할 머리는 있는 것 같지만…… 사파가 어떤 곳인 줄 모르는 무지(無知)가 네 놈을 사지로 몰아넣는구나.’
천신련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파의 연합 집단이다.
천신련에 소속한 무인들 전체가 모인다고 해도 음지사왕이 이끄는 전력과 맞선다면 승산이 희박한데, 각자도생에 익숙한 사파의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 전쟁에 참가할 리 만무하다.
차라리 천신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모른 채 하는 길을 택하려 할 터.
그렇다면 결국 천신련을 도우러 올 무인들은, 이번 전쟁을 피해갈 수 없는 남경 인근의 문파들 정도뿐이다.
“……변수는 없겠군.”
그렇게 만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기분 좋게 침소에 몸을 누이는 동천왕.
그와 함께, 그에게 안겨 있던 시녀들이 스스로 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코앞에 들이닥친 전쟁 속에서도 동천왕의 눈에는 순수한 욕망만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연무학관 오십일 기, 우령문(雨囹門)의 안명(岸鳴)이 천신련주를 뵙습니다! 형님의 서신을 받고, 문주님을 설득해 오십여 명의 문도들을 이끌고 달려왔습니다!”
풍성하고 거친 수염을 가진 거구의 사내가 등 뒤에 커다란 부월을 짊어진 채 사무현 앞에 부복해 보인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과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그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고수인지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강포에 방어진을 치며 만든 임시 천막 안에서 그를 맞이한 사무현이, 빙긋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한 손을 내민다.
“오랜만이다, 살이 좀 찐 거 같은데?”
“사, 살이 아니라 근육이 찐 겁니다, 형님!”
“쯔쯧……. 먹는 양 좀 줄이라니까. 하루에 다섯 끼니씩 꼬박꼬박 먹으니 살이 찌지.”
“혀, 형님. 이거 진짜 다 근육입니다, 벗어서 보여 드려야 믿으시겠습니까?”
“……근육인 거로 하자.”
“아니, 형님 진짜…….”
몇 년 만의 만남임에도 조금의 어색함 없이 대화를 나누는 이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선을 돌려버리는 사무현의 모습에 너털웃음을 흘린 안명이,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바로 하며 말을 잇는다.
“우령문도 천신련의 소속입니다. 수가 많지는 않으나 작은 손이라도 보태고자 하오니, 부디 함께 싸우게 해 주십시오.”
“고맙다. 밖에 나가면 임시 천막으로 안내해 줄 거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보도록 하자.”
“예!”
저벅저벅.
사무현에게 포권을 해 보이며 예를 갖춘 안명이 천막을 빠져나간다.
그러자 잠시 후, 또다시 천막의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날카로운 듯한 느낌을 주는 인상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선다.
쿵.
“연무학관 오십일 기의 승악(承齷)이 흑사회(黑蛇會)를 이끌고 달려왔습니다! 천신련주를 뵈옵니다!”
“오랜만이다, 파중(巴中)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꽤나 멀었을 텐데.”
“형님이 부르시는데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흑사회주로서 모든 수하들을 이끌고 왔으니, 부디 형님께 한 손을 보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 고맙……. 가만. 네가 회주라고?”
“예, 전부 형님의 은혜입니다!”
“아니……. 너 머리 나쁘지 않았냐? 글자도 몇 자 몰랐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차피 흑사회는, 싸움 잘하는 놈이 회주입니다.”
“…….”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할 것이니, 천신련의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 넌 전쟁 끝나면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예, 형님!”
“나가 봐라. 애들이 안내해 줄 거야.”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또 한 명이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온다.
아침부터 계속되는 이들의 방문을 지켜보며, 작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막사에 들어와 있던 흑룡문주를 포함한 남경의 문주들이 멍하니 눈을 끔뻑인다.
“대체 몇 명이나 찾아온 건지…… 세고 계신 분 계십니까?”
“지금 인사하는 분까지 하면 꼭 스물입니다.”
흑룡문주의 물음에 사문회주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답한다.
“저분들이 데리고 온 전력을 도합하면, 지금까지 최소한 천 명 이상입니다.”
“처, 천명이라니…… 하면 남경의 무사들과 인근 천신련 무사들까지 합하면…….”
“대충 이천오백…… 아직 막사 밖에 대기하는 분들도 더 있는 듯하니, 못해도 삼천 이상은 모였다고 봐야겠지요.”
사문회주의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흑룡문주.
지금 사무현을 찾아온 이들은 하나하나 각지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름 있는 사도 문파들이다.
그런 이들이 대부분의 전력을 이끌고 지원을 왔을 정도면 적어도 이미 동천왕이 이끄는 전력은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고 봐야 옳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흑룡문주가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구호단주가 사문회주를 향해 묻는다.
“음지사왕이 이끌고 오는 전력은 대략 얼마나 될 것이라 판단하시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전력은 두고 올 테니…… 그래도 대략 사천 명 이상은 될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으음…… 사천이라…….”
사문회주의 말에 구호단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몇몇 남경 문주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스친다.
일전에 사무현이 했던 호언장담대로, 그는 분명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천신련이라는 이름이 있다고는 하나, 정말로 이렇게까지 모여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늘.’
사실 저들은 천신련의 이름 앞에 모인 것이 아니다.
오직 사무현, 그 한 사람을 믿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다.
이는 명분을 중시하는 정파에서도, 실리를 중시하는 사파에서도 존재하기 힘든 일.
‘이번 음지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어쩌면 정말로…….’
사천방주 사무현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사도일통을 이뤄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천신련의 이름으로 지금껏 음지가 다스리던 영역들만 흡수할 수 있다면, 그들이 가진 전력은 과거의 암천막을 도리어 상회할 테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지금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가정에 불과하지만.
“하면 이제…… 저들과의 전쟁에서 승산이 오 할 정도는 된다고 보아도 되겠소이까?”
상념을 마친 구호단주가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얼굴로 묻자, 사문회주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요, 아직은…… 높게 봐도 사 할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숫자도 비슷하게 맞추었고, 전력으로 봐도…….”
“단순히 무사와 무사들 간의 대결이라면 오 할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이쪽에서는 음지사왕을 막을 패가 부족합니다.”
“……!”
사문회주가 냉정하게 상황을 짚자 모두의 얼굴이 다시 심각하게 변한다.
암천막주가 이번에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지사왕은 네 명 모두 마찬가지로 화경의 고수들이니까.
천신련주와 암천막주가 각각 한 명의 음지사왕을 상대한다고 했을 때 나머지 두 명의 음지사왕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전력이 된다.
“다들 너무 염려 말게.”
모두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자, 흑룡문주가 입을 열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련주님이네. 양쪽의 전력 차를 누구보다도 명확히 알고 계실 것인데, 응당 대응책을 계산하시지 않았겠는가?”
“으음…….”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흑룡문주의 말에 몇몇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또 몇몇 이들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침묵을 지킨다.
천신련주 사무현의 능력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화경급 고수와 싸우려면 오직 동급의 고수를 맞붙이는 것 외에 답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사무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흑룡문주의 눈에는 분명한 확신의 빛이 어려 있었다.
‘련주라면 반드시 대응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천방과 천신련에 느끼는 사무현의 애정과 책임은 상상 이상이다.
그런 그가, 단순히 분노로 승산 없는 전투에 모두를 밀어 넣을 리는 만무(萬無).
아군조차도 승산이 없다고 여기는 전투이지만, 저 련주의 머릿속에는 반드시 이 전쟁에 승리할 수단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사무현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막 새로운 사람과 인사를 마친 사무현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을 꺼낸다.
“흑룡문주님.”
“아…… 예! 련주님.”
이제 슬슬 작전 회의를 시작하려나 보다, 하는 생각에 흑룡문주가 막 몸을 일으키자 사무현이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기다리게만 해 드려서 죄송한데, 아무래도 오늘은 전략 회의를 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네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밖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여기저기 횃불을 들고 이동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었으니까.
“예, 오늘은 각자 막사에서 쉬시겠어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사람을 보낼 테니, 제 막사에서 다시 보시는 쪽으로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죄송합니다, 그럼.”
사무현의 인사를 받으며 그의 막사를 나서는 남경의 문주들.
이윽고 그들 모두가 나가고 나자, 사무현이 막사의 입구 쪽에 서 있는 막휘를 향해 한 손을 들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예? 아직 남은 녀석들이 있는데요?”
“그건 알겠는데, 나도 슬슬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머지는 내일 정오 이후에 한 명씩 또 보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너도 이만 들어가 봐.”
“예, 형님.”
그렇게 사무현에게 꾸벅 인사를 해 보인 막휘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 곧 웅성거림과 함께 아쉬워하는 탄성들이 들려온다.
이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막사 뒷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천마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정말 가려느냐?”
“응.”
“위험할 거다.”
사무현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천마의 경고.
하지만 이를 받는 사무현의 대답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상관없어.”
“…….”
“뭐, 조금 위험해도 별수 없고.”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레 말하는 사무현의 모습에, 지켜보던 천마의 얼굴에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본좌도 살아생전 미친 짓을 많이 하기는 했다만, 너라고 딱히 덜 미치지는 않았구나.”
“그 스승에 그 전승자지.”
“…….”
“간다.”
그 말과 함께 뒷문을 통해 은밀히 막사를 빠져나가는 사무현.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막사를 통과한 천마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들이 하려는 미친 짓을 돕기라도 하려는지, 월광조차도 먹구름에 가려 그 빛을 잃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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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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