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어둡다.
그리고 편안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잠이라도 든 듯 온몸이 나른하다.
아…… 이게 진짜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편안한 잠인…….
“저런……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구나.”
“…….”
“그쯤 했으면 일어나거라,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 있을 셈이냐?”
……염병, 그럼 그렇지.
언제나처럼 단잠을 내버려 두지 않는 천마의 음성에, 내심 욕지거리와 함께 눈을 뜬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김없는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어?”
평소처럼 천마를 마주한 사무현이, 벌떡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야…… 너 뭐냐?”
“응? 무엇이 말이냐?”
“너…… 몸이 흐린데?”
그랬다.
어김없이 평소와 같은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상태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사무현이 처음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 때처럼, 천마의 몸은 이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반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적어도 이공간에서만큼은 이런 적이 없었음에도.
“설마…… 봉혼진이 갑자기…….”
“쯔쯧, 넘겨짚지 마라. 갑자기 네 무위가 현경으로 오른 것도 아닌데, 목숨을 건 전투 한번 겪었다고 봉혼진이 얼마나 더 강해지겠느냐?”
“아니…… 그럼 대체 왜 그러는데? 너 이 새끼, 이제 보니 안색도 안 좋고…….”
“본좌의 안색은 원래부터 이랬다. 수선떨지 말고 우선 좀 놓거라.”
어느새 자신이 천마의 양팔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무현이 멋쩍게 그를 놓자, 쓴웃음을 머금은 천마가 그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봉혼진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본좌의 힘이 빠진 것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쉬고 싶지만…… 역시 이야기는 하고 쉬는 것이 옳을 듯해서 말이다.”
“얼씨구? 사람 됐네?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가만. 그런데 힘이 빠졌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전혀 기억나지 않느냐? 너와 초대의 싸움 말이다.”
“나와 초대? ……아!”
천마의 말에 그제야 기억을 떠올렸는지 사무현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마가 느릿하게 말을 잇는다.
“너는 초대와의 싸움에서 졌다. 겨우겨우 추혈장을 베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곧바로 날아든 반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지. 그 결과 지금 네 육신은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하.”
한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사무현이 헛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다.
어째서 잠시나마 잊고 있었을까?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상황에서 단아란은 사실상 전투 불능의 상태였다.
그가 쓰러짐으로 인해 뒤이어 펼쳐질 상황이 눈에 선한데, 멍청하게 그 치열하던 상황을 머리에서 지워 버리다니.
스스로의 한심함에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사무현은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후우…… 다 기억났어. 그러면 이제 어떻게 깨어나지?”
“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깨어나야 해. 혹시 뭐 좋은 방법 없냐?”
사무현의 반응이 예상외였는지 천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지금 깨어나서 무얼 하려는 것이냐?”
“뭘 물어? 당연히 죽기 살기로라도 다시 싸워야지.”
“그 몸으로? 초대와 너 사이의 격차를 분명히 느끼지 않았느냐?”
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사무현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진다.
“그럼, 상대도 안 되니까 그냥 다 포기하라고?”
“…….”
“어차피 이대로 뻗어 있어도 뒈질 텐데, 어떻게든 일어나서 우리 애들은 살려야 할 거 아냐!”
“두렵지 않느냐?”
“뭐? 지금 뭐라고 했…….”
반사적으로 반박하려던 사무현의 눈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천마의 얼굴이 들어온다.
“두렵지 않느냐는 말이다. 초대와 다시 맞서는 것이.”
“……아니, 천마야. 너 왜 그러냐? 대체 왜 자꾸 당연한 걸 물어?”
“…….”
“당연히 무섭지! 그 새끼 얼굴만 쳐다봐도 오금이 풀리고 다리가 휘청거릴 지경인데!”
“그럼 왜…….”
“피할 수 없으니까!”
천마의 말을 끊고 소리친 사무현이 곧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내가 도망가면 우리 애들 못 지켜. 그러니까…….”
“…….”
“네가 나 좀 도와줘라.”
진지한 사무현의 부탁.
이에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천마가, 이윽고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본좌의 전승자답구나”
“…….”
“하나, 너무 서두를 것 없다. 어차피 밖의 상황은 끝났으니.”
“뭐?”
“말 그대로 위기를 넘겼다는 말이다. 네 육체가 자연스레 깨어날 때까지 별일 없을 테니, 너무 염려치 않아도 된다.”
“너 이 새끼…… 설마…….”
“그래, 네 짐작대로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무현을 향해, 천마가 당당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육체를 썼다. 초대를 막기 위해서.”
“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사천방 애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천신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중원의 이름난 고수들은 물론 그 망할 고문까지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빙의를 해서 초대랑 싸웠다고?
“이 새끼가 누굴 엿 먹이려고! 너, 혹시 무슨 이상한 소리 한 거 아니지?”
“이상한 소리를 한 적은 없다. 그저 초대와 몇 마디 말을 나눈 것이 전부이니까.”
“몇 마디 말?”
“백 일 안에 목을 베어 줄 테니, 이 자리에서는 아무도 죽이지 말고 물러나라는 협상을 했지.”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백 일 안에 목을 베어 준다고?
“지금…… 설마 그 협상을 듣고 초대가 물러났다, 뭐 그런 말을 하는 거냐?”
“그래, 바로 그것이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하다.
자신의 목을 베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러나다니.
저런 말로 협상을 건 칠 대 녀석이나, 그걸 또 받아들인 초대라는 녀석이나 정상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놈들인 게 분명하다.
할 말을 잃은 사무현이 입을 벙긋거리며 서 있자,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마가 말을 잇는다.
“해서 결론인즉, 놈과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백 일 안에 현경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뭐?”
젠장, 놀랄 게 더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놀랄 게 남아있었네.
“아니…… 이 새끼야, 현경이 뉘 집 개 이름이냐? 내가 어떻게 백 일 만에 현경이 돼! 이번에도 진짜 죽다 살아났는데!”
“쯧쯧…… 너는 왜 가끔 스스로를 속이려 하는지 모르겠구나. 정말, 진심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역시, 너도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입을 다문 사무현의 반응에 천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럴 테지. 살암이야 화경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더 강해진 수룡왕을 다시 만났을 때도, 음지사왕과 싸웠을 때도 이상하리만큼 약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공격이 필요 이상으로 번잡스럽고, 깨달음의 수준도 낮아 보이지 않더냐?”
정곡을 찌르는 천마의 물음에 사무현이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녀석의 말대로다.
음지사왕이나 다른 녀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불과 몇 년 전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수룡왕까지 약해 보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이 새끼, 진짜 나한테 몇 년간 무슨 짓을 한 거야?’
지난 몇 년간 사천방도들을 강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혹독하게 굴려지고 성장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자신도 천마 녀석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사무현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던 그때, 그를 향한 천마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지금의 네게 벽을 허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십삼 대와의 싸움을 떠올리고, 초대와의 전투를 떠올려 보거라. 그리고, 수도 없이 너와 마주했던 본좌의 도를 떠올리거라. 그 모든 것들이 네게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후우…… 이 새끼야, 그게 말처럼 쉽냐?”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너라면, 본좌가 없더라도 제 갈 길 정도는 찾아 걸을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게…… 가만. 너 어디 가냐?”
천마의 말에서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사무현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그를 바라본다.
이에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려 보이며 천마가 대답한다.
“가기는 본좌가 어디를 가겠느냐? 봉혼진 덕분에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처지인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제는 그저 쉬어야 할 때가 된 것뿐이니라.”
“끄응…….”
천마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리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할 말이 없어진 사무현이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번에는 얼마나 걸리는데? 백 일 안에는 회복되는 거지?”
“글쎄……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번은 조금 경우가 다를 것 같구나.”
“다르다니, 뭐가?”
어쩐지 천마의 입가에 머금어져 있던 미소가 조금 옅어진 것 같다는 것을 느낀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굳힌다.
본능적으로 녀석의 이어질 대답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다는 것을 느낀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사무현을 향해 이윽고 천마의 음성이 이어졌다.
“본좌가 일전에 네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이렇게 봉혼진이 강해진 이상, 더는 네 몸에 빙의할 수 없다던 이야기 말이다.”
“……그랬지.”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제 봉혼진 속에서 본좌는 아무리 쉬어도 힘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즉 바꿔 말해…… 네 육체에 빙의해 싸우느라 소모했던 힘을 채울 방도가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
“지금까지처럼 지속적으로 의식과 형체를 유지하려면 이를 위한 최소한의 힘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에 네 몸에 빙의하기 위해 본좌는, 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아껴 왔던 마지막 힘을 소진했지. 이제 머지않아 봉혼진을 피해 만든 이 공간은 사라질 것이고, 본좌는 이제 앞으로 긴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천마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무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간다.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마지막 힘을 소모했다고?
그 말인즉, 이제 더 이상 천마가 지금처럼 활동할 수 없다는 의미.
바꿔 말해, 천마와 마주하게 되는 것도 지금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본좌는 만족한다. 바로 너를 통해, 본좌가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만해.”
“물론 너의 대성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너는 분명 잘 해낼 수…….”
“그만하라고, 이 천마 새끼야!”
드넓은 어둠 속에서 사무현 마른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이에 천마가 입을 다물자, 몇 번의 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사무현이 붉어진 눈으로 천마를 응시한다.
“너 이 새끼…… 누구 마음대로 이딴 짓을 하래? 이런다고 누가 고마워할 것 같냐!”
“고마운 쪽은 오히려 본좌이니라.”
그 말과 함께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살짝 허리를 숙여 사무현과 눈높이를 맞춘다.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너는 본좌에게 있어 최고의 전승자였다. 기나긴 전생을 통틀어 기뻤던 시간보다, 네 녀석을 만난 수년 간의 기쁨이 몇 곱절은 더 크고 가치 있었느니라.”
스스스스.
그 천마의 말을 끝으로, 어둠속 저편에서 바람 같은 것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오래전, 장군귀로 알았던 혈마가 소멸했을 때와 같다는 것을 떠올리자 사무현의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는다.
“야…… 너 이거…….”
“이런…… 시간이 벌써 다 된 모양이로구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처음 보는 아쉬운 미소를 짓는 천마.
그 순간, 사무현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모든 감정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야! 자, 잠깐만 멈춰봐! 나 너한테 할 말이……!”
“너무 아쉬워할 것 없느니라.”
스스스스스.
점점 더 강렬해진 바람이 사무현의 몸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천마와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메아리와 같이 울려 퍼지는 천마의 음성이 사무현의 머릿속에 들려온다.
“네 도(刀)에는 본좌의 흔(痕)이 새겨졌으니, 본좌가 너와 함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새끼야! 잠깐만 멈춰 달라고! 나, 네 이름도 모르잖아 이 새끼야아아아아!”
파아아앗!
비명과도 같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스스로의 음성.
그리고 잠시 후, 더없이 맑은 하늘과 함께 그를 내려다보는 막휘와 손익패의 얼굴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혀, 형님! 깨어나셨습니까?”
“정신이 드십니까?”
“……아.”
멍한 눈으로 막휘와 손익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사무현.
잠시 후 그가 한 손을 들어 스스로의 얼굴을 가리자,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참을 수 없게 터져 나온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읍.”
“…….”
“끅…… 끄으읍…… 흐으으…… 어어억…….”
애절하던 그의 울음이 곧 고통으로 얼룩진 오열로 변한다.
‘위혜보(位慧甫)다.’
어둠 속에서 들려왔던, 마지막 천마의 한마디가 생생하게 사무현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잘 지내거라, 나의 전승이자이자…… 유일한 벗이여.’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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