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쿠당탕탕 촤지이익.
“……크헉!”
불완전한 상태에서 수룡왕의 강기를 받아 낸 남천왕의 신형이 거칠게 바닥을 나뒹군다.
반사적으로 황급히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검을 쥐어야 할 오른쪽 손목이 탈골되었고 어깨 쪽에서도 꿈쩍하기도 힘든 통증이 느껴진다.
이게 고작 상대의 진심 어린 도격을 두 합 받아 낸 결과라니!
심지어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상처를 저만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몸놀림이 도리어 처음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빨라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닿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베어냈던 무형(無形)의 기는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큭큭, 오른팔이 부러졌느냐?”
혼란스러움이 역력한 남천왕을 향해 대놓고 비웃음을 머금은 수룡왕이 혀를 끌끌 차며 안됐다는 듯 말을 잇는다.
“같지도 않은 얄팍한 재주로 수작을 부리더니, 결국 제대로 된 한 합도 받아 내지 못하는구나. 그 넓다는 음지에서 이런 도를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냐?”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 취급했던 남천왕에게 보란 듯이 도발을 돌려주며 거리를 좁혀 오는 수룡왕.
이에 남천왕도,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을 왼손으로 바꿔 쥐며 검강을 끌어 올린다.
“……어떻게 된 거냐.”
“음?”
“대체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네 도가 내게 닿을 수 있었느냐는 말이다!”
자신의 계산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남천왕이 소리쳐 묻자, 잠시 발걸음을 멈춘 수룡왕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번진다.
“당하고도 모르겠느냐? 단순한 도풍(刀風)이다.”
“도풍이라고?”
“내력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만든 도풍이 아닌, 힘과 속도에 의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도풍이지.”
자랑스레 대답하며 수룡왕이 자신의 태도를 치켜세우자, 비정상적으로 단련된 그의 전완근이 남천왕의 눈에 들어온다.
“보다 강하게, 보다 빠르게, 그리고 보다 마음껏 도를 휘두르기 위한 끊임없는 수련의 결과물이다. 하잘것없는 기교에만 집착하는 네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경지일 터.”
“이……놈이……!”
“흐흐, 뭐, 너무 억울해 할 것도 없다. 어차피 다음 일도가 끝일 것이니.”
스산한 음성과 함께 거대한 도강을 끌어 올리는 수룡왕.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천왕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급한 대로 좌수검의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서천왕과는 달리 그는 좌수검을 익히는 데 제대로 시간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고자 하는 투지까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기세는 넘어갔지만…… 냉정하게 보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룡왕의 강함은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믿기 힘들 만큼 강인한 신체와, 단순한 동작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데서 만들어진 비상적인 강함일 뿐.
저런 식으로 하나의 면만 강하게 단련한 이들은 언제나 치명적인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 증거로, 저 수룡왕이 그에게 제대로 된 한번의 타격을 가하기 전까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지 않았는가?
초기에 입혀 두었던 작은 생채기들도 어느새 다시 벌어져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조금 전 근접전에서 흉부에 입힌 상처는 분명 치명상이다.
저 두꺼운 근육이 상처를 더 벌어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의 신체였다면 진작 상처가 벌어져 과다 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한 번이면 된다.’
수룡왕의 말대로 다음 한 합에서 승부가 갈린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일 검을 더 밀어 넣으면 자신의 승리.
그렇지 못하고 저 무식한 도격에 몸을 내어 준다면 자신의 패배다.
지금의 자신이 좌수검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까지 놈이 보여 준 속도와 움직임만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태라도 능히 감당할 자신이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남천왕이 검강을 끌어 올리며 전의를 드러내자, 슬며시 표정을 굳힌 수룡왕도 조금 더 신중하게 그에게 한 발을 내디딘다.
쓰윽.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대치.
하지만 이 또한 여유가 있는 쪽은 남천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역시나 부상을 안고 있는 수룡왕 측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그런 남천왕의 자신대로, 수룡왕이 먼저 자리를 박차며 몸을 날려 온다.
쾅!
다섯 장 남짓했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며 수룡왕의 도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이글거리는 화염 같은 거대한 도강이 그의 태도를 감싸 안으며, 수룡왕의 무거운 기세와 위압감이 남천왕을 억누른다.
“크으읍……!”
먼저 검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올랐지만 남천왕은 끝까지 인내하며 때를 기다렸다.
어설프게 기를 분산시키거나 집중력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상대의 공격보다 먼저 검을 뻗어서도 안 된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동귀어진 따위가 아니니까.
‘공격을 흘리고 한 합이면 끝이다!’
수룡왕의 동작 하나하나,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생생히 그의 눈에 들어온다.
저 거대하고도 선명한 근육은 단순히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반드시 타고나야만 하는 것.
그리고 저 말도 안 되는 육체가 만드는 파괴력과 순발력은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맞붙을 생각은 버린다!’
당장 어느 방향으로라도 몸을 움직이기 위한 가벼운 자세를 취하고 상대와의 거리를 재는 남천왕.
그리고 그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하듯 수룡왕은 끝까지 도를 먼저 내려치지 않았다.
마치 남천왕에게 먼저 검을 뻗어 보라는 듯이.
하지만, 그들 간의 거리가 지근거리까지 좁혀질 때까지도 수룡왕은 먼저 도를 휘두르지 않았다.
‘이놈이……!’
결국 누구라도 먼저 무기를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지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남천왕이 먼저 자리에서 몸을 날리고 말았다.
파밧!
“동귀어진이라도 하자는 뜻이냐, 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수룡왕에게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희번덕이는 미소와 함께 일도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이 남천왕의 눈에 들어온다.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의 거대한 강기가 그를 향해 쏘아져 날아든다.
쐐애애액!
“이……!”
방향을 바꿔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결국 바닥에 안착한 남천왕이 그대로 전력을 다해 끌어 올린 검강으로 수룡왕의 강기를 쳐낸다.
쩌저저정!
“크읍……! 음?”
생각보다 강기에서 전해지는 무게감이 그리 대단치 않자 남천왕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물론 강기 자체의 위력이 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한 합 한 합을 받아 내는 것조차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이전에 비하면 눈에 띄게 가벼워지지 않았는가?
마치 제대로 도격에 힘을 싣지 못하는 것처럼…….
“……큭, 과연.”
수룡왕의 강기를 받아 내는 와중에 남천왕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이제야 상황을 온전히 파악했다.
저 괴물 같은 놈의 기세에 눌려 깨닫지 못했지만, 그 역시 이미 한계가 찾아온 상태라는 것을.
하기야, 아무리 말 같지 않은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만한 상처에도 멀쩡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쩡!
콰과과광!
순간적으로 검강을 집중시킨 남천왕이 수룡왕의 강기를 베어 내자,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도를 내려치는 수룡왕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모습은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라도 스스로의 건재함을 드러내려 애쓰는 발버둥으로 보일 뿐.
이를 확인한 남천왕의 일검이 반사적으로 수룡왕의 도격을 가로막는다.
스팟!
쩌저저저저정
“……!”
수룡왕의 도격을 가로막는 그 순간, 좌수검에서 상상치도 못할 무게감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그의 검이 강제로 아래로 내려온다.
곧이어 이글거리는 도강을 머금고 있는 수룡왕의 일도가 그대로 남천왕의 몸을 세로로 갈라 버린다.
서거걱.
“어…… 떻게……?”
한순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남천왕이 불신 어린 눈으로 수룡왕을 바라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오만한 미소를 머금은 수룡왕이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내뱉는다.
“한 합으로 베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
“이만 가거라.”
단순히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약한 강기를 전개했다고?
저 말의 진실 여부는 비록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저 정도의 상처를 입은 몸으로도 그를 압도할 수 있는 괴물이라면, 애초부터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결국…… 여기까지인가.’
사실은 수년 전, 마교의 도움을 받아 암천막주 살왕을 쓰러뜨렸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도, 북천도, 서천도…… 그 누구도 진정 왕으로 불릴 만한 그릇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해 수년간 죽기 살기로 노력해 왔지만, 결국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촤아아아악!
털썩.
가공할 내력으로 붙들어져 있던 남천왕의 몸이 기어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의 숨이 끊어진다.
한때나마 음지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꿈을 꾸었던 남천왕이, 장강의 수룡왕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터더덕.
털썩.
“크흐음……!”
남천왕이 쓰러지기 무섭게 황급히 자신의 혈도를 짚어 상처를 지혈한 수룡왕이, 양 무릎을 바닥에 꿇려 앉으며 침음성을 흘린다.
근육과 내력을 이용해 상처가 벌어지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느라 애를 먹고 있던 차였다.
남천왕에게 전개한 강기에 위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
결국 마지막 일도를 휘두를 때는 상처를 막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리는 것조차 포기해야 했고, 그 결과 억지로 버티고 있던 상처가 벌어지고 말았다.
후두둑.
‘고작 음지의 버러지 하나를 잡는 데도 목숨을 거는 꼴이라니…….’
상성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무림강호에서, 그것도 그가 살아가는 사파에서 어디 원하는 상대하고만 싸울 수 있겠는가?
결국 지금의 그는 음지사왕이라는 놈들 중 하나를 감당하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저놈은…….’
한 손으로 상처를 누르며 고개를 돌리자, 가공할 위력의 절기를 펼친 후 시종일관 적들을 몰아붙이는 천신련주 사무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두 명의 화경급 고수를 상대로 한 치의 밀림 없이 도리어 압도적인 전투를 이끄는 모습.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와 호각을 다투던 녀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무위다.
“……어처구니가 없군.”
놈이 천재라는 것을 잘 알기에,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이 생기기 전에 승부를 보려 했다.
그 때문에 지난 수년간은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멀어진 격차를 바라보는 것뿐.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전쟁이 끝나면…… 저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린다.’
지금이라도 장강에 대기 중인 수하들을 끌어모아 저놈을 잡는 것에 모든 전력을 쏟아붓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계획대로 저 괴물 같은 놈을 도운 후, 놈이 사파의 패자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은가?
‘……어디 증명해 보거라.’
과연 저 괴물이, 그 누구도 품지 못했던 자신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인지.
사무현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수룡왕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콰과광! 쾅!
촤아아!
스거걱!
서천왕의 흉부에 붉은 피가 튐과 동시에 살암의 목선으로도 서천왕의 검이 스쳐 지나간다.
서로의 기량을 가늠해 보기 위한 노림수도, 방어를 통해 상대의 공격을 끌어들이기 위한 계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를 오가는 모든 검초는 일격으로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지독한 살검만이 존재한다.
쩌저저정!
촤지이익.
지이익.
“큭……!”
“이……! 애송이 놈이!”
검강과 검강이 맞부딪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는 살암과 서천왕.
전투가 시작된 이후 시종일관 검강의 위력에서 우위를 점했던 서천왕이었지만, 지금의 부딪침에서는 어느 한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욕지거리를 내뱉는 서천왕의 얼굴에 역력한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 놈……!’
처음에는 그의 좌수검을 읽어 내고 반응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녀석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공격을 성공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더니, 이제는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반격까지 성공시키고 있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고 있다.’
좌수검의 무서움은 상대해 보지 못한 경험의 부족과 생소함에서 나온다.
이름을 떨치던 수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생각지도 못한 좌수검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생소한 각도에서 날아드는 파격적인 검초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이에게 제대로 된 실력을 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니까.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익숙해질 줄이야……!’
무서울 정도의 재능.
대체 왜 그 어린 나이에 살왕의 후계자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심지어 어떤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장한 것인지, 서로의 급소만을 노리는 난전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검초를 교환하면 교환할수록, 만들어지는 생채기의 수가 자신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렇게 선뜻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서천왕의 귓가로, 여태껏 침묵을 지키던 살암의 한 마디가 흘러들어 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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