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계속 들어오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
“…….”
“설마…… 이제 와 겁이라도 집어먹었느냐?”
“이놈이……!”
살암의 도발에 두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가는 서천왕.
하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공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상대는 이미 자신의 공세에 익숙해진 상태.
조금씩 기울어지는 전세를 뒤집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전투를 유도해야 한다.
검을 비스듬히 아래로 내린 서천왕이 신중하게 자세를 낮추자, 살암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결국 끝까지 스스로를 넘지 못하는구나, 서천.”
“……뭐라?”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타고난 야성과 천부적인 전투 감각을 지녔으되, 스스로 한계를 정해 벽을 만들어 버린 이가 바로 서천이라고.”
오래전 살왕을 통해 들었던 신랄한 평가가 살암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서천왕의 눈에 핏대가 솟아오른다.
“이…… 놈이……!”
“나는 네게 충분히 기회를 주었다. 나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돌아가신 스승님을 대신해서.”
“그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참다못한 서천왕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시건방진 애송이 놈이! 어디 네까짓 게 살왕을 대신하는 것처럼 떠든다는 말이냐! 한쪽 팔을 잃은 나조차도 감당 못 하는 너 따위가!”
살왕은 강했다.
당시의 사천살 넷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그의 팔을 잘라 냈을 만큼.
아마 마지막 순간 마교 장로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십중팔구 북천의 목숨까지 데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고작 저런 애송이가, 살왕의 검을 흉내 내는 것으로 모자라 그와 같은 어투로 훈계를 내뱉고 있다.
그래 봤자 팔 하나를 잃은 자신조차도 감당 못 하는 반푼이가!
“오거라!”
그토록 지워 내고자 했던 살왕의 기억을 떨쳐 내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천왕이 소리친다.
“네놈이 정녕 살왕의 검과 의지를 담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증명을 해 보라는 말이다!”
“……그러지.”
서천왕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살암이 호흡을 고른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기파가 일어나자,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직감한 서천왕이 으스러질 듯 검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이놈……! 천뢰살광무를 펼칠 셈이냐!”
암왕으로부터 살왕에게 이어져 온 천뢰살광검법의 최고 절기.
하늘을 뒤덮는 폭우를 연상시키는 대단한 위력의 무공이지만, 살왕에게 수련을 받으면서 수십 차례는 더 견식했던 익숙한 초식이기도 하다.
“오냐! 어디 한번 보여 봐라!”
콰드득 콰드득.
천뢰살광무를 받아 내기 위해 가공할 내력을 집중시키며 서천왕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네놈이 정녕 우리 손으로 무너뜨린 암천막을 되살릴 그릇인지, 이 내가 직접 판단해 주마!”
서천왕의 외침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살암의 검이, 이윽고 부드러운 곡선을 한번 그리고는 서천왕을 향해 휘둘러진다.
스륵.
콰과과과과과.
살암의 검신을 타고 천여 가닥의 검기와 강기가 정면으로 뻗어 나간다.
그중 일부는 돌연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수백 가닥의 검기와 강기로 화해 서천왕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피할 길이 존재하지 않는 폭우 속에서, 검강을 머금은 서천왕의 검이 그의 몸을 감싸 안는 검막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윽고, 살암의 폭우가 서천왕의 신형을 뒤덮기 시작했다.
콰구구구구.
콰과과광! 콰과과광!
“크으윽……!”
주르륵.
검강으로 만들어진 검막의 위를 폭우가 두드린다.
천여 가닥의 검기와, 그 사이사이에 강기가 뒤섞인 폭우가.
가공할 정도의 압력과 폭발의 여파에 서천왕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렸지만, 저 무지막지한 폭우는 아직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 조금만 더 버티면……!’
천뢰살광무의 무서움은 피할 곳이 존재하지 않는 광범위한 무공인 까닭이다.
하지만 바꿔 말해, 하나로 집중된 위력은 그리 대단치 못하다는 것.
또한 상당한 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두 번만 사용해도 금세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 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과거 살왕과의 비무에서도 이런 식의 버티기로 몇 번이나 위기를 넘기곤 했었다.
콰과광! 쾅!
퍽! 퍼벅!
후두둑.
“크으읍……!”
강기의 폭발로 검막이 옅어지는 순간, 예리하게 파고든 검기가 기어이 그의 한쪽 허벅지와 발등을 뚫어 낸다.
이것으로 운신의 폭에 큰 제한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서천왕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 부상은 살왕과의 전투에서도 몇 번이나 겪어 봤던 일이 아닌가?
이 끝없는 폭우를 견뎌 내고 고개를 들면 반드시 그에게도 기회가…….
타다닷.
“……!”
잘못 들었을까?
사방이 검기와 강기로 자욱한 폭발음 속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다니?
반신반의한 얼굴로 서천왕이 고개를 들자, 검기의 폭우 속을 헤쳐 온 피에 젖은 살암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푸른 검강이 머금어진 검을 치켜들고 그를 내려다보는, 시릴 정도로 냉정한 그 얼굴이…….
쩌저저정!
스거걱.
“……!”
아차 하는 순간 검막을 파괴하고 그의 몸을 가르는 끔찍한 감각이 서천왕에게 찾아 들었다.
그리고 흘러내린 핏물로 붉게 변한 세상 속에서 그는 보았다.
살암의 위로 겹쳐진 또 다른 이의 얼굴.
냉정함 속에 질책과 안타까움을 함께 담은 저 얼굴은, 다름 아닌 살왕, 살령의 얼굴이다.
“아…… 안 돼…….”
“…….”
“죄…… 죄송합니다…… 막주…….”
촤아아아악!
죽음을 앞둔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온 참회의 한 마디와 함께, 뒷걸음질 치려던 서천왕의 몸이 기어이 반으로 갈라진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긴 숨을 내쉰 살암이, 피투성이가 된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보며 자소 섞인 미소를 머금는다.
‘……아직도 겨우 이 정도구나.’
평생 검을 쥐어온 오른팔을 잃어, 사천살 중 유일한 퇴보를 겪은 이가 바로 서천이다.
고작 몇 년 동안 익힌 좌수검으로 그를 몰아붙였을 만큼 재능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결국 지금의 자신은 아직 과거의 사천살을 휘하에 둘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른 싸움은 어찌 되었지?’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싶었지만 아직은 더 싸워야 한다.
그렇게 살암이 고개를 돌리자, 남천왕을 일대일로 쓰러뜨린 것으로 보이는 수룡왕과 아직도 전투를 이어 가고 있는 사무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야말로 일방적이기 그지없는 저들의 싸움은, 더 이상 전투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단계를 지나가고 있었다.
***
쩌정! 쩡! 콰과광!
도강과 도강이 맞부딪치며 연신 맹렬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무복은 넝마가 되었고 머리칼은 산발이 된 북천왕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사무현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다.
스팟!
쩌저저정!
도초와 도초의 연결이 물 흐르듯 부드럽다.
한 합 한 합이 맞부딪쳐질 때마다 울려 퍼지는 폭음과 충격파는, 그의 도에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심지어 그만한 무게감을 지닌 초식의 연계 속에서도, 북천왕의 도는 연신 화려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스스스.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다섯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낸 북천왕의 도격이 사무현을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무현은 그저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을 뿐.
그 어떤 상처나 충격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크아아아!”
그 순간 북천왕의 뒤쪽에서 펄쩍 뛰어오른 검은 인형.
양손에 수강을 머금은 동천왕이 흡사 짐승처럼 몸을 날려 오자, 날카롭게 눈을 번뜩인 사무현이 돌연 방어를 거두고 북천왕의 일도를 강하게 맞받아친다.
콰과광!
휘리릭.
촤지이이익.
“……크윽!”
사무현의 일도에 실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북천왕의 신형이 석 장 가까이 뒤로 밀려난다.
합공을 펼치려 했으나 순식간에 혼자가 되어버린 동천왕이 다급히 양손을 교차시킨다.
그러자 그의 열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각기 다른 사선으로 사무현을 향해 쏘아져 날아든다.
쐐애애액!
스윽.
쩌저저저정!
복잡하게 날아드는 강기의 세례에, 가만히 천마도를 머리 위로 치켜든 사무현이 흔들림 없이 도를 내리긋는다.
천마도법의 일 초식 천하양단.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단번에 잘라 버리 듯, 사무현을 향해 쇄도하던 십여 줄기의 강기가 한꺼번에 반으로 절단된다.
그리고.
콰과광!
강기에 뒤이어 수강으로 사무현의 천마도를 후려치는 동천왕.
그 무게감이 상당했는지 사무현의 천마도가 일순간 뒤쪽으로 밀려난다.
그 틈을 비집고 동천왕이 더더욱 거리를 좁히려던 그때, 사무현의 일각이 동천왕의 대퇴부를 후려 다.
콰앙!
“큭……!”
꽤나 묵직한 충격을 받았는지 연이은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동천왕.
그 순간 사무현의 도신에 붉은 화기가 치솟더니, 그대로 동천왕을 향해 휘둘러진다.
부웅.
콰과과과과.
“뭐라……!”
콰구구구구.
어느새 만들어진 거대한 붉은 화룡이 입을 쩍 하니 벌리고 동천왕의 신형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피하거나 맞받아치는 것도 이만한 거리에서는 불가능.
동천왕을 집어삼킨 화룡이 꿈틀거리며 전방을 휩쓸고 나아간다.
그리고 잠시 후…….
쩌적.
화룡의 움직임이 다소 둔해지는가 싶더니, 머리 부분을 꿰뚫고 날카로운 푸른 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쩌저저정!
콰과과과과광!
“캬아아아아!”
절규하는 듯한 괴성을 내지르며, 거의 십여 자에 이르는 수강을 끌어 올린 동천왕이 화룡의 머리부터 몸통을 십여 갈래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 폭발과 함께,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동천왕의 신형이 일곱 장 가까이 허공을 날아 볼품없이 맨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촤지이이이익.
“……크헉! 쿨럭!”
여기저기 찢겨나간 무복과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붉은 핏물.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치는 저 모습만 보더라도, 사실상 더 이상 전투를 하기에 불가능에 가까운 몸 상태다.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에서 동천왕마저 쓰러져 버리자, 멍하니 서 있던 북천왕이 입술을 깨물며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본다.
‘……빌어먹을.’
수룡왕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쓰러진 남천왕의 시신, 그리고 살암과의 대결에서 패한 것으로 보이는 서천왕의 시신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어찌 보면 가장 눈엣가시 같았던 경쟁자들을 제거한 셈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사실상 이들의 전투는 패배의 기색이 짙어졌다는 사실이다.
‘어찌하여 이리되었다는 말인가?’
천신련이 진정 음지 전체를 상대로도 싸워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집단이었던가?
……아니, 그럴 리 없다.
한때 사파 전역을 정벌해 음사 통합마저 진행하려 했던 것이 과거 암천막의 저력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살왕이 죽고 암천막의 전력이 넷으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음지 자체가 약해지고 만 것이다.
겨우 사파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천신련의 세력마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꽈악.
‘……퇴각밖에 방법이 없나.’
물론 수하들을 모조리 동원해 집단전을 펼친다면 아직 뒤집을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박한 가능성일 뿐.
이미 우두머리들 간의 전투에 패해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음지 무사들이, 과연 천신련주를 선두로 한 천신련 무사들에게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지금이라도 본거지로 돌아가, 서천과 남천의 남은 전력을 모조리 흡수해 하나의 음지 세력을 구축한다면 천신련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전투를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북천왕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하던 그때였다.
쓰윽.
“어디 가냐?”
“……!”
“이제 네 차례인데.”
동천왕에게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던 천신련주 사무현이, 북천왕의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도신을 겨누며 물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압도적인 위압감과 날카로운 기세가 그의 피부를 저미듯 압박해 온다.
한 걸음만 잘못 떼도 곧바로 공격이 날아들 것임을 직감한 북천왕이 천천히 도신을 내리며 말을 꺼낸다.
“……여기까지만 하지.”
“뭐?”
“이번 전투에서 우리의 열세를 인정하겠다. 이대로 계속해 봐야 승리는 어려울 듯하군.”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사무현의 얼굴을 마주하며 북천왕이 어깨를 펴고 말을 잇는다.
“어차피 처음부터 목적은 동천왕이 아니었나? 동천왕의 목숨과 음지의 동쪽 지역을 내어줄 테니, 전쟁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하!”
북천왕의 제안에 할 말을 잃은 사무현이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본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생각해 봐라. 당장 네놈들이 전쟁의 승기를 잡은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만한 수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인다면 네놈들이 원하는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나?”
북천왕이 턱 끝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다가올 전투를 위해 대기 중인 수천 명의 음지 무사들이 남아 있다.
이에 사무현의 눈이 가늘어지자, 북천왕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피차 끝까지 갈 이유가 없는 전쟁이다. 동쪽 음지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면, 남쪽 음지의 일부도 함께 내어 줄 용의가 있다. 어떤가?”
“이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쓸모없어진 동료를 가차 없이 팔아넘기는 북천왕의 모습에 이를 악무는 사무현.
그가 막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그때, 지금껏 사무현의 옆에 서 있던 천마의 음성이 그의 말을 가로막는다.
“잠깐, 놈의 청을 받아들여라.”
“……뭐?”
“뭔가가 있다.”
팔짱을 낀 채 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음지 무사들의 진형을 노려보는 천마.
그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사무현이 머뭇거리고 있던 그때, 맨바닥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던 동천왕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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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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