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너 이 새끼, 다시 한번 내뱉어 봐, 뭐라고?”
“후우…….”
단아란의 일권에 얻어맞은 섬천검제가 입가에 피를 닦아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얼마나 제대로 맞았는지 그가 쓰러져 있는 바닥의 대리석이 깨져 여기저기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몇 대 더 갈길 것만 같은 단아란을 뜯어말리기 위해, 아미의 무복을 입은 중년 여인과 권존이 그녀의 양팔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지, 진정하십시오! 고문님!”
“그, 그래! 진정하자 아란아! 쟤 옛날의 남궁세가 코흘리개 아니야! 무림맹주라고! 맹주!”
권존과 함께 필사적으로 단아란을 말리는 이는 다름 아닌 아미권제 우향.
자신의 오랜 친구인 그녀의 설득에, 단아란이 마지못한 듯 주먹을 내리며 섬천검제를 노려본다.
그러던 그때,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어젖혀지며 검존과 무천검제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타다닷.
“아란아! 이번에는 네가 누굴……!”
황급히 상황을 파악하려던 검존과 무천검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아니, 세상에 아무리 사고뭉치라도 정도가 있지.
까마득한 후배라고는 하지만 명색에 무림맹주를 때려눕혔다는 말인가?
“이, 이런…… 맹주, 괜찮나?”
당황한 검존이 섬천검제에게 다가가려 하자, 어느새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고개를 좌우로 한번 흔든 섬천검제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후우……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그래도 의원에…….”
“거기서요, 무태 오라버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섬천검제에게 다가가는 검존의 발걸음이 단아란의 한 마디에 가로막힌다.
“아직 녀석과 대화가 안 끝났어요.”
“……아란아, 어떤 대화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방주,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들 중 가장 냉정함을 잘 유지하고 있는 무천검제가 개방의 방주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러나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방주가 섬천검제와 단아란의 눈치를 흘깃 살피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조금 전 무당으로 전서응 한 마리가 도착했습니다. 죽산에서 온 것이었지요.”
“죽산이라면 녹림을 말하는가?”
“예, 내용인 즉 마교의 본대가 죽산을 포위했으니 지원을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교의 본대가 죽산을? 하면, 파마불제가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실패했다는 말인가?”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검존의 물음에 방주가 미간을 좁힌다.
“그게…… 조금 복잡합니다. 죽산 인근에 개방의 방도들을 다수 풀어 두었는데, 파마불제께서 죽산을 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곳을 내려오신 적은 없었다 합니다.”
“뭐, 뭐라고?”
“아마도…… 녹림에서 답을 내리기 전에 마교가 먼저 당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방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천검제가 날카롭게 두 눈을 번뜩이며 섬천검제를 바라본다.
“지금 바로 죽산으로 가지. 다행히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니,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것이네.”
“아니요…… 불가합니다.”
“……뭐라?”
생각지도 못했던 섬천검제의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뜨는 무천검제.
검존 역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두 눈을 끔뻑이며 섬천검제를 바라본다.
“맹주,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불가하다는 말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군요. 정확히 말해, 기다리셔야 합니다. 소교주의 위치가 파악될 때까지.”
“맹주! 지금 그게 무슨!”
“저희는 이곳으로 오는 소교주를 잡기 위해 여기 모인 것입니다! 잊으셨습니까!”
“……!”
“저도…… 당장이라도 죽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만약 저희가 도착했을 때 죽산의 아군이 몰살당한 뒤라면, 그리고 만에 하나 저희의 뒤를 소교주가 습격이라도 한다면!”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려는 듯 주먹을 꽉 쥔 채 섬천검제가 말을 이어 간다.
“……중원은 끝입니다.”
“하나…… 그 말은, 녹림과 파마불제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녹림이 위기에 빠진 것은 맹의 요청을 거부한 결과입니다. 파마불제 어르신까지 위험에 빠지셨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안위 때문에 중원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갈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이 새끼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처해서 녹림으로 간 신불 스님한테 할 소리야!”
듣다 못한 단아란이 양팔을 붙잡힌 채 목소리를 높이자 맹주가 자소 섞인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를 응시한다.
“위험에 빠진 것이 파마불제 어르신이 아니라, 이름 없는 일개 무인 하나였어도 그리 반응하실 생각이십니까?”
“……!”
“저는…… 무림맹주입니다.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중원 무림의 운명을 걸고 가장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이입니다! 저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병력을 모아 죽산으로 들이닥치고 싶은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꽈악.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어금니를 악물면서도 단아란은 용케 스스로를 억눌렀다.
의지와 신념이 맞부딪치는 이 상황은 단순히 힘으로 짓누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까닭이었다.
“그래서, 신불 스님도 녹림도 저대로 내버려 두는 판단을 하시겠다? 중원 무림 전체를 두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니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새 싸늘하게 굳어진 얼굴로 단아란을 마주하며 섬천검제가 말을 잇는다.
“소교주의 위치가 이곳에서 멀다는 것만 파악되면, 무당산을 버리고 죽산으로 향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또한 이곳과 비교할 수 없는 불리함을 떠안아야 하는 전장이지만 말입니다.”
“……말은 잘하네, 결국 다 죽건 말건 내버려 두겠다는 소리면서.”
“죽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닙니다. 마교가 아무리 촘촘하게 포위망을 짠다고 하더라도, 파마불제께서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오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물론 녹림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맹주와 단아란 사이의 날 선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이윽고, 단아란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더니 섬천검제를 향해 묻는다.
“뭐, 좋아. 네 생각이 그렇다면 강요는 하지 않겠어. 그런데, 내가 혼자라도 신불 스님을 구하러 가겠다면 어쩔래?”
“……!”
“나 없이 마교랑 싸울 자신 있어? 본대가 아니라 소교주 하나 감당하기도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
단아란의 물음에 섬천검제가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그러고는 찾아든 잠깐의 침묵.
이윽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감았다 뜬 섬천검제가 단아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
“천무신녀 님의 말씀대로, 중원의 전력이 분산되어서는 전쟁에 승리를 논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저와 내기를 하나 하시겠습니까?”
“……내기?”
“만약 죽산에 가기를 희망하는 화경급 고수가 셋 이상 있다면, 맹주의 권한으로 이끌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천무신녀 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때는 천무신녀 님이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굽혀 주십시오.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 완료된 후, 보다 승산이 있는 계획에 협력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맹주의 말에 단아란이 무심한 얼굴로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화경급 고수들 중 셋 이상.
이 자리에 있는 이들만 놓고 본다면 무천검제와 아미권제, 검존과 권존, 그리고 도존까지 도합 다섯이다.
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단아란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어디, 다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 보지. 맹주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크흠…… 솔직히, 맹주의 생각에 완전한 동의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쓰윽.
단아란의 물음과 함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거구의 사내.
등 뒤에 하북팽가(河北彭家) 특유의 태도를 사선으로 매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도존(刀尊) 팽념(彭念)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만 가지고 중원의 사활이 달렸을지 모를 전쟁을 치르는 것은 반대입니다. 저희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을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한 도존이 섬천검제의 옆에 선다.
그러자 권존 또한 어두운 얼굴로 단아란과 섬천검제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곧 한숨을 내쉬며 섬천검제의 옆에 선다.
쓰윽.
“죄송합니다, 고문님. 저 역시 파마불제 어르신이 걱정되지만, 저희는 직책상 책임을 회피하는 선택은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아란이 주위를 둘러보자, 검존과 아미권제가 말없이 단아란의 옆에 선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화경급 고수는 무천검제 하나뿐.
그리고 이윽고, 한참을 고심하던 무천검제가 선택을 마쳤는지 발걸음을 옮긴다.
쓰윽.
“……아니!”
무천검제의 발이 맹주의 옆으로 옮겨진다.
이에 당황한 검존이 눈을 끔뻑이며 무천검제를 바라본다.
“천 대협! 지금 그게 무슨…….”
“……미안하오, 무태 대협.”
어두운 얼굴로 무태와 단아란의 얼굴을 번갈아 본 천광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다.
“나 역시 맹주의 자리에 앉았던 몸이오. 그리고 파마불제와는 마교와의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이기도 하지. 하지만, 대의(大意)를 위해서라면 맹주의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소이다.”
“이……!”
……꽈악.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며 맹주와 그의 편에 선 모두를 노려보는 단아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듯 시선을 회피하는 모두를 바라보던 단아란이, 이윽고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쉰다.
‘천광 오라버니가 저런 선택을 하다니.’
무태와 우향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은 예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설마 천광이, 기나긴 마교와의 전쟁에서 신불과 함께 사지를 넘어온 그가 저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그에게 있어, 벗이라고 할 만한 유일한 이는 신불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기는 제가 이긴 것 같군요.”
단아란의 얼굴을 바라보며 승리를 선언하는 맹주.
이에 자포자기한 단아란이 등을 돌려 회의실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벌컥!
“바, 방주님! 큰일 입니다!”
난데없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뛰어든 거지의 등장에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쏠린다.
이에 개방의 방주, 걸왕이 노여움 섞인 음성으로 그를 향해 꾸짖는다.
“어허! 방의걸!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난입하느냐!”
“죄송합니다! 방주! 워낙 급한 사안이라, 당장 이 자리에서 다루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급한 사안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기에 기본적인 절차와 예법도 무시한다는 말인가!”
“마교에 관한 보고입니다!”
방의걸의 한 마디에, 노여움으로 물들어 있던 방주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하게 변한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방의걸이 개방의 방주를 향해 전음을 보낸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방의걸을 통해 무슨 말을 전해 들었는지, 방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잠시 후 맹주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모든 작전을 전면 수정해야 할듯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섬서에서 무당으로 향하고 있던 소교주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른 어딘가로 방향을 바꾼 듯합니다.”
“그런……! 갑자기 대체 어디로!”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회의실을 나서려다 발걸음을 멈춘 단아란의 옆모습을 흘깃 바라본 방주가, 곧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사천방주…… 아니, 천신련주가 이끄는 천신련과 장강수로채 연합이 방현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천신련주와 장강수로채가……? 아니, 갑자기 그들이 왜 방현에 왔다는 말인가?”
“그, 그게…… 저희 방도들이 파악하기로는…… 아무래도 그들 모두가, 죽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방주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굳어버린 맹주.
잠시 후, 회의실을 나서려던 단아란의 한쪽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간다.
“이야…… 오라버니 제자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오네?”
쓰윽.
제자리에 선 채 맹주에게로 고개를 돌린 단아란이 회심의 미소와 함께 말을 꺼낸다.
“이걸로 셋…… 아니, 그 이상이네.”
“……!”
“어쩔래?”
단아란의 물음에 섬천검제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무당으로 향하던 소교주의 행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천신련주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의 개입으로 내기의 결과마저 단아란에게 기울었다.
결국 이 상황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 하나뿐임을 깨달은 섬천검제가, 감았던 눈을 뜨고 긴 호흡을 내쉰다.
그리고…….
“맹주의 권한으로, 지금 당장 무림맹에 속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 죽산의 마교를 칠 것입니다.”
“……!”
모든 잡념을 지워 낸 맹주의 선언에, 자리에 있던 이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결연함이 뒤섞여 떠오른다.
“그곳 죽산에서…… 마교와 중원의 운명을 결정짓겠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무림맹주, 섬천검제의 선언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 단아란.
그렇게, 무당에 자리 잡았던 무림맹이 중원의 운명을 건 결전을 위해 죽산으로 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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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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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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