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스님, 그 말씀은 설마…… 녹림에게 죽산을 버리고 무림맹에 합류하라는……?”
“으음…… 이거 본승의 입이 너무 가벼웠던 모양이로구려. 보는 눈들도 많은데…….”
신불이 슬그머니 한발 물러서자 막휘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녹림은 모두 형제이니까요.”
정말로 괜찮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더더욱 떠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림맹의 부탁에 의해, 녹림이 어쩔 수 없이 죽산을 버려야 하는 것임을 모두가 인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맹주의 입장에서 녹림왕께 청을 드리는 것인데 듣는 귀가 너무 많아 좋을 것이 없겠지요. 두 분의 입장도 있을 터이니, 뒷이야기는 녹림왕께 직접 드리도록 하겠소이다.”
“그, 그러시지요.”
신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 막휘.
이것으로 되었다.
무림맹주가 신불씩이나 되는 이를 보내 녹림에 정식으로 지원군을 요청한다.
그것도 마교를 무너뜨린다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이렇게 되면 모든 녹림도들을 납득 시키고, 체면까지 차려 가며 죽산을 버리고 물러나기 충분한 명분이다.
‘아니, 설령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시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다!’
녹림 또한 사파를 대표하여 무림맹에 속해 있다.
그들의 청을 거부한다는 것은 이 전쟁에서 녹림이 마교의 편에 서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자신이 바라던 바를 이룬 막휘가 멍하니 신불을 바라보던 그때, 은근한 곁눈질로 녹림도들의 반응을 살피는 신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불 스님이…… 설마?’
막휘는 생각했다.
녹림왕이 죽산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안 신불이, 그에게 의도적인 명분을 주기 위해 이런 소란을 만든 것이 아닐까? 라고.
그가 그저 조용히 녹림왕을 만나고 돌아갔더라면, 녹림왕에게는 명분이 될 수 있지만 녹림도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막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중히 예를 갖추며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실례했습니다. 하오면 지금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아닌 무림맹주께서 보낸 사신으로서 모시겠습니다. 가시지요!”
“아미타불…… 소녹림왕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는 바외다.”
막휘의 포권에 반장으로 답하며 빙긋 미소를 머금는 신불.
그들이 머금고 있는 미소의 의미를 알 리 없는 녹림도들은, 그저 이 상황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해서…… 중원무림을 지키고자 하는 대의를 생각해, 한시라도 빨리 무당산으로 집결해 무림맹과 연합 작전을 펼쳐 달라는 것이 맹주의 청이었소이다.”
“으음…….”
녹림의 상위서열 채주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신불의 이야기를 들은 녹림왕 막우가 신중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뜻은 알겠습니다. 하나, 이곳 죽산은 대대로 녹림왕이 지키고 있던 녹림의 근본과도 같은 곳입니다.”
막우의 말에 녹림의 채주들 몇몇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급적 자신들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녹림의 채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집결했을 만큼, 황룡채가 머무는 죽산은 녹림에게 있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었다.
애초에 중원 각지에 펼쳐진 녹립칠십이채가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은, 다른 수많은 산채들은 없어지고 바뀔지언정 죽산의 황룡채만큼은 수백 년 이상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무림맹이 죽산으로 와서 저희와 함께 연합 작전을 펴는 것은 어떠한지요? 이곳의 지리는 저희가 훤히 알고 있으니, 오히려 더 유리한 전투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림맹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오. 하나, 역시 강한 쪽보다는 약한 적을 먼저 쳐서 고립시키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 모두의 하나 된 의견이었소이다.”
신불의 설명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막우가, 이번에는 자리에 모인 채주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형제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녹림칠십이채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모웅채(毛雄砦)의 채주가 목소리를 높인다.
“죽산이 녹림에게 어떤 곳입니까! 무림맹에게 무림맹을 버리라는 것과 같은 소리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모웅채주의 말이 조금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 또한 저들의 태도가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모웅채에 이어, 황룡채 다음가는 산채라 불리는 봉우채(鳳宇砦)의 채주도 의견을 던진다.
“병법에서 약한 곳을 치는 것이 상식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모웅채주의 말대로, 만약 천마가 무림맹을 치는 상황이었고 우리가 저들을 죽산으로 불렀다면 어떠했겠습니까?”
발언권이 강한 모웅채와 봉우채가 앞장서서 반대 의사를 표하자 다른 채주들도 별다른 의견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분위기가 순식간에 한쪽으로 흘러 버리자 녹림왕 막우의 얼굴이 슬며시 굳어진다.
그러던 그때.
“아미타불…….”
모두의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려는 그때, 한숨 소리처럼 들리는 나직한 염불을 읊은 신불이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녹림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중에 실례가 되겠지만…… 잠시 본승이 한 말씀 더 드려도 되겠소이까?”
“말씀하시지요.”
“전통이라는 부분이 자꾸 나와서 하는 말이오만…… 본승이 알던 녹림은 죽산에서 방어에만 전념하던 이들이 아니었소이다.”
“…….”
“지난 마교대전에서 녹림은, 무신 단월혁이 이끄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소.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드넓은 평야에서. 그러니 꼭 죽산을 전장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하여, 전통을 어기는 길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오이다.”
“음…….”
“그 말씀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신불의 말에 녹림왕이 고심하는 듯하자, 모웅채주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에 녹림이 활약했던 장소가 죽산이 아니었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녹림이 죽산을 버린 적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맞습니다. 당시에는 마교가 죽산을 공격하거나 넘으려 하지 않았기에 다른 곳을 전장으로 선택했던 것뿐! 지금은 저들의 본대가 죽산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곳을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구태여 과거까지 들먹이며 무당으로 합류하라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파마불제라 하시더라도 이건 너무……!”
“그만!”
쿠웅!
모웅채주를 시작으로 상위 서열의 채주들이 거칠게 반발하고 나서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막우가 돌로 만든 탁자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친다.
“거기까지 해라! 무림맹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파마불제 어르신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은 내가 용납지 않을 것이다!”
“…….”
막우의 일갈에 선을 넘었음을 깨달은 채주들이 입을 다물자, 곧 긴 한숨을 내쉰 막우가 신불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다.
“선대의 선대의 선대 때부터 녹림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 오신 어르신께, 저희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미타불…… 아닐세. 과거의 녹림과 현재의 녹림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으니, 이것은 나의 실책일세.”
녹림왕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신불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반장을 해 보인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이백 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모양일세. 오랜 벗을 만나러 가벼운 마음으로 왔네만…… 더 이상 나나 무림맹의 입장을 강요치 않을 테니, 신경 쓰지 마시게.”
쓰윽.
말을 마친 신불이 더 이상 보고 듣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본승은 잠시 근처에서 바람을 좀 쐬고 있겠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결정을 내린 후에 전달해 주도록 하시게.”
“……알겠습니다.”
저벅저벅.
말을 마친 신불이 녹림왕의 처소를 나서자, 몇몇 채주들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녹림왕의 눈치를 살핀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던 녹림왕이, 이윽고 상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크게 흔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회의를 계속하지. 하면 형제들은 모두, 무림맹의 요청을 거절하고 죽산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뜻인가?”
“크흠…… 다소 언사가 과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파마불제 어르신께서 녹림과 각별한 연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과거는 과거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무당이 아닌 죽산에서 버티는 것을 안전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을 지키느라 얻는 희생과 저들의 의도대로 싸워 주다 얻는 희생은 그 값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처음보다 다소 누그러졌지만, 결국 의견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발언권이 강한 상위서열 채주들이 의견을 하나로 모으니, 하위 서열의 채주들 중 다른 의견이 있는 이조차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다.
그래도 내심 저들이 못이기는 척 신불의 말을 따를 것이라 기대했던 녹림왕이 고소를 머금는다.
‘이것이 지금의 녹림인가.’
형제의 형제는 녹림에 속하지 않아도 형제다.
형제의 부모 또한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녹림의 전통.
한데 저들은 죽산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전통을 지키기 위함이라 말하면서, 정작 그 전통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파마불제의 의견은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약 이백여 년 전 녹림왕 이었던 막태의 벗이자 스승인 신불에게.
개탄스러운 상황에 자소 섞인 미소를 머금는 것도 잠시.
어느덧 상념을 지워 낸 녹림왕이 모두의 의견을 하나로 취합한다.
“알겠다. 하면 모든 형제들의 의견을 받들어, 우리는 죽산을 지키는 쪽으로…….”
“잠깐, 그전에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막우가 최종선언을 하기 직전의 순간, 자리에 앉아 있던 막휘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녹림왕의 허가 없이는 발언권이 없는 소녹림왕이 입을 열자, 막우가 불같이 노한 얼굴로 그를 향해 소리친다.
“갈(喝)! 소녹림왕은 공식 석상에서 발언을 자제해야 함을 모르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녹림의 전통이니까요. 하지만…….”
녹림왕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막휘가, 자리에 앉은 채주들을 빙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막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 저는 소녹림왕으로서 입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녹림의 형제 막휘로서 녹림왕께…… 그리고 모두에게 묻고자 합니다.”
“이, 이놈이 그걸 말이라고……!”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직책이라면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막우의 말을 끊고 큰 목소리로 소리치는 막휘.
이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막우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막휘를 정면으로 노려본다.
“놈! 지금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조차 지지 못해서야 어찌 소녹림왕이라는 직책을 감당하겠습니까?”
“오냐! 하면 어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보거라! 단!”
저벅저벅.
쿵.
어느새 막휘의 코앞까지 다가간 막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막휘를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네가 입을 여는 순간부터 너는 소녹림왕이 아니다. 네가 가진 모든 권한을 파할 것이니 어디 떠들 테면 떠들어 보거라.”
소녹림왕의 직책을 파하겠다는 막우의 한 마디.
이에 자리에 모인 모든 채주들은 막휘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듯 눈을 한번 감았다 뜬 막휘가, 천천히 자리에 있는 모든 채주들을 빙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형제들께 묻겠습니다. 마교의 본대가 이곳 황룡채로 들이닥친다면, 형제들은 녹림만으로 싸워 승산이 있으리라 보십니까?”
“……크흠.”
“그야…….”
막휘의 직설적인 물음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는 채주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막휘가 연이은 질문을 던진다.
“하면 우리는 왜 죽산이 머무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뭡니까?”
“으음…… 소막주님께서 이해하시기는 어려우시겠지만, 녹림은 전통으로 인해 지켜지는 집단입니다. 전통을 무시하면 녹림은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봉우채주가 다소 타이르듯 막휘에게 답을 하자 채주들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막휘가 재차 질문을 던진다.
“하면, 전통이란 무엇입니까?”
“법규입니다.”
막휘의 이번 질문은 모웅채주가 답을 했다.
“선대로부터 대대로 녹림을 지탱해 주는 강한…….”
“하면!”
“…….”
“녹림의 법규에서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이 무엇입니까.”
이글거리는 막휘의 눈빛이 답을 이어가던 모웅채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다.
이에 잠시 말문이 막힌 모웅채주가 입술을 꾹 닫으며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러자, 입을 닫은 그를 대신해 막휘가 입을 열었다.
“형제입니다.”
“…….”
“녹림에는 녹림왕과 채주 이외에 그 어떤 직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녹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는 형제이고, 형제의 형제 또한 형제이다. 이것이 녹림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맞습니까?”
“…….”
“맞습니까? 모웅채주님.”
“마…… 맞습니다.”
막휘의 직설적인 물음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모웅채주.
그런 그를 향해 막휘가 싸늘한 음성으로 세 번째 질문을 던진다.
“하면 선조들이 대대로 지키고자 했던 죽산을 지키는 것과, 선조들이 최우선 원칙이라 이야기했던 형제들을 지키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중합니까?”
“그것은…….”
“형제들이 지금 지키고자 하는 것이!”
“…….”
“무림맹과의 기 싸움을 위한 체면 따위인지. 아니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얻어 낸 얄팍한 직위인지! 그도 아니면 마교가 녹림만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기심인지!”
“…….”
“이것들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막휘의 질문은 채주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막휘의 눈은 어느새,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는 막우를 향하고 있었다.
“……왕이시라면.”
기어이 내뱉어진, 그 어떤 비수보다도 날카로운 막휘의 한 마디가 막우의 가슴 깊숙한 곳에 틀어박혔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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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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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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