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아니…….”
사무현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웃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지금 사무현이 마주한 상황이 꼭 그러했다.
“……세상에.”
한참 만에 중얼거리듯 흘러나온 한 마디.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방현이라는 지역에서, 수천에 달하는 음지 무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처음에는 설욕전이라도 벌이려는 수작인가 싶었지만, 살암을 보기 무섭게 부복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사무현은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모두 암천막의 이름 아래에 모인 이들이다.”
할 말을 잃은 사무현을 향해, 수천의 음지무사들을 뒤에 세운 살암이 입을 열었다.
“즉,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천신련의 편에 서는 것을 희망하는 이들이라는 뜻이지.”
텁.
……아, 어지럽다.
지끈거리는 뒷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감는 사무현.
그러자 그보다 조금 더 뒤쪽에 선 수룡왕이 부리부리한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 있는 사파라지만…….”
“넌 입 다물어라. 장강으로 쫓아내 버리기 전에.”
“……크흠.”
사무현의 살벌한 눈빛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헛기침을 흘리는 수룡왕.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사무현을 따라온 남경의 문주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수룡왕이 저렇게 찍소리도 못하다니…….’
‘진짜 칼부림 안 나는 게 신기하네. 련주님이 그 정도로 강해지신 건가?’
‘저쯤 되면 열받아서라도 그냥 돌아갈 만도 한데.’
자신을 향한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수룡왕은 입술만 깨물 뿐 차마 그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꼴이 말이 아니군.’
저들을 선착장에 내려 준 후, 마교와의 전투가 있을지 모르니 자발적으로 돕겠다며 따라나선 수룡왕이었다.
차라리 장강으로 돌아갈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룡왕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마교와의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놈이야말로 거의 확실한 차기 천하제일인이다.’
그의 본능이 틀린 게 아니라면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의 무위는 화경의 수준을 넘어섰다.
한평생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뒤진다고 믿어 본 적이 없는 수룡왕이지만,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한테만큼은 자신 정도의 재능으로 비견될 수 없다.
그리고 하필 그런 괴물 같은 놈과 수룡왕 사이에는 아직 청산하지 못한 빚이 남아있다.
‘어떻게든 남경에서의 악연을 씻어야 한다.’
지난 음지와의 전투에서 천신련을 도운 대가로, 그들은 장차 활동의 근거지가 될 소중한 땅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그 땅을 지키는 것은 결국 힘.
만약 사무현이 오래전 남경을 공격했던 일을 근거로 장강수로채를 공격하려 한다면, 그들의 힘으로는 결코 사무현과 천신련을 당해 내지 못한다.
결국, 제 아무리 수룡왕이라고 하더라도 훗날을 생각한다면 저 사무현과의 관계를 지금이라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불가능 하다면…… 반드시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에 놈을 죽여야만 한다.’
어느 방향으로 목적을 이루려 해도, 저 사무현과 죽기 살기로 붙어 있는 방법뿐이다.
한평생을 오만함으로 살아온 그에게 끔찍할 정도로 싫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끄응…… 진짜 골치 아프네.”
한편 수룡왕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지만, 결국 스스로도 답을 찾지 못한 사무현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음지와 천신련이 서로를 죽이려 발버둥 치던 전장에서 돌아온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아무리 상황이나 이윤에 따라 관계가 바뀌기도 하는 것이 사파와 음지의 특성이라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그 정도가 과했다.
그런 사무현을 향해 살암이 전음을 보내온다.
사무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살암이 사무현의 뒤편에 선 남경의 문주들을 둘러본다.
마교와 부딪칠 위험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니, 천신련주의 안위가 곧 천신련 전체의 안위나 다름없다며 따라온 이들이었다.
사실 마교보다 장강수로채의 배신을 염려한 것이겠지만…….
“……계속 고민만 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전음을 멈추고 돌연 입을 여는 살암.
생각지 못했던 그의 행동에 사무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들은 방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과 동시에 마교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계속해서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천마가 이끄는 본대가 죽산의 인근을 에워싸려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
“이대로는 마교와의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살암의 한 마디에 사무현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지금까지는 천신련 내부의 반발을 생각했지만, 마교와의 전투가 현실화된 이상 전력의 강화가 곧 천신련도들 하나하나의 생명과 직결될 테니까.
“……그럼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지.”
저들이 마교와의 전투를 각오하면서도 이곳에 버티고 있었다는 것은, 천신련과 함께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 이후를 생각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라면 적어도 이끌고 가는 것이 아주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사무현이 살암의 뒤편에 선 모두를 빙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천신련에 속한 모두는 한 식구다.”
“…….”
“자신이 살겠다고 식구를 버리는 녀석은 천신련이 될 자격이 없다. 고작 하나의 식구를 구하고자 마교가 있는 죽산으로 가는 이 행동이 곧 우리가 천신련임을 증명한다.”
사무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질수록 살암의 뒤편에 선 음지 무사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사실 천신련이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 마교와의 전쟁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정작 죽산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몰랐던 이들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작 천신련도 하나를 구하기 위함이라니?
당혹스러워 하는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사무현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어리석어 보이는 이 행동이 천신련을 하나로 만들고…… 천신련에 속한 모두를 보호할 것이다.”
“……!”
사무현의 한 마디에 음지 무사들의 눈에 이채가 스친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 선 사천방도들과 천신련도들의 어깨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천신련이라는 이름에 속한다는 것은, 그들을 노리는 적이 그들 개개인이 아닌 천신련을 상대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
득실과 이권을 따져 움직이는 일반적인 집단과는 달리,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식구를 지키겠다는 일종의 신념이니까.
“그 어떤 사상보다 이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자들만 남아라.”
사무현의 한 마디.
이에 자리에 모여 있던 음지 무사들 중 일부가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자리를 이탈한다.
음지에 속한 이상, 천신련이라는 이름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달아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가 자리를 이탈하고 나자, 약 이천에 가까운 음지 무사들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사무현을 마주하고 있었다.
“……좋다.”
“…….”
“지금부터 너희는 천신련이다.”
그 어떤 절차나 예법도 없이, 사무현의 입에서 떨어진 한 마디의 허가.
고작 그것이 전부였지만 천신련에 속한 그 누구도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놀라워하는 수룡왕과는 달리, 살암은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머금는다.
‘그래, 너라면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녹림이나 장강수로채에 버금가는 천신련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음에도, 수장으로서의 위엄을 위한 허례허식이나 이해득실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무현이 생각하는 천신련은 그저 그가 아끼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지금부터는 전속력으로 간다.”
쓰윽.
“……죽산으로.”
파밧!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죽산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사무현.
잠시 후 그 뒤를 따라, 사천방도들을 포함한 천신련도들이 뒤따른다.
“암천막도 뒤를 따른다.”
“존명!”
살암의 한 마디에 우렁찬 목소리로 복명하는 새로운 암천막…… 아니, 천신련의 무사들.
그렇게, 사천에 가까운 천신련도들이 마교와의 결전을 각오하고 죽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
스스슥.
어두운 밤.
수풀을 헤치며 빠른 몸놀림으로 죽산을 오르는 수십여 명의 무사들.
이들은 바로 만악대의 부대주 마문이 이끄는 마교 무사들이었다.
‘이상하군.’
수하들을 이끌고 산을 오르는 마문의 얼굴에 의구심이 어린다.
벌써 꽤 오랜 시간을 달려왔음에도 녹림도들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이 정도 산을 올랐다면 지금쯤 최소한 두 개 산채 정도는 마주했어야 옳다.
‘설마…… 전력을 모아 반대편의 포위망을 뚫고 있는 건가?’
타당한 의구심이었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도는 없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일정한 속도를 지키며 죽산을 오르는 것.
그리고, 근처에서 발견되는 모든 녹림도들을 말살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상황을 보고하는 것뿐.
그렇게 갑갑함 속에서 얼마나 내달렸을까?
이윽고 한참을 달린 끝에,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녹림의 깃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대주! 녹림입니다!
“음! 모두 속도를 높여라! 한 놈도 도망칠 수 없도록 전력으로 붙어라!”
“존명!”
마문의 명과 함께 깃발이 보이는 방향으로 더더욱 속도를 높이는 마교 무사들.
그 순간, 언덕 위에서 내력이 실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화살을 쏴라!”
쇄새새색! 쇄쇄쇅!
수백여 발의 화살들이 빼곡히 밀려드는 마교 무사들을 향해 폭우와 같이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여기서, 죽산에 오른 이후 단 한 명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던 그들 사이에 첫 사상사자 발생했다.
퍼버벅! 퍽!
“컥……!”
쩡!
“큭……! 이건!”
수하들 중 몇몇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을 쳐낸 마문의 검에서 지금껏 느끼지 못한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이는 그들의 앞에 있는 산채가 지금까지 만났던 녹림도들과는 격을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
하지만 마문의 얼굴에는 도리어 재미있겠다는 듯 비열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모두 집중해라! 지금까지의 녹림과는 다르다!”
쩌저정 쩡!
파바바박!
마문의 외침을 들으며 마교 무사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몸을 보호한다.
검막이나 도막을 치며 화살을 막아 내는 이, 인근의 엄폐물을 활용해 몸을 숨기는 이,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화살을 피해 내는 이.
족히 천여 발에 가까운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삼십여 명에 이르는 대원들 중 목숨을 잃은 이는 다섯 명 남짓이다.
“화살 세례가 그쳤다! 모두 언덕을 올라라!”
파바밧!
마문의 명과 함께 황급히 언덕을 뛰어오르는 무사들.
그가 이끄는 무사들 중 절반이 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다.
녹림의 산채를 이끄는 채주들 중에 절정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살로 인한 피해는 근접 전투가 시작되면 충분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모조리 죽여 주마!’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고 순식간에 비탈길을 오른 마문이, 수하들과 함께 언덕 위로 올라섰다.
휘익.
타닷. 탓.
“……음?”
“지금이다! 쏴라!”
언덕에 오르기 무섭게 마문을 포함한 모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둥근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수백의 녹림도들이다.
그 중 선두에 서서 활을 겨누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고 있다.
쐐쇄새쇅! 쇄쇅!
“전력으로 검막을 펼쳐라!”
한눈에 보아도 전열에 선 이들의 무위가 범상치 않자, 마문이 검강까지 끌어 올리며 검막을 만들어 낸다.
눈빛을 통해 저렇게 내력이 방출될 정도면 십중팔구 절정에 오른 고수들.
저런 자들이 전개하는 화살은 더 이상 평범한 위력의 화살이 아니다.
쩌저정! 쩡! 퍼버벅! 퍽!
“크아악! 아악!”
또다시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검신에서 전해지는 화살의 위력을 느끼며 마문이 입술을 악물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오히려 독기가 서리고 있다.
‘이놈들……! 어설프게 활을 쓰는 놈들이 아니다!’
절정의 고수가 이 정도로 활을 다루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애초에 활이라는 것이 단순한 살상력을 목적으로 한 무기인데다, 날아가는 화살에 내력을 싣는 것은 실로 비효율적이고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에게 화살을 날리는 놈들은, 절정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능숙하게 화살에 충분한 경기를 싣고 있었다.
‘하나…… 그렇기에 더더욱 근접전으로 붙기만 하면 그만이다!’
화살 세례가 끝나기만 하면 거리를 좁히는 건 한순간이다.
그렇게 복수의 순간을 기다리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윽고 검막을 두드리는 화살 공격이 나자, 재빨리 검을 내리며 마문이 소리친다.
“지금이다! 당장 붙……!”
쿵!
마문을 포함한 만악대원들이 몸을 날리려는 그때, 녹림의 진형을 훌쩍 뛰어넘은 거구의 사내가 그들의 앞에 떨어졌다.
“고작 그 정도 머릿수로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들이로구나.”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어지간한 여인의 허리둘레에 맞먹는 거대한 팔뚝.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임은 맹수의 그것과 같이 은밀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다.
범상치 않은 살기와 위압감을 풍기는 그 모습에, 상대의 정체를 눈치챈 마문이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놈……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설마니라.”
어느새 온전히 몸을 일으킨 사내가, 그들을 향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머금는다.
“내가 녹림왕이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