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콰수수수.
사방에 즐비한 거목들보다도 높게 솟아오른 흙먼지.
강기의 다발이 만들어 낸 폭발의 여파 속에서, 이윽고 도신을 치켜든 한 인형이 모습을 드러낸다.
“후우…….”
천천히 긴 숨을 고르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내.
무복 곳곳이 찢겨 나간 사무현이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앞으로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동천왕이 박수를 치며 그를 반긴다.
짝짝짝.
“대단하군. 일전에 보았을 때도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전략을 쓸 줄이야.”
“…….”
“과욕과 과신을 이기지 못한…… 미련하기 짝이 없는 자충수를.”
“……쯧.”
보란 듯한 동천왕의 도발에 사무현이 짧게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본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동천왕의 공격으로 수십에 달하는 적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무현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상대에 대한 역겨운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리석은 놈……. 어떤 전쟁이건 장(匠)이 쓰러지면 끝나는 것이 상식이거늘. 설마 앞뒤 생각 없이 무작정 수하들만 아끼면 될 것이라 여겼느냐?”
“거, 말 한번 많네.”
“……뭐라?”
“그렇게 자신이 넘치면 그냥 달려들 것이지, 왜 거기 서서 입으로 떠들고 있냐?”
“…….”
“……덤비면 뒈질까 봐?”
싸늘하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사무현의 천마도에서 푸른 도강이 뿜어져 나온다.
기세에 실린 그의 진득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가며 자연스레 동천왕을 압박한다.
“……이 상황까지 와서도 허세가 제법이구나.”
주눅 들지 않는 사무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금니를 악물고 이야기하는 동천왕.
이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그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쓰윽.
“허세?”
“……!”
쾅!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린 사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동천왕의 거리 안으로 들어선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들어섰으나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는다.
어느덧 사무현의 흉부에는 동천왕의 검이 놓여 있고, 동천왕의 목선에는 사무현의 도신이 놓여 있다.
촤아악!
스걱!
간발의 차로 서로가 몸을 비틀며 검격과 도격을 흘려 내며 거리를 벌린다.
동천왕의 한쪽 어깨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사무현의 한쪽 뺨에 검흔이 새겨졌지만, 서로를 향한 시선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쩌저저저정!
“큭……!”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내뻗었다.
그 결과 사무현의 도강에 밀린 동천왕의 검이 뒤쪽으로 튕겨 밀려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천왕의 목을 계속해서 베어 오는 사무현.
이에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뒤로 밀려나 쓰러진 동천왕이, 넘어지는 와중에 땅을 박차 사무현의 눈을 향해 흙모래를 흩뿌린다.
퍼버버벅!
언뜻 보잘 것 없는 암수처럼 보이지만, 화경의 고수가 내력까지 실어 찬 땅의 파편들이다.
다급히 천마도의 옆면으로 안면을 보호했지만, 수많은 암기로 산화한 모래 파편들이 사무현의 무복과 머리칼을 찢어 낸다.
콰아앙!
촤지이이익.
사무현의 움직임이 멈춘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허공에서 일각을 내뻗어 상대의 도신을 걷어차는 동천왕.
이에 사무현의 신형이 석 장 정도 뒤쪽으로 밀려나자 한숨을 고른 동천왕이 다시금 방어 자세를 취하며 두 눈을 번뜩인다.
“제정신이 아니군. 설마 그런 지친 상태로 나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지쳤다고?”
쓰윽.
“누가?”
어느새 도신을 내린 사무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동천왕이 두 눈을 가늘게 뜬다.
그리고 그 순간.
욱신.
후두둑.
“……!”
조금 전 사무현의 도신을 걷어찼던 그의 발목에서 시큰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곧이어 다량의 붉은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이, 이놈이……!”
“남의 애도를 걷어찼으니 당연한 대가지.”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하는 사무현의 모습에 동천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분명 도면(刀面)을 걷어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짧은 틈에 그를 벨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다.
혹시 그가 알지 못하는, 그의 감각에 잡히지 않는 필살의 초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신중하게 거리부터 다시 재는 동천왕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린다.
“왜 베였는지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네?”
“…….”
“도(刀)는 ‘벤다’라는 무의 이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 이치를 담을 수 있는 순간부터 손에 들린 모든 것은 곧 도(刀)와 다름없으니, 그 형태가 어떻건 구속받을 이유가 없다. 예리한 날붙이부터 한낱 풀 한 포기까지, 베겠다는 의지를 품는 순간 모든 것은 도(刀)가 된다.”
쓰윽.
말을 이어 가는 사무현의 도가 다시금 몸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네 검은 가짜다.”
“……!”
“아무리 내가 이런 상태라도, 가짜 하나를 베어 내는 데는 충분하지.”
말을 마친 사무현이 자세를 낮추며 달려들 태세를 취하자, 분노 어린 눈으로 사무현을 노려보던 동천왕이 그를 향해 강기를 전개한다.
“으드득……! 닥쳐라, 이놈!”
쐐애애액!
쩌저저저정!
촤지익.
“……겨우 이게 전부냐?”
일장 정도 밀려나며 동천왕의 강기를 받아 낸 사무현이 서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마주하는 동천의 몸이 분노로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홀로 그들의 진형 깊숙이 들어와 수백의 음지 무사들과 자신을 상대해 내고 있다.
그것도 마교의 장로급도 아닌, 그보다도 한참이나 어린 연배의 사파의 애송이 따위가!
꽈악.
‘……인정할 수 없다!’
어느 모로 보아도 이 상황에 궁지에 몰려야 할 쪽은 천신련주다.
아니, 천신련주여야만 한다!
감정의 동요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온몸을 떨고 있는 동천왕을 노려보던 사무현이, 그를 향해 천마도의 도 끝을 겨누며 말을 꺼낸다.
“아무래도 더 보여 줄 건 없는 것 같은데.”
“이놈이……!”
“……이제 죽어라.”
까드득.
“이……! 네까짓 것이 감히!”
쐐쇄쇅쐐애액!
콰과과과광!
분노한 동천왕이 일검을 휘두르자 그의 검신을 타고 뻗어 나온 십여 줄기의 강기가 사무현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 정도로 사무현이 당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천왕이 추가적인 공세를 더 펼치려던 그때.
파바바밧!
“모두 더 속도를 내라! 천신련주를 사냥해야 한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라오귀가 이끄는 무사들이 도착했음을 알아차린 동천왕이 기다렸다는 듯 내력을 끌어 올려 목소리를 높인다.
“이쪽이다! 당장 오지 않고 뭣들 하느냐!”
“모, 모두 전속력으로 달려라!”
파바바밧!
동천왕의 분노한 음성을 들은 천라오귀가 가장 선두에서 경공술을 펼치며 모습을 드러낸다.
“당장 놈을 공격해라!
“조, 존명!”
사무현이 위치한 곳을 가리키며 동천왕이 소리치자, 그 뒤를 따라 수십의 무사들이 함께 몸을 날린다.
천라오귀가 동천왕을 뒤따르기 위해 이끌고 온 무사들이니만큼, 이들의 수준은 숲에서 정찰을 위해 매복해 있던 무사들과 그 수준을 달리한다.
제 아무리 천신련주라 하나 이만한 숫자의 정예 무사들과 자신을 상대로는 버티지 못할 터……!
그렇게 승기가 넘어왔다고 생각한 동천왕이 희열에 찬 미소를 머금던 순간이었다.
스스스스.
‘……바람?’
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바람에 동천왕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건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다.
일반적인 바람이라면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불어올 수 없다.
동천왕이 고개를 들자, 사무현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 버렸던 먼지가 바람에 의해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그리고 날아간 먼지 사이로 심상치 않은 강기의 막에 감싸인 사무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고맙다, 아주.”
“……!”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줘서.”
얼굴에 떠오른 숨길 수 없는 미소와 짙게 전해지는 살기.
이는 결코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그제야 무언가를 직감한 동천왕이 다급히 후퇴를 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콰과과과과과.
사무현의 몸을 감싸 안고 있던 반원 형태의 강기가 빠르게 그 크기를 키우며 사방으로 팽창하기 시작한다.
천마도법의 절기인 멸세천마도.
이에 용감무쌍하게 사무현과의 거리를 좁히던 흑의 무사들이 각자 검기와 검강을 끌어 올리며 대항을 준비한다.
“이, 이런!”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동천왕의 음성.
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있었다.
콰구구구구구.
쩌정! 쩡!
촤아아아악!
사무현이 전개한 멸세천마도의 강기가 그를 향해 달려들던 수십의 음지 무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검기를 머금은 무기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지고, 검강을 머금어 일시적으로 강기의 막을 베어 내도 그뿐.
마치 강물을 검으로 가르려는 시도처럼, 아무리 베어도 순식간에 이어 붙은 강기의 막이 음지 무사들의 육체를 산산이 바스러뜨려 버린다.
콰과과과과!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콰과광!
피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팽창하며 다가오는 강기의 막을 향해 다급히 도강을 끌어 올려 휘두르는 천라오귀.
하지만 그 또한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명색에 절정의 상급에 이른 고수답게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 깊게 강기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내 공간을 메우며 팽창한 강기의 막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아! 이 괴물 같은 놈이!”
쐐애액!
비명과도 같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강기를 전개하는 동천왕.
그의 강기가 사무현의 멸세천마도와 부딪치는 그 순간, 팽창하던 강기의 막이 밝은 섬광을 만들어 내더니 곧이어 대폭발을 일으킨다.
파아앗!
콰과과과과광!
“크으으윽……!”
촤아악! 촤아아악!
수십, 수백 갈래의 수많은 강기로 화해 천지사방으로 뻗어지는 강기의 폭.
전력을 다해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고 검막을 펼쳤지만 동천왕의 한쪽 다리와 어깨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온다.
파괴된 대지의 파편이 날카로운 암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거목들이 뿌리째 뽑혀 허공을 날아다녔지만 동천왕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여기서 자칫 여파에 말려 버리면 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크으윽……!”
후두둑, 후두둑.
입술을 비집고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손에 쥔 검신이 세차게 흔들리고, 무시무시한 폭발의 압력에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모든 내력을 끌어올리며 죽을힘을 다해 버텨내는 동천왕.
그렇게 얼마나 버티며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폭발이 멈추고 나자, 변함없이 그를 향해 도 끝을 겨누고 있는 사무현의 모습이 동천왕의 눈에 들어온다.
“후우…… 후우…….”
최대한 거칠어진 숨을 억누르는 사무현의 어깨가 들썩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굵은 땀방울이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흐른다.
‘조금…… 무리했나.’
……아니, 사실 조금이 아니다.
인기척을 억누르고 속전속결의 방식으로 쓰러뜨린 적이 수백이다.
이후에 포위망을 뚫기 위해 또 수많은 적과 싸웠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씩이나 강기와 절기를 퍼부었다.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가며 동천왕과도 수십 초를 겨루었고, 상대의 전의를 완벽하게 깎아내리기 위해 멸세천마도까지 사용했다.
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온 몸의 근육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상을 입은 동천왕은 불신과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같은 화경 내에서도 위아래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이만한 수를 동원해서 싸웠음에도 도리어 죽음의 위기를 느꼈을 테니까.
아마 녀석의 눈에 비친 사무현은 그 힘의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괴물처럼 보일 것이다.
과거 사무현이 무신이나 단아란에게 느꼈듯이.
‘상대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되면 이성은 흐트러지고 공방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전투에 있어서 천마가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냉정함.
상대가 그것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사무현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다.
콰드드득.
“……음?”
“이놈……!”
난데없이 제자리에서 서서 온 몸을 떨고 있던 동천왕의 주위로 심상치 않은 기의 파동이 일렁인다.
그를 중심으로 대지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 했던 그의 검강이 더더욱 세차게 팽창하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오냐…… 인정하마. 너는 나보다 강하다. 사파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괴물이라는 평가가 오히려 무색할 정도구나!”
“……안됐지만 그런 말을 해도 살려 줄 생각은 없어.”
“큭큭……. 염려 마라.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확신이 들었으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반드시 너는 죽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전의가 꺾였을 것이라는 사무현의 생각과는 달리 철철 넘쳐흐르는 살기를 흩뿌리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다가오는 동천왕.
그 순간 그를 마주하는 사무현의 솜털이 곤두선다.
지금까지 동천왕에게서 느껴 본 적이 없던 위압감에,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리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제 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쓰윽.
“어차피 나도 널 살려 보낼 마음은 없었어.”
“……죽여 주마.”
그렇게 짙은 살기를 흘리며 동천왕과 사무현이 서로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타다다닷.
“형니이이이임!”
“……!”
그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숲속에서, 쩌렁쩌렁한 막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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