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저벅저벅.
부웅.
덤덤히 발걸음을 옮기던 단아란이, 팽팽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사무현과 십삼 대 천마의 강기를 향해 일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그녀의 검신을 타고 날아간 한 줄기의 강기가 그대로 멸천장과 맞부딪치며 폭발을 일으킨다.
쐐애액!
콰과과과광!
콰구구구구구.
천마의 멸천장이 단아란의 강기에 의해 폭발하며, 사무현의 멸세천마도 또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형체를 무너뜨린다.
삽시간에 인근을 뒤덮는 거대한 먼지 기둥이 솟구쳐 올라오고, 잠시 후 그 안에서 기침을 토해 내며 엎드린 사무현이 모습을 드러낸다.
“쿨럭! 쿨럭! 커헉……!”
……진짜 죽겠다.
내력이 어지간히 심각하게 흔들렸는지 계속해서 토혈이 이어진다.
그야 그럴 수밖에.
멸세천마도가 아무리 빼어난 절초라고 하더라도 현경…… 아니, 탈마(脫魔)에 이른 고수의 강기를 받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멸천장 또한 명색에 천마신공이라는 희대의 무공이 자랑하는 절기.
오히려 지금까지 버티고, 단아란의 등장으로 목숨까지 구명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쿨럭……! 저, 저 정신 나간 여자가……!”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생각지도 못하게 나타나 준 것도, 그가 죽지 않도록 도와준 것도 모두 감지덕지할 일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안전하게 그를 도울 방법이 정말 없었다는 말인가?
서로의 절기가 필사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것을 빤히 아는데 이런 과격한 방식을 썼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아서 대충 치워 버리려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사무현의 머리에 떠오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녀 정도 되는 고수에게 그런 선택지가 없었을 리 만무하니까.
‘그래도 살긴 살았네.’
천마가 뒤를 계획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정도는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전투가 정말로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면 천마는 반드시 사무현에게 도망을 강요했을 테니까.
한데 이상하게도 맞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가, 싸우고 버티다 보면 반드시 무언가 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듯해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버티고 버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등장이 전투의 판도를 바꾸어 버렸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사무현이 십삼 대 천마와 단아란을 번갈아 보고 있던 그때.
“살아 있으면 걸리적거리지 말고 저 멀리 물러나 있으렴, 오라버니의 제자야.”
유들유들하게 들려오는 단아란의 음성에 자연스레 이가 갈렸지만 결국은 그뿐이다.
저 소교주…… 아니, 십삼 대 천마와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무현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더 이상 놈과 싸우는 것은커녕, 저들의 전투에 잘못 휘말리기라도 하면 뒤를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다.
“너는 이만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다.”
안 그래도 몸을 일으키려던 사무현이 천마의 한 마디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려고 했어.”
괴물을 막는 일은 괴물이 해야 할 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등장으로 균형이 맞춰졌으니, 이제 그가 할 일은 따로 있다.
바로 천신련의 본대를 돕는 일.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사무현이 막 수룡왕과 살암의 전장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콰과과과광!
“큭……!”
거친 폭음과 함께 태도를 치켜든 수룡왕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남천왕과의 전투 때 입었던 흉부의 상처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온다.
거의 한계에 다다랐던 상태로 마교의 장로와 전투를 벌이던 수룡왕이, 이윽고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끝이다.”
검붉은 강기가 머금어진 조암의 호조에서 아지랑이 같은 검은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제때 닿아 줄지 알 수 없지만 사무현이 전력을 다해 강기를 전개하려는 순간이었다.
스스스스.
“……음?”
수룡왕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난데없이 그들 사이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웬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건 무슨……?’
적의 목숨을 끊는 와중에 꽃잎 따위가 날아드는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하지만 조암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꽃잎에 정신을 집중했다.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저건 분명 평범한 꽃잎이 아니다.
단순한 꽃잎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무언가가 달랐다.
그 순간, 날아든 꽃잎이 자신의 몸에 닿을 만큼 가까워지자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낀 조암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크게 호조를 휘두른다.
스팟!
쩌저저정!
콰과광! 콰광!
“크윽……!”
호조와 꽃잎들이 맞부딪치기 무섭게 어울리지 않는 큰 폭발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조암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꽃잎의 정체를.
‘꽃…… 매화(梅花)…… 매화 형태의 강기!’
까드드득.
“화산(華山)! 검존(劍尊)이 왔구나! 어디냐!”
“쯧…… 그놈 참, 시끄럽기는.”
저벅저벅.
대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붉고 긴 장검 한 자루를 어깨에 걸쳐 메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수룡왕을 지나쳐 그의 앞에 서는 중후한 외모의 사내.
화산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 검존(儉尊) 무태(武太)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수룡왕이라 했나?”
“그…… 렇습니…… 다만…….”
“지금까지 고생 많았네. 이제부터는 우리들이 맡을 터이니, 이만 물러가 상처를 치료하게.”
“우리…… 라고 하셨습니까?”
아무리 정파와 사파의 골이 깊다고는 하나, 검존은 수백 년 전 마교와의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전설 중 하나다.
어색하게나마 경어를 통해 예를 갖추며 질문을 던지던 그때, 살암과 구마 장로의 전장 쪽에서도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려온다.
콰과과과광!
“이……!”
살암을 공격하기 위해 전개한 강기가 허공에서 상쇄되어 폭발하자, 구마의 눈이 분노로 부릅떠진다.
상대는 이미 공력에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태.
더군다나 환검과 쾌검을 섞어 쓰는 놈에게 자신의 강기를 일격에 분쇄할 만한 파괴력이 존재할 리도 없다.
“누구냐! 감히 누가 이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감히라…… 까마득히 어린 마교놈에게 듣기에 썩 좋은 소리는 아니군.”
저벅저벅.
살암을 향해 날아들던 강기를 상쇄시킨 것으로 판단되는 사내가, 폭발의 여파를 헤치고 걸어 나와 구마장로를 향해 검 끝을 겨눈다.
“하기야, 마교 놈들에게 예(例)를 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또 없겠지만.”
“너는……!”
무당의 문양이 새겨진 백색 무복.
새하얗게 센 긴 머리와 수염과는 어울리지 않게 사십 대 남짓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스스로를 날카롭게 벼리고 벼린 듯, 검 끝을 상대에게 겨누고 선 모습 자체가 이미 검(劍), 그 자체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없이 단단하며, 한없이 예리하고, 한없이 무겁다.
현 무림에서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기에, 구마장로의 얼굴이 짙은 증오심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무천검제(武天劍帝)로구나!”
“그래, 내가 천광(天光)이다.”
마교가 중원을 지배했을 당시, 파마불제 신불과 함께 교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결국 마지막 전쟁에서는 당시 장로들 중 하나를 죽였다고 알려진 인물.
즉, 무천검제 천광은 무신과 파마불제와 더불어 현 마교에서 가장 증오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큭큭…….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날을 아주 잘 잡았구나……! 교의 오랜 숙적 중 하나를 이 손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분노와 희열이 함께 치밀어 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구마장로의 몸이 흥분으로 떨린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짙은 살기에 무천검제 천광의 입가에도 서늘한 미소가 번진다.
“……그래, 나도 이 나이에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괜한 발걸음을 한 건 아닌 것 같구나.”
드드드드.
“자…… 오거라.”
본격적으로 내력을 끌어 올리는 천광을 중심으로 대지가 갈라지며, 그의 검에 여덟 자에 가까운 푸른 강기가 머금어진다.
“무당의 검이 어떤 것인지, 너희 마교도들에게 확실하게 되새겨 주마.”
“킥……! 어디 할 수 있다면!”
스팟!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만큼 거대해진 구마장로의 권강과, 태극의 문양을 그리는 무천검제의 강기가 맞부딪치며 인근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이,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거물들의 난입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태상장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다 끝난 싸움이었다.
아니, 싸움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일방적으로 저들을 학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데…….
‘천무신녀라니……!’
현 중원에서 무신과 더불어 유일하게 십삼 대 천마에 맞설 수 있는 전력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
심지어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여겨졌던 무당과 화산의 전대고수들까지!
이래서는 그들의 손으로 음지와 사파를 무력화 시키려던 계획이 모조리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다.
‘아니…… 그건 안 될 말이다!’
이 대계(大計)를 위해 그가 얼마나 오래도록 큰 그림을 그려 왔던가?
초대 천마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기다림까지 간청하며 진행한 계획이었다.
한데 이게 이렇게 허무하게 막혀 버린다면 교내에서 그의 입지는 사실상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 여지는 있다!’
저 수룡왕과 암천막주는 이미 전투 불능에 가까울 만큼 지쳐있다.
천신련주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여기는 아직 투입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
“……이 나이를 먹고 일선에서 싸우게 될 줄은 몰랐건만.”
콰드드득 콰드드득.
전투를 벌이기로 마음먹은 태상장로의 손이 구부려지며 그를 중심으로 대지에 균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우선 천신련주, 저놈부터다!’
상대하기 성가신 것일수록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하기 전에 잡아 둬야만 한다.
생각을 마친 태상장로가 그대로 자리를 박차며 전장으로 몸을 날린다.
파밧!
‘일격으로 끝내 주마!’
허공에 뜬 태상장로의 양손에 가공할 정도의 마기가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노화를 시작한 그의 육체는 전성기라 부르기 어렵지만, 그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축적한 내력만큼은 교내에 천마와 소교주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정도!
그렇게 그가 자랑하는 혈수광폭장(血獸狂爆掌)을 막 내지르려던 순간.
“아미이이이이이!”
인근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중후한 내력을 담은 외침이, 전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방향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타부우우우우울!”
콰과과과과과과.
“……!”
태상장로의 측면에서 날아드는 거대한 크기의 백색 강기.
흡사 부처의 손바닥을 연상케 만드는 거대한 강기는, 소림의 전설적인 무공 중 하나인 여래신장이다.
“이이……! 파마불제!”
이를 통해 상대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깨달은 태상장로의 눈에 핏발이 선다.
“네놈까지 왔더냐!”
태상장로의 양손이 여래신장을 향해 뻗어지며 거대한 짐승 머리 형태를 한 강기가 쏘아져 날아간다.
쩌저저저정!
콰과과과광!
우렁찬 폭발과 함께 태상장로가 전개한 혈수광폭장이 여래신장에 의해 파훼된다.
하지만 그러고도 힘이 남았는지, 여래신장은 조금 전까지 태상장로가 있던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타닷.
“이놈……!”
저벅저벅.
“아미타불.”
“시, 신불 스님!”
“신불 스님이시다!”
그들의 진형과 제법 떨어진 곳에서부터 빈 술병 하나를 들고 전장을 향해 걸어오는 신불의 모습.
그를 알아본 몇몇 연무학관도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신불의 두 눈은 흔들림 없이 태상장로 한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미타불…… 본승의 남은 여생은 술과 함께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로이 보내고 싶었는데…….”
부웅.
파삭.
들고 있던 빈 술병을 뒤쪽으로 집어 던진 신불이, 길게 늘어진 승포의 소매를 접어 올린다.
“일전의 일로 짐작은 했지만, 기어이 이 손에 마교도의 피를 묻힐 일이 생기고야 마는도다.”
“이……! 땡중 놈이……!”
다가오는 신불을 바라보며 태상장로가 이를 간다.
거의 팔성의 공력을 담은 혈수광폭장이었다.
육체의 노화로 젊은 장로들에 비해 한 수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그이지만, 공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한 그의 절기가 저토록 무력하게 파훼되어 버리다니!
‘하필이면 소림이라니……!’
소림의 무공은 정도(正道) 무공의 정수다.
사마(邪魔)를 제압하는 데 능한 소림의 무학을 수 백년이나 갈고 닦았으니, 같은 수백 년이라 해도 마공을 길을 걸어온 자신보다 상성 상 우위에 있다고 봐야 옳다.
심지어 그가 익힌 것은 천마신공도 아닌 일개 상급 마공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이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면 십중팔구 패하는 쪽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던 태상장로가, 이윽고 일그러진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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