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예, 예?”
생각지도 못한 신불의 말에 맹주, 섬천검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파마불제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뭐 그리 놀라시오? 딱히 안 될 것도 없는데.”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래도 파마불제께서는 아직 몸이…….”
말끝을 얼버무리는 맹주의 모습에 신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아미타불…… 설마 본승이, 자칫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것이오?”
“…….”
“아미타불…… 본승이 위험하다면 본승이 아닌 다른 이가 가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죽산에 당도하는 속도로 보나, 위급한 상황에서 몸을 뺄 수 있는 무위로 보나 본승만 한 사람은 없소이다.”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녹림은 과거부터 본승과 인연이 닿아 있던 곳이오. 직접 가서 설득을 한다면 못이기는 척 넘어올 것이니, 지금 바로 출발하겠소이다.”
그러고는 미련 없다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신불.
현시점에서 신불 정도 되는 전력을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맹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신불의 말대로, 녹림을 이곳까지 안전히 데려오는 데 그보다 더 최적화된 이는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면, 따로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맹의 입장에서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아미타불……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말하라 하셨소이까?”
“예!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아미타불.”
사뭇 경건한 맹주의 대답에, 그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는 신불.
그리고 이튿날, 무림맹 내에서 수군거리는 소문이 돌았다.
커다란 수레에 정체 모를 짐 보따리를 가득 실은 신불이 희희낙락하며 무림맹을 나섰고, 맹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술 창고를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고…….
***
죽산(竹山).
대나무가 유독 많이 나는 호북의 명산이다.
섬서와 호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임과 동시에, 중경과 하남과의 거리도 가까워 다수의 상인들이 오갈 수밖에 없는 곳.
하지만 그 많은 것들보다도, 녹림칠십이채를 이끄는 황룡채가 위치한 산이라는 것이 죽산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이백 년간 황룡채는 무고한 양민을 죽이거나 이유 없이 상인을 공격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적정 수준의 통행료를 받으며 산을 넘는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영업 방식 덕에, 비록 산적이기는 하지만 황룡채에 대한 인식은 양민들에게도 정도 무인들에게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죽산의 곳곳에,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통행금지를 알리는 패가 내걸렸다.
이는, 양민들은 물론 그 어떤 무인들도 황룡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녹림왕의 경고였다.
“소녹림왕 막휘가 녹림왕을 뵈옵니다.”
“그래, 먼 길 고생 많았구나.”
그의 앞에 예를 갖춰 부복하는 막휘를 향해 거구의 녹림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맨주먹으로 황소라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두꺼운 손이 부드럽게 막휘의 어깨에 놓인다.
쓰윽.
“그리고……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
살면서 몇 번 듣지 못했던 아버지, 녹림왕의 따듯한 음성에 막휘가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른다.
“아버지께서도 강건해 보이시어 다행입니다.”
“그래, 일어나거라.”
그렇게 짧은 인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킨 막휘가 녹림왕을 바라보며 이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조금 급하긴 하지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마교의 위협이 있으니 속히 복귀하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저 외에도, 녹립칠십이채의 채주들을 모두 죽산으로 모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래, 그 말대로다.”
“안 될 일입니다, 아버지.”
녹림왕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막휘가 말을 이었다.
“애꿎은 형제들만 죽어 나갈 것입니다. 차라리 황룡채를 포기하고 무림맹으로 합류하여…….”
“이노옴!”
진지한 막휘의 음성을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끊어낸 녹림왕이 불같이 노한 얼굴로 소리친다.
“소녹림왕이라는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황룡채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모였거늘!”
“아버지, 제 말씀은 그게 아니라…….”
“듣기 싫다! 한번만 더 무림맹에 기대자는 허튼 발언을 했다가는, 소녹림왕이 가진 모든 권한을 회수하겠다!”
“……!”
“식사 후에 따로 찾을 것이니, 썩 물러가 자숙하고 있거라!”
“……예, 아버지.”
녹림왕의 불호령에 결국 고개를 숙인 막휘가 물러간다.
생각보다 설득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그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깃들어 있었다.
***
“그래, 련주가 많이 다쳤다고?”
“예, 그래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곧 쾌차하실 것입니다.”
“으음…… 그래야지. 천신련에 네가 속해 있으니, 사실상 천신련과 녹림은 형제나 다름없다. 이번 일만 마치면 내가 련주를 만나러 한번 들러야겠구나.”
저녁식사를 마친 후, 막휘와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한 녹림왕은 생각보다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낮에 보였던 불같은 반응을 생각하면 쉽사리 다시 같은 얘기를 꺼낼 수 없었기에, 막휘는 슬쩍슬쩍 그의 눈치만 살피며 적당한 화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이윽고 마교와의 전투로 대화의 주제가 번졌다.
“허어, 마교 놈들이 그리 대단하더냐? 천무신녀께서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천무신녀께서 강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소교주와의 전투 중에 기습을 당해 오른팔에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강함도 결코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 범주는 아니었습니다.”
“으음…….”
그의 말을 듣는 녹림왕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근심의 빛이 드리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막휘가 조심스레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 이대로 싸운다면 형제들의 피해가 매우 클 것입니다. 그에 반해 장강수로채는 전력을 거의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지요. 하면 전쟁이 끝난 후, 사파 내에서 녹림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빤하지 않겠습니까?”
막우가 가장 신경에 거슬려하는 장강수로채의 이름까지 거론하는 막휘.
이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술잔을 바라보던 막우가, 결국 짧은 한숨과 함께 막휘의 눈을 응시한다.
“……놈들이 그리 강하더냐?”
“얼마나 강한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장강수로채가…….”
“지금은 둘러말할 것 없다, 아들아.”
생각지도 못하게 부드러운 막우의 음성에 막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신련에서의 생활이 많이 편했던 모양이구나. 원래도 네 눈치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리 성급하고 눈치 없게 굴 줄은 몰랐는데…….”
“아, 아버지…….”
“너의 입장에서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판단했을 수는 있으나, 조바심을 못 이기고 먼 거리를 달려온 채주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야 만에 하나의 상황에 저들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
막우의 말에 그제야 그의 진심을 이해한 막휘가 감탄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서 잊었을까?
언뜻 무식해 보이는 외형으로 오해를 많이 사지만, 역대 녹림왕들 중 가장 밝은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가 바로 막우다.
그런 그가 막휘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끊어 버렸을 때에는 응당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 하면 이만 말해 보거라.”
어느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은 막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막휘를 바라보며 말을 꺼낸다.
“우리가 맞아야 할 놈들이 대체 어떤 놈들인지…….”
어느새 녹림왕의 위엄을 풍기는 막우의 모습에 마른침을 한번 삼킨 막휘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이 엄습하는, 천마라는 괴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
“뭐라! 녹림 녀석들이 죽산으로 모이고 있다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습니다. 저희가 곳곳에 뿌려 둔 정보원들에 의하면…….”
콰아앙!
수하의 보고를 채 듣기도 전에, 분노에 찬 태상장로의 주먹이 목재 탁자를 내려친다.
산산이 파괴된 잔해와 목재가루가 사방에 흩뿌려졌지만 태상장로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멍청한 중원 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태상장로가 분노를 드러낸다.
도무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
일부러 전력을 나누어, 소교주 측에 훨씬 적은 병력을 부여해 섬서를 공격하도록 유도한 것이 바로 태상장로 본인이었다.
이는 언뜻 보면 효율적인 전력의 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원 놈들에게 소교주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를 내어주기 위함이었다.
‘초대의 강함을 보았다는 녀석들이……! 소교주가 홀로 떨어졌을 때가 유일한 기회임을 왜 모른다는 말이냐!’
전쟁에서 약한 쪽을 잘라 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초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했을 테니, 십중팔구 따로 행동하고 있는 소교주가 저들의 목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는 과감한 전략까지 밀어붙여 가면서 판을 만들어 주었는데, 저 멍청한 놈들은 도리어 죽산에서 천마의 본대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만약 사실이라면, 이후로 십삼 대를 제거할 기회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이 합류하기로 했던 곳은 하북의 무당산 인근이다.
즉, 무림맹에서 소교주를 처단하고자 한다면 죽산이 아닌 무당산 인근에서…… 하다못해 섬서 인근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어야 옳다.
어느 모로 봐도, 저들은 죽산을 최후의 격전지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큭, 오냐. 생각지 못한 전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뒷감당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작전이 실패할 수 없게끔 만들면 그뿐 아니겠는가?
생각을 마친 태상이 비열하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의 심복에게 고개를 돌린다.
“우방(憂放).”
“예.”
“지금부터 네게,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라도 함구해야 할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것이다. 해낼 수 있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제 목숨 오직 장로님의 것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조용히 태상에게 대답하는 우방.
그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태상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소교주께 서신을 보낼 것이다.”
“…….”
“단, 내가 아닌 천마(天魔)의 이름으로.”
천마의 이름으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는지 가늘게 몸을 떠는 우방.
하지만 이내, 눈을 질근 감았다 뜬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맡겨 주십시오.”
***
야심한 밤.
침묵이 내려앉은 사천방의 장원.
경계를 서기 위한 두 명의 방도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숙면에 빠진 그 시각, 사무현이 거하고 있는 의약당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스스스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누워 있는 사무현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깊은 잠에 빠져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사무현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평소의 그라면 감히 이해할 수 없었을 심오한 무학들.
과거의 천마에게 들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잔소리들이, 이윽고 하나의 형체로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사무현의 몸을 중심으로 뜨거운 김과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이런 육체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그간 사무현의 의식은 막 형상화되기 시작한 무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 진짜 둔재구나.’
천마가 해 왔던 수많은 소리들은, 사무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수도 없이 풀고 풀어 설명한 것들이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니 몸을 써서 이해시키고 다시 설명을 반복했다.
하지만 사무현은 수년간 그 하나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해 끝까지 흉내를 내는 것에만 그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무엇 하나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것을 둔재가 아니라면 달리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천마 그놈은 진짜…….’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무현의 전신에 참을 수 없는 전율이 흐른다.
‘……천재였구나.’
그럴 수밖에.
이 모든 이치가, 천마도법의 모든 초식에 완벽하게 접목되어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는 사무현에게, 그가 깨우친 모든 무리(武理)를 형(形)으로, 초식으로, 도법(刀法)으로 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깨우친 그 순간, 사무현의 육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그의 몸속에서부터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아앙!
파아아앗.
화르르륵.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사무현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이내 뜨거운 불길이 그의 몸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뚜둑 뚜두둑 뚜둑.
그의 몸 곳곳에서, 더 거대한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 육체가 재구성되어 가는 환골탈태의 과정이 시작된다.
천마가 사라지고 난 후 삼십여 일.
단아란이 무림맹으로 돌아간 지 꼬박 보름여 만에 사무현이 이윽고 현경(玄境)의 경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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