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죽산에 위치한 황룡채.
녹림왕이 거하고 있는 산채의 울타리 위에서, 한 사내가 긴 한숨을 팍팍 내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아니, 막휘 형님. 어디 계시나 했더니 또 거기서 그러고 계십니까?
저 울타리 아래에서 들려오는 녹림의 형제, 학수(學壽)의 음성에 사내, 막휘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쪽으로 향한다.
“……학수냐?”
“거참. 대체 왜 그렇게 매일 같이 넋이 나가계신 겁니까? 이곳에 오신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어 가시는데.”
“열흘…… 내가 온 지 벌써 열흘이나 됐나?”
학수의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금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막휘.
그가 이곳에 오기까지 말을 타고만 꼬박 열흘이 걸렸으니, 사천방을 떠나 온 지도 이십여 일이 다 되어 간다는 뜻이다.
‘형님은 이제쯤 회복하셨을까?’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가진 사무현이니, 아마 지금쯤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은 회복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 이제쯤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겠지.
사무현의 성격이라면 분명 그를 불러오거나 데리러 오려 할 것이니, 이미 사무현이 깨어나기 전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막휘의 계획은 실패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아…… 이게 아니었는데.”
괴롭다는 듯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는 막휘.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학수가 이내 포기한 듯 그를 부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만 내려오셔서 식사하십쇼. 한숨도 기운이 있어야 쉬는 겁니다.”
“끄응…… 알았다.”
그제야 슬슬 허기가 지고 있던 사실을 깨달은 막휘가, 막 울타리에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닷.
“음?”
“소녹림왕이시여! 비상입니다! 비상!”
“무슨 일이냐!”
울타리 밖에서 들려온 다급한 음성에, 안쪽에서 그를 부르는 학수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는 막휘.
그러자 헐레벌떡 뛰어온 녹림도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를 이어 간다.
“웨, 웬 이상한 놈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애들이 두들겨 맞고 있습니다!”
“뭐, 뭐라? 그게 무슨 말이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산 아래에서부터 웬 놈 하나가 경고를 무시하고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녀석을 막으러 간 형제들이 족족 얻어터지고 있답니다!”
“얻어터져? 으음…… 그럼 사망자는?”
“파악된 바로는 아직 없습니다.”
녹림도의 보고에 막휘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다.
현재 죽산에는 녹림의 전체 전력 중 팔 할 이상이 모여 있는 상태다.
그만큼 평소보다 산 곳곳에 배치된 이들의 숫자도 훨씬 늘어난 상태.
그런 포위망을 뚫고 올라오면서도 사상자 하나 안 냈을 정도면, 작정하고 그들을 공격할 목적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설마 단순히 산을 넘는 것이 목적인가?’
마교가 섬서와 중경까지 점령한 이 시국에서, 수많은 녹림도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가 왜 죽산을 넘으려 한다는 말인가?
“……별수 없군. 내가 놈을 만나봐야겠다.”
“소, 소녹림왕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위험합니다!”
“어차피 형제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자라고 하지 않았나? 적어도 녹림에 악감정을 가지고 온 이는 아닐 것이니, 내가 가서 대화를 해 보도록 하마.”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자입니다! 그렇게 속단하고 만나시는 것은…….”
“상관없다. 제정신이 아닌 자에게 당할 만큼 스스로를 녹록하게 단련하지 않았으니.”
“아니, 정말로 평범한 미친놈이 아닙니다. 차라리 황룡채의 높은 서열을 더 내보내서…….”
스스로 막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열심히 그를 만류하는 녹림도.
이쯤 되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 막휘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만! 할 말이 있다면 똑바로 해라!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렇게까지 나를 만류하는 것이냐!”
“그, 그게…… 놈이 소림의 승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뭐라? 하면 소림승이라는 말이냐?”
녹림도의 대답에 막휘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어린다.
“소림이라면 무림맹의 소속인데, 대체 왜 그를 막아섰다는 말이냐?”
“그게…… 소림승이라고 보기에는 행색이나 행동이 워낙에 괴의하여…….”
“괴의하다니? 무엇이?”
“그게…… 소림 승려의 차림을 한 자가 제 몸보다 훨씬 큰 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사온데…….”
“그런데?”
“그 큰 수레에 널브러진 술병이 그득하고, 한 손으로 수레를 끌면서도 한 손에는 술병을…….”
“그만! 말 안 해도 누군지 알겠다! 어디냐!”
“예, 예?”
“어디냐고! 신불 스님…… 아니, 그 미친놈이 계신 곳!”
“저, 저 아래에 큰 바위 사거리입니다.”
콰앙!
“소, 소녹림왕……!”
“막휘 형님!”
당황하며 자신을 부르는 녹림도와 학수의 외침을 뒤로 한 채, 쏜살같이 동쪽으로 경공술을 펼쳐 몸을 날리는 막휘.
그런 그의 뒤를 녹림도와 학수가 헐레벌떡 뒤따랐다.
***
“아미이이이!”
쐐애액!
“타부우울!”
콰앙!
……털썩.
염주가 감겨진 손에 술병을 집어든 노승 하나가, 우렁찬 일성과 함께 거한의 머리통을 내려친다.
바닥에 늘어져 버린 거한을 포함해 삼십여 명의 녹림도를 술병 하나로 바닥에 뉘었으나, 정작 노승(老僧)의 술병은 금하나 가지 않고 멀쩡한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런 승려를 향해, 어두운 숲 속 곳곳에서 내력을 머금은 수십여 발의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샤샤샤샥!
투두둥 퉁!
승려를 향해 날아들던 화살 세례가, 그의 몸을 감싼 호신강기에 의해 파훼된다.
화살을 막고 호신강기를 지워 낸 승려가 빈 술병을 어깨에 이고는 매복한 녹림도들을 향해 소리친다.
“아미…… 끄윽! 녹림왕에게 안내만 하면 될 것을…… 어찌 본승의 발길을 막아서는가!”
“이…… 닥쳐라, 이 땡중아! 너처럼 수상한 것을 어찌 녹림왕께 데려간다는 말이냐!”
“수상하다니! 그대들은 소림의 승복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가!”
실로 큰 모욕이라도 받았다는 듯 이마에 힘줄을 세우며 씩씩거리는 노승.
답답하다는 듯 술병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주위를 향해 외침을 이어간다.
“소림의 승려복을 입고 소림의 무술을 펴는 자가 녹림왕을 만나게 해달라는데! 다짜고짜 달려드는 것은 대체 무슨 짓인가! 이것이 녹림의 예법이라는 말인가!”
술에 취해 코끝이 붉게 물든 노승이 하는 말만 아니라면 조금의 반박할 여지도 없는 말이다.
어지간한 사파라도 차마 대꾸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일 만큼 준엄한 꾸짖음이다.
다만…….
“이……! 네놈이 소림의 무공을 쓰기는 언제 썼다는 말이냐!”
파스슥.
상대의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한 녹림도 하나가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전부 다 술병으로 두들겨 팼지! 소림에 술병을 이용한 무공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아미타불! 검법을 손으로 펼친다 하여 검법이 검법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닌 법이거늘, 소림의 무공을 술병으로 펼친다 하여 어찌 그것을 소림의 무공이 아니라 하겠는가!”
“이……!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다들 쏴라!”
파바바박!
투두둥 퉁퉁!
또다시 날아든 한 차례의 화살 세례를 호신강기로 날려 버린 노승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고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탁.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가급적 좋게 좋게 말로 하려 했으나, 도저히 말을 들어 먹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도다.”
“저, 저 땡중 놈이! 네가 언제 말로 했다는 말이냐!”
쓰윽, 쓰윽.
주위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양 소매를 곱게 접어 걷어붙인 노승이, 양손을 합장하며 서서히 호흡을 고르기 시작한다.
“후우우우…….”
드득. 드드드득.
노승의 호흡과 함께 그의 주위로 대지가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의 몸을 감싸 안기 시작하는 밝은 빛.
그것이 소림의 전설적인 무공 중 하나인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녹림도들은 이때라도 늦지 않게 나와 그의 앞에 엎드리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아미이이타부우우울!”
파아아아앗!
“어어? 피, 피해……!”
콰과과과!
노승 몸에서 뻗어 나온 은백색의 빛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녹림도들이 매복한 숲을 후려친다.
콰과과과광!
콰구구구구.
“콜록! 콜록!”
“크헉! 나, 나 좀 구해 줘……!”
노승이 뿜어낸 불광보조의 섬광이 녹림도들이 엄폐물로 삼고 있던 거목들을 휩쓸어 버렸다.
나무가 파괴된 잔해에 깔리고 휩쓸린 녹림도들이 숨을 헐떡이며 아우성을 질렀으나, 신불은 태연히 합장을 풀고는 바닥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아미타불…… 가급적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힘 조절은 하였소이다.”
불광보조가 노린 것은 오직 나무들 뿐.
일반인이라면 나무가 파괴된 잔해에 깔려도 목숨이 위급하겠지만, 저들은 명색에 무공을 쌓아 산적질을 하는 녹림도들이다.
더군다나 이제 황룡채와도 제법 가까워진 까닭인지 저들의 무공은 하나 같이 일류를 바라보는 수준.
이 정도로 목숨을 잃는 이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과감한 손을 쓴 것이다.
“이만하면 수준의 차이는 알았을 것이니, 더 귀찮게 굴지 마시오. 본승은 녹림왕만 만나면 그뿐…… 으음?”
그렇게 주섬주섬 다시금 수레를 끌고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무언가를 느꼈는지 노승이 산등성 위쪽을 올려다본다.
“이 기운은…….”
“신부우울 스니이이임!”
파바바밧!
저 멀리서 숲을 가로지르며 쏜살같이 내려오는 누군가의 인형.
한눈에 그의 정체를 확인한 노승, 신불의 얼굴에 놀라움과 함께 반가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니, 막휘 시주! 시주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쿠, 쿨럭……! 소…… 소녹림왕……?”
소녹림왕 막휘의 이름이 노승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무 파편들을 헤치고 고개를 내민 녹림도들이 당황한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한다.
잠시 후, 경공술을 펼치며 날아온 막휘의 신형이 신불의 앞에 안착한다.
타닷.
“후우…….”
“아미타불, 정말로 막휘 시주였구려. 사천방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아……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데 스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도착하기 무섭게 주위의 상황을 둘러본 막휘가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불을 향해 물었다.
“그냥 스님의 신분만 밝혔어도 되는 상황을 어찌…….”
“아미타불, 그 무슨 소리요? 본승은 분명 본승의 신분을 밝혔소이다.”
“예? 신분을 밝히셨다고요?”
“그렇소. 저어기 처음 산의 입구에서 한번, 그리고 그다음 중턱에서 한 번.”
“…….”
“본승이 파마불제인데, 녹림왕을 만나러 왔다고 했소이다. 한데 ‘네가 파마불제라면 나는 천신련주다!’라고 떠들면서 덤벼드는 거 아니겠소?”
“……알 만합니다.”
신불의 말에 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막휘.
그의 말대로라면 이 상황의 전적인 책임은 녹림에게 있다.
천하의 파마불제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만남을 청했는데도 되려 공격을 퍼부었으니, 사실상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써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일이다.
보나 마나 이쪽은 죽자 살자 덤볐을 테니까.
“이놈들아! 사람이 누군지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덤볐어야 할 거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막휘의 호통에 고개를 팍 숙이며 사죄하는 녹림도들.
상대가 진짜 파마불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이런 젠장, 저 땡중이 파마불제인 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소림승이 왜 밖에서 술을 퍼먹고 다니냐고! 그것도 수레에 한가득 끌고 다니면서!’
내심 가슴속 깊은 곳에는 불만들이 그득했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없었다.
상대가 진짜 파마불제인 이상, 그리고 심지어 소녹림왕과도 인연이 있는 이상 그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거슬려서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저희 애들이 뭘 몰라서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미타불, 아니요. 본승이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손속이 너무 과했던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구려.”
“튼튼한 놈들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한데, 녹림왕을 만나러 오셨다 했습니까?”
“그렇소. 무림맹주의 부탁을 받아, 녹림왕에게 청을 전하러 왔소이다.”
“청을요? 무림맹주가 말입니까?”
“으음…… 마교가 둘로 갈라져 호북으로 들어오고 있소. 이들 중 세가 약한 곳을 먼저 치려 하는데, 아무래도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이 되어서 말이오.”
막휘의 질문에 주위를 의식하며 느릿하게 대답을 이어 가는 신불.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막휘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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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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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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