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5
035화
“……대협?”
사무현의 외침에 중년 사내의 눈이 가늘어지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사무현이 물 흐르듯 열변을 토해 냈다.
“삼 년 전 저 간악한 마교도들에게 납치되어, 말로는 다 하지 못할 갖은 고난을 겪다 겨우 탈출했습니다. 결국에는 저들에게 잡혀 죽는 것으로만 여겼사온데, 이리 대협을 만나 목숨을 구명 받으니 하늘의 도우심이 아닌가 하옵니다!”
“……야, 너 말 잘한다?”
빌어먹을 하늘이라며 욕지거리 해 대는 걸 수도 없이 들었는데…….
어처구니없어 하는 천마의 음성을 애써 한 귀로 흘려 넘기며, 사무현이 환한 미소와 함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협의 존성대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 사무현, 중원에 돌아가서도 대협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크으……. 이 정도면 완벽하다.
명예에 환장하는 무림인들이 자신의 명성을 드높여 줄 가련한 양민을 모른 체할 리 없지.
이 괴물 같은 인간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자의 도움만 받는다면 마교의 추적에서 벗어나 안전히 중원으로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한 사무현의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서늘하기만 했다.
“납치되었다? 마교에?”
“아……. 예, 그렇습니다. 대협.”
“하면 네 무공은 중원에서 익힌 것이냐?”
……어?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런 질문이 훅 들어올 건 예상 못했는데?
하지만, 여기서 어설프게 대답이 길어지면 도리어 의심을 피하지 못한다.
“예, 그렇습니다, 대협!”
……뭐, 별일 있겠어?
어차피 사무현이 익히고 있는 심법은 마교의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마교에서 보관 중이던 혈교라는 사파의 것이지.
그런데 그 순간,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사내가 돌연 한쪽 손을 뻗어 사무현의 등을 짚었다.
텁.
“어어? 왜 그러십니까, 대협?”
“가만 있거라.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살려 줄 것이니.”
아니……. 내가 지금 그걸 물어보는게 아닌데?
대체 왜 남의 등에 손을 대시느냐고.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천마가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인다.
“염려 마라. 네 내공의 근원이 마교의 것인지 확인해 보려는 것 같다.”
……내공의 근원? 그런 것도 확인할 수 있나?
아무튼, 이 심법은 마교의 것이 아니니 이쪽에서 지레 겁을 먹을 이유도 없겠네.
그리고 곧이어, 무언가 따듯한 기운이 사무현의 등 쪽에서 느껴지더니 잠시 후 그의 전신을 맴돌기 시작했다.
‘어? 이 느낌은…….’
단순한 기분 탓일까?
어쩐지 등을 타고 전해진 상대의 기운이 낯설지가 않다.
마치 자신의 기운처럼, 상당히 따듯하면서도 익숙한 듯한 느낌이…….
스윽.
아, 벌써 끝났나?
뭔가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남은 기분이었지만, 사무현은 이내 결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사내를 응시했다.
“확인은 되셨……?”
어…… 뭐가 좀 잘못됐나?
조금 전과는 달리, 사내의 얼굴에는 분명한 불신의 빛이 어려 있다.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시종일관 무심하게만 보였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
이에 당황한 사무현이 입을 다물자,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사내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무엇이냐?”
“……예?”
“네가 어찌 그 심법을 익히고 있는 것이냐 물었다.”
어……. 그게요, 천마 새끼가 이거 익히라고 추천을 해서…….
‘……라고 말해도 믿어 주지도 않을 테지.’
믿어 주면 미친놈이지, 그게.
그리고 설령 믿어 줘도 문제다.
자신이 익힌 무공이 마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기도 하니까.
잠시 어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던 사무현이, 애써 태연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내에게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건 그저, 저희 사문(師門)에서 익힌…….”
“거짓을 말하는구나.”
“……예?”
“…….”
“거…… 짓말…… 아닌데요.”
한순간에 정곡을 찔려 버리니, 실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사무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기 위해 사무현이 흘깃 시선을 돌리자,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치켜든 천마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왜, 네가 봐도 망했다, 싶냐?
“……끝까지 제대로 된 답을 할 마음은 없는 모양이구나.”
어느새 입가에 냉소까지 띠어 가며 한층 더 서늘해진 음성으로 말을 꺼내는 사내.
음……. 이 순간만큼은 진짜 눈빛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진짜 뒈지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계속 보고 있으면 좀 지릴 수는 있겠다.
……꿀꺽.
“아니요. 저는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무래도 긴 대화가 될 것 같구나.”
“…….”
“장소를 옮기도록 하지.”
쿵!
사내의 그 한마디와 함께, 돌연 사무현의 뒷목 주변에 뻐근한 충격이 전해진다.
아니, 이 인간은 뭔 경고도 없이 그냥 손을 써?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머리로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사무현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
‘이럴 수가……!’
초대 천마와 함께, 고원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내려다보고 있던 태상장로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생각한 것인지 거의 전력으로 칠 대 천마의 실험체를 몰아붙이던 화상장로.
하지만 너무도 전투에만 정신을 쏟았기 때문일까?
그는 결국 실험체를 끝내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넘었고,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가 등장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때……!’
경계를 넘은 이상 ‘그’와의 싸움을 피할 방도는 없다.
필사적으로 절기까지 구사하며 저항하는가 싶었으나, 역시나 화상장로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도주라는 최악의 선택을 한데 이어 목숨마저 잃고 말았으니.
‘멍청한 것! 하필 그런 꼴사나운 죽음을……!’
심지어 칠 대 천마로 추정되는 실험체마저 ‘그’의 손에 넘어가 버린 상황이니, 초대 천마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만일 저분께서 지금 그를 처단하려 하신다면…… 나는 저분을 말릴 수 있는가?’
초대 천마의 강함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싸우는 것은 너무 이르다.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초대 천마가 조금이라도 더 전성기에 가까운 힘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숨죽인 태상장로가 눈치만 보고 있는 사이, 초대 천마는 흥미로운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저 멀리서 사무현을 둘러메는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음?”
돌연, 초대 천마의 입에서 분명한 놀라움이 느껴지는 일성이 흘러나왔다.
이에 태상장로가 의아한 듯 초대 천마와 같은 방향을 응시하자, 저 까마득히 멀리서 정확하게 이쪽을 응시하는 사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런! 저 거리에서 이곳을 발견했다고?’
그와는 달리, 이쪽은 우거진 산세에 모습을 반쯤 숨기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큰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으니 기척조차 잡아낼 수 없었을 터인데, 대체 어찌 이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는 말인가?
당혹스러움과 경악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그때, 태상장로의 귓가로 초대 천마의 분명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큭…… 큭큭…… 큭큭큭…….”
“…….”
“하하하……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쩌적, 쩌저적.
유쾌하기 그지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초대 천마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거대한 힘.
발아래 대지에 균열이 일기 시작할 정도의 힘에, 태상장로를 포함해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는 수하들마저 입술을 꽉 깨물고 그 기세를 견뎌냈다.
그렇게 얼마나 웃음을 흘렸을까?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초대 천마가, 미련 없이 등을 돌리며 흡족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기껏해야 뱀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승천 직전의 이무기였구나.”
“…….”
“……돌아가자. 저쯤 되는 이무기라면, 용이 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줄 가치가 있으니.”
그 말과 함께,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겨 태상장로를 지나치는 초대 천마.
마치 칠 대 천마나 화상장로의 일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듯 그의 발걸음은 실로 가볍기 그지없었다.
***
“……흐억!”
“아, 일어났냐?”
흐려지는 의식의 끈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뜨자, 이제는 슬슬 정감이 가는 어두운 이공간이 사무현을 반긴다.
“나…… 기절한 거냐?”
“……보면 모르겠냐?”
……염병.
역시나 기절이네, 망할.
“끄응……. 광신도를 피하려다 별 괴물 같은 새끼를 만났네.”
육체의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뒷목 언저리가 아직도 뻐근하게 느껴진다.
앓는 소리와 함께 사무현이 상반신을 일으키자, 쭈그리고 앉아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래서 이제 어찌할 계획이냐?”
“……계획은 무슨. 영문도 모르고 기절했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뭐 저렇게 손을 막 써?”
“음…….”
“대체 왜 나를 기절시킨 거지? 내가 거짓말한 건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먼저 그 괴물은 정체가 대체 뭐야?”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불만 섞인 사무현의 질문에, 천마가 한쪽 손을 반쯤 들어 올리며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그 부분들에 있어서는 본좌가 생각해 둔 것이 있다.”
“뭔데?”
“우선 놈이 너를 기절시킨 이유는, 필시 네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물을 것이 있어서 일거다.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일 수 있었을 테니까.”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이 새끼야.
하지만, 구태여 시작부터 초를 칠 필요는 없었기에 사무현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 놈이 네 거짓말을 알아챈 것은 네 내력을 확인한 직후였다. 이는 십중팔구, 네 내력의 근원이 ‘혈교’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는 뜻이 되겠지.”
“……그걸 눈치챌 수가 있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사무현이 두 눈을 끔뻑이자, 천마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불가능하겠지. 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자연스레 세 번째 추론으로 연결된다. 본좌가 생각했을 때 놈의 정체는, 내력의 접촉만을 통해 심법의 근원을 눈치챌 수 있는 인물……. 십중팔구 혈교의 제자. 혹은, 그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녀석임이 분명하다.”
“……세상에.”
천마의 추론에,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중얼거린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겨우겨우 저 마교도 새끼들로부터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마교 새끼들 못지않게 악독한 놈을 만나 버리다니.
그리고 심지어…….
‘……하필이면 혈교네, 하필이면.’
이게 또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웬일로 운 좋게 목숨을 구명 받았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저 빌어먹을 하늘은 내가 곱게 뒈지는 것보다 죽어라 구르는 꼴이 더 보고 싶은 모양이다.
“힘내거라. 어쩌겠느냐? 네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을.”
답지 않게 사무현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로 천마를 돌아본다.
“……너는 조용히 해, 이 새끼야.”
애초에 너 살린답시고 날 납치한 네 후손 놈들만 아니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개판 나지는 않았어, 이 새끼야…….
하지만, 여기까지 자신을 도와준 천마 새끼한테 차마 이 말까지 내뱉을 수는 없는 일.
그렇게 홀로 외롭게 절망하고 있는 사무현을 향해 천마가 은밀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뭘 그리 절망하느냐? 물론 순탄하게 일이 풀린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저놈은 널 죽이지는 않을 것 아니냐?”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만약 이 추측대로라면 저놈과 너는 같은 사문을 갖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너는 그 심법을 마교에서 익혔지만, 저놈이 그것을 증명할 방도는 어디에도 없지 않느냐?”
“……어?”
“네 장기를 살리거라.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네 특기 아니더냐?”
……이 새끼 이거, 묘하게 먹이는 것 같은 기분인데?
뭐…… 아무튼.
“계속해 봐.”
“그러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무현을 향해 나름대로 생각해 두었던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하는 천마.
어느새 사무현의 두 눈은, 기대와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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