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녹림왕!”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놀라는 것도 잠시.
어느새 마문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머금어진다.
“큭…… 이거, 생각지도 못했군. 지금쯤 황룡채 구석 어딘가에서 벌벌 떨고 있을 줄 알았는데…….”
“킥, 고작 네놈들 따위가 두려워서 말이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실소를 흘린 거구의 사내. 막우가, 잠시 후 느릿하게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포위된 진형을 헤치고 이십여 명의 거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위 산채들만 상대하느라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양인데…… 지금 네놈들이 마주한 산채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
녹림왕의 뒤로 등장한 산적들이 절정, 그것도 중급 이상에 이른 고수들이라는 것을 깨닫자 마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진다.
“……과연, 명색에 황룡채라 이건가?”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그들이 처리한 산채의 채주들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문의 얼굴에 긴장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절정이라고 해도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로 갈리기 마련이니까.
평화로운 중원의 산에서 왕 노릇이나 하던 녀석들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을 당해 낼 수 있을 리 없다.
‘여차하면 녹림왕만 잡고 빠져도 그만이다!’
가급적 녹림왕은 생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전투 중에 적장을 처리했다고 질책을 받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마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자세를 낮춘다.
“녹림왕씩이나 되는 이가 선두에 나선 용기는 칭찬하지. 하지만 그 만용 덕분에 우리의 일은 한결 수월해졌구나.”
“만용?”
“고작 산적들의 우두머리 따위가…… 왕이라고 불리니 뭐라도 된 것 같았더냐!”
파밧!
말을 마친 마문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녹림왕과의 거리를 좁힌다.
만악대의 부대주인 그는 교내에서도 서열 백위권 안쪽에 꼽히는 고수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문의 검이 검붉은 검강을 머금고 녹림왕 막우의 머리로 떨어진다.
여기까지 벌어진 모든 시간은, 그야말로 눈 한번 깜짝할 정도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스팟!
콰아앙!
“……!”
섬광같은 마문의 일검이 막우의 권강에 가로막힌다.
아니, 저것을 권강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주먹에서부터 팔꿈치까지를 두껍게 보호하고 있는 강기의 크기는, 마문이 전개한 검강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쯧, 하도 자신 있게 떠들기에 좀 기대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혀를 찬 막우가 가볍게 마문의 검을 튕겨내더니, 그대로 한 걸음 내딛으며 반대편 주먹을 내뻗었다.
퍼엉!
“……!”
아슬아슬하게,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막우의 주먹을 피해 낸 마문.
상대의 주먹은 기세 좋게 허공을 갈랐지만, 마문은 머리털까지 쭈뼛 곤두서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 지금 저 소리는?’
흔히 말하는, 주먹이 바람을 가른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충격파가 허공을 때리며 만들어 내는 파공성과도 조금 달랐다.
‘……폭발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후려쳤는데, 그 순간 얼마나 큰 힘이 집중되었던 것인지 폭발에 가까운 파동이 만들어졌다.
파박!
타닷.
황급히 막우의 어깨를 걷어차며 거리를 벌린 마문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어 자세를 취한다.
‘저런 것에 제대로 맞았다가는……!’
그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의 얇은 검으로 방어를 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 증거로, 조금 전 일검을 펼쳤던 그의 오른손이 심상치 않게 떨리고 있다.
단 한 합의 교환만으로도 육체에 상당한 부담이 전해졌다는 뜻이다.
당혹스러움이 전해지는 마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막우가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는다.
“무얼 하느냐? 장난은 그만 치고 어서 다시 들어와 보거라.”
“…….”
“응? 뭐야, 설마 지금 그게 네 전력(全力)이었느냐?”
막우의 노골적인 도발.
하지만 이런 것에 넘어갈 만큼 마문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힘으로 맞붙는 정면대결은 무리라는 것을 받아들인 마문이, 유연하게 검신을 아래쪽으로 내리며 도리어 막우의 공격을 유도한다.
그 뜻을 파악한 막우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자세를 낮춘다.
“하면 이쪽에서 가 주지.”
쾅!
말을 마친 막우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며 마문과의 거리를 좁힌다.
마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육체가 무색할 정도로 막우의 움직임은 실로 날렵했다.
부웅.
“큭……!”
순식간에 코앞에 당도한 막우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해 낸 마문이, 그대로 몸을 틀어 막우의 옆구리 쪽을 베어 가려 한다.
그 순간.
콰앙!
“컥!”
마문의 검이 막우의 옆구리에 닿기 직전, 허공으로 몸을 띄운 막우의 일각이 예상치도 못한 각도에서 날아들어 마문의 안면을 걷어찬다.
소림 체술의 무형각의 발현.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우수수 뽑힌 마문의 신형이 넉 장 가까이 허공을 날아 맨바닥을 나뒹군다.
쿠당탕탕.
촤지이이익.
“……크헉! 쿨럭!”
“……쯧.”
마문의 얼굴을 걷어찬 막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옆구리를 내려다본다.
그의 무형각이 더 빨랐다고 생각했는데, 발이 안면에 틀어박히는 순간에도 놈의 검은 정확하게 옆구리를 베어 냈다.
비록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지독한 놈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큰소리친 값은 하는구나. 아쉽게도 이것으로 끝난 것 같기는 하다만…….”
“……쿨럭! 쿨럭!”
적지 않게 큰 충격을 받았는지, 연신 붉은 피를 토해 내며 마문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녹림왕의 말대로다.
비강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로 코뼈가 짓뭉개졌고, 뽑혀 나간 이빨들이 입안 곳곳에 엉망으로 틀어박혔다.
시야는 흐릿하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기도 버겁다.
이것이 고작 단 한 번의 발길질에 당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다.
‘노, 녹림왕은 녹림왕이라는 건가……!’
들어 본 적은 있다.
정파가 중원을 휘어잡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보유한 빼어난 무공을 사제 간의 연을 맺어 체계적으로 전승하는 전통의 힘이라고.
그에 반해 각자도생이나 다름없는 사파는, 정파처럼 체계적으로 무공을 전승받아 성장한 고수가 나타날 수 없는 구조라고.
하지만 그런 구조이기에 더더욱, 스스로의 힘으로 사파의 ‘왕’이 될 수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괴물들뿐이라 했다.
단순히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어설픈 재능으로는, 정파의 다섯 배 규모에 달하는 사파무림에서 왕이라 불리는 자리에 다다를 수 없으니까.
‘하나, 이대로 당하기만 하고 끝낼 수 없다……!’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다.
일대일로는 당해 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 잡을 수 없는 괴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그와 비슷한 고수 다섯 정도면 어떻게든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계산을 마친 마문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향해 소리친다.
“어허 움익여라(어서 움직여라)! 옴을 포위하고 업은하는 옴으을(놈을 포위하고 접근하는 놈들을)……!”
……풀썩.
수하들을 향해 말을 이어 가던 마문의 말문이 막힌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상황.
황색 승포를 입고 있는 노승의 앞으로, 마지막까지 서있던 것으로 판단되는 만악대원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아미타불…… 판단이 너무 느렸소이다.”
“소, 소림승……? 소림이 어찌 이곳에……?”
……아니, 소림승이라도 저건 단순한 소림승이 아니다.
소림의 최정예라 불리는 십팔나한이라고 해도, 혼자서 절정급 고수가 섞여 있는 만악대원 이십여 명을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그것이 가능한 소림승이 있다면 단 하나뿐……!
“파마…… 불제……!”
증오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노승, 신불의 명호를 부르는 마문.
이백 년 전, 무천검제와 함께 마교가 중원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을 막았다는 전설적인 노괴(老怪)가 어찌 이곳 죽산에 있다는 말인가?
“설마…… 무림맹이 이곳에……!”
퍼억!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던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문의 오른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다.
털썩.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쯧, 시끄럽군.”
뚜둑.
촤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발버둥을 치는 마문을 찍어 누르며, 엎어진 그의 왼팔을 비틀어 뜯어내는 막우.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참아내는 그를 그대로 짓누른 채, 막우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친다.
“거기 누구, 잘 드는 날붙이 가진 놈이 이거 다리 좀 잘라라!”
“왜 굳이 다리를 자릅니까? 그냥 죽이면 되지.”
“야이……! 저것들이 한 짓이 있는데 곱게 죽여서 되겠냐?”
“형님! 고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거치도로 가죽부터 슬슬 발라서…….”
“고문하는 거 아니니까 그냥 다리나 잘라, 이것들아!”
뒤에서 들려오는 아우들의 대화 소리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막우.
잠시 후, 커다란 부월을 들고 걸어온 황룡채 서열 다섯 번째의 호웅(浩熊)이 힘차게 부월을 휘둘러 마문의 다리를 잘라 낸다.
촤아아악!
“……!”
까드드득.
두 눈에 핏대가 서고 입술에 경련이 일었지만 마문은 용케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여기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치욕이라 생각했는지,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통을 참아 내고 있었다.
“자결은 하지 마라. 네놈은 나 대신 천마에게 전할 말이 있으니까.”
막우의 말에 마문은 그제야 저들이 자신의 사지를 자르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는 십중팔구, 녹림이 천마신교에게 행하는 경고이자 선전포고이리라.
촤아아악!
털썩.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사지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마문.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았지만, 막우가 그의 몸 몇 군데의 혈도를 건드리자 정신은 맑아졌고 고통은 다소나마 줄어들었다.
“천마에게 말을 전하기 전에 뒈지면 안 되니까 해 주는 조치다. 돌아가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해라.”
마문의 등을 짓누르고 있던 무릎을 떼어 내며 막우가 스산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굳이 이곳까지 찾아올 필요 없으니 기다리라고. 녹림은 결코, 형제들을 죽인 적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
“가라.”
쾅!
그 한 마디와 함께 막우의 발길질 한 번에 마문의 몸이 허공을 날아 언덕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비탈길을 굴러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지만 막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등을 돌렸다.
아무리 사지가 잘렸다고는 하나, 저만한 고수가 저 정도 충격으로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을 리 없을 테니까.
그리고 고개를 돌린 막우의 눈에, 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신불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것으로 되었습니까?”
“아미타불…… 우선은 되었네. 하나, 이것이 시작이라고 봐야겠지.”
막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신불의 얼굴은 신중했다.
“서둘러 움직여야 하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버는 것이니, 다른 산채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저들의 진격을 신중하게 만들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신불의 말에 조금의 의구심도 제기하지 않고 대답하는 녹림왕.
어느새 그와 한뜻이 되었는지 상위 서열 채주들도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저들의 눈빛에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신불은 무당산이 위치한 북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미타불…… 과연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신불은 알고 있었다.
직위와 책임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사로운 감정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아마 무림맹주는 신불과 녹림이 위험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무림맹의 연합군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선택 한번으로 중원무림의 운명이 결정되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세상에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세상은 그들을 협객(俠客)이라 하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신불이 아는 사람 중 이 조건에 가장 걸맞은 이는 세상이 결코 협객이라 인정하지 않을 두 사람이다.
천무신녀 단아란과 천신련주 사무현.
‘아니, 그들이 아닌 누구라도 좋다…… 누구라도…….’
부디 그들을 도우러 올 협객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신불은 녹림의 정예들을 이끌고 어두운 숲속을 가로질렀다.
절망만이 가득한 이곳 죽산에,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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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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