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흐음…….”
죽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드높은 산봉우리 위.
한때는 황룡채가 위치했던 그 봉우리 위에서 흑의 사내가 저 먼 능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작되었나.’
녹림왕을 찾았을 때 지원이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내어 준 신호탄.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구쳐 오르는 저 검은 연기는 십중팔구 그 신호탄의 흔적이다.
‘표령과 조암이 함께 있는데도 신호탄을 썼다라…….’
파마불제가 녹림과 함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화경급 고수 하나에 불과하다.
두 극마급 고수가 마음먹고 협공을 펼쳤다면 쓰러뜨리지 못했을 리 없을 텐데, 아무래도 녹림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셌던 모양이다.
꽈악.
녹림과 파마불제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던 사내, 소교주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깨닫고 두 눈을 크게 뜬다.
전생에는 십삼 대 천마로서 살았으나, 진정한 천마를 알현한 지금 그는 과거의 삶을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다.
‘……말끔히 잊지는 못했나 보군.’
아니,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중원을 자신에 발아래에 두었던 그에게 실패를 안겨 준 원흉들이 바로 녹림과 파마불제이거늘.
물론 가장 결정적인 원흉은 무신 단월혁의 존재였지만, 저들 또한 그 지분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하필이면 옛 생각이 날 만한 정취구나.’
그가 구무림맹을 쓸어 버리며 중원을 정벌하던 때에도, 그리고 무신 단월혁에게 패하며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이런 흔하디흔한 중원의 산지였다.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정취와, 과거에 청산하지 못한 빚을 가지고 있는 적들의 존재.
이번 전투에서는 가급적 직접 나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런 상황이 되어보니 그답지 않게 피가 끓어오른다.
“……뭐, 나쁠 것 없겠지.”
수하들의 손을 두고 직접 손을 쓰는 것은 본래 그의 방식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천마가 아닌 소교주의 신분.
그러니, 이런 전투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한번 가 볼까.’
그렇게,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는 곳으로 가볍게 몸을 날리는 소교주.
마치 여흥을 즐기기라도 하듯, 그의 입가에는 기대감 어린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다그닥 다그닥.
파바바밧.
“……생각보다 더디군.”
사무현이 탄 마차 옆에서 평지를 달리던 수룡왕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달리고 있던 살암이 퉁명스레 한마디를 던진다.
“화경급 고수가 투덜거릴 만큼 달린 것 같지는 않은데…… 배 위에서 편안한 생활만 해서 그런가? 달리는 데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군.”
“이……! 헛소리 마라, 음지 애송아! 나는 이 속도로 계속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니!”
살암의 도발에 수룡왕이 버럭 목소리를 높인다.
“본래 내 속도로 달렸으면 죽산 따위 진작에 도착하고도 남았다! 이렇게 애매하게 갈 것이라면 말을 타고 말았지, 왜 내가 저 느려터진 것들의 속도에 맞춰 이렇게 달려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 덩치로 말을? 농담이 지나치군. 아니면 양심이 없는 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수룡왕을 향해 반문하는 살암.
사무현의 마차를 끄는 말들조차도 처음 수룡왕을 보자 부들부들 몸을 떨며 꼬리를 말기 급급했다.
지금 마차 옆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는 것도, 사무현이 수룡왕의 기세로부터 말들을 보호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
한데 대체 어떤 말로 저 괴물을 태울 수 있다는 말인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부터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면 곧 해가 저문다.”
어느새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하듯 이야기하는 수룡왕.
이에 살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해가 저무는 방향을 돌아본다.
‘……확실히.’
해가 중천에 떠있었는데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다.
방현과 죽산의 거리는 사실 그다지 멀지 않다.
화경급 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절정급 고수만 되어도 마음먹고 달리면 세 시진 정도면 오갈 수 있다.
천신련에 속한 이들 중 대다수가 일류 이상의 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조금 더 속도를 낸다고 해도 큰 무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슬슬 이야기를 해 봐야…….’
더 이상 지연되었다가는 너무 늦어 버릴지도 모른다.
초조함을 느낀 살암이 막 사무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그때.
“이봐, 저 멀리 보이는 저건 뭐냐?”
난데없는 수룡왕의 말에 살암의 고개가 정면으로 향한다.
“음……? 저건…….”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살암의 눈이 가늘어진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윤곽은 분명히 죽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죽산의 능선이 윤곽을 드러낸 지는 제법 되었으니까.
하지만 수룡왕이 가리킨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제법 선명해진 죽산의 능선 한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산불?’
……아니, 산불이 아니다.
산불이라면 능히 보여야 할 불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정도로 짙고 어두운 연기라면 연기의 기둥이 훨씬 두터워야 한다.
“신호탄이군.”
“신호탄? 저게?”
“……연막탄을 변형한 신호탄이다. 저런 건 먼 거리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특정 지역으로 모을 때 쓰곤 하는데…….”
쓰윽.
살암의 말이 이어지고 있던 그때, 지금까지 명상에 빠져 있던 사무현이 마차의 지붕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신호탄이라고?”
“……전부 듣고 있었나?”
사무현의 물음에 살암이 놀란 듯 반문한다.
아무리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통 저렇게 몇 시진에 이어지는 긴 명상에 빠진 이들은 외부의 환경에 늦게 반응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런 살암의 물음에 관계없이, 마차의 지붕에 선 사무현의 눈은 죽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이런, 젠장.”
“무슨 일이냐?”
죽산을 노려보며 빠른 속도로 일그러지는 사무현의 얼굴에 살암의 시선도 덩달아 죽산으로 향한다.
“뭐 느껴지는 것이라도…….”
“……야, 살암.”
“음?”
“먼저 갈 테니까, 애들 데리고 전속력으로 따라붙어.”
“뭐? 그게 무슨…….”
콰앙!
말을 마친 사무현이 자리를 박차고 경공술을 펼쳐 죽산으로 날아간다.
순식간에 죽산 쪽으로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사무현의 뒷모습에 살암과 수룡왕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저…… 저렇게…… 순식간에…….”
사무현의 움직임에 놀란 듯 눈썹을 꿈틀하는 수룡왕.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경공술을 펼친다.
파바바밧!
“수룡왕!”
당황한 살암이 그를 불렀지만, 수룡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현의 뒤를 쫓아 멀어져 갔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무는 것도 잠시.
이내 이성을 찾은 살암이 뒤쪽으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내력이 실린 음성으로 소리친다.
“모두 속도를 올려라!”
“……!”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죽산으로 향한다! 우리의 동료가 위험하다!”
“예! 형님!”
“존명!”
사천방도들과 음지 무사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각기 다른 복명음.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룡왕의 뒤를 쫓으려는 듯 앞서가기 시작하는 살암의 뒤를 따라, 천신련 전체의 행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저 멀리 보이는 죽산과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
파아아앗!
콰과과과광!
“크아아악!”
“아아악!”
신불이 내뻗은 은백색의 권기가 수십에 달하는 마교 무사들을 휩쓴다.
그의 권기를 피해 내고 접근한 마교 무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신불을 공격했으나, 신불의 권각이 그들의 몸에 틀어박히는 것이 훨씬 빨랐다.
콰광!
쩌엉!
휘리리릭.
쿵. 털썩.
“후우…… 후우…….”
한차례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처리한 신불의 턱 끝으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내력은 아직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의 육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늙었다는 것이…… 이토록 사무친 적이 있었던가?’
운기행공을 통해 내력은 회복될 수 있지만 육체의 피로마저 온전히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꼬박 이틀 간, 두 시진 이상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교도들과 전투를 벌여 왔다.
설상가상 언제 달려들지 모를 마교의 장로들까지 고려하면서.
분명한 악조건이긴 하지만, 적어도 젊었을 때의 그라면 벌써 이렇게나 지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 낼 수 없다.
채챙! 챙!
“크아악!”
“아아악!”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등 뒤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 소리와 전투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저들을 지원하고 싶었지만 신불은 이를 악물었다.
‘내 역할은 그게 아니다.’
아마 이제 오백 남짓……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적게 남았을지 모른다.
살아남아 그의 뒤를 따라붙고 있을 녹림도들의 숫자가.
다행인 것은 이미 자신들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마교도들에게 포위를 당하면서도, 녹림의 최고 정예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쉽사리 당해주지 않고 신불의 뒤를 지키며 따라붙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결정적 이유는, 최후방에서 분전 중에 있는 녹림왕의 공로일 것이다.
‘……아미타불.’
막우의 전음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생생히 떠오른다.
그의 결연한 눈빛을 보았을 때 신불은 직감했다.
막우는 이미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다는 사실을.
‘……이런 곳에서 헛되이 죽게 하지는 않겠네!’
여기서 그가 발을 멈춘다면 자연스럽게 최후방 또한 마찬가지로 위험해진다.
결국 모두 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하나 멈춰서는 안 된다.
다행인 것은 어느새 중턱 아래까지는 내려왔다는 것.
조금만 더 가면 이 지긋지긋한 포위망도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신불이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산 아래로 몸을 날린다.
파바바밧!
사사삭.
신불이 움직이기 무섭게 저 아래에서 진을 치고 있던 마교도들 수백이 또 산개하며 널찍한 포위망을 펼친다.
어떻게든 최대한 신불의 힘을 빼놓겠다는 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신불은 양손에 과감한 내력을 끌어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 생긴 문제는 육체의 것이지, 내력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아미타부우우울!”
콰구구구구.
신불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의 주먹에서 은백색의 찬란한 권기가 뻗어 나간다.
그러던 그 순간.
쐐애애액!
쩌저저정!
마교도들의 진형 뒤쪽에서 날아든 네 줄기의 검은 강기가 신불의 권기를 가른다.
저 멀리서 신불의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려왔던 마교 장로들의 공격.
순식간에 권기가 파훼되자, 신불이 양 손바닥을 단전 앞으로 가져가며 내력을 집중시킨다.
파아아아앗!
쩌저저저적!
신불의 양 손바닥 사이에서부터 퍼져 나간 은백색의 강기가 신불의 몸 주위를 감싸 안으며 날아드는 검은 강기를 받아낸다.
강기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는지 신불의 신형이 조금 뒤쪽으로 밀려난다.
“으음……!”
후두둑.
뚜둑.
식은땀이 비 오듯 바닥을 적시고 몸의 근육과 관절들이 비명을 지른다.
이 전에도 그를 방해하려는 장로들의 공격을 받아 냈지만 지금의 공격은 이전과 분명 격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힘겹게 자신을 향한 공격을 밀어내고 있던 그때.
쐐애애애액!
콰아아아아앙!
검은 강기의 칼날 위로 또 다른 마기의 구체가 날아들며, 순식간에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신불의 신형을 그대로 감싸 안았다.
쿠구구구구.
***
콰과과과과.
“읍……!”
난데없이 뒤쪽에서 날아든 폭발음과 충격파에, 마교도들과 전투를 벌이던 막우의 몸이 한순간 휘청인다.
그러기 무섭게 틈을 비집고 접근한 마교도의 칼날이 막우의 허벅지에 틀어박힌다.
퍼벅!
“큭……! 이익!”
콰아아앙!
내력이 실린 막우의 일권이 그의 허벅지에 일검을 밀어 넣는 데 성공한 마교도의 머리를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털썩.
챙그랑.
“후우…… 쿨럭! 쿨럭!”
“괘, 괜찮소, 형님?”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우호법 마명이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막우를 향해 소리친다.
이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막우가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엉망이군.’
무복은 넝마가 되었고, 한쪽 어깨와 팔뚝에 부러진 칼날 두 개가 박혀 있다.
조금 전 칼날이 박힌 오른쪽 허벅지에서는 붉은 피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양 옆구리에서도 출혈이 이어지고 있다.
쓰윽.
욱신.
‘뼈도…… 부러졌는가.’
어깨와 팔에 박힌 칼을 뽑으려 움직이자 오른쪽 갈비가 통증을 호소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꽈악.
아직은 멀쩡한 두 주먹에 힘을 주며 막우가 핏대선 눈으로 정면을 노려본다.
언제라도 그를 공격하기 위해 틈을 엿보는 다섯 명의 마교도들.
하나하나가 절정에 이른 고수들뿐이다.
“……뭐 하느냐?”
“…….”
“어서 와 내 목을 취해 보지 않고.”
짙은 살기가 전해지는 막우의 음성에 마교도들의 몸이 한순간 움찔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의 소강상태를 가졌던 그들이, 다시금 막우를 향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막우가 남은 저력을 쥐어짜 낸다.
“으아아아!”
콰아앙!
퍼벅!
막우의 주먹이 마교도 중 한 명의 얼굴에 틀어박힘과 동시에, 한 자루의 칼날이 둔해진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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