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꼭…… 그 방법뿐이더냐?”
한참만에야 말문을 연 막우의 입에서 신음처럼 들리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염치가 있지…… 어찌 파마불제께 도움을 청한다는 말이냐?”
막우의 한 마디에 녹림의 채주들이 하나같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알을 굴린다.
파마불제 신불은 중원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중 하나다.
반쯤 은퇴한 상태이긴 하지만, 무림맹주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그를 한낱 사신으로 보낼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파마불제가 녹림을 찾았다는 것은 녹림을 형제라 생각한 그 스스로의 의지였을 터.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파마불제를 녹림의 형제이자 오랜 선배가 아닌, 그저 무림맹의 입장으로 온 사신으로만 대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 그에게 녹림을 도와달라 도움을 청한다?
이 정도면 염치 불고라는 말을 쓰기에도 낯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하셔야 합니다.”
막우를 바라보는 막휘의 눈은 흔들림 없이 확고부동했다.
“파마불제 어르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희망조차 얻지 못합니다.”
“으음…….”
결국, 신불을 설득하는 것조차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여기서 머뭇거렸다가는 결코 녹림을 구할 수 없다.
‘그래,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녹림왕으로서, 채주들의 의견을 받아 전체적인 녹림의 균형만을 생각하느라 코앞까지 닥쳐 온 위기를 가벼이 여겼다.
직접 마교를 겪은 막휘가 진심어린 조언을 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는 왕으로서 분명한 자격 미달.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막우가 그대로 모두에게 등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상위 서열의 열 채주들만 따라 오거라.”
“…….”
“파마불제께 갈 것이다.”
“아버지……!”
저벅저벅.
뚜벅뚜벅 걸어가는 막우의 뒷모습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막휘가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른다.
이에 호명을 받은 채주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지만 결국 그뿐.
녹림왕의 명에 마지못한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지, 지금…… 지금 무어라 했느냐?”
신불의 처소를 찾아갔던 막우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엎드린 녹림도를 향해 묻는다.
신불의 처소를 지키며 잔심부름을 하라 명했던 우고(雨故)가 바로 그 녹림도였다.
“파, 파마불제께서…… 떠나셨다고?”
“예, 조금 전 막 술병 하나만 들고 떠나시겠다 하셨습니다. 왕께 보고를 드리겠다고 하니, 굳이 그럴 것 없다고 말씀하시고는…….”
“으음…….”
우고의 보고에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낀 막우가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말을 잇는다.
“어, 어디로…… 어느 방향으로 가셨느냐?”
“그것은 저도 잘…… 아, 그러고 보니 벗을 뵙고 가시겠다 하셨습니다.”
“뭐? 벗을?”
“예, 떠나는 인사는 벗에게만 남기면 그뿐이니 굳이 보고할 것 없다고…….”
콰앙!
“와, 왕이시여!”
우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찬 막우가 황급히 정상으로 경공술을 펼친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비롯한 녹림의 채주들이 황급히 함께 몸을 날린다.
파바바밧!
‘안 된다!’
막휘의 말이 옳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있을 만한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떡을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떡을 달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것도 형제들이 모조리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황급히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 막우가 빠른 속도로 정상과 가까워졌고, 잠시 후 저 멀리서 막태의 비석 앞에서 합장하는 신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파바바밧!
“어르시이이인!”
혹여나 신불이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갈까, 저 멀리서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막우.
하지만 다행히 합장을 마친 이후에도 신불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윽고 그의 앞에 안착한 막우가 숨 고를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타닷.
“어르신! 어찌 이렇게 갑자기 인사도 없이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아미타불…….”
다짜고짜 등장해 말을 꺼내는 막우의 모습이 의아했던지 슬며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신불이 입을 열었다.
“그 때문에 이리 오신 것이오?”
“예? 아…….”
자신의 뒤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막휘와 채주들의 모습에 민망함을 느낀 막우가 슬며시 저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신불을 바라본다.
“일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어르신. 저희가…….”
“아미타불…… 괜찮소이다, 녹림왕.”
그의 사과를 막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파마불제의 모습에 막우의 몸이 움찔한다.
태도는 공손하지만, 저 공손함 속에서 그와 녹림 사이에 분명한 선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까닭이었다.
‘……아니, 이제 와 서운한 것도 우스운가.’
신불에게 먼저 무림맹의 사자로 선을 그은 것은 녹림이다.
신불은 이미 그때부터 마음이 돌아섰을 것인데, 아쉬운 입장이 되고서야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간교하지 않은가?
막우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다물자 그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 신불이 반장을 한 채 말을 잇는다.
“녹림의 뜻은 본승이 잘 전할 것이오. 부디 녹림과 무림맹 모두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소이다. 하면 이만.”
인사치레와도 같은 말을 남기고는 막우에게서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는 신불.
더 이상 허례허식으로는 그의 발길을 잡아 둘 수 없음을 깨달은 막우가, 입술을 질근 깨물며 신불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르신!”
“…….”
막우의 외침에 발걸음을 멈춘 신불이 곧 의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반문한다.
“아미타불…… 그것이 무슨 말이오? 용서라니?”
“선대의 선대의 선대부터 어르신과 녹림의 인연이 뿌리 깊게 이어 오고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어르신의 앞에서 선대의 예를 다하기는커녕, 저희의 이익만을 쫓기에 바빴습니다!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허리까지 깊게 숙이며 과한 예를 다하는 녹림왕의 모습에 신불의 눈이 추켜떠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긴 한숨을 내쉰 신불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아…… 이러지 마시오, 녹림왕. 솔직하게 말해서, 그대들의 이런 태도 변화를 받아들이기 불편하오.”
“……!”
여전히 그를 부르는 어투가 변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막우가 허리를 숙인 채 얼굴을 굳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하여 떠나려 한 것인데…… 그대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찾아와 과례를 마다치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외다.”
정곡을 찌르는 신불의 한 마디.
오래 전 화경에 오른 노고수답게, 그는 이미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이 앞에서 어설픈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결국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된 막우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잇는다.
“마교가 죽산을 포위하고 공격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전황이…… 암담할 만큼 일방적입니다.”
“아미타불…….”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었는지 신불이 한숨 섞인 염불을 읊조린다.
사실 어제부터 심상치 않았던 마교의 움직임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 나름대로도 이런저런 대비책들을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렇게 녹림왕을 포함한 모두가 그를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소, 녹림왕.”
“……예?”
놀란 막우를 향해,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성으로 신불이 입을 열었다.
“본승의 힘만으로 녹림을 구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소. 천마까지 대동한 마교 본대의 습격에서 녹림을 구하려면, 적어도 이 자리에 천무신녀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외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신불의 한 마디에 녹림왕을 비롯한 채주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든다.
아무리 상대가 마교라 하나, 내심 파마불제 정도 되는 고수라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를 찾아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신불의 답은, 그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하, 하면…… 파마불제께서는 어찌하시려 하는 것입니까? 이곳에 계시면 파마불제께서도…….”
당황한 모웅채주가 녹림왕의 뒤쪽에 서서 묻자 파마불제가 냉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답한다.
“본승이 녹림을 구할 능력은 되지 않으나, 적어도 스스로의 몸을 지키며 빠져나갈 정도는 되오. 물론 여기서 포위망이 더 좁혀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겠지만…….”
“그, 그런…… 저희를 두고 혼자 도망을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모웅채주의 다급한 외침에, 신불의 미간이 심상치 않게 구겨진다.
“……말씀이 과하오, 시주. 본승은 분명 그대들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죽산을 빠져나올 명분과 기회까지 주었음이외다.”
“……!”
“지금은 세상에 없는 벗과의 인연으로, 무림맹에게 직접 녹림을 데리고 오겠다고 자청했던 것이 바로 본승이었소. 하나 녹림은 본승의 손을 거절했고, 이에 본승도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이제 와 그것을 비난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신불의 날카로운 물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모웅채주가 축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군다.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죽산을 빠져나가려면 한시가 급한 와중에도,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파마불제의 인내심을 칭찬해야 마땅할 것인데.
“저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한 초기에 돌파를 시도했다면 혹시 모르겠소.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도 쉽지 않은 일이오. 마교도들의 기운이 벌써 산의 중턱에서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외다.”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한 초기라면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너무도 뼈아팠기에 막우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나…… 아마도 천무신녀를 비롯한 무림맹이 지금쯤은 무당산에 당도해 진을 치고 있을 것이오. 죽산과 무당산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최대한 이곳의 상황을 설명하고 지원군을 청해 보겠소이다.”
“만약…… 무림맹에서 그를 반대한다면…….”
“최대한 설득은 해 볼 것이오. 하나 본승이 무림맹의 결정을 뒤엎을 만한 힘은 없소이다. 그러니 반드시 무림맹의 지원을 받아 오겠노라 약속할 수는 없소.”
신불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은 정론이다.
미리 진을 치고 적들을 맞아 싸우는 것과, 작전을 세울 틈도 없이 생소한 지형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
어느 쪽이 더 유리한 전투를 펼 수 있는지는 굳이 비교할 가치도 없으니까.
다소 매정하다 들릴 수는 있지만, 애초에 무림맹의 요청을 거절한 그들에게는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하나……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녹림에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지원을 바랄수도 없고, 싸워서 이길 수도 없으며 탈출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이 전통이라 주장하던 죽산을 지키다 모든 녹림도들이 죽고 마는 결말.
그것이 현재로써 녹림이 맞이할 유일한 미래였다.
“하면…… 본승은 이만 가 보리다.”
그렇게 녹림왕을 향해 짧게 묵례를 해 보인 신불이 다시 그에게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그가 막 두어 걸음 정도를 떼어 내던 그때.
털썩.
신불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막우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완전히 바닥에 엎드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르신!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아, 아버지……!”
“왕이시여! 지, 지금 그게 무슨…….”
“모든 잘못은!”
갑작스런 막우의 행동에 막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술렁이자, 막우가 그들의 음성을 묻어 버리려는 듯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녹림왕인 제게 있습니다! 끝까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했던 제 어리석음의 결과입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돌아선 신불.
그런 그의 얼굴에는 당혹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다.
그 순간, 막우의 뒤쪽에 서 있던 막휘도 그대로 바닥에 엎드리며 입을 열었다.
“도와주십시오, 신불 스님. 일이 이렇게 된 모든 것은 아버지를 보필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려 녹림의 미래를 구걸하는 녹림왕과 소녹림왕.
그 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채주들 또한, 결심이 선 얼굴로 하나둘씩 엎드리며 신불을 향해 도움을 청한다.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어르신!”
“선대의 정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녹림이 살 길을 열어 주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버리지 못했던 이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불의 발목을 붙잡으며 애원하고 있다.
이는 그를 마지막 구명줄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신불은 차마 발걸음을 떼어 낼 수 없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목숨을 애걸하는 저들을 온전히 구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목숨을 건다면…….
생각을 이어 가던 신불의 눈에, 막태의 비석에 새겨진 글귀 중 일부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미타불.”
신음과도 같은 염불을 읊조린 신불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꼭 누군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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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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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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