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형님, 하면 내일 뵙겠습니다.”
달칵.
“후우…….”
조심스레 방문을 닫은 막휘가 곧 어두워진 얼굴로 사무현의 처소에서 멀어진다.
긴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의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단아란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좀 어떠냐?”
“……여전하십니다.”
단아란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막휘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괴로운 얼굴을 한다.
“대체 무슨 일로 저러시는지 말씀이라도 해 주시면 좋으련만…….”
“끄으으응…….”
“오늘도 별 소득 없이 지나가고 말았구나.”
좌절하듯 앓는 소리를 하며 주저앉는 단아란의 모습에,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 기대어 있던 무천검제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내 방식이 나았던 것 같은데…….”
“말씀 조심해 주십시오.”
무천검제의 말에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막휘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제가 여태껏 형님을 보필하며, 저렇게까지 괴로워하시는 것을 뵌 적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형님의 심신을 어지럽게 한다면, 바로 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말을 꽤나 거슬리게 하는구나.”
막휘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뜬 무천검제가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등을 떼어 내며 분위기를 바꾼다.
“지금 내가 너를 베지 않는 것도, 그리고 저 련주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내 스스로 한계를 넘어설 만큼 인내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나를 자극하지 말거라.”
“하, 그 인내하시는 이유도 결국 무신님 때문 아니십니까? 무서우셔서.”
“이놈!”
콰앙!
막휘의 빈정거림에 참다못한 무천검제가 기세를 흩뿌리며 소리친다.
“더는 못 참겠구나!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감히!”
“그, 그만하시게! 천 대협!”
“아미타불……!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자네가 참으시게!”
검존과 신불이 황급히 무천검제를 붙잡아 뜯어 말리자 단아란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막휘를 노려본다.
“너, 이 새끼. 말조심 안 할래? 아무리 천광 오라버니가 말을 좀 함부로 했대도 까마득한 후배가 그렇게 대놓고 들이받아?”
“선배라고 들이받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어차피 사천방에서는 방주 형님 이외에는 누구라도…….”
쾅!
……털썩.
“아니, 이 새끼가 그런데.”
막휘가 반응할 틈도 없이 섬광같이 주먹을 뻗어 턱을 돌려 버린 단아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앞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바닥에 엎어진 막휘의 멱살을 움켜쥔다.
잠시 후 그녀에게 들려 축 늘어진 막휘의 안면으로 단아란의 주먹이 연거푸 날아든다.
“이게 어디서! 고문님한테! 말대답이야! 뒈지려고!”
쾅! 쾅! 쾅! 쾅!
“……아미타불.”
까마득한 후배를 경고 한 마디 없이 기절시켜 버리고 두들겨 패는 단아란을 바라보며 신불이 조용히 염불을 읊조린다.
‘어찌 사람이 이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날이 갈수록 성질이 더러워지기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선천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환경의 문제인가?
분명 살아생전의 천원문주님이나, 지금은 죽은 둘째 오라버니 월광(月光)은 나름대로 인망이 있던 이들로 기억하는데.
‘하기야……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만 따지면 맞는 쪽도 마찬가지인가.’
사무현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저 마구니에게까지 개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연무학관에 있었을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일인데.
막휘 정도 되는 영민한 이가 배짱만으로 저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으니, 십중팔구 사무현의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아미타불…….”
마교와의 전쟁이 끝나고 사천방으로 돌아온 후,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칩거에 들어간 사무현.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디 그의 마음에 한시라도 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하며, 조용히 염불을 읊조리는 신불이었다.
***
“하…….”
술 내음만 맴도는 어두운 방 안.
웃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허탈한 숨소리가 적막 속에 울려 퍼진다.
탁.
한쪽 벽면에 쭈그려 등을 기댄 채, 텅 빈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는 사무현.
이곳에 온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알 수 없다.
몇 번인가 그의 방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 것 같지만 이미 시간을 헤아리는 것은 잊었으니까.
그저 막휘가 가져오는 술을 마시고, 빈 술병을 방 한쪽 구석에 던져 두면서 스스로 폐인과도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 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던 나날들을 모조리 내팽개쳐버린 채 며칠이나 지났지만, 당장이라도 날아들 것 같은 천마의 잔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전과 같았다면 진작 튀어나와 귀가 떨어지도록 시끄럽게 굴었을 녀석이.
내력을 억누른 채 술을 마시며 몸을 망가뜨려도, 술에 취해 잠이 들어도……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어떤 소리도.
쾅!
콰드득.
“……빌어먹을 새끼.”
감정적으로 내려친 사무현의 주먹이 맨바닥을 부순다.
내력도 없이 있는 힘껏 내리쳐진 주먹이지만 금강불괴에 이른 그의 주먹은 멀쩡하기만 하다.
‘……제 할 말만 다 하고 가버리다니.’
주먹을 움켜쥔 사무현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십만대산에서 삼 년, 연무학관에서의 일 년, 그리고 천신련에서 삼 년 하고도 반.
칠 대 천마…… 위혜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녀석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칠 년 반의 시간을 함께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서로 티격태격하더라도,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유대감이 그들 사이에 쌓여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그렇게 믿었던 놈이 자신을 두고 사라져 버렸다.
제대로 한마디 인사조차 할 틈도 주지 않고.
“못했는데…….”
고맙다는 말.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어 고맙다는 말.
몇 차례나 그의 목숨을 살려 주어 고맙다는 말.
그를 전승자로 선택해주어 고맙다는 말.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가족이자 벗이 돼 주어 고맙다는 말.
“이제는…… 진짜 없구나.”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천마는…… 위혜보는 사라졌다.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벗이자, 스승이자, 가족이었던 녀석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망쳐 보려 했지만, 이 또한 여기까지다.
‘나한테는 지켜야 할 녀석들이 있다.’`
어느새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는 사무현.
그래, 아마 이것을 알기에 녀석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녀석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는 반드시 모두를 위해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빌어먹을 새끼! 나중에 내가 죽고 나면 두고 보자! 그땐 진짜 뒈졌어도 뒈질 때까지 패 줄 테다!”
천마 놈을 향한 마지막 원망 섞인 한마디를 내뱉으며 사무현이 막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
우지끈.
콰과광!
난데없이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무현의 처소 문짝이 통째로 박살 나 한쪽에 처박힌다.
그리고 잠시 후, 무럭무럭 피어나는 먼지 속에서 악귀와도 같은 얼굴을 한 여인의 모습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아오, 씨팔! 도저히 못 참겠네! 야, 이 새끼야! 지금 시국이 어느 시국인 줄 알아? 언제까지 너 하나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아, 이거 좀 놔 봐요, 스님! 안 때린다니까?”
“아미타불! 거짓말 치지 마시오! 사람이 아무리 마구니 같다고 해도 할 짓이 있고 못 할 짓이 있지! 어디 아직 회복도 되지 않은 사람을…….”
“아오……! 진짜 이 스님이, 안 때린다고요!”
콰아앙!
“아미이이이타부우우우울!”
단아란의 허리를 잡고 늘어지던 신불이, 결국 그녀의 호쾌한 발길질 한 번에 저 멀리 염불을 읊으며 나가떨어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체 몇 명을 때려눕힌 것인지, 잔뜩 먼지 묻은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단아란이 사무현을 내려다본다.
“일어나라, 이 새끼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언제까지 빌빌대고 있을래?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이 너 하나뿐인 줄 알아?”
‘거…… 참, 시기적절하네.’
하필이면 막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에 들어와서는 이렇게 산통을 깨 버리다니.
이래서야 막 나가려던 찰나였다고 이야기하기에도 멋쩍은 상황이 아닌가?
‘……아니, 솔직히 잘됐네.’
우는 사람 뺨을 때려 준다는 뜻이 딱 이 꼴이다.
평소라면 저런 마구니와 같은 단아란에게 덤벼들었을 사무현이 아니지만,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을 꾹꾹 눌러 참느라 며칠간 정말로 미쳐 버리는 줄 알았으니까.
더 이상 감정을 누를 필요가 없어진 사무현이, 짧은 호흡과 함께 그의 몸 안에 있는 주독을 내공을 통해 밀어낸다.
콰과과과과.
“……오호?”
자신의 머리칼까지 날려 버리는 사무현의 거친 기세에 단아란의 눈이 가늘어진다.
“해 보겠다고?”
“후우…… 고문님, 여기까지 오면서 저희 애들 몇이나 건드리셨습니까?”
“음…… 글쎄?”
몇 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단아란이 수를 헤아린다.
“막휘 녀석을 시작으로 살암, 적사, 청사, 익패, 적월이랑…… 대충 한 열댓 놈 정도?”
“아, 그거면 충분하네요.”
단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바닥에 놓인 천마도를 움켜쥐고 일어난다.
스르륵.
“사천방에서 얌전히 머무시는 이상 손님으로 대접해 드릴 수 있지만…… 제 허락 없이 애들을 건드린 순간 손님 대접은 해 드릴 수 없는 게 사천방의 법도거든요.”
“아, 그래? 그럼 난 이제부터 손님이 아닌 거네?”
드드드드.
사무현의 말이 반갑다는 듯 히죽 웃어 보인 단아란도 기세를 끌어 올리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든다.
스릉.
“그거참 잘됐네, 안 그래도 손님 역할이나 하고 있는 게 영 성미에 안 맞았는데. 역시 방주고 뭐고 두들겨 패 놓고 시작하는 게 편한데 말이야.”
“하, 그거참 처음으로…….”
콰앙!
“맘에 드는 소리를 하시네!”
순식간에 단아란의 앞으로 몸을 날린 사무현이,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향해 일도를 내려친다.
쩌저저저저정!
눈 깜짝할 사이에 사무현의 도격을 가로막는 단아란의 일검.
이 격돌이 만들어 낸 거대한 충격파가 순식간에 그의 처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사무현의 머릿속에 그런 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하아앗!”
콰과광! 쾅! 쩌저정!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단아란을 몰아붙이는 사무현의 연이은 도초.
그리고 흔들림 없는 방어로 그의 공세를 차단하는 단아란의 입가에 슬며시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오호, 이것 봐라?”
물 흐르듯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도격에 좀처럼 빈틈이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에 실려 있는 무게는 도저히 화경급 고수의 공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물론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여 박살 내려면 순식간에 이 기세를 끊을 수 있겠지만, 이는 단아란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승부욕 끓게 만드네.”
의도적으로 내력을 사무현과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내린 단아란이, 부드럽게 사무현의 이어지는 도격을 흘리며 그의 복부에 일각을 꽂아 넣는다.
쩌엉!
부웅.
촤지이이익.
“……큭!”
“어쭈?”
방어 중도 아닌, 공격 중에 명치에 꽂힌 일각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각법이 아닌 격산타우의 묘리를 실은 일각.
저 정도의 공격에 당하면 설령 신불이라 해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한데…….
“그걸 멀쩡히 버티고 서?”
“……멀쩡하기는 무슨.”
복부를 넘어서 등 쪽까지 충격이 전해온다.
운 좋게 반응해서 버티고 선 것이지, 자칫했으면 이 일격으로 승부가 갈려 버릴 뻔했다.
단 일격으로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겠지만, 내기가 뒤흔들려 버린 상태로 저런 괴물과 승부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우선은 방어에 집중을…….’
섣부르게 공세에 나섰다가 재차 반격을 당할 것을 염두 한 사무현이 방어 자세로 전환하려는 순간.
“……!”
마치 귓가에 들리는 듯 선명한 천마의 음성이 사무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파밧!
눈빛이 바뀐 사무현이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려 다시 한번 단아란의 머리 위로 일도를 내려친다.
“또 똑같은 수냐?”
짧게 혀를 찬 단아란이 검강의 크기를 키워 사무현의 도초를 가로막는다.
조금 전의 첫 합과 동일한 전개.
하지만 사무현의 머릿속에서는 평소 천마가 하던 잔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첫 합이다!’
자신을 얕잡아보고 공격을 받아 내려는 단아란을 향해 전력을 다한 일도를 내려치려는 사무현.
그렇게 천마도를 쥔 사무현의 손아귀에 습관적으로 힘이 들어가려던 순간.
천마의 음성과 함께, 이번에는 그의 눈앞에서 반투명한 천마의 좌수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스스스.
천마도를 강하게 움켜쥔 사무현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며, 도의 무게감이 손잡이가 아닌 도신의 끝 쪽으로 기울어진다.
가볍게, 하지만 한없이 무겁게.
칠 대 천마의 자세를 그대로 연상케 만드는 사무현의 일도가, 단아란의 검 위로 부드럽게 떨어졌다.
콰과과과과광!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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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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