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4
034화
파스스스.
처음에는 아지랑이와도 같았던 그것은, 잠시 후 작은 불길처럼 형체를 만들어 천마도의 도신을 감싸 안았다.
그러더니 이내 조금씩 팽창해, 하나의 유형화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건?’
어느 순간, 손아귀에서 전해지던 천근같은 무게감이 빠른 속도로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야. 이건 분명…….’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묵직하면서도 뻐근한 무게감.
이것은 분명, ‘벤다’라는 감각이다.
그것을 깨달은 사무현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커지는 그 순간, 마치 거짓말과 같이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파스스스스.
‘……이건?’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검은 마기는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마기의 폭풍.
그제야 사무현은, 자신이 폭풍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베어 낸 건가.’
이제 겨우 절반이지만, 어쨌거나 베어 냈다.
버텨 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살아서 대지를 밟고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지.’
어느새 태풍의 눈을 지나, 그의 맞은편에서 검은 마기의 폭풍이 다시 한번 가까워져 왔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어쩐지 저 힘이 감당 못 할 벽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손에 들린 천마도의 도신에는, 그의 의지를 담아낸 선명한 푸른 도강(刀罡)이 머금어져 있다.
‘……한 번 더.’
그렇게 사무현의 천마도가 다시 한번 그의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잠시 후 마기의 폭풍과 사무현의 천마도가 두 번째 충돌을 시작했다.
쩌저저정!
지이이이익.
충돌과 함께 또다시 거칠게 밀려나는 사무현의 신형.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입에서 흘러나온 피는 무복 앞섶을 가득 적셨지만, 사무현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주르르륵.
두 눈에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붉게 물들고, 그의 무복도 넝마처럼 변해 버린 지 오래.
하지만, 사무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 보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그의 손아귀에 전해지는 압력이 온전히 사라졌음을 느낀 그 순간, 사무현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아무것도…….
파스스.
‘……해낸 건가?’
대체 얼마나 뒤로 밀려온 것인지, 사방에 빼곡하게 자라 있던 고원의 나무들이 꽤나 멀찌감치 보인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빼곡한 들풀들이 발목 높이로 자라 있는 평지.
그리고 고원에서 사무현이 서 있는 자리까지, 마기의 폭풍이 만들어 낸 황폐한 길이 널찍하게 늘어져 있다.
그렇게 반신반의한 얼굴로 서 있는 사무현의 귓가로, 놀라움이 역력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베어 낸 것이냐? 마선멸풍을?”
“……어?”
……아, 그 이상한 공격의 이름이 마선멸풍이었나.
“……어, 베어 냈다.”
운이 좋았지.
설마 거기서, 도강이라는 것을 발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절정의 경지에 올라야만 구현 가능하다는 그 도강을……. 어? 그럼, 나도 이제 절정 고수인 건가?
“……야.”
“음?”
“그럼 나도 이제 절정…….”
“……! 피해라!”
쐐애애액!
콰과광!
……아, 그렇지.
이걸 막아 냈다고 해서, 고원을 탈출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구나.
멍청하게 잠깐의 희열에 눈앞의 위기를 잊어버리고 말다니.
곧이어 사무현의 시야가 어지럽게 변하더니, 그의 몸이 거칠게 바닥과 몇 차례 충돌하는 것이 느껴졌다.
쿵!
“……크헙!”
아……. 이거 제대로 맞았다.
흉부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고, 제대로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천마도!’
한순간의 방심 때문이었을까?
천마도를 쥐고 있던 오른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엎드린 채로 다급히 고개를 들자, 그와 석 장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마도가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안 돼!’
절망적인 얼굴로 다급히 천마도를 향해 기어가는 사무현.
그리고 그런 사무현의 모습을, 화상장로는 고원 안쪽에서 어쩐지 묘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빌어먹을.’
또다시 살아남았다.
저 금강불괴의 쥐새끼가, 자신의 절기를 버텨 내고 기습적으로 날린 강기에도 여전히 숨이 붙어 있다.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천마도를 쥐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어가고 있는 저 모습만 보아도, 그가 모든 힘을 소진했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힘이 빠진 쥐새끼가 위치한 곳이 분명한 ‘경계 안쪽’이라는 것에 있었다.
‘……실착이다.’
한시라도 빨리 놈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퇴로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굳건한 포위망만을 믿고 공격을 이어 갔는데, 결과적으로 스스로 포위망을 열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놈을 붙잡으려면 경계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경계를 넘으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넘는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저 쥐새끼를 놓치고 돌아간다면, 그는 반드시 초대 천마에게 죽는다.
반드시 죽는 것과 죽을 가능성이 있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응당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옳으리라.
‘마침……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니.’
그렇게 결심을 마친 화상장로가 입술을 꽉 물고 사무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밧!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거리.
이를 눈치챈 사무현이 다급히 천마도의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화상장로의 오른손에 검붉은 수강이 머금어진다.
‘놈의 목만 베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목을 천마의 앞에 가져가, 저항이 심해 불가피한 처리였다고 보고하면 모든 것이 말끔해진다.
그렇게 그의 손이 사무현을 향해 떨어지려는 그 순간, 난데없는 거대한 존재감이 그들을 향해 엄습해 왔다.
‘……이건!’
온몸에 오싹한 소름이 끼쳐 오는 것을 느낀 화상장로가, 사무현에게서 미련 없이 몸을 돌리며 다급히 한쪽으로 수강을 휘두른다.
콰과과과광!
쿠구구구.
“……크으읍!”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화상장로의 몸이 십여 장 가까이 튕겨져 땅바닥을 나뒹군다.
침음성을 흘리며 다급히 몸을 일으킨 그의 앞에, 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누구지, 저건?’
꼼짝없이 여기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마도를 쥘 수 있다고 한들, 더 이상 사무현의 몸에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칠 만한 그 어떤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최후의 발악이나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천마의 다급한 음성이 사무현의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움직이지 마라!’
‘……!’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지만, 사무현은 천마의 말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이는 이해가 아닌 신뢰로써 행해진 것.
그리고 뒤이어, 놀라운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익.
“크흐음……!”
지금까지 그를 거의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화상장로가 정체불명의 사내의 공격에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기습 때문이 아니야.’
화상장로는 분명, 공격을 당하기 전에 상대의 존재를 느끼고 사무현을 향한 공격을 멈추었다.
그런 그를 일수에 저렇게 날려 버렸다는 것은, 저 정체불명의 사내의 강함을 방증하는 것.
그리고 또한…….
‘……두려워하고 있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으나, 곧바로 몸을 일으킨 화상장로.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부은 상대를 향해 감히 반격을 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상대를 바라보는 화상 장로의 얼굴에 떠오른 그것은, 분명한 공포감이었다.
저벅저벅.
“자…… 잠깐! 나는 싸울 뜻이 없소!”
말하는 것과 달리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하며, 사색이 된 화상장로가 자신의 앞에 선 사내에게 소리 쳤다.
언뜻 창백하게도 느껴지는 새하얀 얼굴과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심한 눈빛.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 어떤 기운도 인근에서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숨조차 쉬기 힘든 압도적인 존재감이 전신을 억누른다.
“후우……. 내, 내 말을 들어주시오. 나는 그저 교의 죄인을 잡으러…… 이런!”
쐐애애액!
콰과과과과광!
화상장로의 말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그의 말을 끊고 붉은 강기를 전개하는 백발의 사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한 자루의 검에는, 일곱 자에 이르는 붉은 검강이 타오르고 있었다.
“크으으읍……! 쿨럭! 쿨럭!”
가까스로 강기를 받아 내기는 했으나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는지, 화상 장로가 검붉은 핏물을 토해 냈다.
그런 그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백발의 사내가 입을 연다.
“누가 네 변명 따위를 듣고자 하였더냐?”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사내의 음성에, 화상장로가 입술을 깨물며 가늘게 몸을 떤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화상 장로가 돌연 양손을 앞세우고 가공할 공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놈! 순순히 당해 줄 것 같았더냐!”
화상장로의 양손을 중심으로, 사무현을 몰아붙였던 검은 마기의 폭풍이 일기 시작한다.
대지가 갈라지고 머리칼이 하늘로 솟구치며, 이마와 두 손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공력을, 짧은 순간에 과도하게 집중시키고 있다는 증거!
“받아 봐라, 이노옴!”
콰구구구구!
화상장로의 외침과 함께, 그가 전개한 검은 마기의 폭풍이 그대로 백발의 사내에게로 쏘아져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자신을 집어삼킬 기세로 날아드는 기운을, 사내는 그저 덤덤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그리고 잠시 후, 코앞까지 다가온 마기의 폭풍을 향해 사내가 무심히 일 검을 휘둘렀다.
스팟!
단 한 번의 휘두름.
그와 함께 한 줄기의 거대한 붉은 검광(劍光)이 마기의 폭풍을 갈랐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팽창하던 마기의 폭풍이, 그대로 양분되어 힘을 잃고 소멸한다.
“마…… 마선멸풍을 일 검에……!”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하니 벌리며 경악 어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화상장로.
그런 그를 향해 조소를 머금은 백발의 사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저벅.
“……저항은 끝이더냐.”
“……!”
파밧!
자신으로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는지, 화상장로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등을 돌려 도주를 시도한다.
극마에 오른 고수답게,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멀어져 가는 화상장로의 신형.
그러나 그 순간, 돌연 그의 시야가 어지럽게 돌아가더니 곧 분리되어 버린 자신의 몸뚱어리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이게…… 어찌 된……?’
강기? 아니면 이기어검(以氣馭劍)?
그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왜 자신의 목과 몸이 분리되어 땅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화상장로의 의식은 그대로 끊어지고 말았다.
사무현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극마급 고수의, 너무도 허망한 최후였다.
***
털썩.
“……아.”
저 멀리서, 목과 몸이 분리된 화상 장로의 시신이 맨바닥을 나뒹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사무현의 머리로도 도무지 저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
‘그냥…… 허공으로 검을 한 번 휘두른 것뿐인데.’
강기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날아다닌 것도 아니다.
그냥,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저 멀리 있던 화상장로의 목이 떨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造化)라는 말인가?
‘……진짜 괴물이잖아?’
분명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이인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지의 공포감이 사무현을 지배한다.
마치, 초대 천마를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자신보다 고수를 앞에 두고도 등을 보인다라……. 우습지도 않군.”
그렇게 조용히 홀로 중얼거린 사내가 이윽고 천천히 사무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사무현은 뱀 앞의 쥐처럼 온몸이 굳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스윽.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베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다만.”
눈빛만큼이나 무심한 상대의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든 사무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죽는다!
그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사무현이 그대로 사내의 앞에 부복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천한 것의 목숨을 구해 주시니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혀업!”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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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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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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