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어두운 숲속.
강포에 위치한 천신련의 주둔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목 위에서, 흑의 무사 하나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스락.
“……음?”
고요한 침묵 속에서 들려온 미세한 소리에 흑의 무사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거기 무슨 소리지?”
“쯧……. 호들갑은. 바람 소리겠지.”
“바람은 불고 있지 않았으니 확인해 봐라. 분명 나뭇잎 밟는 소리 같은 게 났다.”
수풀 인근에서 들려온 동료의 음성에 재차 확인할 것을 요청하는 흑의 무사.
그러자 불만스레 투덜거리는 동료의 음성이 기다렸다는 듯 뒤를 잇는다.
“답답한 소리를…… 천신련 놈들이 움직이는 것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적이라도 나타났을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는 거냐?”
“확인해 봐라. 그렇지 않는다면 임무 태만으로 보고를 올릴 것이니.”
“빌어먹을, 고지식한 놈.”
퍼석퍼석.
짜증 섞인 욕지거리와 함께 풀숲을 헤치고 가는 동료의 인기척이 들려오자, 흑의무사는 자신의 품 안에 손을 밀어 넣어 신호탄을 움켜쥐었다.
“아무 이상 없나?”
“쯧……. 아무 이상 없다.”
“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동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흑의 무사가 신호탄에서 손을 떼어 내고 자신이 경계하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곳에서 삼십여 장 정도 떨어져 있는 천신련의 주둔지는 여전히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별일 없으면 복귀해라.”
“…….”
휘이이잉.
“……복귀 안 하나?”
동료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자신의 경계 방향을 응시하던 흑의 무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근무 태만은 적당히 좀…….”
서걱!
동료를 향한 짜증 섞인 한 마디가 흘러나오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난데없는 한 줄기 섬광이 그의 시선을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어, 어떻게……?’
살수 출신인 자신이, 뒤를 뺏기고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그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다니?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잠시뿐.
결국 목과 몸이 분리된 그의 육신은, 빠른 속도로 생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풀썩.
“흐음…… 이놈들 생각보다 제법이네.”
자신의 도 아래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진 음지 무사를 내려다보며 사무현이 중얼거렸다.
목과 몸이 분리되어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그는 신호탄을 쥐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이는 어설픈 강도의 훈련으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놀랄 것 없다. 훈련을 받은 살수라면 지극히 당연한 수준이니.”
“……이 정도가?”
“너도 지나치게 평화에 물들었구나. 교의 하급 무사들과 싸웠을 때를 잊은 것이냐?”
“아…….”
그제야 마교의 무사들을 떠올린 사무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위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다.
명령과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 정도는 초개처럼 버리는 독기.
그야말로 광신도라 부르기에 더없이 적합한 그들의 모습은, 이제는 칠 년이 훌쩍 지난 과거의 일임에도 사무현의 머릿속에 또렷이 박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그때랑 비슷하네.’
칠 년 전 마교를 탈출했던 때의 기억.
당시 마교도들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숲속으로 몸을 숨겨 오로지 천마의 도움에 의존해 적들과 전투를 벌였었다.
사무현과 마찬가지로 이 순간 그때를 떠올렸는지 천마의 입가에도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자…… 하면 어디, 오랜만에 함께 날뛰어 보자꾸나.”
쓰윽.
“드물게도, 하늘이 우리의 편을 들어 주는 모양이니 말이다.”
구름이 달빛조차 가려 버린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이라 하나, 이런 곳에서 천마의 도움을 받는 사무현의 움직임을 잡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천마의 말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인기척을 감춘다.
천신련의 대다수가 잠이 든 야심한 시각.
어디선가 작은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오른쪽 방향 풀숲 아래에 두 놈. 그 위 나뭇가지에 한 놈.”
파밧!
스걱! 서걱!
“무슨……!”
촤아아악!
풀썩. 털썩.
쿵.
“젠장, 많이는 겁나게 많…….”
“숨어라, 저쪽으로 십여 장 거리에 세 놈이다.”
쓰윽.
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현이 모습을 감추자, 풀숲을 헤치며 세 명의 흑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교대 시간…….”
“헉……! 이, 이게 뭐…….”
촤좌좌좍!
서걱.
자신들의 앞에 주검이 된 동료들의 시신을 발견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날아든 사무현의 도격이 그들의 목을 베어 버린다.
미세한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목이 베여 죽어 버린 흑의 무사 둘이 바닥으로 쓰러지던 그때,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오고 있던 흑의 무사의 손에서 기어이 신호탄이 쏘아져 날아간다.
쐐애애액!
쾅! 쾅!
“쯧……!”
서걱!
짧게 혀를 차며 신호탄을 쏘아 올린 흑의 무사의 복부를 베어 내는 사무현.
그러자 어두운 풀숲 여기저기에서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결국 이리되었구나. 이제 어찌할 셈이냐?”
“어떻게 하긴, 뭐. 이런 상황이 올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쓰윽.
생각을 마친 사무현이 자신의 도를 몸 중심부에 두며 감각을 개방한다.
훈련받은 놈들답게 사무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어느 한쪽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은 채 멀찍이 포위망을 먼저 형성하고 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저들 개개인의 능력은 별 볼 일 없다지만, 이런 산지에서 몇 겹의 포위망이 만들어 진다면 솔직히 곤란해진다.
제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한들 결국에는 사람.
체력과 내력이 소진될 때까지 진득하게 몰아붙이는 적들 앞에서는 어떤 변수가 만들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자…… 그럼 슬슬 이쪽에서 먼저 움직여 보실까?
스산한 미소와 함께 머리 위로 천마도를 치켜드는 사무현.
잠시 후 그의 묵색 도신에서 붉은 화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적들이 가장 많이 밀집된 어두운 숲을 향해 휘둘러진다.
부웅.
콰콰콰과과과.
사무현의 도신을 타고 뻗어나간 거대한 용의 형상의 붉은 화기가 숲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십만대산의 괴물…… 아니, 무신 단월혁으로부터 이어받은 혈교 무공의 정수.
그 장엄한 형태의 강기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확인하자, 지켜보던 음지 무사들이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피, 피해야……!”
쐐애애액!
콰과과과과과광!
정신을 차리고 흩어지려는 이들을 향해 날아가 폭발하는 붉은 화룡.
드넓은 숲의 중심부로부터, 화염을 동반한 섬광이 번쩍였다.
콰구구구.
***
터엉.
“끄윽…… 좋구나.”
새롭게 텅 비어 버린 술병 하나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진 동천왕이 기지개를 켜며 긴 숨을 내쉰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한 병을 사 먹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값비싼 명주들이 이제는 싸구려 백주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이렇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걷기만 해도 발에 챌 듯 수없이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에게서 가치를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어렸을 적에는 보물처럼 여겨졌던 장난감들이, 성인이 된 후에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심드렁한 얼굴로 어지럽혀진 술상을 바라보던 동천왕이 곧 짧게 혀를 차며 몸을 일으킨다.
“치워라.”
“예.”
동천왕의 한 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몸을 움직인 시비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술병들을 치우고 떨어진 술을 닦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동천왕이 막 침소로 걸어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다닷.
터덕.
“허억……! 허억……! 왕이시여! 기, 긴급 상황입니다!”
“……들어와라.”
문밖에서 들려오는 천라오귀의 음성에 벗으려던 의복을 다시 걸치고 몸을 돌리는 동천왕.
잠시 후 그의 방문이 열리며 창백한 얼굴이 된 천라오귀가 그의 앞에 부복한다.
타닷.
“무슨 일이냐.”
“예! 천신련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병력을 매복해 둔 산지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뭐? 전투가 벌어져?”
천라오귀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동천왕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내가 분명 전면전은 벌이지 말고, 진형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는 놈들의 눈과 귀만 차단하라 했을 텐데?”
“그, 그렇습니다. 분명 그리 지시를 내려 두었는데…….”
“어설픈 변명 할 생각 말고 똑바로 말해라! 어쩌다 전투가 벌어진 것이고, 어찌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야!”
참다못한 동천왕이 불같이 노하여 소리치자 두 눈을 질끈 감은 천라오귀가 한 마디로 상황을 설명한다.
“천신련주가 직접 움직였습니다!”
“……뭐라?”
“놈이 직접 저희의 매복지를 습격했습니다! 수하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움직여, 녀석의 움직임과 정체를 너무 뒤늦게 파악했습니다!”
“…….”
“놈이 숲의 깊은 곳까지 들어온 상태라 우선은 포위망을 형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이쪽의 병력만 소실될 상황……!”
콰과과과!
천라오귀가 황급히 말을 이어가고 있던 그때, 난데없이 동천왕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방출된다.
잠시 후 몸 안에 있던 술기운이 순식간에 증발해 날아가 버리자,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동천왕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진다.
“큭, 이거…… 이런 방식은 생각지도 못했군.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는데?”
“…….”
“흐음…… 과연, 그 명성과 덕망이 높으신 천신련주께서, 고고한 본인의 무위만을 믿고 최전선에 나와 수하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시겠다?”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리는 동천왕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살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역겨운 놈.”
콰드득.
털썩.
풀썩.
결국 동천왕의 기를 버티지 못한 바닥에 잔균열이 가고, 자리에 있던 시비들이 혼절해 바닥에 쓰러진다.
새하얗다 못해 파리하게 질린 천라오귀가 가늘게 몸을 떨며 그의 눈치를 살피자, 어느덧 표정을 굳힌 동천왕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잇는다.
“놈은 어디 있느냐?”
“수, 숲의 중심부에서 저희의 포위망에 갇혀있을 것입니다.”
“아직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예, 그렇습니다.”
가까스로 공포를 이기며 대답하는 천라오귀.
이에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은 동천왕이 그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긴다.
“수하들을 이끌고 뒤를 따라라, 천라오귀.”
“…….”
“천신련주를 사냥한다.”
“조, 존명!”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목소리를 높여 복명하는 천라오귀.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동천왕의 신형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부웅.
콰과과과과!
“피, 피해……!”
콰구구구구.
“크아아악!”
“아아아악!”
사무현이 전개한 만마참풍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십수 명의 흑의 무사들을 휩쓸어 버린다.
그들이 엄폐물로 쓰고 있던 거목들은 도풍에 의해 무처럼 잘려 나갔고, 숨어 있던 무사들 대부분이 무너진 나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스스스스.
“……쯧, 끝이 없네.”
흙먼지가 올라오는 잔해물 사이사이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흑의무사들.
밀집해서 사무현을 공격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포위망을 열어 전투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한 수로 사무현의 발목을 잡고 널찍하게 진형을 퍼뜨려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는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으며 시간을 벌기 위한 전형적인 전략.
이런 식이면 만마참풍 같은 광범위한 초식을 써도 도리어 자신의 내력이 먼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냥 전부 썰어 죽여야 하나?”
“허튼소리 마라. 이런 전투에서는 내력이 떨어지는 것보다 육체가 지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끄응…… 그럼 이 상황에 어떻게 하라고?”
“내게 물을 것 없다. 너 역시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
천마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사무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사천방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기까진가?’
사실 막무가내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사무현이 작정하고 경공술만 펼쳐도 저들이 뒤를 쫓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이렇게 넓게 퍼진 포위망이라면 얼마든지 구멍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들과의 소모성 교전을 이어 오고 있었던 것은, 동천왕의 전력에 조금이라도 더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싶었던 사무현의 욕심 때문이었다.
“……쯧, 별수 없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의 손에 죽은 적의 수만 어림잡아 이백은 훌쩍 넘어간다.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고 가한 전과치고는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자…… 그럼 진짜로 딱 한 번만 더 먹이고…….”
“그럴 시간 없다.”
밀집된 포위망에 다시 한번 만마참풍을 전개하려는 그 순간, 천마의 냉정한 음성이 사무현의 귓가에 날아와 박힌다.
“놈이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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