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번쩍.
자신의 귓가에 들린 그 음성에 퍼뜩 정신이 든 사무현이 반사적으로 눈을 치켜뜬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이 어둠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이는 사무현의 귓가로, 웃음을 참는 듯한 녀석의 음성이 들려온다.
“거기에 계속 누워만 있을 셈이냐?”
그제야 자신이 어둠 속에서 대자로 뻗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무현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잠시 후.
“……!”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든 사무현이 그대로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어둠 속에서 보이는 누군가를 응시하는 사무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듯, 격정과 혼란으로 흔들리는 사무현의 눈빛에 어둠 속에서 그를 마주하던 사내가 미소를 머금는다.
“그간 잘 지냈느냐?”
“……너.”
어렵사리 입술을 떼어 낸 사무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언젠가 만날 수 있게 되더라도 적어도 이승에서만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앞에는 칠 대 천마 위혜보가 서 있었다.
그것도 양 손목과 발목에 두터운 쇠사슬을 칭칭 감고서.
“……설마.”
“음?”
“여기…… 저승이냐?”
질문을 던지면서도 사무현은 이것이 꽤나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쇠사슬에 손발이 매어져 있는 녀석의 모습이라니.
적어도 이공간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사무현의 생각과는 달리 돌아온 천마의 반응에는 황당함이 드러난다.
“못 본 사이에 농담이 제법 늘었구나. 아니,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그랬던가?”
“저승도 아니면 왜 그러고 있는 건데?”
그제야 사무현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감싼 쇠사슬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위혜보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하하, 이거 말이냐?”
쩔그렁.
“보다시피 본좌를 이곳에 묶어 두고 있는 족쇄이니라. 본좌의 힘을 갉아먹는 빌어먹을 허상이지.”
“허상?”
“자세히 설명해 주기에는 본좌도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이것이 평범한 사슬이 아니라는 것 정도지.”
“평범한 사슬이…… 아니라고?”
천마의 말에 반신반의한 듯 중얼거리는 사무현.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였지만, 칠 대 정도 되는 녀석이 꼼짝 못하고 잡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보통 사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저렇게 꽁꽁 붙들려 있는 천마의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무현이 천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촤르르르르.
사무현이 한 걸음 떼어내는 순간, 천마의 뒤쪽에서 더 많은 쇠사슬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천마의 몸을 더 강하게 속박한다.
이에 당황한 사무현이 황급히 멈춰 서자 천마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을 잇는다.
“보았느냐? 이런 것이다.”
“대체…… 왜……?”
아직 사무현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정작 봉혼진에 잡힌 천마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체…….
“뭐, 상식적으로 이해하려 마라. 사실 네가 움직여도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은 본좌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
“아마도 이 봉혼진은, 어떤 방식으로든 네 육신 안에 두 혼이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흥미롭다는 듯 사슬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천마의 모습에 무력감을 느낀 사무현이 입술을 깨문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천마는 지금껏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사무현을 지켜 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천마를 도울 수 없다.
눈앞에서 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렇게 사무현이 깊은 자괴감에 빠지려던 그때, 그의 귓가로 덤덤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본좌에게 신경 쓸 것 없다. 생각보다 꼴사나운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고 이 족쇄가 마냥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니까.”
“뭐?”
“이 사슬에 붙잡히고 나니, 네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 수 있더구나. 비록 직접 보는 것만큼 생생하지는 않지만.”
“…….”
“아마도 이 사슬이, 봉혼진과 너를 이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만…….”
생각지도 못한 천마의 말에 사무현이 멍하니 눈을 끔뻑인다.
지금껏 그 홀로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천마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니?
“그럼…… 십삼 대 천마와의 싸움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다. 그놈이 진원진기까지 쓰면서 덤빌 줄은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만…… 아무튼, 위기는 잘 넘긴 모양이더구나.”
“…….”
천마의 말에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 사무현이 조용히 입을 다문다.
녀석의 말은 틀렸다.
그는 십삼 대와의 싸움에서 졌으니까.
의식을 잃기 직전 사무현이 보고 있던 것은, 새하얀 백발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던 십삼 대 천마의 모습이었다.
“아니…… 나는…….”
“염려 마라.”
사무현이 어두운 얼굴로 무어라 말을 꺼내려 하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천마가 먼저 말을 꺼낸다.
“아무 일 없을 테니.”
“아…….”
“그보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중요할 것 같구나.”
슬슬 시간이 없다는 듯 어둠 속 저편을 흘깃 돌아본 천마가, 다시 사무현을 바라보며 재빠르게 말을 잇는다.
“오래전 본좌가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어?”
“천마도법에는 형(形)이 아닌 구절(句節)로만 전해지는 초식이 있다는 것 말이다.”
“아……!”
천마의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사무현이 눈썹을 추켜올린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십삼 초식을 말 하는 거냐?”
“다행히 기억을 하는 모양이로구나.”
사무현의 반응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녀석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는지 사무현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나발이고, 그거 농담으로 한 말 아니었냐?”
“본좌는 농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분명 네게 당장 이해가 안 가더라도 확실히 기억해 두라 하지 않았느냐?”
“아니…… 뭐, 그렇긴 그런데…….”
천마의 말에 미심쩍은 얼굴로 말꼬리를 흐리는 사무현.
말이야 바른 말이지, 녀석이 말한 십삼 초식이라는 것은 현경에 오른 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허무맹랑한 이론의 초식이다.
현기는 느껴지지만 실행에 옮길 수는 없을 것 같은 초식이랄까?
그런 사무현의 반응을 마주하면서도 천마는 도리어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기억하고 있으면 되었다. 마지막 남은 한줌 힘을 끌어모아 널 이곳으로 데려왔는데, 혹여나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면 어쩌나 하던 차였다.”
“아니, 그건 또 무슨…….”
“흐음…….”
쩔그렁.
사무현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을 옭아맨 쇠사슬을 바라보는 천마.
그 무게를 가늠이라도 하듯 가볍게 왼손을 흔들어 보이는가 싶던 녀석이 이윽고 미소를 지워 내고는 사무현을 바라본다.
그리고…….
쩔그렁.
콰아앙!
“야……! 너!”
순식간에 기세를 방출하며 천마가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족쇄를 날려 버리자 사무현이 놀라 당황하며 그를 부른다.
하지만 정작 천마는 도리어 덤덤한 얼굴로 사무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지금부터 있는 그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잘 보거라.”
“……!”
“본좌가 네게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일도(一刀)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영문 모를 천마의 한 마디.
하지만 사무현은 그 말에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보이는 녀석의 얼굴과 분위기에서, 지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스스스스.
천마의 좌수가 움직인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마치 도를 쥐고 있는 듯한 손 모양새를 갖추고 부드럽게 머리 위로 치켜든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현은 느꼈다.
아무것도 들려져 있지 않은 천마의 좌수에, 그 형태와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분명한 도(刀)가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천마의 좌수가 수직으로 휘둘러진다.
그 순간 사무현은 깨달았다.
그가 이미 베었다는 사실을.
스스스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무현의 몸 주위를 한없이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굳어 있는 사무현을 향해, 이윽고 홀가분해진 얼굴의 천마가 말을 꺼낸다.
“이것이 천마도법의 마지막 초식이자 본좌가 네게 전할 수 있었던 마지막 초식이다.”
“…….”
“어떠했느냐?”
마지막 물음에서는, 천마 특유의 오만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한 답을 듣고자 하는 듯 보인다.
엄청난 충격이라도 받은 듯 멍하니 굳어 있던 사무현이, 이윽고 천천히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천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껏 본……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을…….”
“…….”
“최고의 일도(一刀)였다.”
사무현의 한 마디와 함께 그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찾아든다.
그가 한 말을 음미라도 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천마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허공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 순간.
휘리리리릭.
촤르르륵.
촤르르르륵.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쇠사슬들이 순식간에 천마의 사지와 몸통을 꽁꽁 둘러싸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몇 배는 많아진 사슬들이 천마의 몸을 어둠 속으로 잡아당기자,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인데…… 혹 본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담담한 천마의 물음.
이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천마를 향해 포권을 해 보인다.
“……고마웠다.”
“…….”
“위혜보.”
처음으로 사무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는 생소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에게 포권을 해 보인 사무현의 행동이 너무도 예상외였던 것일까?
놀란 듯 멍하니 사무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천마, 위혜보의 입가에 이윽고 짙은 미소가 머금어진다.
“……본좌 역시.”
“…….”
“고마웠느니라.”
스스스스.
그 인사를 끝으로, 쇠사슬에 둘러싸인 천마의 몸이 빠른 속도로 흐릿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짙은 어둠이 사라지고 나자 사무현의 눈앞에 만월의 새하얀 달빛 아래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신불이 눈에 들어왔다.
“시, 시주! 정신이 드는 것이오?”
“……신불 스님?”
“그렇소! 나 신불이오, 괜찮…….”
사무현의 상태를 살피며 말을 이어 가던 신불이 돌연 말을 멈춘다.
어느새 두 뺨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무현의 시선이, 그가 아닌 저 먼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쿠구구구구구.
“으음…… 이건……!”
난데없이 그들이 있던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진이라도 난 것일까?
하지만 사무현도 신불도, 이것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만월의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는 검은 연기.
그것이 규모를 짐작하기 힘든 폭발이 만들어 낸 여파라는 사실을 깨닫자 신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설마…… 무신이…….”
“후우…….”
스윽.
신불이 심각한 얼굴로 폭발이 시작된 죽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이, 어느덧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사무현이 품속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손에 익숙한 목재함의 감각이 느껴졌다.
달그락.
목재함의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사무현의 손에 쥐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청아한 향이 진동하는 한 알의 영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미타불…… 시주, 그건……!”
“……부탁 좀 할게요, 신불 스님.”
꿀꺽.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며 하나 남은 최상급 영단을 집어 삼킨 사무현이, 그대로 가부좌를 틀며 말을 잇는다.
“저…… 호법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호, 호법을? 사무현 시주, 설마 그 상태로 더 싸울 생각은…….”
“부탁드릴게요, 스님.”
“…….”
이유는 더 묻지 말라는 듯한 단호함이 느껴지는 사무현의 음성.
이에 잠시 갈등을 하는듯하던 신불이, 곧 긴 한숨을 내쉬고는 사무현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너무 오랜 시간은 본승도 장담할 수 없소이다.”
“감사합니다, 신불 스님.”
신불에게 감사를 표하기 무섭게 눈을 감은 사무현이 운기행공을 시작한다.
막휘에게도, 살암에게도, 손익패에게도 새로운 무의 영역을 개척하게 도와주었던 최상급 영단.
물론 사무현에게도 그만한 성취를 이루게 할 수는 없겠지만, 엉망이 된 그의 몸을 회복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 사무현의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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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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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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