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6
036화
휘이이잉.
‘……깼다.’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
이공간과는 확연히 달라진 주위 풍경에, 사무현은 육체에 의식이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풀냄새……. 그리고 흙냄새.’
아무래도 풀숲 같은 곳인 모양이다.
그리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보니, 무언가가 결박 중인…… 어?
‘……뭐야? 결박은 안 느껴지는데?’
그런데 왜 몸이 안 움직이는…… 아!
‘점혈……!’
오래전 마교도 놈들에게 납치 당했을 때 겪어 본 적이 있다.
혈자리 몇 군데를 툭툭 건드려, 사람 몸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괴이한 기술.
지금 이런 게 내 몸에 걸려 있다는 말은…….
‘주변 어딘가 점혈을 건 놈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자신의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그때, 사무현의 귓가로 ‘사내’의 서늘한 음성이 들려온다.
“깨어났으면 눈을 뜰 것이지, 뭘 그리 재고 있는 것이냐?”
……괴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것도 귀신이었나?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쿨럭! 쿨럭! 으으……. 여, 여기가 어디입니까?”
기침까지 토해 내는 혼신의 연기를 펼치며 천천히 눈을 뜨자,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며 쓰러진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발의 사내가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어설픈 연기할 것 없다. 네 몸이 멀쩡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
“……아니, 아프긴 진짜 좀 아픈데요.”
“…….”
“아까 그 장로한테 많이 맞아서…….”
“…….”
“죄송합니다…….”
……씨팔, 본전도 못 찾았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갔을 텐데.
“흠흠……. 아무튼, 여기가 대체 어딥니까? 대체 왜 저를 여기에…….”
“이곳이 어디인지는 네가 알 것 없다. 그리고 왜 너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는 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
“……광염천파심법을 익혀 경계를 넘은 이유가 무엇이냐?”
싸늘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음성.
그와 함께, 지금까지와는 순식간에 달라진 지독한 위압감이 사무현을 지배했다.
“……!”
조금 전에도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 사무현을 압박하는 이 거대한 존재감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어금니를 드러낸 맹수를 눈앞에서 마주한 것 같이, 오금이 떨려 오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시야가 흐릿해져 온다.
‘마…… 말이…….’
이 느낌을 어디에서 느껴 보았을까?
한마디 말조차 내뱉기 힘든 이 공포감.
아, 그렇다.
바로 그 초대 천마라는 괴물과 처음 마주했을 때.
바로 그때 느꼈던 공포감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사무현은 조금이나마 이성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씨팔. 그래,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미 한 번, 초대 천마라는 괴물새끼 앞에서 목숨을 건 구라도 쳐보지 않았는가?
어차피 대답을 안 해도 뒈지고 구라에 실패해도 뒈진다면, 더더욱 혼이 실린 구라를 치는 수밖에 답이 없다.
“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스윽.
그 말과 함께, 가만히 몸을 낮추어 사무현의 어깨에 한쪽 손을 얹는 사내.
그 순간, 금방이라도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격통이 사무현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뚜드득.
“아아악! 끄아아악! 아아아악!”
아니, 세상에 이게 말이 되나?
나 금강불괴인데?
칼에 맞은 것도 아니고, 강기인지 뭐시기에 맞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데, 진짜로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통증이 전해져 왔다.
“……한 번만 더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이대로 팔을 뽑아 버릴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 심법을 익혔고, 또 경계를 넘은 것이냐?”
“어! 억울합니다! 끄으으으……! 저, 저는 그저 십 년 전, 은거 중이시던 기인께 기연을 얻었을 뿐입니다! 끄으으으……!”
“……하, 기인에게서 얻은 기연?”
사무현의 말이 어처구니 없었는지,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그의 어깨를 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싣는다.
이에 사무현도 조금 전 준비해 두었던 변명을 필사적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사, 사실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사문(師門)을 통해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
“제게 존함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으나, 얼굴을 뵈면 반드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제발……! 겨우 마교에서 탈출했습니다! 부디 살려 주십시오!”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려가며 고통에 겨운 얼굴로 애걸하는 사무현의 음성.
이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사무현을 응시하던 사내가, 이윽고 실소와 함께 그의 어깨를 쥔 손을 풀어주었다.
스윽.
“……사문에 고하면 네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러하옵니다. 스치듯 한 인연이라 존함을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으나, 분명 얼굴을 뵈면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정말……!”
스릉.
……어?
아니, 확인을 해 보라니까 왜 검을 뽑고 그러지?
“내가 오랜만에 생긴 호기심을 풀어 보자고 괜한 시간만 날렸구나. 어차피 수상쩍은 것들은 베어 버리면 그뿐이거늘.”
어어……?
잠깐, 이게 아닌데?
그냥 궁금한 거 마저 풀지, 왜?
“아, 아니……. 잠깐만요. 저는 진짜로…….”
“아무래도 정말로 모르는 것 같으니, 마지막 가는 길 이유나 가르쳐 주도록 하마. 네가 익힌 심법은 광염천파심법이라는 혈교의 심법이다.”
그래, 그거야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거랑 날 죽이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
“그리고 그 혈교가 멸문한 것은 벌써 오백 년도 더 된 이야기다. 혈교의 유일한 적통 계승자라고 알려졌던 염천왕 사진패도…… 이백 년 전 마교의 손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지. 이제 알겠느냐?”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 혈교가, 수백 년 전에 완전히 망한 문파라고?
순간 당황한 사무현이 천천히 눈알을 굴려 천마 쪽을 응시하자, 사무현 못지않게 놀랐는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천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 너도 몰랐구나…….
그랬구나…….
그러면 내가 널 용서해야 하는 건가?
잘못된 대본을 짜서 날 죽이는 너를……?
원망과 절망이 뒤섞인 사무현의 눈빛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던지, 사내가 사무현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이…… 음?”
……뭐야, 저 반응은?
저 인간도 설마 천마가 보이나?
“이런……. 말을 듣지 않는군.”
말을 듣지 않아?
그건 또 무슨…… 어?
저벅.
‘……인기척?’
저벅저벅.
어느새, 사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여인의 신형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언뜻 사십 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미인에 가까웠다.
오, 젊었을 때 사내 깨나 울렸을 듯…….
“거기서 뭐 해요, 가가?”
“……분명 집에서 쉬라고 일렀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느냐?”
조금 전 사무현을 대하던 싸늘하기 그지없는 모습은 어디로 감추어 버렸는지, 어느새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고 있는 사내의 모습.
설상가상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는 언뜻 따스함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물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얼굴은 반쯤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가가라고?’
그럼 저 괴물 같은 놈의 부인이라는 말인데…….
그럼 생긴 거 하고는 다르게 저 여자도 괴물인가?
“평소였으면 벌써 돌아왔을 텐데, 늦으면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사내를 올려다보며, 장난기와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미소를 머금는 여인.
이에 함께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사내가 조용히 그녀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돌아가 있거라.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니.”
“무슨 일인지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에요?”
“마교도 하나가 경계를 넘었는데, 확인할 것이 있어 알아보는 중이었다. 이제 용무는 다했으니…….”
“누가아 마교도란 말입니까아!”
여인과 괴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무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인다.
당장 저 괴물을 제어할 수 있는 여인의 등장에 희망을 걸어 보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그가 마교도로 오인 받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소리이기도 했다.
“내가 그 빌어처먹을 새끼들 때문에 무슨 개고생을 했는데! 삼 년 동안! 어? 당신이 그 새끼들한테 잡혀 봤어? 당신이 뭘 알고 나를 그런 버러지들로……!”
“……저게 다 무슨 얘기예요?”
사무현의 음성에 실린 한(恨)이 여인에게 진심을 전달한 것일까?
어느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 사내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사무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살고자 하는 발버둥일 뿐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살고자 하는 발버둥은 지랄! 내가 마교도면 이렇게 마교 욕을 하겠냐? 걔들이 얼마나 미친 새끼들인데! 이미 뒈진 천마한테 미쳐 가지고! 별의별 개짓거리를 다한 새끼들인데!”
“……그 입 다물어라.”
“내가 마교도면 이런 말 할 수 있겠어? 어? 천마 개새끼! 한평생 사람 잡는 거밖에 한 게 없어서, 기어이 나까지 잡으려 하는 개새끼이!”
악이 받친 사무현의 외침에, 한순간 당황했는지 침묵을 지키는 사내와 여인.
한편, 씩씩대며 숨을 몰아쉬는 사무현의 눈에 상처받은 듯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의 얼굴이 비쳤다.
“……말이 좀 심하지 않느냐?”
……미안하다.
진심은…… 조금 섞여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미안하다.
흠흠, 아무튼.
“살려 주십시오, 귀부인! 마교도에 붙잡혀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다가 겨우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저 괴물…… 아니, 저분께서 저를 마교도로 오인하시어……!”
“거기까지. 한마디만 더 하면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 주겠다.”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분명한 살기를 흩뿌리는 사내.
음……. 이거 한마디만 더 잘못 입을 놀리면, 뒈져도 곱게는 못 뒈질 분위기다.
하지만 다행히 기세에 눌린 사무현을 대신해, 그의 말에 당황한 듯한 여인이 사내의 행동을 제지했다.
“잠깐만요. 아무래도 말을 들어 봐야 할 것 같아요.”
“헛소리니 신경 쓸 것 없다 하지 않았느냐?”
“……단순히 헛소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처절해 보이는데요? 제가 아는 마교 무사들은, 천마를 부정하면서 까지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이 아니에요.”
……저 말은 사실이다.
천마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이 저 마교를 지탱하는 근원.
물론 저들 또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겠지만, 천마를 부정하면서 까지 살기를 바랄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가령…… 교내에서 죄를 짓고 도망을 치는 신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야 그렇지만…….”
“무엇보다 녀석의 옷을 보거라. 저것은 교내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지닌 이들이나 입을 수 있는 무복이다. 마교도에 잡혔다 탈출했다는 녀석이 어찌 저런 무복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
“으음…….”
사내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현을 살펴보는 여인.
어어?
안 됩니다. 거기서 설득되시면 안 돼요.
이에 다급해진 사무현이, 필사적으로 입을 열어 다시 한번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탈출하려면 위장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것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한 것들인데, 포로복을 입고 도망치는 게 가능이나 할 것 같습니까?”
“하면 너의 그 무공은 무엇이냐? 만일 네가 진정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사문을 밝혀 보거라.”
결국, 참다못해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사무현에게 직접적인 물음을 던져 오는 사내.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사무현은 애써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부분은 조금 전 답변 드렸지 않습니까!”
“네 심법은 분명 멸문당한…….”
“그럼 당신은 어떻게 그 심법을 익히고 있는 겁니까!”
“…….”
“당신이 느꼈듯이, 제 내공은 당신과 같은 심법으로 만들어진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 문파는 몇백 년 전에 멸문했다면서요!”
“…….”
“그럼 당신은 어떻게 심법을 익힌 건데요? 어디 말씀이나 해 보시지요?”
……그래, 조금 전에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지만 그 다음 곧장 떠오른 의문이 이것이었다.
혈교는 수백 년 전에 멸문했고, 그 유일한 직계 계승자도 몇백 년 전에 죽었다고 했다.
그럼 대체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은 어디서 그 심법을 배워 익혔다는 말인가?
이쪽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하고 있지만, 분명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다.
사무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사내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음……. 거 눈빛 한번 더럽게 무섭네.
이럴 때는, 목표물을 바꿔 줘야지.
“살려 주십시오, 귀부인. 제 이름은 사무현으로, 섬서 흥평(興平) 출신의 엄연한 중원인입니다. 사천성의 금천(金川) 인근에서 떠돌이 생활도 했으니, 수소문을 해 보시면 저를 아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 구적이라고 개방 거지도 하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사무현의 의도대로, 사내를 향해 부드럽게 질문을 던지는 여인.
이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내가 이윽고 들고 있던 검을 휘둘러 허공을 베어 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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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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