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할 말을 잃은 모두를 대신해 흘러나온 불신 어린 동천왕의 음성.
그때, 어느덧 사무현의 옆에 선 살암이 검 끝을 그들에게 겨누며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전(前) 암천막의 소막주이자, 현 암천막주인 살암(殺暗)이다!”
“……!”
“오늘 나는, 마교를 끌어들여 암천막을 무너뜨리고 스승님이었던 살왕을 해(害)한 너희들을 징벌하러 왔다! 네놈들이 스스로를 음지의 왕(王)이라 부를 자격이 있다면, 숨지 말고 당장 앞으로 나서거라!”
“저…… 저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검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떠는 동천왕.
불과 얼마 전, 그의 손으로 직접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상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질긴 피라미에 불과했던 놈이, 이제는 한눈에 보아도 만만치 않은 기세를 흩뿌리며 그들을 도발하고 있다.
꽈악.
‘이런 전개를 믿고 있었느냐……!’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천신련주라는 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고수라고 하나, 네 명의 화경급 고수들을 상대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는 오래도록 암천막의 지배자였던 살왕이 사천살과의 전투에서 패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러니 놈은, 아직까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화경급 고수였던 암천막주를 통해 그들의 허를 찌르려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의도는 이렇게나 보기 좋게 먹혀들었다.
살암,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양측의 분위기가 실로 미묘해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다들 당황할 것 없네.”
혼란에 빠진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있던 그때, 가장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북천왕이 말을 꺼낸다.
“예상치 못한 전력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전력의 우위는 여전히 우리에게 있네. 살왕의 후계자라고 해 봐야 고작 얼마 전 화경에 오른 애송이가 아닌가?”
“음…….”
“하기야……”
“마침 잘 되었네. 우리의 기세를 꺾고 의표를 찌르려 한 모양이지만, 수하들의 뒤에 숨지 않고 나선 것은 실로 어리석은 만용이니.”
북천왕의 말에 그제야 자신들이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남천왕과 서천왕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굳어 있던 얼굴을 푼다.
사실 그들 모두 살암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은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처리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
하지만 이것으로 이번 전투에서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일 순위 대상이 되었다.
비록 그들의 예상보다 월등히 강해졌다고는 하나, 수하들의 뒤에 숨거나 잠적을 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이렇게 나서주는 편이 상대하기 수월하다.
다만…….
‘……한순간이지만, 죽은 살왕이 살아 돌아온 듯했다.’
의도적으로 기를 발산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사방을 압도하는 기세와 살기가 이십여 장은 족히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당도했다.
물론 단순한 기세가 무위와 직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과거 살령과의 전투는 그들에게 깊은 공포로 새겨져 있었다.
협공으로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도리어 그가 가진 광기와 살기에 압도당한 것은 전투에서 승리한 자신들이었으니까.
그때의 공포와 중압감을 떨쳐내기 위함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를 내뿜으며 동천왕을 제외한 음지삼왕 모두가 앞으로 걸어 나선다.
“암천막주는 내 먹잇감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마라!”
파바밧!
가장 먼저 살암을 향해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리는 서천왕.
그가 매일 밤 술 없이 잠에 들지 못했던 이유.
이는 살령에 의해 오른팔이 잘려 나가던 그 장면이, 매일 밤 악몽으로 찾아들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네놈을 죽이고 과거의 나를 되찾아가마!”
“와라!”
파바밧!
쩌저저저정!
서천왕을 향해 함께 몸을 날려, 허공에서 거대한 검강을 맞부딪치는 살암.
살령이 죽고 암천막이 붕괴되었던 이후 꾹꾹 억눌려 참고 있던 그의 감정이 서천왕의 검과 격돌하며 폭발했다.
순식간에 거친 살기를 흩뿌리며 이들이 격돌을 시작하자,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천신련주는 나 혼자 감당하기에 조금 벅찬데…… 누가 날 좀 도와주겠나?”
“내가 돕도록 하지.”
동천왕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두 눈을 번뜩인 북천왕이 이를 갈며 도신을 치켜세운다.
“아까부터 저것의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나도 함께 한다.”
동천왕과 북천왕이 의견을 하나로 모으자, 남천왕이 스산한 어조로 덧붙인다.
“천신련주만 쓰러지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을 테니.”
그렇게 의견이 하나로 모이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들 셋 모두 자리를 박찬다.
이십여 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사무현에게 나아가는 음지삼왕.
그런데 그 순간, 천신련의 진형 뒤쪽에 또 한 줄기의 거대한 강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치잇……! 이건 또 무슨!”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크기의 강기에, 당황한 남천왕이 황급히 검강을 끌어 올리며 날아드는 강기에 대응한다.
쐐애액액!
쩌저저저정!
“크으으윽……!”
단숨에 잘라 버리려 했던 의도와는 달리, 강기의 위력을 이겨 내지 못한 남천왕의 신형이 빠르게 뒤쪽으로 밀려난다.
금방이라도 검강과 함께 검신을 통째로 부수어 버릴 듯한 압력!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몰린 남천왕을 도운 것은, 사무현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북천왕의 강기였다.
쐐애액!
콰과과광!
휘리리릭.
촤지이이익.
“……크헉!”
북천왕의 강기가 날아든 강기를 폭발시켜 상쇄하자, 그 여파로 튕겨 날아간 남천왕의 신형이 십여 장 가까이 밀려나며 자리에 안착한다.
내상이 역류했는지 입가에 검붉은 피를 닦아 내는 남천왕의 앞으로,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는 북천왕과 동천왕의 모습이 잡힌다.
“이……! 뭐냐! 대체 무슨……!”
“조용히 해라!”
분개한 남천왕의 외침을 더 큰 목소리로 가로막는 북천왕.
한눈에 보기에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 설마 ‘저 짐승’까지 끌어들일 줄은……!”
“……짐승?”
북천왕의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남천왕이 두 눈을 부릅뜨며 강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감각을 집중한다.
그러자 곧,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세가 인근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모두 비키거라!”
멀리 있는 이들마저 다리를 휘청이게 만드는 웅장한 내력과 함께, 인근을 쩌렁쩌렁 울리는 거친 사내의 음성.
그와 함께 부채꼴로 밀집되어 있던 진형이 양측으로 갈라지며, 실로 거대한 태도를 어깨에 짊어진 구척의 거한이 모습을 드러낸다.
범을 연상케 만드는 부리부리한 눈매에 섬뜩하기 그지없는 작은 동공.
오만함 어린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걸어 나오는 그의 위용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쿵, 쿵.
“저…… 저놈은!”
“……수룡왕이다!”
남천왕을 향해 침음성과도 같은 음성으로 대답하는 북천왕.
사무현과 임시 동맹을 맺고 있던 장강의 괴물이, 비로소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분위기가 바뀌었군요.”
“음…….”
속삭이는 듯한 사문회주의 말에 흑룡문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은 수룡왕의 등장과 함께 뒤바뀐 전장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로 저 수룡왕이니 말일세.”
“……예.”
천신련주와 생사를 건 전투를 펼쳤던 그 신위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당시에는 비록 사무현에게 패했지만, 만약 그가 없었다면 남경의 모든 문파가 힘을 모은다 해도 수룡왕 한 사람을 당해 낼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으니까.
‘설마 련주께서 저 괴물을 끌어들이셨을 줄이야.’
조금 전 임시막사의 회의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떠올리며 흑룡문주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지 어딘가로 고개를 돌린 사무현과 살암.
그리고 잠시 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돌아보는 살암을 흘깃 바라본 사무현이 모두를 향해 말을 꺼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은데…… 지금 바로 모두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실은 이번 전쟁에 참여할 이들은 저희 천신련만이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구두로 맺은 임시 동맹인 데다가, 기본적으로 신뢰할 만한 이가 아니라 섣불리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말씀을 드릴 때가 된 것 같네요.’
‘…….’
‘뭐하냐? 왔으면 안 들어오고.’
사무현의 말과 함께 임시 막사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한.
그가 수룡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사무현과 살암을 제외한 막사 안의 모두는 숨조차 함부로 내쉬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승산이…… 얼마나 될까요?”
“……나도 모르네.”
어렵사리 떼어 낸 사문회주의 물음에 흑룡문주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무리 수룡왕이 합류했다고 한들 저들 또한 음지의 왕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할 만한 전투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하나로 완전히 판도를 뒤집기에는 저들의 전력도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은 지켜보세.”
“…….”
“그리고…… 우리가 나서야 할 순간이 온다면, 목숨 따위는 아끼지 말도록 하세나.”
“……예!”
다짐과도 같은 흑룡문주의 말에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경의 문주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수룡왕의 등장으로 얼어붙어 있던 전장에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
까드득.
“이…… 빌어먹을 일이……!”
생각지도 못한 수룡왕의 등장에 북천왕의 이가 소리 나게 갈린다.
일대일 대결에서 천신련주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가 사파제일인을 두고 경쟁을 할 만큼 손에 꼽히는 강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구파일방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역대 최강의 수로채를 만들고 지배하는 괴물.
과거의 살령 정도는 되어야 제압이 가능한 짐승이 전장에 나타났으니. 이는 압도적이라 여겼던 전장의 균형을 완전히 원점으로 돌려 버리는 변수였다.
“이……! 수룡왕! 어째서 그대가 음지와 척을 지려 하는 것인가! 이것이 장강수로채의 뜻인가!”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여긴 북천왕이 목소리를 높이자, 어느새 발걸음을 멈춘 수룡왕이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답한다.
“큭큭……. 속이 빤히 보이는 질문을 하는구나. 당연히 네놈들과 척을 지러 왔겠지, 아무렴 이 상황에 화친을 논하기라고 하겠느냐?”
“대체 어째서냐! 천신련을 도와 음지와 싸운다고 수로채에 무슨 득이 있다는 말이냐!”
북천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치자 수룡왕이 부리부리한 눈을 가늘게 뜨며 조소를 머금는다.
“재미있는 소리구나. 하면 네놈들은 무슨 득이 있다고 동천왕인지 뭔지 하는 놈을 돕는다는 말이냐?”
“……!”
“피차 양측 간에 어떤 거래가 오고 갔는지는 구태여 밝힐 필요가 없을 터. 헛소리 말고 누구든 들어 오거라.”
콰과과과.
대놓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한차례 뿜어낸 수룡왕이, 아찔할 정도로 거대한 태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소리친다.
“오늘의 전쟁으로, 약해빠진 주제에 단물만 빨아먹던 너희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것이니!”
부웅.
쐐애애액!
“이……! 짐승 같은 놈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드는 수룡왕의 강기에 북천왕이 두 눈에 핏대를 세우며 도강을 끌어 올린다.
수룡왕의 강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머릿수에서 우위를 점했음에도 물러날 만큼 두려운 상대는 결단코 아니다!
“오냐! 오늘부로 장강의 물고기들도 모조리 음지의 관할 하에 넣어 주마!”
쩌저저정!
콰과과과광!
수룡왕의 강기를 정면으로 받아 내 기어이 반으로 갈라 버리는 데 성공하는 북천왕.
그 순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무현의 신형이 섬광같이 그에게로 향한다.
파밧!
“죽어라.”
“이……! 천신련주 네놈이!”
쩌저저저정!
수룡왕의 강기를 받아 내고 미처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북천왕이 사무현의 일도에 실린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그러자 그 틈을 비집고 날아든 동천왕의 강기가 사무현의 앞을 가로막는다.
콰과과과광!
지이익.
“흐흐흐……. 이 전쟁에 수룡왕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다, 천신련주. 이거 내가 되려 한 수 배웠구나.”
“……그래, 그러고 보니 너도 있었지?”
동천왕의 강기를 받아 내며 일 장 정도 뒤로 밀려났던 사무현이 짙은 살기를 흩뿌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쓰윽.
“……너부터 죽여 주마.”
“그건 내가 할 말이다!”
파밧!
타닷!
쩌저저저정!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격돌을 시작하는 동천왕과 사무현.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나가떨어져 있던 북천왕이 몸을 일으켜 동천왕을 지원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남아 버린 수룡왕과 남천왕이 서로를 노려보며 각자의 무기에 강기를 집중시킨다.
“크흐흣, 네가 내 상대인 모양이로구나.”
“……그런 것 같군.”
“좋다…… 하면.”
남천왕의 냉정한 대답에 고개를 한번 끄덕인 수룡왕이, 일곱 자에 이르는 도강이 뿜어져 나오는 태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히죽 미소를 머금는다.
“그 얄팍한 검으로, 내 도를 얼마나 버텨 낼 수 있는지 보겠노라.”
“시건방진 놈이!”
쐐애애액!
콰과과과광!
참지 못하고 먼저 강기를 날리는 남천왕과, 그런 남천왕의 강기를 무시무시한 일도로 분쇄시켜 버리는 수룡왕.
그렇게, 음지와 사파를 통틀어 절대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수천에 달하는 전력을 양쪽에 포진한 채로, 하나하나 눈을 뗄 수 없는 거인들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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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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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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