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형님, 좀 괜찮으십니까?”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누워 있는 사무현의 모습에 막휘가 내심 혀를 내두른다.
천무신녀와 사무현의 대결을 직접 지켜봤던 것은 아니지만, 신불의 말을 통해 사무현이 생각 이상의 선전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데…….
‘……누구는 소매가 잘렸는데, 누구는 온몸이 아작 났네.’
아니, 사실 남들은 저 정도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육체 단련에 있어서는 소림 뺨친다고 하는 사천방도들 조차 종잇장 취급하는 것이 사무현이니.
그런 그가 저렇게 되었다면, 다른 이들이었으면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박살 나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 몰골이 도저히 ‘이긴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동안은 푹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원이 말하기를, 근맥 곳곳이 완전히 파열돼서 최소 한 달은 정양, 석 달 정도는 무리하지 않으셔야 한답니다.”
“끄응…… 석 달이라.”
막휘의 말에 긴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덤덤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잠긴다.
‘진짜 더럽게 정확하네.’
사무현과 단아란의 한 합이 맞부딪쳤던 그때, 단아란의 무복 소매가 잘려 나갔지만 사무현은 만근거암을 후려친 듯한 충격에 온몸이 굳어졌다.
이치가 부족했건, 힘이 모자랐건.
사무현과 단아란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굳어진 사무현의 몸으로 단아란의 내력이 흘러 들어왔다.
‘훌륭했다.’
쿵!
처음으로 듣는 단아란의 칭찬과 함께 현경의 고수가 전개하는 격산타우의 묘리가 사무현의 몸 안을 뒤흔들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굳어진 그를 둘러업으며 단아란이 전음을 보냈다.
“……!”
그것이 단아란의 마지막 전음.
이후 점혈을 한 것인지, 사무현의 의식은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그가 의약당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단아란을 위시한 이들은 모두 무림맹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틀린 판단은 아니지.’
지금의 사무현이 백 일 안에 현경의 경지에 들어서기를 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도박이다.
그리고 중원 무림을 수호한다는 무림맹의 입장에서도, 사무현이라는 도박에 기대어 백 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며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가던 사무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막휘를 향해 묻는다.
“마교는 어쩌고 있냐?”
“어…… 그게…….”
사무현의 말에 말꼬리를 흐리며 망설이는 막휘.
그 모습에 무언가 있음을 눈치챈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왜, 무슨 일 생겼냐?”
“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뜸을 들여?”
“크흠…… 실은 살암 녀석이 요즘 음지 녀석들을 휘어잡느라 바쁜 건지, 정보가 별게 없더라고요. 제가 애들 풀어서 정보를 좀 얻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막휘의 말에 무언가 미심쩍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는 사무현.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막휘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에, 사무현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끄응…… 알았다, 그럼 가 봐.”
“저…… 형님.”
“응? 뭔데?”
“이런 말씀 드리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다소 망설이는 듯 하던 막휘가, 곧 마음을 다잡은 듯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저희에게만이라도 말씀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형님을 믿습니다. 아니, 형님이 어떤 속사정을 가지고 계셨다 하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사파에서 떳떳하지 못한 속사정 하나 없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사무현의 침묵에,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애쓰며 막휘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간다.
“저희는…… 사천방에 속한 모두는 저희가 사천방도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그야.”
“유대감입니다.
“…….”
“그 어떤 집단에서도 볼 수 없는 강한 유대감. 동료가 옆에서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 다른 사파 집단과는 달리, 저희는 방도 모두를 진심으로 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사천방을 떠난 저희 스스로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막휘의 말에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대로다.
사무현 또한 사천방도들 모두에게 가족 이상의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역시, 사천방이 사라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꼭 자세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
“……저희를 가족이라 믿어 주신다면, 언젠가는 형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까지 오열하시고 힘들어하시던 형님의 곁에서,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
“저희는…… 식구이지 않습니까.”
지그시 입술을 깨물은 채 가만히 막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무현.
모든 말이 끝났음에도 사무현에게 아무런 답이 없자, 천천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막휘가 사무현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렇게 그가 막 사무현의 방문을 잡아당기려던 그때.
“오래된…… 벗이 하나 있었다.”
“……!”
“내 목숨을 수도 없이 구해 준 고마운 녀석이지.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툭 하면 잔소리나 퍼붓는 재수 없는 구석도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그 녀석 덕분이라는 거다.”
앞뒤는 다 잘라 먹은, 흡사 넋두리와도 같은 사무현의 말을 가만히 선 채 듣고 있는 막휘.
그가 이해를 하거나 말거나 사무현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항상 내 옆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앞으로도 쭉 옆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런 녀석인데…….”
“…….”
“……이제는 없다.”
쓰윽.
마지막 사무현의 한마디가 너무도 고통스럽게 들려, 막휘가 놀란 얼굴로 사무현을 돌아보았다.
“고맙다고…… 인사 한 마디도 못했는데…… 그냥 휙 가더라. 그것도 보란 듯이 웃으면서.”
“…….”
“……망할 새끼.”
그러고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는 사무현.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던 막휘가, 곧 다시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
“그분께서 형님을 믿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뭐?”
“만약 자신이 떠남으로 인해 형님께서 무너지실 것이리라 생각했다면, 어찌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겠습니까?”
막휘의 말에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사무현.
그리고 이윽고, 자신의 말을 마친 막휘가 사무현의 방문을 열며 말을 잇는다.
“거짓 없이, 진심으로 형님의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형님을 모시기로 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달칵.
저벅저벅.
말을 마친 막휘가 그렇게 사무현의 처소를 나선다.
점차 멀어져 가는 막휘의 인기척을 들으며, 사무현은 천천히 천마와의 마지막 인사를 곱씹었다.
‘너의 대성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너는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망할 새끼.
내가 뭐라고 언제나 지나치게 과한 기대를 걸고 있다.
천재도 무엇도 아닌, 오직 녀석이 있었기에 빛날 수 있었던 평범한 고집불통에 불과한데.
‘그런 놈의 기대에 비해 난…….’
까득.
단아란의 진심어린 한 합조차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누가 죽건 말건 뒤에서 숨어 있으라는 배려나 받고 있다.
비릿한 혈향이 느껴질 만큼 입술을 깨물며 감정을 억누르던 사무현이, 이윽고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짐하듯 읊조린다.
“오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어디 한번 지켜봐라.”
네가 믿던 네 전승자가 과연 네 기대에 부흥할 수 있는지 없는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사무현이 곧바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간다.
당장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벽을 허물어 내기 위해 가장 중한 것은 다름 아닌 깨달음.
그리고 그 실마리는 이미 그의 의식 안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사무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아지경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저벅저벅.
사무현의 처소를 나온 막휘가 장원의 한쪽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얼마나 걸었을까?
이윽고 그의 앞에, 활짝 열린 사천방의 정문과 그 인근에 모여든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쓰윽.
“형님, 정말 가셔야겠습니까?”
막휘의 앞을 가로막고 선 이는 다름 아닌 손익패였다.
그리고 그의 뒤로 마우평과 적월 일행을 포함한 사천방도들 몇몇이 따라 나와 간절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염려 말거라, 별일 없을 것이니.”
“하지만…….”
“어차피.”
“…….”
“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알지 않느냐?”
막휘의 대답에 결국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손익패.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막휘가 그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정문 인근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살암의 앞에 멈춰선 막휘가, 그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이 쾌차하시기 전에 돌아올 것이니, 괜한 심려 끼쳐 드리지 마라.”
“…….”
“……간다.”
쓰윽.
“잘못하면 그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
“……괜찮은 거냐?”
스쳐 지나가는 막휘를 향한 살암의 물음.
이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막휘가, 그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답을 한다.
“재수 없는 소리 마라.”
“…….”
“반드시 돌아올 테니.”
저벅저벅.
그렇게, 완전히 사천방의 문을 나서는 막휘.
그리고 정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칠고 흉흉한 인상을 한 삼십여 명의 녹림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볼일은 다 마치셨습니까? 소녹림왕님.”
“그래, 되었으니 가자.”
“…….”
“아버지께로.”
저벅저벅.
말을 마친 막휘를 선두로 삼십여 명의 녹림도가 사천방을 나선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살암을 위시한 수많은 사천방도들이 복잡한 심경을 담은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사천(四川)의 청성산(靑城山).
사천의 삼대 패자로 불리는 구파일방의 청성파(靑城派)가 위치한 산이다.
그곳에 위치한 오래된 청성파의 장원이 처참한 폐허가 되어 불타고 있었다.
“헉……! 허억……! 이…… 이 간악한 놈들……!”
장원에 즐비하게 늘어진 수백에 이르는 시신들.
청성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무인들이 누구 하나 온전한 형체를 간직하지 못한 주검이 되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자신들의 자부심이었던 청성을 끝끝내 지키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는 듯, 죽어서도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지 못한 채.
그리고 그런 시신들의 선두에 선 백발의 노인이, 붉게 물든 수염과 한쪽 팔이 나가떨어진 몰골로 힘겹게 검을 쥐고 서 있었다.
이 모든 지옥도를 그려낸 괴물.
만마(萬魔)의 왕이라는 천마(天魔)를 앞에 둔 채.
“이…… 악독한 놈! 이런다고 청성의 혼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소리치는 노인.
청성의 장문인인 현로지인(賢路支人)의 외침에, 그의 앞에 서 있던 흑의 사내가 무심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지워질 것이다.”
“뭐라……!”
“하나도 남지 않을 테니까.”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사내의 말에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사람도, 전각도, 서적도…… 그리고 너희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까지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뿐 아니라 중원 무림 전체가 그리될 것이다.”
“이……!”
천마의 말이 이어질수록 격노하는 감정을 참아내지 못한 현로지인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며 천마에게 몸을 날린다.
쾅!
“이노오오옴! 해 볼 테면 해 보거라!”
쩌렁쩌렁 내력이 실린 음성으로 소리친 현로지인이, 진원진기까지 모조리 끌어 모아 일곱 자에 이르는 검강을 뽑아낸다.
그리고, 그의 칠십 평생에 가장 절실하고 또 완벽에 가까웠던 일검이 천마의 머리 위로 전개된다.
“청성의 혼은 절대로 사라지지……!”
퍼어억!
천마의 거리 안으로 들어가 일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검을 쥔 현로지인의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콰아앙!
그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노쇠한 그의 몸이 허공에서 짧은 폭음과 함께 산산이 터져 나간다.
마치 육체가 견딜 수 없는 강한 압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후두두둑.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한 줌 핏물로 화(化)한 현로지인.
청성파의 장문인이자, 인근에서 인망 높은 도인으로 추앙받던 무인의 허망한 최후였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