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온전히 감출 수 없다.
아니, 이제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저 중원의 녹림도들을 쓸어 버리고, 마(魔)의 위대함을 세운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미소라 생각할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합리적으로 시간을 소모하는가 하는 것뿐.’
천무신녀가 이끄는 무림맹과 소교주와 부딪칠 때까지.
꼭 그때까지만 이곳 죽산에서 시간을 허비하면 된다.
지금 소교주가 이끄는 정도의 전력으로는 결코 무림맹과 싸워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태상이 그대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장로들에게 명을 내린다.
“장로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천마의 명을 받들어, 녹림의 잔당들을 쓸어 버리고 녹림왕까지 가는 길을 열 것이다! 구마장로!”
“예!”
“만악대(萬惡隊)를 이끌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포위망을 형성하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갈 수 없도록 철통같이 지키도록!”
“예! 만악대주와 만악대는 나를 따라라!”
“조암장로! 그대는 천귀대(千鬼隊)를 이끌고 남쪽에서 동쪽을 포위하라!”
“예! 천귀대주와 천귀대는 나를 따라라!”
파바바밧.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린 구마장로가 경공술을 펼치며 북쪽으로 향하자, 그들과 십여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뒤따르던 수천에 달하는 흑의무사들 중 일부가 갈라져 구마장로를 따른다.
조암장로 또한 천귀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고, 다시 한번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 태상이 내력이 실린 목소리로 소리친다.
“사천대(死天隊)는 북쪽에서 서쪽을 포위한다. 추마대(追魔隊)는 서쪽에서 남쪽이다! 호법대주(護法隊主)와 호법원은 장로들의 빈자리를 채워라!”
“존명!”
“움직여라!”
파바바밧!
우렁찬 외침과 함께 말에서 뛰어내려 경공술을 펼쳐 앞으로 나아가는 태상장로.
그의 명과 함께, 마교의 네 개 전투대대가 죽산을 포위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죽산에서 벌어질, 마교와 녹림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저, 저런……!”
“마교 놈들이다!”
저 멀리서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난 엄청난 수의 마교 무사들.
처음에는 그저 죽산을 우회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죽산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녹림도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채, 채주님께 상황을 보고해야 되지 않습니까?”
“말이라고 하느냐? 당장 전보를……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예, 예? 부채주님이 가시면 여기는 누가…….”
“저놈들이 우회를 하건 포위를 하건, 어차피 시간이 걸릴 것 아니냐! 그리고 숫자는 이쪽이 훨씬 많다! 작정하고 버텨라!”
“부, 부채주님!”
수하의 간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죽산의 서쪽 입구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합아채(合牙砦)의 부채주가 황급히 위쪽으로 몸을 날린다.
하지만 그가 몇 걸음을 옮기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인형의 등장에 부채주의 발걸음이 멈추어진다.
타닷.
“저런……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느냐?”
“이…… 이런!”
난데없이 허공을 날아 그의 앞에 안착한 백발노인.
그의 검은 무복에 붉은 글자로 수놓인 마(魔) 자를 확인하는 순간 부채주의 얼굴이 공포와 경악으로 얼룩진다.
죽산을 포위하려는 마교무사들과 이곳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만한 거리를 격하고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저 노인의 정체가 마교 내에서도 결코 평범한 이는 아닐 것이라는 방증이었다.
“이……!”
놀라움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상대가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부채주가 황급히 등 뒤에 매고 있던 부월을 잡기 위해 한쪽 팔을 들어 올린다.
그 순간.
스팟!
촤아아악!
털썩.
“끄아아아악!”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노인의 일수가, 부월을 잡으려던 부채주의 오른팔을 잘라 내 떨어뜨린다.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부채주를 바라보며 노인, 태상장로가 짐짓 안쓰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저런, 안 되었구나. 무기를 손에 쥐기만 해도 그냥 보내 줄 생각이었는데.”
“으…… 으으…….”
“자, 어서 다시 시도해 보거라. 무기에 손이 닿기만 해도 내 네놈을 살려 주마.”
태상장로의 말에 벌벌 떨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부채주.
여기서 공격 명령을 내려 봐야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것이 훨씬 빠르다.
상대의 말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눈치를 보던 부채주가, 그대로 대지를 박차며 태상장로의 안면으로 흙먼지를 걷어찬다.
파아악!
상대의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하나뿐인 왼팔로 부월을 잡는 부채주.
손가락 끝에 닿은 감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스걱.
촤아아아악!
툭.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하하, 살고 싶어 조잡한 수를 쓰는구나. 아암, 생사가 걸린 상황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지.”
“끄으윽…… 야, 약속과 다른…….”
“큭큭, 약속? 염려 마라, 적어도 널 보내 주겠다는 약속은 지킬 테니. 다만…… 어떻게 보내 주는지는 내 자유가 아니더냐?”
“……!”
스거걱! 서걱!
촤아아아악!
쿵.
“끄아아아악! 아아악!”
순식간에 양팔에 이어 두 다리가 잘려 나간 부채주가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 그의 모습을 혐오스럽다는 듯 노려보며 태상장로가 살기를 흩뿌린다.
“시끄럽다. 혀까지 잘라서 보내 주랴?”
“……!”
“가라. 네 수하들이 다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다면, 두 눈까지 파내어 버릴 테니.”
태상장로의 한 마디에 필사적으로 비명을 삼킨 부채주가, 그대로 꿈틀꿈틀 기어 산등선을 오르기 시작한다.
사지가 잘린 상태로 비탈길을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부채주는 필사적으로 산을 올랐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합아채의 수하들이, 잠시 후 그들을 둘러보는 태상장로의 모습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각자의 무기를 꼬나쥔다.
“치, 침착해! 상대는 하나……!”
퍼억!
촤아아악!
가장 먼저 동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무사의 흉부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분수처럼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동료의 시신에 몇몇 녹림도들이 분노했는지 발작하듯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이야아아아!”
“노오오옴!”
“킥, 산적 놈들이 의리가 있구나.”
스스스스.
거리를 좁혀 오는 산적들을 바라보며 양손에 검은 마기를 끌어 올리는 태상장로.
잠시 후 그의 양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지며 그의 자랑인 혈수광폭장이 전개된다.
“타하아아앗!”
콰과과과과.
짐승의 머리 형상을 한 강기가 밀집된 녹림의 무사들을 향해 뻗어져 나간다.
그 속도가 실로 쾌속해, 이들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태상장로가 전개한 강기에 휘말려버렸다.
콰구구구구구.
“끌끌…… 버러지 같은 놈들.”
삽시간에 수십에 이르는 녹림의 무사들을 휩쓸고 십여 장 가까이 폐허로 만든 태상장로의 절기.
공격 범위에 들지 않아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녹림도들이 무기를 내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한다.
“도, 도망쳐라!”
“으아아악!”
“그래, 그렇지…… 바로 그것이 벌레다운 모습이지.”
흡족하게 미소를 지으며 달아나는 녹림도들을 내버려 두는 태상장로.
어차피 저들에게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명을 받은 장로들과 그들이 이끄는 전투 대대가 죽산을 널찍이 포위하고 있을 테니까.
물론 그들의 숫자로 죽산의 모든 영역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지간히 훈련받은 살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감각을 속이고 탈출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 아래가 아닌 위쪽으로 도망칠 테니.’
저들에게는 아직 녹림왕이라는 정신적 지지대가 있다.
만약 녹림왕이 당한 상태였다면 저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를 택했을 테지만, 태상장로는 구태여 녹림왕을 먼저 치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저 가증스러운 녹림도들을 빠짐없이 몰살시키기 위해서는 활동 범위가 좁아지도록 산의 정상 인근으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들이 모이는 중심부에 반드시 녹림왕이 있겠지.’
녹림은 이백 년 전 마교가 중원을 지배했을 당시, 무신 단월혁에게 붙어 마교를 패퇴하게 만든 가증스러운 집단이다.
어떤 지도자가 저들을 이끄느냐에 따라 때로는 오합지졸이, 때로는 그 어떤 문파보다도 귀찮은 적으로 변모하는 집단.
혹여나 저들이 무림맹과 하나가 될 시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 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소멸시켜 두어야 여러모로 후환을 방지할 수 있다.
“자…… 그럼 다음 것들을 사냥해 보실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행위는 녹림에게 하는 경고이자, 압박이다.
이는 위기를 느낀 녹림왕이 죽산에 퍼뜨린 진형을 조금이라도 더 자신과 가깝도록 만들도록 하려는 것.
교가 완벽한 포위망을 유지하며 산을 오르기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이자, 녹림왕에게 천마의 뜻을 전했다는 최소한의 명분을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이 정도 산채들이라면 대여섯 군데 정도는 홀로 정리할 수 있겠군.’
상위 서열의 산채들이 밀집되어 매복된 곳이라면 모를까, 낮은 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하위 산채 몇 곳을 정리하는 것 정도는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느긋하게 발걸음을 떼어 옮기던 그때, 저 언덕 위쪽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바스락.
“……이런, 그러고 보니 깜빡 잊을 뻔했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일부러 살려 두었던 녀석을 잊고 말았다니.
생각을 마친 태상장로가 가볍게 몸을 날리자, 잠시 후 최대한 은밀하게 산 위를 기어오르던 부채주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타닷.
“히…… 히익!”
“쯔쯧, 놀랄 것 없다. 네 수하들이 아직 다 죽지도 않았을뿐더러, 너는 이미 내 시야를 벗어나 있지 않았느냐?”
“아…… 아아…….”
상대가 자신의 눈을 파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부채주의 얼굴은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공포와 고통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던 태상장로가 뒷짐을 진 채 입을 열었다.
“염려 마라. 네가 내 말을 전하겠다 약속한다면 그대로 보내 줄 것이니. 어떠하냐?”
“예…… 예에!”
태상장로의 물음에 넋 나간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채주.
그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머금은 태상이 느릿하게 말을 잇는다.
“녹림왕에게 가서 전하거라. 천마께서 네놈의 목을 원하신다고.”
“……!”
“단 하나라도 수하들을 살리고 싶으면, 엎드려 내려와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라고 말이다. 알겠느냐?”
“예, 예! 화, 확실히 전하겠습니다!”
“그래, 내 널 믿으마.”
“가, 감사…… 감사합니다!”
자신의 사지를 자르고 목숨만을 붙여 둔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잠시 후 태상장로가 자리를 떠나고 나자, 그는 없어진 사지를 움직여 필사적으로 산등성을 기어올랐다.
‘저, 전해야 한다! 녹림왕에게…… 반드시 전해야 한다!’
거의 사명감에 가까운 생각을 되뇌며 얼마나 올라갔을까?
결국 치밀어 오른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한심함에, 합아채의 부채주는 바닥에 엎드린 채 한참을 오열해야만 했다.
***
“지금…… 지금 무어라 했느냐.”
자신이 받은 보고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녹림왕 막우의 몸이 심상치 않게 떨린다.
두 눈은 분노로 일렁이고 있고 그의 강철 같은 주먹은 부서질 듯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향하는 그곳에는, 사지가 잘려 나간 채 생사(生死)를 오가는 녹림도 하나가 흙먼지와 피투성이로 뒤범벅된 채 쓰러져 있었다.
조금 전 태상장로에게서 가까스로 도망친 합아채의 부채주가 바로 그 녹림도였다.
“천마…… 천마가…… 녹림왕을 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쇳소리와 같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얼굴 곳곳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의 눈에서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절대…… 절대 나가시면…… 안 됩니다…….”
“……!”
“놈들은…… 인간이…… 아닌…….”
힘겹게 말을 이어 가는 그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막우가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어 준다.
그리고…….
스륵.
이윽고 완전히 숨이 멎은 합아채 부채주가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어찌나 원통했던지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그 시신을 바라보던 막우가 조용히 입술을 깨문다.
‘내가 어리석었는가.’
막휘의 경고를 듣고도, 신불의 이야기를 듣고도 끝까지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서, 녹림칠십이채가 하나로 똘똘 뭉쳐 죽산을 지킨다면 저들도 굳이 싸우지 않고 물러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채주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그랬으면 안 되었거늘……!’
막휘의 말대로였다.
왕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던 그 말.
당시에는 왕의 권위로 막휘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자리를 파했지만, 그가 진정 현명한 왕이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 하나에서 수만의 녹림도가 죽고 산다는 것을 잊었으면 안 되었다.
결국 녹림의 번영이라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했던 그는, 한순간에 모든 형제를 잃을지 모른다는 절벽 끝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에 떨고 있는 막우의 귓가로, 어딘지 모르게 침착한 막휘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아버지.”
“…….”
막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 못지않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막휘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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