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다그닥다그닥.
덜컹덜컹.
파바바밧!
드넓은 황야를 내달리는 수천의 무사들.
그들의 선두에는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 하나가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의 평평한 지붕 위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내가 가만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들은 바로 얼마 전 방현에서 죽산으로 떠난 천신련과 장강수로채 연합이었다.
두두두두.
“……흠.”
마차를 끄는 말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하는 수룡왕이, 마차 위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사무현을 흘깃 바라보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해는 어느덧 중천 언저리에 걸려 있었다.
‘……벌써 일곱 시진 째 저러고 있군.’
전날 신시에 마차를 구해 방현을 출발했다.
방현에서 죽산까지의 거리는 전속력으로 행군했다는 가정하에 이제쯤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럼에도 아직 죽산이 저 멀리에 위치해 있는 것은, 장강에서 방현까지 먼 거리를 달려온 이들의 체력을 고려해 행군의 속도를 늦춘 까닭이었다.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했는데 무모한 강행군을 계속한다면, 자칫 마교와의 전투에서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한데…… 어쩐지 저놈답지 않다는 말이지.’
그가 아는 저 천신련주라는 놈은 자신의 수하라는 것들을 식구라 부르며 제 몸처럼 아끼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오른팔 격인 아우라는 자가 마교 놈들에게 포위를 당해 있는데 도리어 행군의 속도를 늦춘다?
물론 그를 구하러 가는 수하들 역시 소위 말하는 그의 식구들이겠지만 역시 수룡왕이 아는 그의 모습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꼭 시간을 버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시간을 버는 것일까?
수하들이 회복할 시간?
그도 아니면…….
사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수룡왕이, 그와는 조금 떨어져 내달리고 있는 암천막주에게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어이! 음지 애송이!”
“……장강의 물고기가 입이 험하군.”
자신을 향한 수룡왕의 외침에 눈썹을 꿈틀한 살암이 그를 노려본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룡왕이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며 질문을 던진다.
“저 녀석, 본문에 있을 때도 종종 저러냐?”
수룡왕이 마차 위에 있는 사무현을 가리키며 묻자 살암이 두 눈을 가늘게 뜬다.
“……그건 왜 묻는 거지?”
“궁금하니 묻는 것이다. 원래도 저놈이 저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지.”
쓰윽.
수룡왕의 물음에 말없이 사무현 쪽을 바라보는 살암.
그가 자주 저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느냐고?
‘아니, 오히려 반대에 가깝지.’
살암이 아는 사무현은 항상 육체의 단련과 경험을 중시하던 이다.
명상을 통한 깨달음을 구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익혔거나, 육체의 단련만으로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벽에 부딪쳤을 때나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한데…….
‘확실히…… 평소에 볼 수 없던 모습이긴 하군.’
지금 사무현은 분명 필사적으로 명상에 매달리고 있다.
그가 개방적인 마차 위를 명상의 장소로 택했다는 것은, 죽산의 상황이 어떠한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확인하고자 하는 초조함을 방증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초조해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몇 시진 째 명상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명상을 통해 얻어 내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살암이 말없이 사무현을 바라보고만 있자, 슬며시 미간을 좁힌 수룡왕도 다시금 사무현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무현은 흔들림 없이 명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보인다.’
눈을 감고 있는 사무현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선명한 윤곽이 그려진다.
장난이라도 치는 듯 건성으로 부여잡은 좌수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도격을 구사하는 인물이.
‘천마.’
아니, 이제는 위혜보라고 불러야 할까?
평소와 다름없는 오만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부드러운 도초를 그려 낸다.
일 초식, 이 초식, 삼 초식…… 천마도법의 모든 초식들이 하나하나 사무현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굉장하다.’
지금 사무현이 보고 있는 저 모습은 진짜 천마가 만드는 형상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많은 도초를 나눠왔던 사무현이기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머릿속에서 천마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던 것뿐이다.
그가 화경을 넘어 현경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곱씹고 또 곱씹을수록 사무현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화경의 경지에서 보다 현경에 오른 지금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높은 곳에 오를수록 볼 수 있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
‘녀석은 대체 어떤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천마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지만 이는 오만이었다.
현경에 오르고 나서도, 천마의 도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과거의 그가 천마의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인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것을 깨닫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부족해.’
그가 명상에 들어간 것은 방현을 나선 직후다.
마교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후,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다잡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천마의 도를 떠올리는 명상만으로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면, 장강의 배에서, 그리고 방현으로 가는 길에서의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얻은 것에만 집중하자.’
잃은 것에,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아쉬워하는 것은 사치다.
지금은 그저, 천마의 도를 되뇌는 것만으로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또한 천마의 가르침.
그렇게 죽산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사무현은 급속도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
“이노오옴!”
콰아앙!
털썩.
검붉은 검강을 끌어 올리고 종횡무진 녹림도들을 베어 넘기던 마교도 하나가, 막우의 거대한 주먹에 의해 머리통이 부수어진다.
피로 머리칼까지 붉게 물들인 막우가 거칠어진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밀집된 마교도들을 기공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신불이 모습이 막우의 눈에 들어온다.
“아미타부우우울!”
콰구구구구.
신불이 내뻗은 권기가 광범위하게 모든 것을 휩쓸며 지나간다.
비탈길을 오르던 마교도들을 일거에 쓸어 버린 신불이, 그대로 몸을 날려 녹림도들과 근접전을 벌이고 있는 적의 진형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콰아앙!
“크헉……!”
“파, 파마불제다!”
“쳐라!”
사방에서 마교도들이 달려들었지만, 신불은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날아드는 공격들을 흘려 냈다.
상체를 뒤로 젖혀 그의 안면으로 날아든 날붙이들을 흘려 낸 신불이, 그대로 쌍장을 내뻗어 양 옆으로 달려들던 이들의 흉부를 후려친다.
쩌정!
콰앙!
흉부가 함몰된 두 무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가떨어지자, 어느새 안정적인 자세로 돌아온 신불이 자리를 박차고 재차 몸을 날린다.
스팟!
콰과과과광!
“크아악!”
“아악!”
신불이 전개한 은백색의 권기에 휘말리는 마교도들.
하지만 이번에는 인근의 녹림도들을 생각한 것인지, 권기의 위력이 처음과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이다! 모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여라!”
“이야아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녹림도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신불이 적들의 진형 한가운데를 휘젓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비등했던 전황을 뒤집기에는 충분했으니까.
등 뒤에서 범이 날뛰고 있는데 눈앞의 승냥이에 집중할 수 있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막우와 그를 호위하는 두 호법이 선두가 되어 정면을 무너뜨리고, 막휘와 채주들이 이에 질세라 뒤를 받쳐주고 있다.
“이…… 한낱 산적들 따위……!”
콰앙!
분개하는 마교무사의 턱을 막휘의 무형각이 수직으로 올려 차버렸다.
대련이나 상대를 단순히 제압하기 위한 일각이 아닌, 일격으로 상대의 목숨을 끊어 내기 위한 일각.
단숨에 턱뼈와 함께 두개골까지 파괴당한 마교 무사의 몸이 그대로 뒤쪽으로 넘어간다.
“산적 따위가 아니라, 녹림이다!”
막휘의 외침에 호응이라도 하듯, 사기 백배해서 마교도들을 몰아붙이는 녹림도들.
그렇게 결국, 마지막까지 서 있던 흑의무사가 신불의 주먹에 쓰러지면서 지독하던 난전이 끝이 난다.
콰아앙!
……털썩.
“후우…….”
“허억……! 허억……! 우, 우리가 이겼다!”
“사, 살았어.”
이전까지 소규모 단위의 마교도들을 처리했을 때는 우렁찬 환호를 내지르던 녹림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삼백여 명 남짓한 마교 전투대대를 상대로, 상위 서열의 녹림 산채 열 곳이 연합한 전투였다.
전투의 끝에 마교도 삼백 명은 전원 전사했지만, 삼천에 이르는 녹림도들 중 사망자는 어림잡아 천여 명에 이른다.
이 또한, 신불이 홀로 백여 명이 넘는 마교도들을 정리했음에도 벌어진 결과였다.
‘마, 만약 파마불제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고작 삼백의 마교도들을 상대로 그들 모두가 필사의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모두가 말없이 긴장감 어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막우가 저 먼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는 신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제 어떻게 해야…….”
“…….”
“……어르신, 어디를 보고 계십니까?”
“음……? 아, 아무것도 아닐세.”
무언가에 과하게 집중한 듯한 신불의 모습에 막우가 긴장한 듯 묻자, 신불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온 모양일세.”
“예? 결단이요?”
“저들의 전투 방식이 바뀌었네.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녹림을 잡으려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피해 규모 따위는 생각지 않고 그저 속전속결로 원하는 목표를 취하려는 듯 보이네.”
마치 과거의 마교처럼 말일세, 라는 뒷말을 애써 삼키며 신불이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저들이 대대적인 공세에 들어섰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포위망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네. 어차피 마교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니, 차라리 이 틈을 비집고 탈출을 하는 쪽이 나을 것 같네.”
“타, 탈출을요? 하면 다른 산채들은…….”
“결정해야 하네, 녹림왕.”
당황하는 막우를 똑바로 직시하며 신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설명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들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네. 모두가 다 같이 죽을 텐가, 아니면 하나라도 살아나가 녹림의 미래를 도모할 방도를 택할 텐가?”
“……!”
“결정하게.”
선고와도 같은 파마불제의 말에 막우가 지그시 주먹을 움켜쥔다.
그의 결정에 따라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게 된다.
불과 얼마 전과 같았다면 이 무게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두 손을 들고 말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왕이라면, 집단을 이끄는 이라면 스스로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녹림을 살려달라고 부탁드려 놓고, 이제와 다 같이 죽겠다고 하는 것만큼 한심한 답도 없겠지요.”
결심이 선 듯, 침착하면서도 깊이 있는 눈으로 신불을 바라보며 막우가 말을 잇는다.
“포위망을 뚫겠습니다.”
“…….”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
“음…….”
어두운 숲속.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한 먼 거리에서,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격전지를 가만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저것이 파마불제인가.’
어둠 속에서 신불을 지켜보는 이는, 다름 아닌 한때 임시 교주직에도 자리한 적이 있었던 조암장로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손목에 감추어진 호조를 습관적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지금 기습으로 끝내 버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상반신을 앞으로 숙이는 조암.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낯선 사내의 음성이 그의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경거망동 마시오.”
“…….”
“지금 달려드는 것은 위험하니.”
불과 하루 사이 집법장로에 오른 표령의 한 마디.
자신의 반도 채 살지 못한 그의 제지에 조암 장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째서지? 오직 적들을 섬멸하는 데만 집중하라 명하신 것은 소교주가 아니신가?”
“적들을 섬멸하라 했지, 역으로 섬멸당하라 하신 것은 아니오.”
“섬멸을 당한다고? 그대가 지원할 것도 없이, 내가 천귀대만을 이끌고 습격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조암의 반문에 표령의 눈이 가늘어진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오.”
“…….”
“지금 파마불제는 의도적으로 힘을 아끼며 우리를 전투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소.”
표령의 말에 의구심 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조암.
그는 과거 동천왕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보냈던 일회용이 아닌, 십삼 대 천마가 수년간 심혈을 다해 키워 낸 극마지경의 고수다.
그런 그가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런 이야기를 꺼낼 리 만무하다.
“아마도 자신의 힘이 다 빠지기 전에 우리를 처리해 놓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겠지…… 과연 파마불제,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군.”
“우리를 끌어들이려…… 힘을 조절하고 있는 거라고?”
“아무래도 힘을 좀 빼 놔야 할 것 같소.”
믿지 못하겠다는 조암의 중얼거림을 끊어낸 표령이 어둠 속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지켜야 할 이들이 있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을 거요. 그러니, 운기행공 따위로 회복할 수 없도록 지속적으로 공세를 이어 갑시다.”
“…….”
“범 사냥은 그리하는 것이니.”
표령의 입가에 머금어진 비열한 미소가 달빛에 비치며 새하얗게 번뜩였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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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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