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쿠웅! 쿵! 쿠웅!
드높은 봉우리 위로 일출이 떠오르고 있는 이른 아침.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에서, 규칙적인 속도로 거암을 두드리는 사내가 있었다.
온몸의 심상치 않은 근육을 꿈틀거리는 사내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암석이 묵직한 진동음을 만들어 냈다.
쿠웅.
“……후우.”
투두둑 투둑.
온몸을 흠뻑 적신 땀이 순식간에 바닥을 적신다.
긴 한숨을 내쉬며 사내가 고개를 들자, 어제보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뒤쪽으로 밀린 듯한 자국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에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사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다시 바위를 향해 힘찬 주먹질을 시작한다.
쿠웅! 쿵! 쿠웅! 쿵!
“아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부셨소? 형님.”
평소라면 이미 수련을 끝냈을 시간인데, 오늘따라 다소 과한 느낌이 들 정도로 수련을 이어 가는 녹림왕의 모습에 좌호법 곡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요즘 들어 뼈마디가 시리다고 간간이 수련도 빼먹으시더니, 갑자기 왜 꼭두새벽부터 지금까지 때아닌 육체 단련을 하는 거요?”
“후우…… 말 시키지 마라.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답답? 아니, 꼭두새벽부터 뭐가 그리 답답하다는 말이오?”
“형님 설마, 마교놈들이 진짜로 덤비면 어쩌나 불안하셔서 그러시는 거요?”
평평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우호법 마명이, 어느새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막우를 바라본다.
“그러지 마시오, 형님. 지금 녹림의 전 산채가 형님의 명을 듣고 모였는데, 정작 애들을 부른 형님이 불안해하면 사기가 어떻게 되겠수?”
“아니, 정말 마명의 말처럼 마교 놈들한테 겁먹어서 그런 거요?”
마명의 말에 막우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성격이 불같은 곡회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아니, 형님! 왜 갑자기 그렇게 쫄보가 되셨소? 우리 녹림이오! 녹림!”
“…….”
“하나하나는 오합지졸이지만, 막말로 전 중원에서 가장 큰 세력이 우리 아니오? 산에서의 집단전은 숫자 앞에 장사 없는 법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칠십이채가 전부 모이면 구파일방도 별거 없소!”
“……아니, 그건 좀 아닌데.”
흥분한 곡회의 말을 마명이 슬그머니 정정한다.
곡회의 말대로, 한번 모이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모이고 나면 중원 제일이라 불릴만한 세력이 녹림이다.
하나하나가 일 대 일 대결보다는 집단전에 능한 산귀신들이 수만에 이르니, 이는 능히 군(軍)이라 이름을 붙이기에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파일방이 어째서 오래도록 중원 무림을 지배하고 있었겠는가?
구파일방 중 서너 곳 정도는 숫자로 밀어붙일 수 있다지만, 저들 모두 한데 힘을 모으면 이는 녹림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어쨌거나 구파일방 중에는, 머릿수로 녹림에 뒤지지 않는 개방이라는 집단도 섞여 있으니까.
“크흠…… 아무튼 뭐, 나도 곡회의 의견 자체가 틀렸다고는 보지 않소, 형님. 우리 녹림은 숫자를 기반으로 한 집단전의 귀재들 아니오? 마교 놈들이 생각이 없지 않은 이상, 우리가 선공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죽산까지 기어 들어와 소모전을 벌이려 할 리 없소. 그리고…….”
“…….”
“솔직히 형님이 혼자 바위나 두드리고 있어 봐야,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주먹 한번 뻗을 일도 없을 거 아니오? 만약에 형님이 주먹을 쓸 일이 생긴다면 사실상 녹림이 망한 거지. 그러니 답답하다고 괜히 수선 떨지 말고, 팔짱 끼고 근엄한 척 배짱이나 부리쇼. 그게 애들 사기에도 훨씬 도움이 되니까.”
“이놈의 자식들이?”
좌호법, 우호법이라는 것들이 명색에 녹림왕인 자신에게 쫄보라느니 수선떨 지 말라느니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입에 담다니.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처럼 지내던 녀석들이라 너무 오냐오냐했던 것일까?
오랜만에 한번 주먹으로 기강을 다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막우가 주먹을 쥐었다 펴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곡회가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선다.
“크흠……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형님답지 않게 긴장할 거 없다는 말이오. 우리가 있지 않소?”
“그러고 보니 이상하기는 하오. 형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지 않았소? 하루 만에 왜 갑자기 그리 변한 거요?”
곡회에 이은 마명이 슬그머니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자, 긴 한숨을 내쉰 막우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바닥에 떨어진 옷자락을 집어 든다.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저들은 모를 것이다.
어젯밤 막휘가 해 주었던 모든 이야기는 마교에 대한 그의 경각심을 공포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경고한 것처럼 마교는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장로라고 불리는 이들은 음지사왕이 우스워 보일 정도였고, 소교주라 불린 자는 천무신녀와도 대등한 합을 나눌 정도였으니까요. 마교라는 존재 하나에 왜 무림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 이조차도 천마라는 존재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판단이었을 뿐입니다.’
‘천마가 그리 강하더냐?’
‘단순히 강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 어떤 말로도 정의하기 힘든 인외(人外)의 존재였습니다. 그 자체가 공포였으며 재앙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으음…… 대체 어느 정도였기에 네가 그런 말을…….’
‘음지와 천신련이 전쟁을 벌인 그날, 최소 오천 이상…… 아니, 거의 만 명에 가까운 숫자가 죽었습니다. 이중 태반 이상이 천마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뭐, 뭐라?’
‘심지어 그는 전투에 있어 수하를 대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수하를 물리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적으로 돌린 채 홀로 싸웠습니다. 하지만…….’
‘…….’
‘그마저도…… 마지막 순간에 천마가 스스로 등을 돌리지 않았다면, 결국 끝까지 싸웠을 때 전멸을 당하게 될 쪽은 도리어 이쪽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럴 수가…… 천무신녀가 있었는데도 그리되었다는 말이냐?’
‘천무신녀 또한 기습으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천무신녀께서 정상적인 상태였다 하더라도, 아마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그가 등을 돌린 것 또한 단순히 그의 변덕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기적을 두 번이나 경험할 만큼 천마는 예측이 가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니 아버지, 당장 죽산을 버리고 물러나야 합니다. 형제들을, 녹림을 지켜야 합니다.’
간절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에게 부탁하던 막휘의 모습.
그것은 단순히 적을 두려워하는 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녹림을 걱정하고 있었다.’
안하무인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단순히 강한 ‘힘’ 앞에 기가 꺾일 녀석이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스스로도 이기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녹림왕인 아비에게 덤벼들던 녀석이니까.
그런 놈이 그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고민을 저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기에, 잠시 망설이던 막우가 이내 산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
저벅 저벅.
“어어? 아니, 형님. 삐지셨소? 같이 갑시다, 형님!”
녹림의 정통성을 지키고 녹림의 붕괴를 막는 것이 중한가.
아니면 그를 따르는 형제들을 지키는 것이 중한가.
녹림왕으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선 막우의 얼굴에 깊은 시름이 어리고 있었다.
***
저벅저벅.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사무현이 거하고 있는 의약당으로 사무현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 손익패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늘 형님은 깨어 계시려나?’
근래 들어 깊은 명상에 잠겨, 아침저녁으로 방문해도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었던 사무현이다.
하지만 그래도 명상이 끝나면 허기가 질 수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상을 차려 그의 침소 옆에 두는 것이 손익패의 일상 중 하나였다.
‘벌써 보름도 넘었네.’
처음 며칠은 그래도 텅 빈 죽 그릇이 놓여 있고는 했는데, 최근 닷새 정도는 아예 상 자체를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라면 옆에서 끝까지 기다려서라도 그가 깨는 것을 보고 나오리라 다짐하며, 손익패가 조심스레 의약당의 방문을 열어 젖혔다.
벌컥.
휘이이잉.
‘……바람?’
근래 날이 추워지기 시작해 밤중에는 의약당 내부의 창문을 닫아 두고 있던 차였다.
한데 문을 열기 무섭게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느껴지자, 손익패가 자신도 모르게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스스스스.
“……아!”
칭칭 감은 붕대는 온데간데없이, 말끔한 검은 무복을 입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뒷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의해 긴 머리칼의 일부가 흩날리고 있는 그의 옆모습은, 초췌해 보이던 이전과는 다르게 윤기가 어려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천천히 창문에서 돌아선 사무현이 손익패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예? 아…….”
“…….”
“아…… 시, 식사! 형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쓰윽.
손익패의 말에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디딘 사무현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익패의 옆에 도착한다.
딱히 신법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기이하리만큼 부드럽고 빠른 움직임.
그런 그를 멍하니 쫓는 손익패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무현이 그가 들고 있는 상을 흘깃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또 죽이냐?”
“아…… 예.”
“쯧…… 됐다, 나가자.”
“…….”
“그거 먹고 무슨 힘을 쓰겠냐.”
스륵.
그렇게 손익패를 지나쳐 의약당을 나서는 사무현.
그런 그를 손익패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뒤쫓는다.
‘뭐지? 무언가가 변하셨는데?’
무엇이 변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사무현은 분명히 무언가가 달라졌다.
이전까지의 사무현은 강해 보였음에도 그 특유의 인간적인 느낌이 풍겼지만, 지금의 사무현은 어딘지 모르게 유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위화감을 풍기고 있다.
‘그래, 이 느낌은 마치…….’
천무신녀에게서, 그리고 좌수도를 쓰던 사무현에게서 받았던 그 느낌.
설마 사무현도 그들과 같은 인외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일까?
반신반의한 얼굴로 손익패가 사무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참.”
문득 생각났다는 듯 발걸음을 멈춘 사무현이 손익패를 돌아보며 묻는다.
“근데 애들은 다 어디서 뭐 하냐? 지금 아침 수련 시간 아니냐?”
“어…… 예…… 그게…….”
“…….”
“그…… 형님도 상태가 안 좋으시고, 또…….”
“오호라…… 땡땡이를 치고 계셨다?”
말꼬리를 흐리는 손익패의 모습에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사무현.
이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손익패가 입을 다물자, 고개를 끄덕이던 사무현이 다시 그에게 시선을 떼어 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좋아, 그럴 수 있지. 우선 밥부터 먹자. 밥부터 먹고 나서…….”
“…….”
“그동안 땡땡이쳤던 것들까지 모조리 보충시켜 줄 테니, 한 놈도 빠짐없이 정문 앞으로 모이라고 해라.”
“……예, 형님.”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고는 분주하게 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의 모습.
이를 바라보며 손익패는 깨달았다.
사람의 무공이 아무리 놀랍도록 강해진다고 해도, 그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
달그락달그락.
쩝 쩝 쩝.
후루룩후루룩.
“혀, 형님. 천천히 좀 드십시오. 음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다 체하십니다, 형님.”
사천방도 모두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게걸스럽게 탁자에 쌓인 고기를 뜯고 국수를 들이붓는 사무현.
순식간에 커다란 고기 한 덩어리가 뼈만 남기고 사라져 버리고, 텅 빈 그릇이 여기저기 식탁 위를 나뒹군다.
그렇게 숨 쉴 틈도 없이 식사를 마친 사무현이, 이윽고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깔끔하게 들이키고는 빈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탁!
“크으…… 이거지! 이제야 좀 살겠네.”
“……형님, 사람이십니까?”
저 정도 먹었으면 살겠다가 아니라 죽겠다는 말이 튀어나와야 정상이 아닌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손익패의 시선에도, 만족스럽게 부푼 배를 쓰다듬던 사무현이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덧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식당에 삼사오오 모여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그의 식사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아니, 이것들이 밖에서 대기하라니까 왜 여기에 우르르 몰려와서…….”
“형님!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무리하시는 거 아니십니까? 한 달은 족히 쉬셔야 한다고 들었는데.”
“야 인마! 그건 평범한 사람들 기준이고, 우리 방주 형님이 어디 평범하신 분이냐?”
“……얼씨구?”
그동안 사무현이 깨어나기를 학수고대라도 한 것처럼, 싱글벙글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는 들뜬 분위기의 사천방도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사무현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어딜 보십니까? 형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젠장.
망할 놈의 습관 같으니.
뿌듯한 일이나 즐거운 일이 생기면, 녀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던 것이 몸에 배어 버렸다.
텅 빈 허공을 본 순간 고개를 든 씁쓸함에, 애써 모두에게로 시선을 돌린 사무현이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이것들이…… 지금까지 땡땡이친 거 만회해 보려고 이러나 본데, 이런다고 봐줄 내가 아니…… 가만?”
문득 저들을 둘러보던 중,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보였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자 사무현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런데 막휘는 어디 갔냐?”
시끌시끌하던 사천방도들 사이로,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정적이 찾아 들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