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기개(氣槪)는 제법 그럴싸했으나…….”
조금 전까지 현로지인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천마가, 천천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명색에 한 문파의 장문이라는 자가…… 거리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는구나.”
“청성의 장문인은 애초에 무인(武人)보다는 도인(道人)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입니다. 사실상 구파의 장문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없는 위인이지요.”
어느새 천마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공손하게 말을 꺼내는 태상.
그런 그를 향해 천마가 묻는다.
“다음은 어디냐?”
“예, 본래라면 사천당가와 아미가 순서였겠지만, 현재는 두 장원 모두 텅텅 비어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사천에서는 더 이상 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면?”
“섬서 지역은 이미 소교주가 가셨으니, 중경을 지나 호북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곳에는 한때 중원제일검문이라 불리던 무당과,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무당과 제갈이라…….”
“…….”
“이곳보다는 나은 곳이길 바라지.”
태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무너진 청성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자, 다들 움직이거라! 청성이 존재했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려라!”
“존명!”
태상장로의 명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마교의 무사들.
하룻밤 사이, 구파의 일좌를 차지하던 청성파의 본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호남의 악양.
구파와 오대세가를 대표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곳은 무림맹 내에 위치한 회의실이었다.
길게 늘어진 탁자의 양측에 마주 앉은 이십여 명의 이들은 하나같이 초췌하고 어두운 얼굴로 빈 탁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서.”
침묵에 빠진 모두를 바라보며, 탁자의 끝에 홀로 앉아있던 섬천검제가 입을 열었다.
“곤륜과 청성, 종남은 생존자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음지와 사파에서는 녹림을 제외하면 사실상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태인 듯하오.”
“그런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섬천검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갈세가주가 격노한 듯 목소리를 높인다.
“이백 년 전, 우리가 왜 사파놈들을 무림맹에 받아 주었습니까!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함께 싸우기 위험이 아닙니까!”
“제갈세가주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제갈세가주의 말에 사천당가주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거들었다.
“연무학관을 통틀어 그간 정파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사파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입지를 확보했지요. 그리고 이는, 이런 일을 대비해 우리가 저들에게 많은 양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데…….”
말을 이어가는 사천당가주의 눈에 핏대가 서기 시작한다.
“정작 무림의 위기가 터지고 나니 저들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곤륜이 무너졌을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가와 아미가 습격당했을 때는! 청성과 종남이 당했을 때에는 대체 무얼 했느냐는 말입니다!”
“잠깐.”
잔뜩 흥분한 당가주의 외침이 이어지던 그때, 그의 맞은편 쪽에 앉아 있던 거구의 사내가 얼굴을 확 찌푸리며 말을 꺼낸다.
“이거…… 본가를 버리고 도망쳐 오신 당가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조용히 있어 드리려 했는데…… 아까부터 말씀이 너무 심한 것 같소이다?”
“뭐라! 지금 무어라 했느냐!”
“사파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하필 자리를 비운 것은 이쪽도 유감이지만, 여기 모인 우리를 대놓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말이외다!”
사파에 보기 드문 대문파인 사명문(死銘門)의 문주가 지지 않고 어금니를 드러낸다.
그러자 구파일방의 기세에 억눌려 있던 다른 사파의 문주들도 슬그머니 한마디씩 불만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사명문주님의 말이 맞습니다. 아닌 말로, 마교와의 교전을 피하고 최대한의 전력을 유지한 채 합류하라고 전갈한 것은 무림맹이 아니었습니까?”
“아까부터 사파 놈, 사파 놈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소. 우리가 뭐 제 놈들 아랫것들도 아니고!”
“아닌 말로, 과거처럼 우리가 마교 측에 섰다면 이렇게 면상 앞에서 욕이나 먹고 있었겠소?”
“뭐, 뭐라? 마교 측에 서?”
하나둘씩 이어지는 사도 문파들의 불만에, 듣고 있던 모용세가주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 은혜도 모르는 사파 놈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하! 은혜? 평소에도 은근히 사파라고 무시하고 괄시했으면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뭐라! 내 이것들을 당장……!”
“모두 그만하시오!”
콰앙!
모용세가주와 사명문주가 막 각자의 무기에 손을 얹으며 살기를 드러내는 순간, 시기적절한 일강과 함께 섬천검제가 진각을 내디딘다.
화경에 이른 그의 내력이 한순간 회의실 내에 적막을 가져온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들이오! 이 자리가 지금 우리끼리 싸우자고 모인 자리는 아니지 않소!”
“……!”
“하물며 천무신녀님을 비롯한 대선배님들을 한자리에 두고, 대체 이 무슨 부끄러운 짓이란 말이오!”
“아아, 괜찮아, 괜찮아. 안 말려도 돼. 나름대로 재미있게 구경 중이었는데, 왜.”
늘어져라 기지개를 켜며 한쪽 손을 휘저은 단아란이, 곧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아주 재미있어……. 마교가 우리 안방에 쳐들어와서 설치는 상황에도 천지 분간 못 하고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꼴이. 마교 놈들한테 손발 다 잘리고 식구들까지 몰살당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힘을 합치자고 머리를 맞대려나? 딱히 기대한 적도 없는데 그 이하를 보여 주고 있으니, 아주 재미있어.”
“…….”
“왜? 더 싸워 봐. 내가 판 깔아 줄까? 마교랑 싸우기 전에 정사대전이라도 한번 벌일래?”
“크…… 크흠…….”
“흠흠…….”
단아란의 물음에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헛기침을 흘리는 사명문주와 모용세가주.
서로 여러 감정이 격화되어 말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사실 그들이라고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 마교는 단아란의 말처럼 이미 그들의 안방까지 들어와 칼을 휘두르고 있다.
여기서 그들끼리 분열을 일으켜 봐야 최악으로 치닫는 것 외에는 다른 결말이 없다.
“크흠…….”
적막 속에서 헛기침을 흘린 당가주가, 모용세가주를 제치고 앞으로 나와 사명방주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내…… 언사가 다소 심한 부분이 있었소. 사과드리리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당가주가 직접 고개를 숙이자, 사명방주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함께 고개를 숙인다.
“아니오…… 사실 우리도 당가의 입장이 되었다면,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외다.”
그렇게 당가주와 사명방주의 화해로 정파와 사파 사이의 날카로웠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는다.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자, 섬천검제가 개방의 방주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마교는 어찌 움직이고 있는가?”
“예, 현재 섬서에서 소교주가 이끄는 무리가 종남을 거쳐 호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방향만으로 보면 무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으음…….”
“천마가 이끄는 본대 또한 청성을 무너뜨리고 거침없이 중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중경을 지나면 역시나 호북…… 결국에는 무당산에서 집결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으음…… 무당인가…….”
까드득.
개방주의 말을 맹주가 조용히 읊조리던 그때, 한쪽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곳에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무천검제가 움켜쥔 두 주먹을 가늘게 떨며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때, 제갈세가주가 슬그머니 무천검제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하면…… 저희도 슬슬 선수 칠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수라니요? 그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에는 저들이 전력을 분산한 이유를 알지 못해 신중을 기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중원을 빠르게 점령하기 위함이었다면 이는 분명한 오판입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를 둘로 나누었으니, 이쪽에서는 효과적으로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과연…… 확실히 그럴 듯합니다.”
“각개 격파라 하면, 저들이 무당에서 합류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겠군요.”
제갈세가주의 말에 다소 밝아진 분위기로 전략을 논의하려는 이들.
그러던 그때, 개방주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꺼낸다.
“좋은 의견이군요. 한데, 그 전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개방주님.”
“바로 이곳의 문제 때문입니다.”
턱.
맹주의 질문에, 개방주가 탁자 위에 놓인 커다란 지도에서 한 군데를 짚는다.
“저곳은…….”
“예, 죽산입니다.”
개방주의 말에 자리에 모인 모두의 얼굴이 복잡 미묘하게 변해 간다.
“예, 죽산에 위치한 황룡채는 녹림의 본거지 입니다. 이곳은 대대로 녹림왕이 다스리는 영역이었으니, 만약 마교가 이곳을 치겠다 하면 항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깐. 지금껏 마교가 습격한 곳은 하나같이 구파와 오대세가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저들이 구태여 녹림을 치려 하겠습니까?”
제갈세가주가 의견을 제시하자 그의 옆에 있던 모용세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확실히…… 마교가 녹림의 산채를 공격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군요. 물론 녹림 쪽에서 싸움을 피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녹림왕은 정치를 아는 자라고 들었습니다. 마교와 정면 대결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터인데, 구태여 저들과 싸우려 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제갈세가주와 모용세가주에 이어 당가주까지 의견을 보태자, 구파 측에서도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개방주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녹림왕에 대해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싸워 보지도 않은 채 황룡채를 버리고 녹림왕이 도망친다면, 중원 각지에 퍼져 있는 녹림의 산채들을 다스릴 권위가 서지 않을 것입니다.”
“으음…….”
“실제로 나흘쯤 전, 녹림왕의 명을 받은 녹림의 채주들이 세력을 이끌고 죽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는 결코 가벼이 여길 만한 정보가 아닙니다.”
“뭐, 뭐요? 그게 사실입니까?”
“허어…… 이런…….”
개방주의 대답에 사파 측이 일순 시끌해진다.
내심 녹림왕이 무림맹으로 합류해 그들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던 사파의 문주들이다.
얼마 전 큰 전쟁을 치른 천신련과 장강수로채는 현재 그들을 이끌 수 없는 입장이니까.
한데 녹림이 이곳으로 합류하지 않고 죽산에서 마교에게 패망한다면?
차후 무림맹에서 사파의 입지가 어찌 될지 불 보듯 빤하다.
“그, 그러면 무당이 아니라 죽산으로 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무당은 본산을 버리고 무림맹에 합류했으니, 차라리 죽산에서 녹림과 함께 싸우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사도 문파들 사이에서 녹림을 지원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제갈세가주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허튼소리 마시오! 적들의 전력이 갈라졌을 때는 약한 쪽을 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요! 하물며, 아직 하북의 팽가를 비롯한 맹의 주요 전력이 모두 집결하지 못한 지금 어찌 천마의 본대와 승부를 본다는 말이오!”
“하지만 녹림의 전력도 결코 무시할 것이 못되오! 그런 큰 전력이 죽산에서 허무하게 격파를 당한다면 이 또한 전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소이다!”
그렇게 양쪽 대표들이 다시 팽팽하게 맞서던 그때, 신불이 한쪽 손을 반쯤 들어 올리며 헛기침을 흘린다.
“크흠…… 본승의 의견을 말해도 되겠소이까?”
“……말씀해 보시지요.”
“우선 본승이 판단하기에…… 녹림을 죽산에 버려 두는 것은 분명 아니 될 일이오.”
“하, 하지만…….”
“하나.”
이어지는 반론을 막기 위해 힘을 주어 입을 연 신불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 죽산에서 천마의 본대와 결전을 벌이는 것은 분명 시기상조요. 우리 쪽에서 유일하게 천마에 대응할 수 있는 천무신녀는, 일전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을 아직 완벽히 회복하지 못했소이다.”
“뭐래요? 난 멀쩡 하구만.”
“아미타불, 그렇게 자신 있으시면 그 팔의 붕대나 풀고 말을 하시오.”
발끈한 단아란의 반박에 퉁명스레 맞받아치는 신불.
결국 입술을 삐죽이며 단아란이 고개를 돌려 버리자, 신불이 이내 맹주, 섬천검제를 응시한다.
“지난 전투에서 천무신녀는 천마에게 패했소. 물론 이는 정상적인 대결은 아니었소이다. 이미 천무신녀는 그 전 소교주와의 대결에서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고, 기습을 통해 오른팔을 쓸 수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오. 하나.”
“…….”
“그렇다고 해도 천마의 강함은 우리가 가진 상식을 분명히 넘어서고 있었소. 그러니 천무신녀 외에 천마에 맞설 전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전력으로 중원의 미래를 건 전투를 벌일 수 없는 입장이외다.”
“하…… 하면…… 결국 녹림을 저대로 버려 두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은 아니외다.”
누군가의 물음에 신불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녹림왕이 죽산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녹림 전체에 대한 통솔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오. 그러니, 무림맹의 입장에서 녹림왕에게 적절한 명분을 만들어 주면 해결되는 일이라는 말이외다.”
“명분이라 하시면…….”
“맹의 입장에서 사신을 보내 청을 하는 것이지요. 마교와의 일전에 녹림의 도움이 필요하니, 중원 무림을 지킨다는 대의를 위해 무림맹에 합류해 달라고 말이오.”
“과연…… 성공만 한다면, 하나로 집결된 녹림의 전력과 함께 적들을 각개 격파할 수도 있겠군요.”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신불의 말에 정사 양측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맹주도 다소나마 답답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면, 누가 녹림왕을 만나러 갈지를 정해야겠군요. 그를 데려오려면, 저쪽에서도 명분이 될 수 있을 만한 이가 가는 것이…….”
“아아, 그건 고민할 것 없소이다.”
한 손을 흔들어 맹주의 말을 끊어 낸 신불이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본승이 직접 갈 것이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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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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